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헬 블레이드 1권(11화)
Chapter4 차크라를 열다(3)
스윽, 스윽.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손길은 계속해서 움직임을 보였다.
거기다 리렌시아에게서는 남자들에게서는 맡을 수 없는 향긋한 내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호호. 제가 이렇게 닦아 주니 시원하죠, 주인님?”
거기다 리렌시아가 지금처럼 귓가에 대고 말을 할 때면 그 같은 내음은 더욱 크게 일어나 베스렐을 미치게 만들었다.
‘참는다, 참아! 이딴 것도 참지 못하면서 어찌 그 검은 도마뱀 새끼를 상대할 수 있겠어.’
정신을 집중해 마음속으로 외쳐 보았다.
‘가라앉아라, 가라앉아!’
베스렐은 자신의 아랫도리가 자꾸 기지개를 펴려 하자 의지를 일으켜 가라앉히려 애썼다. 그렇게 해도 잘 안 되자 결국엔 검은 도마뱀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저택의 곳곳에는 그림이 있었다. 고룡인 카스트리온의 모습을 죄인의 모습인 양 그린 몇 장의 몽타주가 있었기에 녀석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카스트리온……!’
녀석의 모습을 떠올리자 곧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놈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강하게 떠올리니 거침없이 기지개를 펴던 아랫도리가 순식간에 잠잠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다려라. 언젠가는 네 녀석을 반드시…….’
그 뒤 베스렐은 속으로 다시 한 번 다짐의 말을 해야만 했다. 녀석은 잊지 않고 있었다. 가문의 윗분들 모두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를. 그리고 자신이 지금 누구 때문에 이처럼 심한 다이어트의 고통에 빠지게 된 것인지를 말이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끌어 오르는 커다란 불길. 원한에 가득 찬 복수심은 그렇게 날로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님?”
“으응, 뭐?”
리렌시아는 베스렐의 등을 타월로 밀면서 한 가지 궁금한 사항을 물었다.
“오늘 밤에 써클의 방에 드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건 6써클의 경지를 생각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아직 5써클을 완전히 마스터하지도 못했는데. 너도 알고 있잖아?”
베스렐의 대답에 리렌시아가 이상하다는 듯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하는 말이에요. ‘써클의 방’이라고 하는 건 마법의 경지가 다음의 경지를 바라볼 정도로 한 써클을 완벽히 마스터한 마법사가 보다 빠르게 다음의 경지로 들어서기 위해 수행하러 들어가는 방이잖아요. 그게 또 마법사의 정신을 엄청나게 혹사시킨다고 해서 ‘마도 고행’이라고도 하고요.”
“그래서?”
“예에? ‘그래서’라니요? 방금 주인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아직 5써클을 완전히 마스터하지 못했다고. 그런데 어떻게 거길 들어가시겠다는 거예요?”
베스렐은 리렌시아가 하는 말을 이해했다.
“으응, 그거. 네가 뭔가를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내가 오늘 밤 ‘써클의 방’으로 들어가려는 건 마법의 경지를 높이려고 들어가는 게 아니다.”
“예에? 마법의 경지를 높이려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고요?”
리렌시아의 두 눈이 동그랗게 치켜떠졌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알고 있기로, 또한 스스로 경험해 본 바로는 ‘써클의 방’은 마법의 경지를 높이려는 목적 이외에는 다른 그 어떤 용도로도 사용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신을 혹사시키는 끔찍한 환상. 그러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바로 써클의 방이었다.
그리고 이 써클의 방은 한 번 들어가면 짧으면 열흘, 길면 보름을 머물러 있다가 나올 수 있었다. 그 기간보다 짧게 혹은 길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고, 또한 그 기간 동안은 음식을 일절 들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물론 물은 마실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음식을 들지 못하니 한 번 그곳에 들어가면 정신을 비롯한 체력이 완전히 고갈되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 후로는 짧으면 며칠 길면 몇 달은 요양을 해야만 했다.
“당연하지. 아직 마법이 그 위의 단계로 오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당연히 그럴 리가 없는 것이지. 내가 오늘 밤 ‘써클의 방’을 이용하려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지금은 말해 줄 수가 없어. 이유는 내가 그곳을 나온 뒤에 가르쳐 주마.”
“…….”
갑자기 욕실 내부가 침묵에 잠긴 듯 조용해졌다.
베스렐은 말을 끝마치자 조용히 두 눈을 내리감았다.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겠다는 듯이 그렇게.
