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헬 블레이드 1권(9화)
Chapter3 희망, 그리고 죽음(3)
화창한 오후.
백작의 저택에서 후원 뒤쪽으로 3페르(km) 정도 가면 작은 크기의 예쁜 동산이 나온다.
그리고 그 산은 역대 갈루안스가의 주인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바로 대마도사의 경지에 들어섰던 그 주인들이 머무는 묘지인 것이다.
“자애와 풍요, 그리고 편안한 안식을 주재하시는 대지의 여신이시여. 지금 이 자리에는…….”
갈색의 사제복을 걸치고 있는 50대로 보이는 사내.
그는 대지의 여신인 리오나드를 모시는 사제였는데 현재 이곳에 모인 몇 명의 사람들을 대신해 장례식을 주관하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 신관과 마법사는 그리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지만 이곳 영지는 그렇지가 않았다. 예전부터 리오나드 신전과 갈루안스가는 친분이 두터워 서로 좋은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해 오고 있었다. 더구나 영지 내에는 리오나드 신전이 상당히 크게 지어져 있어 많은 수의 영지민들이 대지의 여신을 믿고 따르고 있었다.
“……아웬 드 갈루안스 백작은 이처럼 영지민들을 자신의 자식인 것처럼 사랑하시어 모든 일에 앞장을 서서 일해 오신 훌륭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사제의 장례식 절차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주위에 모여 있는 몇 명의 사람들은 다들 경건한 마음으로 전대 영주를 떠나보내고 있었다.
메드레스 마도사와 블레스 기사단장.
그 둘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제 오후에 자신들 둘을 불러서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해 주시던 분이었다. 그리고 늦은 밤에 갑자기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시고 말았으니 그들은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서른아홉의 젊은 나이인데, 그처럼 이른 나이에 돌아가시고 말았으니.
그들은 시선을 들어 정면에 있는 커다란 덩치의 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소영주님……!’
그들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올해 열다섯인 베스렐 갈루안스.
이제 갈루안스가 사람들 중에서는 유일한 생존자라고 할 수 있는 그를 보니 가슴이 찡해져 오는 두 사람이었다.
‘아버지……!’
베스렐은 검은 예복을 차려입고 있었는데 지금 녀석은 무뚝뚝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란 하늘 속에 자리한 흰 구름들.
베스렐은 그 구름 중에 하나가 왠지 아버지의 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둥그런 형상에 푸근해 보이는 모습이 그런 느낌이 들게 했다.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저는 기필코 살을 빼서 정상적으로 살 겁니다. 아버지가 남겨 주신 그 비술을 빠르게 익혀 내 반드시 정상 체중을 유지하겠어요. 그리고 언젠가 놈을 찾아가 반드시 죽여 버리고 말겠어요. 제가…….’
베스렐은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
아버지를 닮은 그 구름이 왠지 모르게 화가 나 있는 듯한 생각이 든 것이다. 녀석은 잔뜩 찡그리고 있는 그 구름을 보며 다시 생각의 끈을 이어 갔다.
‘후후, 그렇게 화를 내셔도 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 저한테 한 번 말씀하신 적이 있었죠? 한계를 미리부터 정해 놓지 말라고. 한계를 정하는 순간 이미 그 사람은 끝난 거라고.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그래요. 저는 아버지 말씀대로 저의 한계를 미리부터 정해 놓지 않았어요. 그러니 언젠가는 그 검은 도마뱀 새끼를 죽일 힘을 얻게 될 겁니다. 반드시 죽일 겁니다. 반드시……!’
베스렐은 지금 자신의 생각을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리라 다짐했다.
꾸구구구구. 짹짹짹.
기분 좋은 새들의 지저귐이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날은 오늘따라 유난히 화창했다.
Chapter4 차크라를 열다(1)
찬바람이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이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2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난 뒤였다.
휘이이이잉.
한번씩 부는 1월의 바람은 진정 칼바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매서웠다. 그리고 오늘은 그 추위가 다른 때보다 어쩐지 더욱 매섭게 느껴졌다.
사실 이 정도의 추위라면 웬만하면 집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게 상책이었다. 따끈한 우유를 들며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게 감기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겨울을 보낼 수 있는 한 비결인 것이다.
하지만 오늘 갈루안스 영지는 재수 없게도 칼 같은 바깥바람을 맞아야 할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아니, 떼거지로 있다는 게 맞는 표현이었다.
오늘 갈루안스 영지는 대대적으로 몬스터 토벌을 벌이는 날이었던 것이다.
“크아아앙!”
“쿠오오오오―!”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대륙을 가르는 드래곤 산맥을 내려와 작은 오솔길을 따라 평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모두 돌격 앞으로……!”
