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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블레이드 1권(16화)
Chapter7 닭고기 스튜(1)
백작가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는 브론나드 집사는 저택의 1층에 있는 주방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그리고는 그곳에 있는 영지 내 최고의 요리사인 페리스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잠시간의 대화.
페리스 요리장의 두 눈이 동그랗게 치켜떠졌다. 마치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그렇게.
“예에? 그게 정말입니까, 브론나드 집사님? 정말 영주님이 그리 시키셨단 말입니까?”
“그렇다네.”
브론나드 집사는 자신도 놀랐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블레스 경과 메드레스 마도사님이 함께할 터이니 서둘러 음식을 마련하게나.”
“예에, 그거야 어렵지는 않지만서도…….”
페리스 요리장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지금 집사에게 들은 말이 혹시 잘못된 게 아닌지 다시 한 번 물어보기로 했다.
“한데 영주님도 이번엔 양념이 들어간 고기요리를 드시겠다는 게 틀림이 없으신 것입니까?”
“어허, 이 사람도? 내가 몇 번을 말하나? 나도 믿기지가 않지만 이번엔 영주님도 같이 고기요리를 드시겠다고 하셨네. 이제는 고기요리를 들어도 괜찮다고 하시면서 말일세. 물론 양은 일반인들이 먹는 것의 사분지 일만을 준비해야 하네. 처음으로 먹는 고기요리라 속에서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셨으니.”
브론나드 집사는 영주가 전한 이야기를 다시 세세히 말해 주었다. 페리스 요리장은 집사의 말을 들으며 두 눈에 작은 불꽃을 일으켰다.
“으음, 예에…….”
사실 그는 백작가의 요리장으로 있으면서 그동안 남들이 모르는 아픔이 하나 있었다.
요리사의 자부심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건 바로 자신이 만든 최고의 요리들을 주인에게 대접하는 일이다. 주인이 그 최고의 요리들을 들며 맛있게 먹었다는 말 한마디를 해 주면 그 이상 기분이 좋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동안은 어땠는가?
베스렐은 세 살 때부터 다이어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다이어트의 시작은 바로 식이요법이었다.
식이요법은 생식이 기본. 진한 양념이 첨가되어 있지 않은 순수 그대로의 먹거리를 식탁에 올려야 하니 베스렐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요리장을 칭찬한 적이 없었다.
맛이 없는데 칭찬하고 자시고 할 게 뭐가 있겠는가.
페리스 요리장은 그게 내심 섭섭했었다. 저택의 영주님께 자신의 요리를 뽐낼 기회가 없어 속이 상한 그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건 기회였다. 영주님께 드디어 자신의 요리 실력을 자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럼 나는 이만 가 볼 테니 한번 자네가 지닌 솜씨를 최고로 발휘해 보게. 최고 요리사인 자네의 음식을 다른 사람은 다 시식해 보았지만 정작 영지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백작님은 단 한 번도 드셔 보시지 못했으니 말일세.”
“예, 걱정 마십시오, 집사님. 저의 모든 능력을 다 동원해 최고의 요리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페리스 요리장의 눈에서 강렬한 빛이 흘러나왔다. 이번 기회를 살려 영주님께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키겠다는 그런 의지의 눈빛이었다.
‘으음, 그럼 어떤 요리를…….’
지금 이 순간 그의 머릿속은 맹렬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가 자신 있어 하는 요리는 수백 가지가 넘는다.
하지만 식탁에 올릴 수 있는 요리는 하나다. 그것도 보통 일반인들이 먹는 것의 사분지 일의 양이다.
물론 블레스 기사단장과 메드레스 마도사의 요리는 그보다 더 다양하게 준비되겠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주님이 드실 단 한 가지의 요리에 있었다. 당연히 신중의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으음, 좋아, 그게 좋겠어.’
드디어 그의 머릿속에 하나의 요리가 떠올랐다.
영주의 입맛을 훔칠 수 있는 그런 요리가…….
***
“아, 참 나……!”
베스렐은 기다란 식탁의 한가운데에 앉아서는 짜증 나는 얼굴을 했다.
그의 바로 앞에 앉아 있는 메드레스 마도사. 그가 바로 베스렐을 짜증 나게 하고 있는 주범이었다. 옆 자리에 앉아 있는 블레스 기사단장은 흥미롭다는 눈초리로 영주와 메드레스 마도사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중이었다.
“이봐, 메드레스 마도사? 왜 그렇게 사람이 말귀를 못 알아들어?”
“탑주님, 그러지 말고…….”
“아아, 시끄러워!”
베스렐은 메드레스 마도사의 말을 끊었다.
