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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블레이드 1권(10화)
Chapter4 차크라를 열다(2)


스윽.
그레이트 소드가 뒤로 살짝 돌아가며 앞으로 나아갈 채비를 했다.
“흐흐흐…….”
“크르르르릉.”
긴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스노우 오우거와 베스렐과의 거리는 8미르(m).
녀석은 두 걸음이면 족했고 베스렐은 여섯 걸음이면 서로 만날 수 있는 거리였다.
휘이익.
순간, 큰 인간과 거대 몬스터 1마리가 몸을 날리며 부딪쳐 갔다.
서걱! 서걱! 서걱……!
무언가 잘려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것은 한 번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크아아아아앙!”
순간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먼저 스노우 오우거의 50다르(cm)에 이르는 날카로운 손톱들이 베스렐의 그레이트 소드에 잘려졌다. 그 다음으로는 녀석의 통나무 같은 팔이 잘려졌다. 그리고 어깨, 허리, 다리의 순서. 마지막으로 놈의 목이 날아갔다.
“크아앙―!”
서걱! 피슛!
짙은 녹색의 핏물은 분수를 이루며 사방으로 흩어졌고 녀석의 커다란 머리통은 작은 바위 옆으로 굴러 떨어졌다.
털썩!
싱거운 싸움이었다, 별달리 힘들일 것도 없는.
“역시 이것들로는 안 돼. 몬스터라도 최상급은 되어야 싸울 맛이 나. 이런 정도의 녀석들로는 나의 역량을 온전히 다 끌어올릴 수가 없어.”
베스렐은 싸움이 끝나자 자신의 그레이트 소드에 묻어 있는 녀석들의 피를 닦아 내기 위해 오러를 주입했다.
푸시시시.
더러운 진녹색의 피! 그것은 오러의 힘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응?”
그때였다.
누군가 마법을 사용하려는지 주위 마나의 기운이 베스렐의 등 뒤 언덕 쪽으로 빠르게 몰려갔다.
베스렐이 고개를 돌려 보니 녀석의 노예인 리렌시아가 마법을 펼치려 하고 있었는데, 그 대상은 150여 미르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한 무리의 고블린 녀석들이었다.
“파이어 블래스트!”
리레시아의 입에서 곧 5써클에 자리한 불의 마법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곧장 50여 마리나 모여 있는 고블린 녀석들의 중심부로 날아가 놈들 중 무려 20여 마리를 지옥의 불구덩이로 끌고 갔다.
콰앙! 콰콰쾅!
“끄아아아악!”
“케에엑!”
화르르르르르르.
거센 불길에 타오르고 있는 고블린 녀석들.
“쳇! 재미없군.”
베스렐은 고블린 녀석들에게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약한 녀석들이지 않은가. 그래서 다시 걸음을 옮겨 언덕 쪽으로 가려고 했다.
한데 그가 막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위에 있던 세 녀석들이 베스렐이 있는 곳으로 먼저 다가오고 있는지라 할 수 없이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오오, 역시 우리의 주군이십니다. 끝내 줍니다, 끝내 줘요. 이 커다란 스노우 오우거를 이처럼 손쉽게 끝장을 내다니 말입니다.”
그월더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스노우 오우거 같은 경우는, 못해도 소드 익스퍼트 중급의 경지에 이르러야 제대로 맞붙어 죽일 수 있는 상급의 몬스터였던 것이다.
“주인님! 그렇게 자꾸 혼자서 행동하시면 어떻게 해요? 그러다 위험에 빠지시면 어찌하려고요?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 그건 정말 위험한 일이란 말이에요.”
리렌시아는 예쁜 두 눈을 흘기며 베스렐에게 나무라는 말을 했다.
사실 노예가 주인에게 이런 식의 말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이곳 영지에서는 달랐다. 아니, 이것은 영지의 문제가 아닌 베스렐과 리렌시아의 관계가 좀 특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뭐가 위험해? 여기서 나보다 강한 놈이 누가 있다고? 블레스 기사단장도 나한테는 안 되는데.”
“그래도 사람 일이란 것은 모르는 거예요. 아무리 주인님이 기사단장님보다 강하다고 해도 말이에요. 그러니 제발 주위 사람들 조마조마하게 만들지 좀 마세요.”
“쳇! 잔소리 하고는…….”