검은 전투마에 올라타 앉아 있는 한 기사의 외침에 100여 명의 중장기병들이 자신들의 기다란 창을 앞으로 내밀며 힘차게 달려갔다.
우두두두두.
거대한 힘의 물결이었다.
그들이 한 번씩 지나갈 때면 몬스터들은 짧은 비명 소리만을 남긴 채 죽어 가야 했다.
“크아아아아앙!”
“크어억!”
그리고 현재 몬스터 녀석들은 기사와 병사들만을 상대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파이어 볼!”
“라이트닝 볼트!”
어디선가 들려오는 마법의 시동어!
콰앙! 콰콰쾅!
화르르르르르르.
폭음 소리는 연이어 들려왔고 몬스터들은 시뻘건 화마에 휩쓸려 가야만 했다. 머리는 깨지고 몸은 불타오르고, 녀석들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터트려야만 했다.
“크아아앙!”
“꾸에에에에엑!”
검은 로브에 두꺼운 양털 망토를 걸치고 있는 30여 명의 마법사들이었다. 5써클의 마법사 1명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3써클에서 4써클의 마법사들인 그들은 드래곤 산맥에서 내려오고 있는 몬스터들 중 주로 10여 마리 이상씩 몰려 있는 몬스터들을 향해 마법을 날리고 있는 중이었다.
“파이어 버스트!”
“에어 블래스트―!”
멀리서 사용하는 마법공격에 몬스터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중앙대로 쪽으로 몰려오던 몬스터들은 대부분이 처치된 상태였다. 이제는 외곽 쪽에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몬스터들을 처치하는 일만 남게 된 것이다.
“파이어 필드!”
마법사들의 원거리 마법공격은 간간이 계속해서 발휘되었다. 30여 명이나 되다 보니 그들은 마법을 쉬엄쉬엄 해도 기사와 병사들을 충분히 도울 수 있었다.
“돌격, 앞으로……!”
“와아아아아!”
병사들은 마법사들의 도움으로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모두들 함성을 크게 지르며 방패와 창을 들고 다 죽어 가고 있는 몬스터들을 상대했다.
콰콰―쾅!
화르르르르르르.
적들 사이에 떨어진 불길은 병사들의 사기처럼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고 몬스터들은 제대로 된 저항 한번 해 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하나 둘씩 허무하게 쓰러져 갔다.
“크아아앙!”
“쿠오오오오오!”
***
작은 언덕 위.
주위는 온통 죽은 시체들로 가득했다.
녹색의 진득한 핏물들.
그것들은 인간의 시신이 아니었다. 죽은 녀석들은 모두 다 몬스터들이었다. 중급의 몬스터라고 할 수 있는 트롤부터 자잘한 녀석들인 코볼트에 이르기까지 녀석들은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었다.
또한 놈들의 시체를 보면 두 가지의 공격 기법에 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 시커멓게 타서 죽은 것들은 마법공격에 당한 것이요, 목이 잘려 죽은 것들은 검술에 당한 것이었다. 녀석들은 어떤 강력한 힘에 제대로 저항도 해 보지 못하고 당한 듯했다.
“크아아아앙!”
그때 어디선가 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몬스터의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몬스터의 시신들 사이에 서 있는 네 인영.
그들 중 베스렐의 눈빛이 번뜩였다.
“흐흐흐. 좋아, 좋아. 이것들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데 마침 잘됐군.”
베스렐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의 시선에 리렌시아와 그월더 저윈, 그리고 베로 페튜스가 잡혔다.
그들은 방금 전의 격렬했던 전투를 떠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너희들은 그냥 그대로 있어! 저놈들도 내가 처치한다! 내가 쳐 죽인다!”
베스렐은 뒤의 세 녀석에게 꼼짝 말라 하고는 곧 혼자서 새로 나타난 몬스터들에게 빠르게 달려갔다.
“여, 영주님! 같이 가요, 같이 가!”
“주인님! 저희들만 남겨 놓고 가시면 어떻게 해요?”
세 사람은 소영주가 갑작스럽게 뛰쳐나가자 당황의 목소리를 냈다.
“가만히 있어! 금방 갔다 올 테니!”
베스렐은 달리는 와중에 소리쳤다.
거대한 체구였다.
올해 열일곱의 나이가 된 베스렐은 키가 196다르(cm)에 몸무게가 179크롬(kg)을 상회하고 있었다. 지난 2년간 더욱 큰 체구를 가지게 된 그였다.
그리고 녀석에게서는 지금 짙은 피비린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벌써 두어 차례 수십여 마리의 몬스터들과 접전을 벌인 뒤라, 녀석의 몸은 녹색의 피로 잔뜩 얼룩져 있어 지독한 악취가 풍겨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방금 주위에 있던 그 많은 몬스터들은 대부분이 그 혼자의 힘으로 죽인 것이다.
