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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블레이드 1권(15화)
Chapter6 무엇을 익힐 것인가(2)
“누구를 찾아오셨습니까?”
건물의 입구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10대 후반의 수련기사가 말을 걸었다.
“저 몰라요?”
“예, 모릅니다.”
녀석은 리렌시아의 물음에 무뚝뚝한 음성으로 모른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많이 놀란 상태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보는 절세의 미인이 녀석의 눈앞에 나타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으응, 이상하네? 기사단원들이나 마법사 아저씨들은 모두 다 나를 알고 있는데…….”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곤 다시 질문을 던져 보았다.
“혹시 영주님이 계시는 이곳 갈루안스 성에 오신 지 며칠 되지 않으셨나요?”
“예? 예…… 예에. 저, 저는 어제부로 이곳 라이언 기사단에 수련기사의 신분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녀석은 리렌시아의 질문에 더듬거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자신이 이곳에 배치된 것은 어제부터였으니 그가 알고 있는 사람이 그리 많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데 이러한 사실을 처음 보는 절세 미녀가 대번에 알아보니 수련기사는 놀라서 저도 모르게 더듬거리는 음성을 내뱉은 것이었다.
“아아, 그래서 나를 몰라보는 거구나. 그럼 안에다 기별 좀 넣어 주세요. 백작가의 저택에서 리렌시아가 찾아왔다고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보초를 서고 있던 수련기사는 눈치가 있는 녀석이었다.
기사들이 다 알고 있고 심지어 마법사들과도 안면이 있다면 그건 보통의 신분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수련기사는 재빨리 손님이 찾아왔음을 위의 고참에게 알렸다.
블레스 기사단장이 일을 보는 집무실은 건물의 허름함과는 달리 깨끗했다.
몇 가지의 집기들이 고풍스러운 느낌으로 잘 정리되어 놓여 있는 이곳. 벽에는 초상화가 몇 점 걸려 있었고 창가의 왼쪽 벽에는 검대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다섯 자루의 검이 가로로 길게 놓여 있었다.
탁. 탁.
탁자 위에 찻잔 3개가 올려졌다.
“그러니까 탑주님이 저녁식사를 같이 할 터이니 우리 두 사람보고 시간에 맞춰 오라 했다는 것이냐, 리렌시아?”
“예, 메드레스 마도사님.”
리렌시아의 대답에 블레스 기사단장과 메드레스 마도사는 서로에게 시선을 주었다.
둘 다 뜻밖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으음. 영주님이 저녁식사로 저희 두 사람을 다 초대하시다니 정말 뜻밖이로군요, 메드레스 마도사님.”
“그러게 말일세.”
“해가 서쪽에서 뜰 일입니다.”
“후후. 그렇긴 하지. 지금껏 단 한 번도 다른 사람과는 식사를 하지 않던 탑주님이셨으니 말일세.”
두 사람은 진정 놀랬다는 듯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베스렐 갈루안스.
녀석은 태어나서 지금껏 홀로 식사를 해 왔다.
식사를 하는 데 있어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니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언제나 땅콩 10여 알과 싱싱한 야채 조금에다가 호밀 빵 반 조각이 전부였다. 거기에 디저트로 붉은 과일 한 조각과 마지막으로 쓴맛에 있어선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루안차가 한 끼 식사의 전부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리 먹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푸짐한 음식들과 함께 맛있어 보이는 각종 고기요리들을 주식으로 먹는다.
그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문이었기 때문에 베스렐은 이제껏 홀로 식사를 해 온 것이었고 또한 남들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는 얼씬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영주님께 무슨 좋은 일이 생기신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메드레스 마도사님.”
“좋은 일이라…….”
메드레스 마도사는 탁자 위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과연 탑주에게 어떤 좋은 일이 있었을지를 생각해 보았다.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이건 분명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단순히 기분 좋은 일이 아닌 몸과 마음이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그런 좋은 일이 벌어져야지만 지금처럼 같이 식사를 하자고 먼저 이야기를 꺼내실 수 있는 것이었다.