곁에 있던 리렌시아는 그런 주인의 모습을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았다.
써클의 방에 들어가는 다른 이유?
당연히 궁금했다.
하지만 리렌시아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결심했다.
왠지 주인에게서 범접치 못할 분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비장한 모습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뭔가를 단단히 결심한 모습이라고 해야 할지, 어쨌든 리렌시아는 심상치 않아 보이는 주인의 모습을 괜히 건드려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으음…….”
베스렐은 리렌시아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자신만의 생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오늘은 반드시…….’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
넓은 지하 석실.
이곳은 특이하게도 붉은빛과 푸른빛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물결치듯이 일렁이고 있었다.
바닥을 보면 커다란 마법진이 원형을 이루며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그건 주위의 사방 벽과 위의 천장도 마찬가지였다. 하늘과 땅, 동서남북이 모두 알 수 없는 마법진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었다.
이곳은 일명 ‘써클의 방’이라고 하는 곳이었다.
마법사들이 자신들의 경지를 보다 쉽고 빠르게 올리기 위해 연구해 만든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 써클의 방에는 곰같이 커다란 체구의 사내 1명이 바닥에 몸을 누이고 두 손을 자신의 배에 살짝 얹혀 놓고 있었다.
녀석은 베스렐이었다.
“휴우우우…….”
베스렐은 지금 깊은 심호흡을 몇 번에 걸쳐서 행하고 있었는데 녀석이 현재 취하고 있는 자세는 다른 게 아닌 마나 명상법을 할 때의 바로 그 자세였다.
마나 명상법의 자세는 모두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었는데 그중 첫 번째는 다리를 서로 꼬아서 앉는 조금은 힘들다 싶은 자세가 있었고, 두 번째는 지금 베스렐이 하고 있는 것처럼 편안히 누워서 두 손을 자신의 배꼽 부위에 가지런히 올려놓는 자세가 있었다.
베스렐은 생각했다.
‘차크라 수련법! 지난 2년 가까이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수련해 왔는데 오늘은 반드시 성공했으면 좋겠군.’
아웬 백작이 마지막 유물처럼 남겨 주고 간, 드래곤이 내린 저주를 풀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 수련법.
그것은 차크라라고 하는 인간 본연의 잠재되어 있는 어떤 힘을 깨우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원래는 쿤달리니(근본 에너지)가 잠들어 있는 무라다라 차크라부터 수련을 해 차례로 나머지 6개의 차크라를 열어야 하겠지만 그건 시간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야. 수백 년을 수련해도 그 7개의 차크라 모두를 다 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
7개로 나누어져 있다는 차크라.
그것은 가장 첫 번째로 쿤달리니가 잠들어 있다는 항문과 생식기 사이에 위치한 무라다라 차크라를 시작으로 한다.
그 뒤, 배꼽 바로 아래에 존재한다는 스바디스나타 차크라, 배꼽 부위에 있다는 마니푸라 차크라, 가슴 한복판에 있다는 아나하타 차크라, 인후부(목 부위)에 있다는 비슈다 차크라, 그리고 제3의 눈이라고도 하는 미간에 자리한 아즈나 차크라에 이어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의 사하스라라 차크라가 머리의 중앙 백회에 위치해 있었다.
‘왕관 차크라라고도 하는 최상위의 사하스라라 차크라를 단번에 열어야 해. 인간의 정신을 우주와 합일시켜 주는, 인간 자체를 초월하게 해 주는 그것을 열어야 검은 도마뱀 새끼가 건 저주를 풀 수 있을 거야.’
“휴우우우…….”
베스렐은 다시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두 눈을 내리감았다.
이제부터는 지난 2년에 걸쳐 해 온 수련을 가다듬어 사하스라라 차크라에 도전해야 했다.
‘먼저 우리 가문의 비기인 갈루안스 마나 명상법으로 여섯 번째인 아즈나 차크라를 자극하는 거야. 그리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사하스라라 차크라에 다가가는 거지. 정신을 모아 하나를 이루게 하는 방법은 이미 터득했으니 오늘 일은 끈기와 집념, 그리고 운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어.’
마법사들의 수련법인 마나 명상법.
그중에서 베스렐이 익히고 있는 ‘갈루안스 마나 명상법’은 최고의 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마나 명상법이라고 하는 것은 여섯 번째 차크라인 아즈나 차크라하고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것인지라 지난 2년간 베스렐은 큰 어려움 없이 아버지가 완성시킨 차크라 수련법을 수련해 올 수 있었다.