휘이익.
쉴 틈이 없었다.
“이 자식들 가만 안 둔다!”
“쿠오오오오오―!”
“크르르릉!”
몬스터들의 으르렁거림이 심상치 않았다.
3마리의 거대 흰색 몬스터들. 녀석들은 베스렐보다 훨씬 커다란 체구를 지니고 있었다.
키는 아무리 못 돼도 5미르(m)는 되어 보였고 몸무게는 팔8, 9메그롬(ton)은 되어 보였다.
녀석들은 오우거 중에서도 ‘스노우 오우거’라는 북쪽 드래곤 산맥에 주로 서식하는 상급의 몬스터들이었다.
일반의 오우거보다 좀 더 강하다고 알려진 스노우 오우거.
“흐흐, 스노우 오우거라. 아주 좋았어.”
베스렐은 녀석들에게 달려가는 와중에 하나의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몸을 움직이면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무빙 캐스팅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원래 마법사들의 탑 중 원탑의 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갈루안스 마탑에서도 그 같은 원탑의 비기를 어렵지 않게 잘 사용하고 있었다.
“인시너레이트!”
곧 베스렐의 입에서 하나의 마법 시동어가 터져 나와 3마리의 스노우 오우거 중 가장 왼쪽에 있는 녀석에게로 날아갔다.
쿠아앙!
화르르르르르―
“크아아앙!”
녀석은 참을 수 없는 화염의 고통에 짧은 비명을 내질러야 했다.
순식간에 검은 재로 변해 가는 스노우 오우거.
인시너레이트란 마법은 5써클에 속하는 마법으로 단일 공격에 있어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는 마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털썩!
녀석은 곧 바닥에 쓰러져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날아갔다. 검은 재만을 조금 남겨 놓고서.
“쿠오오오오오!”
“크아아앙!”
옆에서 같이 달려오고 있던 다른 2마리의 스노우 오우거들이 동료의 죽음에 더욱 커다란 괴성을 내지르며 지척에까지 이른 베스렐을 향해 몸을 날렸다.
휘이익.
오우거란 녀석들은 그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무척이나 민첩한 놈들이었다. 힘이 엄청난 데다 몸까지 빠르니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이른 기사가 아니면 놈들을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없다고 봐야 했다.
후아아아앙.
순간 놈들 중 한 녀석의 나무통만 한 팔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베스렐의 상반신을 향해 빠르게 휘둘러졌다.
무시무시한 위력의 팔 공격이었다.
베스렐은 녀석의 공격을 재빨리 왼쪽으로 두 걸음을 옮겨 피한 다음 자신의 병기인 그레이트 소드로 녀석의 허리 부위를 단번에 갈라 버렸다.
서걱!
“크아아앙!”
“제길, 제대로 안 들어갔잖아!”
베스렐의 불꽃 모양의 주름이 살짝 일그러졌다.
스노우 오우거는 커다란 비명 소리와 함께 자리에 주저앉듯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쿠웅.
허리의 삼분지 이가 오러의 힘이 맺힌 거대 검날에 잘려 버려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베스렐은 원래 녀석의 허리를 단번에 두 동강을 내 버리려고 했는데 놈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빨라 그렇게 삼분지 이만을 갈라 버릴 수 있었다.
“역시 별거 아닌 녀석들과의 싸움이라도 경험이 중요한 거야.”
줄줄줄줄.
바닥에는 금세 녀석이 흘린 녹색 피로 물들어 갔다. 베스렐은 녀석을 쓰러뜨리자마자 재빨리 다시 신형을 뒤로 날렸다.
후아아아악.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아남은 마지막 스노우 오우거가 두 눈을 짙은 녹색으로 물들인 채 기다란 손톱을 이용해서 공격을 해 온 것이다.
녀석은 죽은 다른 두 놈보다 덩치가 훨씬 더 컸다.
또한 녀석은 인간들과의 싸움 경험이 전의 두 놈보다 훨씬 더 풍부해 보였다. 자신의 기습적인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제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며 천천히 옆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대체적으로 앞뒤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지능적으로 싸우는 놈이었다.
“흐흐흐흐. 그런 공격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오우거야. 너는 그냥 내게 죽어 주면 되는 거야.”
베스렐은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자신을 신중히 상대하려는 녀석에게 걸음을 성큼 옮겼다.
녀석은 스노우 오우거를 단지 심심풀이 상대로 여기고 있었다. 중간계의 절대자인 드래곤을 상대하겠다는 마음을 품은 마당에 이런 대수롭지 않은 몬스터에게 긴장한다거나 흥분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방심은 있을 수 없었다.
하찮은 몬스터라도 전력을 다해서 싸워야 예상치 못한 일에 대비할 수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