‘으음, 혹시 그거 아닐까? 설마…….’
그는 지금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급히 지워 버렸다.
그것은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 절대로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정말 극복하기 힘든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전대 탑주님은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지금의 탑주님께 비책을 한 가지 전해 주셨다고 했어. 100년간의 노력이 들어간 연구를 마침내 끝마치셨다고 하시면서 말이야.’
메드레스 마도사는 아니란 생각이 들면서도 자꾸만 베스렐이 진짜 드래곤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으음…….”
메드레스 마도사는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곧장 그의 시선 속에는 화사한 미소를 지은 채 차를 마시고 있는 리렌시아의 모습이 담겨졌다.
‘응? 뭔가 이상한데?’
그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드는 메드레스 마도사였다.
리렌시아에게서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기운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기품이라고 해야 할지 왠지 전보다 안정된 느낌이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었다.
‘설마……?’
메드레스 마도사는 속으로 아니겠지 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하나의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주변의 마나의 기운이 요동을 치며 빠르게 메드레스 마도사에게로 몰려들었다.
“어어? 무슨 일이에요, 메드레스 마도사님? 왜 갑자기 마법을…….”
리렌시아는 주위의 마나가 빠르게 메드레스 마도사에게 흘러가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블레스 기사단장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는 기사이기 때문에 주위의 마나가 급속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미처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메드레스 마도사가 입으로 마법의 스펠(주문)을 외우고 있는지라 그 또한 현재 이곳 집무실에서 마법이 펼쳐지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디텍트 마나!”
마침내 메드레스 마도사의 입에서 마법의 시동어가 터져 나왔고 그는 곧바로 평상시에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리렌시아의 가슴. 아니, 그것은 가슴이라기보다는 그녀의 심장에 자리한 마력 써클을 보고 있는 것이라 해야 옳았다.
“헉―!”
순간 그의 입이 크게 벌어지며 짧은 헛바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과연 이걸 믿어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의 두 눈에 선명하게 보이고 있는 저것.
“어…… 어떻게 여, 여섯 번째의 써…… 써클을……?”
그는 더듬거리는 음성을 내뱉고야 말았다.
평소엔 언제나 진중한 모습만을 보이던 그가 지금은 이렇듯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크게 놀라며 더듬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아, 제 마법의 경지를 보신 거로군요. 이건 나중에 말씀드리려고 했던 건데.”
리렌시아는 메드레스 마도사가 자신의 심장에 새겨진 마력 써클을 확인했음을 알고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는 말을 했다. 그리곤 곧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 메드레스 마도사님, 그만 입을 다무세요. 그러다 날벌레가 들어가도 모르시겠어요.”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던 메드레스 마도사.
그는 리렌시아의 말에 빠르게 입을 다물고는 머릿속에 피어나는 의문을 바로 물어보았다.
“어, 언제부터냐? 언제부터 네가 6써클의 마도사가 된 것이냐?”
옆에 있던 블레스 기사단장.
그 또한 크게 놀라고 말았다.
“예에? 6써클이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리렌시아가 정말 6써클의 마도사가 된 것입니까?”
“그렇다네. 리렌시아는 틀림없는 6써클의 마도사라네. 허허, 정말 놀라운 일이로군.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5써클 비기너의 경지에 있었는데…….”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리렌시아는 지금 마법의 단계를 훌쩍 건너뛴 것이다.
이러한 일은 그의 마법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인 것이었다.
마법의 단계를 건너뛰다니…….
블레스 기사단장이 저택에 있는 영주를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리렌시아 네가 6써클 마도사의 경지에 이르렀다면 영주님도 같은 경지에 이르렀다는 얘기인데…….”
메드레스 마도사는 기사단장의 말에 퍼뜩 생각나는 게 있었다.
“그래, 맞아. 이건 너의 힘이라기보다는 탑주님이 어떤 조화를 부린 게 분명해.”
그의 고개가 확신에 찬 듯 끄덕여졌다.