“세상에 마법의 단계를 무시하고 단번에 상위의 경지로 올릴 수 있는 비결이 어디 있겠어? 마도사나 되는 사람이 그런 것도 모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그랬다. 지금 메드레스 마도사는 이곳 백작가의 저택에 와서는 낮에 궁금해 했던 그것을 줄기차게 물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마법의 단계를 무시하고 써클을 올린 비결을 말이다.
“하지만 탑주님은 분명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내시지 않았습니까?”
메드레스 마도사는 침을 튀겨 가며 말했다.
“이건 마법계에 있어서 정말 폭풍과도 같은 일인 것입니다. 마법의 단계를 건너뛰고 상승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 이 얼마나 엄청난 일입니까? 그리고 이런 일을…….”
그의 말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에 따라 베스렐의 미간에 자리한 불꽃 모양의 주름이 조금씩, 조금씩 이지러져만 갔다.
“그만, 그만……!”
베스렐은 급히 메드레스 마도사의 말을 끊었다. 녀석은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평소에는 점잖은 사람이 마법에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수다쟁이로 변하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 하지만 지금은 메드레스 마도사의 말을 멈추게 하는 게 우선이었다.
“이봐, 메드레스 마도사. 똑똑히 들어 둬.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갑작스레 마법의 경지가 상승한 이유는 운이 좋았기 때문이야.”
메드레스 마도사가 곧바로 반론에 들어갔다.
“아니, 마법에 우연이 어디 있습니까, 탑주님? 그건…….”
“이런 썩을! 그냥 내가 하는 말, 끝까지 좀 들어. 뭘 그리 얘들처럼 보채? 보채기는……!”
베스렐은 불꽃 모양의 주름을 짙게 한 번 만들어 내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 마법에 우연은 없다지만 필연적으로 그리 될 수밖에 없는 일도 있는 것이야. 내가 마법의 써클이 상승한 이유도 우연이라기보다는 바로 그리 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이지. 하지만 그건 다시는, 앞으로 무슨 짓을 해도 이룰 수가 없는 우연과도 같은 일이라 할 수 있어. 우연은 아니지만 정말 그때라고 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기 때문에 내가 마법의 경지를 높인 것이니 말이야. 이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베스렐은 메드레스 마도사에게 자신이 써클을 올린 비결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물론 그 설명이란 것은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바로 마법이라고 하는 것은 단계를 밟지 않고서는 상승의 경지로 오를 수 없음을 말이다.
마법은 정석이다. 단계를 무시하고 오를 수 있는 그런 편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베스렐이 그렇게 마법의 단계를 무시하고 갑작스레 써클을 하나 더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차크라 수련법으로 인해 순간적으로나마 잠깐 우주의식과 하나가 된 기분을 맛보았기 때문이지 않은가.
그것도 반걸음 정도 살짝 걸쳤다 우주의 이성이 거부하는 바람에 바로 튕겨져 나오지 않았던가.
영적인 수련. 우주의식과 합일을 이루기 위한 수련.
그 수련이 최상의 경지에 거의 근접해 갔기 때문에 마법이나 검술이나 단번에 상승한 것이었다.
지금 베스렐은 차크라 수련을 잠시 쉬고 있는 상태지만 녀석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다시 그 수련을 한다고 해도 그날 우주의식과 합일을 이룰 뻔했던 경험은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음을 말이다. 물론 수련 자체는 포기할 생각이 없는 베스렐이었다.
차크라 수련법.
그것은 영적인 수련을 쌓는 것이라 베스렐이 지닌 다른 모든 능력을 빠르게 상승의 경지로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인 것이야. 어때? 이제는 좀 알아들었겠지? 이제는 끝이야, 끝! 더 이상 내가 마법이 상승한 이유를 묻지 마.”
“아니, 그래도…….”
“내가 끝이라고 했어. 자꾸 같은 질문,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면 나 화낼 거야.”
“끄응…….”
메드레스 마도사는 베스렐이 두 눈을 살벌하게 뜨며 입을 다물 것을 종용하자 할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내리감고 말았다.
사실 그는 이성적으로는 영주의 말을 십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감정이 그 같은 이성의 소리를 거부하는 것이라 잠시 추태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때였다.
영주의 전용 식당에 드디어 베스렐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나타났다.
끼이익.
입구의 문이 열리며 나타난 사람들은 바로 페리스 요리장을 비롯해 5명의 요리사들이었다.
탁, 탁탁.
접시에 담겨진 요리들이 하나 둘씩 식탁에 올려졌다.
가장 먼저 올린 곳은 베스렐의 앞자리였다. 그 위에는 녀석으로서는 처음 보는 요리가 놓여졌다.
하긴 그는 생식 이외에는 먹어 본 게 없으니 모든 요리가 다 생소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제가 특별히 영주님을 위해서 만든 닭고기 스튜입니다. 처음으로 드시는 고기요리인지라 위에 부담이 안 가게 최대한 절제된 양념을 사용했습니다.”
