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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블레이드 1권(12화)
Chapter5 전생의 기억(1)
세상 속의 세상이라는 무림. 그리고 그 세상의 지배자라고 할 수 있는 황제.
황제는 야인들이 머무르고 있다는 그 무림이란 세계에 관심이 많았다. 인간의 능력 이상을 발휘하게 해 준다는 무공. 그리고 그러한 무공을 익혀 절대의 고수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특히 많은 관심이 갔다.
인간이 새도 아닌데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고 손에서는 신기하게도 돌풍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살상해 버린다는 이야기. 한 번 고함을 내지르면 산천초목이 두려움에 ‘벌벌’ 떨며 고개를 숙이고 검을 한 번 내려치면 흐르는 강물이 갈라져 버린다는 이야기.
신기했다. 아니, 궁금했다.
과연 무공이라고 게 어떠한 것이기에 그러한 절대의 능력들을 지니게 됐는지.
황제는 자신도 그런 능력을 가지고 싶었다. 절대의 권력이 아닌 절대의 무력을 한번 몸으로 익히고 싶었다.
그래서 명했다.
천하제일의 무공을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그게 안 되면 만들어서라도 가져오라고.
절대자의 명은 그렇게 떨어졌고 그것은 곧 비밀리에 시행되었다.
황실무고가 열렸고 그곳에 있던 천하 각파의 절전된 무공비급들이 파헤쳐지고 연구가 진행되었다.
비급들이 모자라 자료가 필요하다면 동창의 숨은 고수들을 무림에 파견시켜 무림문파를 멸문시키면서까지 비급들을 모았다.
무림에 때 아닌 피바람이 불게 된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정파와 사파는 서로 전쟁을 하게 되었다. 서로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고 주장하면서 그렇게.
오랜 시간이었다. 무림문파 간의 전쟁은 무려 15년간이나 이어지게 되었다. 누군가의 호기심 어린 명 때문에 그렇게 말이다.
작은 석실 안.
석실 내부는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천장에는 빛을 발하는 야광주 2개가 박혀 있었고 돌로 만든 탁자인 석탁에는 지금 커다란 등촉 3개가 밝은 빛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 석탁을 가운데에 두고 두 사람이 앉아서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금의를 걸치고 있는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장년의 사내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
“어찌 됐다고 하던가?”
“예. 동창의 비밀고수들의 말로는 이번엔 별 부작용 없이 전신주천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또한 일반의 다른 무공에 비해 내공을 쌓는 속도가 무척이나 빠르다고 합니다, 총무학사님.”
“그래? 그거 잘됐군.”
“그렇지요. 이제 한시름 좀 놓게 생겼습니다.”
흑의를 입은 사내가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그의 눈가에는 검은빛이 길게 내려서 있었다.
무공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신공을 계속적으로 실패했던 그였다. 사실 그 같은 신공들은 그가 만든 게 아니었지만 그걸 실험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였기에 밤낮으로 고생해야만 했다.
죄수들인 인간실험체들에게 계속해서 신공을 익히게 하여 그걸 관찰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럼 조금만 더 인체실험을 해 보고 안전하다 싶으면 그걸 황제신공(皇帝神功)이라 정하세. 더 이상 시간을 늦출 수는 없으니 말일세.”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금의를 입은 사내가 이번엔 다른 걸 물었다.
“황제도법(皇帝刀法)은 이제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가지?”
“물론입니다. 저번부터 진기의 역류 없이 도법의 발현이 아주 잘된다고 합니다. 일초식의 경우는 실험체들 모두가 이제는 삼성의 경지에 들어섰는데 다들 아무런 부작용 없이 잘 익혀 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초식은 동창의 고수들이 익혀 보았는데 그것도 다들 무리 없이 삼성의 경지까지 익혀 냈다고 합니다. 다만…….”
“다만 뭔가?”
“예, 다만 삼초식과 사초식은 내공의 한계가 있어서 말입니다. 거기다 복잡한 진기의 유통 경로에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어떤 깨달음이 필요한 것인지라 그들 동창의 비밀고수들도 익히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니,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군요.”
금의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창의 비밀고수들이 사초식도 아니고 삼초식조차 익히지 못하고 있다고?”