“골드 폭스족인 리렌시아 너와 탑주님은 절대귀속관계에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마법 경지를 이끌어 주는 관계에 있어. 물론 지금까지의 경우를 보자면 너는 도움을 주기보다는 받는 관계에 있었지만 말이야. 어쨌든 리렌시아 네가 단계를 무시하고 순식간에 나와 같은 6써클의 마도사로 올라선 것은 탑주님의 조화야. 으음, 정말 궁금하군. 탑주님도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5써클 유저의 경지에 있었는데 어떻게 단숨에 6써클로 진입할 수 있었는지…….”
메드레스 마도사는 오늘 밤 탑주와의 저녁식사에서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궁금증을 반드시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가만?”
무슨 일일까?
갑자기 무언가가 또 생각났다는 듯이 메드레스 마도사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맺혔다.
“허허. 생각해 보니 그럼 우리 영지에는 6써클의 마도사가 나를 비롯해 3명이나 있다는 얘기잖아. 허허허. 이거, 이거 정말 잘된 일이로군. 현재 우리 갈루안스 마탑에는 7써클의 대마도사가 맥이 끊긴 상황인데 그래도 6써클의 마도사가 3명이나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야.”
옆에 있던 블레스 기사단장이 맞장구를 쳤다.
“예.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정말 잘됐습니다. 거기다 영주님이 벌써 6써클의 경지에 오르셨으니 아무리 늦어도 10년 안에는 또 그 6써클의 한계를 돌파하고 7써클 대도마사의 경지에 들지 않겠습니까?”
“으음, 그래, 맞아. 허허. 정말 잘됐어. 거기다 탑주님이 7써클 대마도사의 경지에 오르면 리렌시아 또한 같은 경지에 이를 테니 그럼 나중에는 우리 갈루안스 마탑이 2명의 대마도사를 보유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오오, 생각해 보니 그것 또한 그렇군요.”
브레스 기사단장은 그것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는 듯이 감탄의 말을 터트렸다.
하나의 마법사의 탑에서 2명의 대마도사가 탄생한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현 대륙에 7써클의 대마도사는 단 3명뿐이었으니.
물론 그 3명의 대마도사라는 것은 공식적인 것이고 비공식적으로는 1, 2명 정도 더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한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극히 적은 게 7써클이란 마법 경지인 것이다.
리렌시아는 기사단장과 메드레스 마도사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 두 분이서 지금 나누고 계시는 이야기가 즐거운 건 알겠는데 왠지 저는 섭섭한 기분이 드네요.”
“으응? 그게 무슨 소리냐?”
“호호. 저도 마법적인 재능이 꽤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두 분은 지금 저를 운이 좋은 아이로만 보고 있잖아요. 주인님의 천부적인 마법 재능으로 저도 덩달아 마법 경지가 상승하고 있는 거라고.”
리렌시아의 그 같은 말에 두 사람이 급히 손을 좌우로 흔들며 대답했다.
“허허. 그게 무슨 소리냐? 아니다, 아니야. 너 또한 마법적인 재능이 극히 뛰어나다는 골드 폭스족인데 아무렴 내가 너를 그리 생각하겠느냐.”
“그건 메드레스 님의 말이 맞습니다.”
블레스 기사단장이 말했다.
“아무렴 우리가 너를 그리 생각하겠니? 너 또한 대단한 사람이라고 나는 진즉부터 생각하고 있었단다.”
“호호호. 빈말이라도 고맙긴 하네요.”
리렌시아는 두 사람이 당황하며 하는 이야기에 입가에 손을 가져가서는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일은 이제 이렇게 해서 일단락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만한 것은 없었다. 볼일을 마쳤으니 이제는 헤어지는 일만이 남은 것이다.
스윽.
“그럼 저 먼저 일어나겠어요.”
리렌시아는 그들 두 사람에게 저녁 여섯 시쯤에 영주가 머물고 있는 저택에서 보자 하고는 자리에서 곧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