페리스 요리장은 자신이 만든 요리에 대해 영주에게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닭고기 스튜 이외에도 평소 베스렐이 즐겨 먹던 땅콩 10여 알과 몇 가지 야채, 과일 한 조각도 함께 식탁에 올렸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오늘 베스렐이 먹는 음식의 양은 평소의 세 배 정도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세 배 이상으로 먹는다 하더라도 그건 남들이 먹는 양에 비하면 적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탁, 탁탁.
페리스 요리장의 옆에 있던 다른 보조 요리사들도 블레스 기사단장과 메드레스 마도사의 앞자리에 몇 가지의 음식을 올리기 시작했다.
한데 지금 보니 요리사들이 올리는 것은 평소 기사단장과 마도사 두 사람이 먹는 음식과 비교하면 매우 초라한 요리들임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다 영주를 생각해서 그리 한 것이었다.
백작가의 주인은 풀뿌리 몇 개와 이제 음식다운 음식이라 할 수 있는 닭고기 스튜를 약간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주인의 수하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진수성찬이라 할 정도로 푸짐한 음식을 들면 그것은 정말 보기에도 좋지 않고 또한 예의가 아닌 것이다.
“으음…….”
베스렐은 눈앞에 있는 닭고기 스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진한 갈색의 소스에 먹기 좋게 잘려진 고기들. 거기에 몇 가지의 야채들이 보기 좋게 올려져 있었다.
비록 양은 성인들이 먹는 것에 비해 사분지 일뿐이지만 베스렐은 왠지 가슴이 요동침을 느낄 수 있었다.
‘으음, 냄새가 죽이는구나…….’
닭고기 스튜에서 흘러나오는 좋은 향기.
그것은 베스렐의 입가에 침을 고이게 만들었다.
페리스 요리장은 영주에게 올린 닭고기 스튜에 혼신의 노력을 담았다. 일생 단 한 번의 기회란 생각에 지극한 정성을 담아 요리를 해 올린 것이다.
페리스표 닭고기 스튜.
그것은 혼이 담긴 음식이었다.
“자아, 자! 이제 식사를 하면서 대화나 나누자고.”
“예, 알겠습니다, 영주님.”
“많이 드십시오, 탑주님.”
베스렐은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는지 서둘러 음식에 손을 가져가 댔다.
스푼에 올려진 작디작은 고기 한 조각.
그것은 곧바로 베스렐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우물우물, 으음…….”
베스렐은 평소의 식사습관대로 서른 번 이상씩 꼭꼭 씹어댔다. 아니, 이번엔 처음으로 먹어 보는 고기요리인지라 평소의 서른 번을 훨씬 넘겨 오십 번을 향해 갔다. 그에 따라 베스렐의 얼굴 표정은 기괴하게 변해 갔다.
기쁜 표정? 아니면 화가 난 표정?
그것도 아니라면 뚱한 표정이랄까?
녀석은 지금 특이하게도 온갖 감정들이 얼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슷.
갑자기 이상한 기운이 식당을 감싸고 돌기 시작했다. 무언가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특이한 기운.
“…….”
“…….”
메드레스 마도사와 블레스 기사단장은 이상한 기운이 식당을 감돌자 시선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영주의 이상한 표정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제…… 제기랄……! 더럽게도 맛있네.”
베스렐은 지금 화가 났다.
너무나 화가 났다.
혀를 이토록 미치게 하는 요리가 있을 수 있다니.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평생을 모르고 살다가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니. 더구나 열 받는 일은 이런 최고의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블레스 기사단장은 영주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바로 물어보았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영주님?”
“우물우물.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계속 식사해.”
베스렐은 입속에서 살살 녹는 닭고기 스튜를 미친 듯이 씹어 댔다. 오십 번 이상씩 꼭꼭 씹어 댔다. 그러다 앞에서 두 사람이 하는 식사를 바라보게 되었다.
“…….”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음식을 들고 있는 두 사람.
이 정도의 음식은 언제나 먹는 것이니 새로울 게 없다는 듯이 구는 두 사람.
베스렐은 괜히 또 화가 났다.
자신은 닭고기 스튜 하나 먹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밀려오는데 저들은 저렇게 푸짐한 음식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덤덤하게 들고 있다니…….
“왜 그러십니까, 탑주님?”
메드레스 마도사는 베스렐이 식사를 하면서 자신들 두 사람을 못마땅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의아해 했다. 자신들 두 사람이 혹시 영주께 무슨 무례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흥.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베스렐은 콧방귀를 한번 날리고는 다시 자신의 식사에 열중해 들어갔다.
“우물우물…….”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고기요리들.
녀석은 입속으로 들어온 그 음식을 더더욱 정성을 들여 씹어 댔다. 마치 아깝다는 듯이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