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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블레이드 1권(17화)
Chapter7 닭고기 스튜(2)


“꺼억……!”
굵직한 트림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베스렐은 실내의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평소 때의 음식의 양에 비해 세 배 이상을 먹은 그였다. 사실 음식의 양이 세 배라고 해 봤자 별거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으음, 정말 태어나 처음으로 먹어 보는 맛있는 음식이었어. 닭고기 스튜가 그리 맛있는 건 줄 오늘 처음 알았군.”
흐뭇한 표정이었다.
베스렐은 환해진 얼굴로 방금 전 자신의 전용 식당에서 먹은 닭고기 스튜를 떠올려 보았다. 그러자 입가에 저도 모르게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억울한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건 정말 억울한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맛있다고 소문난 음식이 수천 가지나 된다고 하는데 베스렐 그 자신은 이제껏 생식 위주로만 식사를 해 오고 있지 않았던가. 양념이 전혀 첨가되지 않은 음식들로만 말이다.
“좋은 날이 올 거야. 맛있는 음식을 양껏 먹을 수 있는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거야.”
베스렐은 하나의 작은, 아니 그 자신에게는 매우 크다 할 수 있는 꿈을 꾸며 저녁때 먹은 닭고기 스튜를 머릿속에서 싹 지워 버렸다.
“한데 아까 메드레스 마도사 그 양반은 왜 그리 찰거머리처럼 구는지. 어떻게 해서 단번에 6써클의 경지로 진입을 했는지 궁금하다고 알려 달라고 떼를 쓰니……. 다 늙어 가지고 아이처럼 그게 뭐야? 뭐 이 일은 마법계의 일대 혁신이라는 둥, 온갖 잡소리를 해 대고 말이야. 아무리 내가 그건 운이 좋아서 된 것이라고 해도 믿지를 않으니.”
베스렐은 요즈음 들어 메드레스 마도사가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떼를 쓰며 어떻게든 해 달라고 조르는 아이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후후. 어쨌든 다음부터는 그런 꼬질꼬질한 노친네들보다는 젊은 것들과 식사를 해야겠어. 양도 오늘 정도로 먹을 수 있게 하고 말이야.”
기분 좋은 미소가 베스렐의 입가에 매달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녀석의 눈빛이 갑자기 강렬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선 내 스스로가 먼저 노력을 해야 되겠지. 지금부터야. 지금부터 바로 시작하는 거야. 고루불사마공을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하는 거야. 그리고 내일부터는 오그란 산에서 지옥도법을 비롯한 나머지 무공들을 익혀야 해.”
베스렐은 빠르게 무공을 익히기로 마음먹었다.
결심이 서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게 또한 그였다.
“휴우우우…….”
깊은 심호흡에 들어갔다.
처음으로 고루불사마공을 운기행공해 보려는 베스렐이었지만 녀석은 긴장이 된다거나 하는 것은 전혀 없었다.
베스렐은 여국현이었다.
그리고 여국현은 그 누구보다도 고루불사마공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그 자신이 고루불사마공을 만들다시피 한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베스렐은 먼저 자신의 단전에, 이곳 말로는 ‘마나 홀’이라 불리는 배꼽 아래 부분에 의식을 집중했다.
마법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무공이란 것은 고도의 정신집중을 요하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나 공력을 쌓는 것은 더더욱이나.
고루불사마공의 법문이 베스렐의 머릿속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녀석은 단전에 조금 쌓여 있는 진기를 소주천의 길로 인도하기 시작했다.
소주천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몸에 있어서 임독양맥을 일컫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내공을 쌓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베스렐은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몸은 기사수련으로 인해 이미 훌륭하게 만들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 자신이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으니 이보다 더 완벽한 조건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다만 베스렐을 비롯한 이곳의 기사들은 내공을 체계적으로 쌓은 게 아니라서 오러(진기)가 전신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전신 경맥 속에 잠들어 있는 것이다.
물론 마나 홀에도 적지 않은 오러가 쌓여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전신 경맥에 잠들어 있는 오러의 양보다는 확실히 적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 베스렐이 운기행공을 하고 있는 고루불사마공.
그것은 전신경맥 속에 잠들어 있는 오러를 기의 밭이라고 할 수 있는 단전으로 어렵지 않게 몰고 올 터였다.
우우우우웅.
의념이 단전에 집중되니 곧 오러가 활기찬 기운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은 흘러갔다.
십 분, 이십 분, 삼십 분…….