“예, 그렇습니다.”
“으음, 하긴 그건 내가 봐도 좀 어려워 보이기는 하지. 그래도 삼초식까지는 녀석들이 흉내라도 낼 줄 알았는데 뜻밖이긴 하군.”
금의 사내는 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천하제일의 무공을 만드는 일이다.
아니, 고금제일의 무공을 창안해 내는 일이었다. 하늘이 내린 천재들이라 불리는 35명의 인재들.
그들은 모두 동창의 비밀고수들에게 납치당하여 장장 15년간을 최고의 무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황실무고에 쌓여 있는 무공비급들과 무림문파들을 멸문시키면서까지 빼내 온 수많은 비급들을 참조하면서 말이다.
당연히 그 천재들에 의해 만들어진 무공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 그걸 몸으로 직접 익혀 낸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건 익히는 자들의 자질 부족이니까요. 저희 무학사들은 최선을 다해 무공을 만들어 냈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하지.”
금의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황제신공은 마지막 실험을 해 보면 될 것 같고. 으음, 다른 무공인 황제신법(皇帝身法)과 황제수(皇帝手)는 이미 진즉에 완성되었으니 우리 무학사들이 할 일은 이제 거의 다 끝나 가고 있다고 봐야겠군.”
“하하. 예, 그렇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저희 무학사들도 이곳 지하 공동을 벗어나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무려 15년 만에 말이지요.”
“…….”
금의사내는 흑의사내가 지금 한 말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무언가를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그리되었다.
“왜 그러십니까? 총무학사님? 어디 몸이 편찮은 곳이라도 있는지요?”
흑의사내가 안색이 어두운 총무학사를 걱정스레 바라보며 물었다.
“으응, 아, 아닐세. 그보다 자네는 다른…….”
금의사내는 황급히 고개를 흔들며 어두운 안색을 지워 버렸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금의를 입고 있는 사내가 말을 하면 흑의사내는 듣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지루하다 싶은 대화.
그것은 잠시 후 막을 내렸다.
“그럼 자네는 그만 나가 보게. 그리고 밖에 있는 진오 무학사에게는 반 시진 후에 들어오라 이르게.”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흑의를 걸치고 있는 40대의 사내는 허리를 숙이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스그그그긍.
곧 석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흐음…….”
이제 석실 안에는 금의사내 홀로 남게 되었다.
그는 시선을 돌려 별거 없는 석실 내부를 한차례 훑어보았다.
그가 머물고 있는 이곳은 오래전 비밀리에 만들어진 지하 공동 안이었다.
300여 장(900미터) 크기의 지하 공동 안에는 200여 개의 크고 작은 석실이 있었다. 무공비급이 종류별로 쌓여 있는 석실부터 감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체실험실까지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그리고 금의사내 자신은 황실총무학사란 직위를 가진 자로서 이곳의 책임자였다. 여국현이란 이름에 예전 무림에서는 죽은 사람도 살려 낸다는 신의(神醫)로서 쟁쟁한 명성을 떨치던 사람이었다.
그는 다른 무학사들처럼 15년 전 그날, 동창의 비밀고수들에게 납치를 당해 이곳에서 지금껏 황제를 위한 무공을 창안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으음, 위에 있는 녀석들은 분명 황제를 위한 무공이 완성되면 우리 무학사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란 말이야.”
그는 두 눈을 내리깔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토사구팽이라 했으니 일이 모두 다 끝나면 여국현 자신을 비롯한 30여 명의 무학사 모두 살려 둘 것 같지가 않았다. 아니, 그것은 틀림없이 그리될 터였다.
“안정장치를 해 두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불안하군. 과연 이 한 목숨을 계속 부지할 수 있을지…….”
톡톡톡.
여국현은 석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계속해서 자신이 살 방도를 모색해 보았다.
“황제신공을 비롯한 나머지 세 가지 무공을 전부 아무도 모르게 손보기는 했는데……. 무공의 중요 구결들 중 일부분을 조금씩 누락시키고 다른 걸로 대체했으니 그걸 높은 경지로 익혀 내면 틀림없이 부작용이 생길 것이야. 후후후, 재미있겠군. 높으신 양반들이 그걸 익혀 주화입마에 빠지는 꼴을 생각하면 말이야. 내가 올바른 무공법문을 알려 주지 않은 이상은 모두 끝장이라고 봐야 해.”