베스렐은 리렌시아의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사실 그의 검술 경지는 블레스 기사단장보다도 아직 한 단계 아래에 있었다. 그의 경지는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경지에 있었고 기사단장은 최상급의 경지에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베스렐은 체력이 좋았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이 녀석에게는 있는 것이다.
또한 힘이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강했다. 검과 검이 부딪치면 상대의 검이 무조건 튕겨 나가는 것이다. 단기전이라면 블레스 기사단장에게 당연히 지겠지만 장기전으로 몰고 가면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더구나 베스렐에게는 마법이 있었다. 그것도 5써클이라는, 전투에 있어서 상당히 유용하면서도 강한 마법사가 바로 베스렐인 것이다.
두두두두두.
그때 언덕의 뒤쪽 300여 미르 밖에서부터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크아아아아앙!”
“쿠오오오.”
베스렐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뒤로 돌아갔다.
아직까지 살아 숨 쉬고 있는 30여 마리의 몬스터들.
녀석들은 지금 전투마에 올라탄 10여 명의 기사들에게 하나씩 목이 잘려 차가운 대지 위로 쓰러지고 있었다.
“블레스 기사단장이군.”
베스렐은 10여 명의 기사들 중 가장 선두에 있는 자를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브레스트 플레이트 아머(가슴만 감싸 주는 갑옷)를 걸치고 있는 블레스 라신.
그는 기사단원들과 함께 순식간에 30여 마리의 몬스터들을 모두 차가운 대지에 뉘이고는 베스렐이 있는 곳으로 말을 몰아 다가왔다.
“영주님! 상반기 첫 번째 몬스터 토벌은 이것으로 모두 끝을 맺었습니다.”
“그래? 방금 그 녀석들이 마지막이었나 보군.”
“예, 그렇습니다.”
블레스 기사단장의 말에 베스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흐음, 좋아. 그럼 다들 돌아가지. 아, 그리고 전사한 병사들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이런 정도의 몬스터들을 상대하고서 말이야?”
“예에, 그것은 아무래도 전체 보고서가 올라와 봐야 자세히 알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나간 길에서는 전사자가 아직까지 단 1명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마 다른 곳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법사들의 도움이 절대적이니 크게 다친 병사는 있을지언정 전사자는 없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사실 몬스터들의 토벌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는 영지라면 어느 곳이나 다 전투를 하다 전사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더구나 갈루안스 영지는 대륙을 가르는 거대 드래곤 산맥이 바로 옆에 붙어 있지 않은가. 드래곤 산맥은 몬스터들의 서식지였고 또한 대형 육식 몬스터들도 많이 몰려 있는 곳이다. 당연히 다른 영지에 비해 몬스터들의 침입이 잦아야 했고, 또한 전사자들도 많이 나와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았다.
갈루안스 영지는 1년에 단 네 차례만 몬스터들의 침입을 맞이했다.
이것은 마법진 때문이었다.
갈루안스가는 7써클의 대마도사가 한 세대마다 나왔다.
100여 년 전 처음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곳으로 어쩔 수 없이 이주해 왔을 당시부터 그들 대마도사들은 드래곤 산맥과 접해 있는 이곳을 반영구적인 마법진을 이용, 몬스터들의 침입을 막아 버렸다.
놈들이 잘 지나다니는 길에 강력한 전격마법부터 환상을 일으키는 마법을 설치해 녀석들이 영지 주변으로 다가오는 것을 봉쇄해 버린 것이다.
물론 마법진이라고 해서 완벽한 것은 아닌지라 틈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 틈을 통해 녀석들은 1년에 네 차례 정도 침입을 가해 왔다.
물론 그 같은 틈도 7써클 대마도사의 힘이라면 오래지 않아 전부 막아 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전대 영주인 아웬 백작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이유는 몬스터들과의 전투가 없다면 병사나 기사란 존재가 그다지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평화에 너무 길들여지면 나중에 큰 위기가 닥쳐왔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역대 갈루안스가 사람들은 그 같은 일을 우려해 마법진이 만든 틈들을 일부러 놔두고 1년에 네 차례 정도 몬스터들과의 전투를 진행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으음, 그래?”
베스렐은 블레스 기사단장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럼 이제 다들 돌아가자고.”
“예, 영주님. 자아, 다들 이제 그만 돌아간다!”
블레스 기사단장의 말에 모두들 다시 전투마에 올라타 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갖췄다.