베스렐은 손쉽게 임독양맥의 길을 따라 몇 차례 진기를 돌 릴 수 있었고 이제는 기경팔맥과 십이경맥을 비롯한 전신주천에 들어간 상태였다.
이것은 처음 하는 운기행공치고는 매우 빠른 진전 속도를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베스렐은 오늘 중으로 무공에 있어 어떤 단계에 들어설 듯했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절대자의 길을 이제부터는 걷는 것이다.

***

5개월 후.
상당히 넓은 공지였다.
이곳은 기사들의 수련 장소인 연무장이었다.
외곽 주위를 보면 몇 채의 건물들과 작은 막사, 그리고 근력을 키울 수 있게 바벨을 비롯한 여러 운동 도구들을 모아 둔 곳이 보인다.
때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는 한여름이다.
시간은 이제 아침을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도 더위는 조금씩 연무장을 뒤덮고 있었다.
사실 더위는 별거 아니었다.
지금 이곳 연무장에서는 더위를 신경 쓰고 있는 사람은 단 하나도 존재치 않았다.
오늘은 어제와 다른 날이었다.
주변의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지금 이곳 연무장에는 더위보다는 때 아닌 긴장감이 휘몰아쳐 오고 있었다.
“흐음…….”
블레스 기사단장이 긴장된 시선으로 정면을 주시했다.
옆에 함께 있는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로가드 저윈과 에돈 페튜스, 두 부단장들도 블레스 기사단장처럼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무장 내에는 그들만 있는 게 아니라 기사단원들 27명도 함께하고 있었는데 그들도 마찬가지로 무언가에 긴장하고 있었다.
폭발할 것만 같은 긴장감이 장내를 계속해서 감싸고 있는 것이다.
“약속대로 저희들이 지면 오늘 모두가 단식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영주님.”
마침내 아무 말 없던 블레스 기사단장이 입을 열었다.
“후후. 당연히 그래야지. 하루 굶는다고 죽는 것은 아니니까.”
베스렐은 연무장의 중앙에 서서는 고개를 삐딱하게 옆으로 세운 채 말했다. 한데 녀석이 풍기는 분위기가 왠지 한 지방을 다스리는 영주처럼 보이지 않고 마치 저잣거리의 건달처럼 느껴졌다.
“예에. 약속은 약속이니…….”
“쳇! 잘못하면 이거 또 밥을 굶게 생겼군.”
“나는…… 나는 한 끼만 굶어도 힘을 쓰지 못하는데…….”
로가드 저윈은 인상을 찡그렸고 에돈 페튜스는 급격히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랬다. 모두가 긴장된 표정을 지은 이유가 다 이 문제 때문인 것이었다.
대련에서 지는 쪽이 점심과 저녁 두 끼 식사를 연속으로 굶어야 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특히나 에돈 페튜스의 경우는 남들에 비해 식사하는 양이 많기 때문에 그의 표정은 유달리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소드 익스퍼트에서도 상급의 경지에 들어선 실력자였다.
그의 두 눈엔 곧 침울함 대신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의 빛이 떠올랐다.
“아아! 이런. 아무래도 또 굶게 생겼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는 모두 30명이나 되는데 당연히 오늘은 우리가 이기겠지.”
기사단원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기사들 대부분의 얼굴 표정이 처음의 에돈 페튜스처럼 극히 어두웠다.
“야야, 그건 네가 며칠 전에 영주님과 한 대련을 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야. 그때는 열다섯이 영주님을 포위한 채 공격했는데도 모두가 다 나가떨어졌다니까.”
“그래? 하지만 그건 우리가 영주님과 하는 대련이니까 봐드려서 그렇게 된 거 아니야?”
“흥! 참 너도 말이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
30대 중반의 금발 머리의 기사가 콧방귀를 끼며 다시 이어서 말했다.
“봐주면서 했다간 영주님이 불같이 노하실 텐데, 그걸 어찌 감당하려고 그래. 거기다 이건 비공식적인 이야기인데 어쩌면 영주님이 소드 익스퍼트의 한계를 뛰어넘어 오러 블레이드를 발현하는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고 해.”
“에엑? 저…… 정말?”
“그래. 너도 생각해 봐. 두 달 전 처음 영주님이 블레스 단장님과 했던 대련을. 상대가 되지 않았잖아. 블레스 단장님은 이미 오래전에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 오르셨는데도 그처럼 맥없이 당하시고 말았잖아.”