‘하나의 마음……!’
베스렐은 마음속으로 강력한 한 가지의 염원을 떠올리며 천천히 갈루안스 마나 명상법을 시작으로 해서 독특한 호흡을 요하는 차크라 수련법으로 넘어갔다.
고요히 흐르는 호흡 소리 하나. 그리고 그 호흡 속에서 노니는 세상의 마나.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붉은빛과 푸른빛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공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1시간, 2시간, 3시간…… 그리고 그 시간은 더욱 빠르게 다음 날로 넘어갔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날은 그렇게 빠르게 흘러가 이제는 서서히 칠 일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 써클의 방은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쥐 죽은 듯 가만히 누워만 있는 베스렐.
녀석은 지금 칠 일 동안 단 한 번도 눈을 뜨지 않고 있었고, 또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채 그렇게 누워만 있었다. 그 어떠한 변화도 보이지 않은 채로 말이다.
베스렐은 지금 하나의 마음에서 점점 무념(無念)의 세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무념의 세계라기보다는 지극한 염원의 세계라 해야 옳았다.
우주의식과 하나가 되고 픈 일념. 반드시 이루고 싶다는 지극한 정성으로 이루어진 염원.
바로 그때였다.
우우우웅.
변함없던 이 자리에, 작은 그 어떠한 소음조차 들리지 않던 이곳에 마침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얕은 지진이라도 일어나려는 것일까?
써클의 방에서는 서서히 어떤 울림이 들리기 시작했고 그것은 점점 커져만 갔다.
우우우우우웅.
석실 안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던 붉은빛과 푸른빛은 그 울림 속에서 빠르게 요동치며 어지럽게 일렁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베스렐에게서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두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베스렐은 중력을 무시하고 서서히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곤 붉은빛과 푸른빛이 가득한 허공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지금 녀석은 자신이 그렇게 허공을 유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녀석의 정신은 지금 지극한 황홀경 속에 우주의식과 합일을 이루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지금과 같은 일이 계속 진행된다면 어찌 될 것인가?
인간의 정신이 우주의식과 합일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 것일까?
신이 되는 것이었다.
절대자가 되는 것이었다.
소우주인 인간이 대우주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우주의 거대 이성은 베스렐의 정신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쿠웅!
베스렐의 견고한 정신 속에 어떤 강렬한 균열이 생겼다.
심장이 터질 일이다. 아쉽게도 황홀경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베스렐이다.
녀석은 마음속으로 그 거대한 우주의 이성에게 외쳤다.
‘안 돼! 이 새끼야……! 나는 드래곤의 저주를 풀어야 한단 말이다!’
처절한 마음속의 외침!
어렵게 찾아든 기회였다. 끈기와 집념이 만들어 낸 기회였다. 아니, 그보다는 운이 훨씬 더 작용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운이 백 중 구십구 정도의 역할을 한 것이다.
지금의 때를 놓치면 언제 또다시 지금과 같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안 된다고……!’
베스렐은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외침을 터트렸다.
하지만 우주의 이성은 그런 베스렐에게 또 한 번의 충격을 더 던져 주었을 뿐이었다.
쿠웅!
강력한 충격이 베스렐의 뇌리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이번의 충격은 전과는 조금은, 아니 많이 다른 충격이라 할 수 있었다.
악착같이 달라붙으려는 베스렐.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하는 베스렐.
무서운 집념이었다.
우주의 이성은 녀석의 그 악착같은 집념이 귀찮았는지 하나의 질서를 살짝 비틀어 버렸다. 아마 그래서인 걸지도 모르겠다.
우우우우웅.
써클의 방에 자리한 붉은빛과 푸른빛은 더더욱 심하게 요동쳤다. 그리고 그 순간 베스렐은 자신의 정신 속 어딘가에 이상한 기억들이 물밀듯 들어참을 느낄 수 있었다.
콰직!
‘으윽, 뭐, 뭐야? 이…… 이것들은 다…… 다 뭐야?’
고오오오오.
광풍이라도 부는지 세차게 출렁이는 써클의 방.
베스렐은 당황스러웠다.
막을 수 없는 물결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력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었다.
베스렐은 그 생소하면서도 언젠가 겪어 본 듯한 기억의 홍수 속에 서서히 의식을 꿈의 영역으로 향해 갔다.
‘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