“히히히힝!”
말들의 투레질이 거칠게 들렸다.
그리고 이날의 몬스터 토벌은 블레스 기사단장의 예상대로 전사자는 단 1명도 나오지 않았다. 갈루안스가는 다른 어떤 영지보다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

희미한 마법등이 실내의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이곳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는 욕실이다.
직경 5미르(m)의 둥근 원 안에는 뜨끈한 물이 들어차 있었는데 베스렐은 지금 그 공간 안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이곳은 그의 전용 욕실인 것이다.
끼이익.
그때 욕실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금발에 무척이나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그녀는 리렌시아였다.
“휴우우우…… 제길…….”
베스렐의 입에서 나직한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리렌시아의 모습을 보고 나니 절로 그리 되는 것이었다.
금발과 똑같은 색의 가슴 가리개와 하체의 중요 부분만을 살짝 가린 손바닥만 한 크기의 금빛 천 쪼가리.
거기다 리렌시아의 몸은 그 청순한 미모와는 달리 매우 글래머러스하지 않은가.
저걸 보고 어느 사내가 미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베스렐의 경우는 이제 소년기에서 서서히 성년으로 향하는 열일곱의 나이지 않은가.
한창 여인의 몸에 대해 관심이 많을 나이이니, 리렌시아의 모습을 보니 후끈한 열기가 전신을 감싸는 기분이 드는 베스렐이었다.
“너, 리렌시아! 그냥 밖에 있으라고 했잖아. 그런데 뭐하러 들어온 거야?”
“어머,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저는 주인님이 오늘 밤부터 ‘써클의 방’으로 들어가시겠다고 하셔서 며칠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이렇게 손수 등을 밀어 드리려고 안으로 들어온 건데. 정말 서운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첨벙!
리렌시아는 손에 부드러운 타월을 들고 뜨끈한 욕탕 안에 몸을 담갔다.
“뭐라고? 나 이거 참!”
베스렐은 화를 내려다 참았다.
화를 내려 했지만 리렌시아의 맑고도 그윽한 두 눈을 바라보니 화가 절로 가라앉혀졌다.
리렌시아…….
그녀는 극히 희귀하다고 알려진 골드 폭스족이다. 마법 재능이 상당히 뛰어나다고 알려진 종족.
그리고 이 골드 폭스족은 마법사들이 상당히 탐을 내는 종족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골드 폭스족을 제자로 받아들이려는 목적보다 다른 커다란 이유가 존재하고 있었다.
골드 폭스족에게 7써클에 자리한 마법인 절대귀속마법을 펼쳐 마법사에게 노예로 귀속시켜 버리면 그 마법사는 그 순간부터 마법을 익히는 데에 있어 상당히 빠른 진도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골드 폭스족도 마찬가지였다. 주인이 된 자의 마법 써클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들도 같은 경지로 올라서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마법 경지를 이끌어 주는 것이라 마법사들은 이런 골드 폭스족인 노예를 발견하면 천금을 주고라도 사려 하는 것이었다.
하나 그 같은 골드 폭스족은 극소수이기 때문에 노예시장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더구나 골드 폭스족은 어렸을 때에는 다른 폭스족처럼 갈색의 머리나 회색의 머리를 하고 있어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 그들을 구해 절대귀속마법을 건다는 것은 진정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당금 대륙 마법계를 보더라도 골드 폭스족을 노예로 삼고 있는 마법사는 1, 2명 정도가 전부인 것이다.
리렌시아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만히 계셔 보세요, 제가 등을 밀어 드릴 테니.”
부드러운 손길이 베스렐의 커다란 등 뒤에 와 닿았다.
‘제길, 미치겠군. 이걸 확 덮쳐 버려!’
리렌시아는 녀석의 노예다. 당연히 그녀의 육체는 언제라도 주인이 원할 때면 안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곧 속으로 고개를 살래살래 내젓는 베스렐이었다.
리렌시아의 손길이 등에 닿자 아랫도리가 일어서려 하고 있었지만 참아 보려고 애썼다. 녀석은 지금의 이 상황도 수련이라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인간으로서 중간계의 절대자인 드래곤을 잡아 보겠다고 마음먹은 마당에 이런 작은 일도 극복하지 못한다면 녀석을 상대하겠다는 생각은 진즉에 포기해 버리는 게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