그랬다.
여국현은 15년 전 처음 이곳으로 납치당해 왔을 때부터 미래의 일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황제의 무공을 처음 만들 때부터 무공의 중요 구결을 그 누구도 모르게 살짝 변조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일은 그 자신이 황실총무학사로서 최고의 자리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중에 나의 목이 간당간당하게 될 때에 이 사실을 알려 주면 아마 살 수 있을지도 몰라. 후후. 한데 생각해 보면 정말 우스운 일이야. 사실 황제신공을 비롯한 네 가지의 무공은 알고 보면 다 지독한 마공(魔功)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인데 위의 녀석들은 그걸 모르고 있으니.”
씨익.
여국현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만들어 냈다.
만일 자신이 놈들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해도 크게 억울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국현 그 자신이 죽으면 위의 놈들도 머지않아 죽게 될 것이 아닌가. 누군가 무공의 구결을 올바르게 가르쳐 주지 않은 이상엔 말이다. 하지만 그 구결의 올바른 법문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여국현 혼자뿐이니 그의 죽음은 끝이 아닌 다른 수많은 죽음을 불러오는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내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갈 방도를 생각해 내야겠지. 순순히 놈들에게 죽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야. 놈들이 우리 무학사들의 단전을 파괴해 아예 처음부터 무공을 익힐 수 없게 만들었지만 이거라면 오래지 않아 망가진 단전을 고칠 수 있을 거야.”
스윽, 부스럭.
여국현은 품속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내 들었다.
그건 다른 게 아닌 하나의 책자였다.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표지에는 그 무엇도 쓰여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사락사락.
여국현은 책자를 펴서 한 장씩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이 책자는 여국현 그 자신이 쓴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책자의 글씨체가 그의 필체였던 것이다.
“오행진결(五行眞訣)…….”
그의 입에서 나직한 말이 흘러나왔다.
“이제 한 달 정도면 내가 오행진결이라고 이름 붙인 이 책자를 완성할 수 있어. 이거라면 오래지 않아 망가진 나의 단전을 고칠 수 있을 거야. 동창의 녀석들 모르게 연단실에서 만들어 놓은 몇 개의 영단을 먹고 이걸 익히게 되면 빠른 시일 안에 절정의 고수가 될 수 있겠지. 으음, 마지막에 일이 틀어지면 혼자의 힘으로 탈출하는 수밖에 없어.”
그는 이렇게 자신이 살 수 있는 방도를 두 가지나 마련해 놓고 있었다.
첫 번째는 황제신공을 비롯한 네 가지 무공의 중요 구결을 바꾸어 놓아 자신의 도움 없이는 죽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고, 두 번째는 오행진결이란 무공의 도움으로 스스로가 절정의 고수가 되어 이곳을 빠져나간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일은 다른 무학사들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이 일은 여국현 그 혼자만이 알고 계획해 온 것이다. 무학사들 중에 동창 녀석들의 간자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걸 완성하는 데에는 시간이 한 달 정도 더 걸리니 아무래도 황제를 위한 그 네 가지의 무공들은 시간을 조금만 더 끌어야겠어. 아니, 그러면 위의 녀석들이 가만두지 않을 테니 황제신법이라도 먼저 완성된 걸 보여 주어야겠군. 후후, 좋아. 한꺼번에 전부 넘기는 것보다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건네주는 게 좋겠어.”
스윽. 부스럭.
여국현은 잠시 훑어보던 오행진결이란 책자를 다시 품속에 넣어 두었다.
이곳 석실은 그의 집무실과 같은 곳이라 다른 무학사들이나 동창의 인물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었다. 당연히 그가 오행진결이라 이름 붙인 이 무공은 주로 그의 침소에서 따로 연구되어지는 것이었다.
“흐음, 내일부터는 잠을 조금 더 줄여야겠군. 시간을 아껴야 해, 시간을…….”
그는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몸을 깊숙이 뉘었다.
그리곤 두 눈을 내리감고 천천히 자신만의 생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