작은 눈을 지닌 기사가 말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영주님이 오러 블레이드를 발현하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그러니까 비공식적이라는 거야. 오러 블레이드가 확실히 소드 마스터를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는 있지만, 소드 마스터가 대련에 있어서 반드시 오러 블레이드를 발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그냥 검술 실력만으로도 상대하는 자들을 제압할 수가 있잖아.”
“하긴 그렇긴 하군.”
금발 머리의 기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우, 그래서 걱정인 거야. 아무래도 오늘 우리 모두가 저번처럼 또 굶어야 할 것 같으니 말이야.”
“아아, 영주님이 정말 소드 마스터라면 그렇게 될 확률이 높기는 한데……. 근데 우리 영주님은 왜 대련에서 진 쪽은 두 끼 식사를 무조건 굶어야 한다고 하시는 거지?”
“그거야 모르지.”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나머지 기사단원들 모두는 다시 급격히 어두운 표정들을 지었다.
진정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왜 대련에서 진 쪽이 꼭 식사를 굶어야 하는 것일까? 거기에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내기에 자신들이 응해야 한단 말인가?
기사들은 힘든 수련을 하는 사람들이다.
매일같이 힘든 체력훈련에 마나 소드를 통한 오러수련. 거기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검술대련에 개인수련. 그리고 가끔 씩 있는 합동 기마훈련.
힘든 일이다.
당연히 배가 고픈 일이다.
한 끼 정도는 어떻게 참고 견딜 수 있겠지만 연달아 두 끼를 굶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고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후후후, 다들 얼굴들이 찌푸려지는구나.’
베스렐은 속으로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기사들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후후, 그동안은 억울하게도 나 혼자만 배를 곯고 다이어트를 해 왔어. 이건 정말 억울한 일이지. 영주인 나는 매일같이 풀뿌리만 먹어 왔는데 지들은 그 푸짐하면서도 양념이 잘 배어 있는 고기요리를 먹어 왔으니 말이야.’
그랬다. 베스렐이 대련에서 진 쪽에게 식사를 굶게 한 이유에는 억울함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홀로 해 온 다이어트에 대한 스트레스를 부하들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들에게 푸는 것이다. 너희들도 배고픔의 고통을 한번 느껴 보라는 의미로 말이다.
“자아, 그럼 다들 아머스를 착용하라고. 실전 같은 대련을 하려면 아무래도 위험할 수 있으니 말이야.”
베스렐은 블레스 기사단장을 비롯한 모두에게 배갑의 형태인 아머스를 착용하도록 지시했다.
“알겠습니다, 영주님.”
블레스 기사단장이 눈을 빛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영주님 말씀대로 모두 아머스를 착용하도록 한다. 실시!”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사단원들 모두가 전신의 오러를 등 뒤에 매어져 있는 아머스에 주입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러자 순식간에 아머스는 전신갑주가 되어 그들의 몸을 감쌌다.
한데 조금 이상한 게 눈에 띄었다.
지금까지는 기사단장이나 기사단원들 모두가 백색의 아머스를 지니고 있었는데 블레스 기사단장이 홀로 검은빛을 띠는 아머스를 착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그 혼자만은 아니었다.
연무장의 중앙에 서 있는 베스렐 또한 블레스 기사단장과 마찬가지로 검은빛의 아머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 검은빛의 아머스는 척 보기에도 다른 백색의 아머스보다 성능이 훨씬 좋아 보였다.
아웬 백작이 남긴 것이었다.
지금 베스렐과 블레스 기사단장이 착용하고 있는 아머스는 전대 영주인 아웬 백작이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선물처럼 남겨 주고 간 것이었다.
7.5써클이란 특이한 경지에 있던 아웬 백작이 남긴 것이니 당연히 일반의 아머스보다는 훨씬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이것의 이름은 로진 아머스.
보통 7써클의 대마도사가 심혈을 기울여야 만들 수 있다는 S급 아머스는 4써클의 마법사가 펼치는 공격마법을 방어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아웬 백작이 선물로 남겨 두고 간 로진 아머스는 무려 5써클의 공격마법을 방어해 낼 수 있어, 이것은 마법 무구 중에서도 최고의 보물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거기다 이 로진 아머스는 방어용으로만 쓰이는 게 아닌 공격용의 수법도 한 가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루에 세 번 본인이 원할 때 ‘라이트닝 어택’이라고 외치면 검은빛의 아머스에서 반경 10여 미르(m) 밖으로 강력한 전격 속성의 마법이 발휘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순간, 특히 난전의 전투 속에서 상당히 큰 힘을 발휘하게 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