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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블레이드 1권(21화)
Chapter9 반드시 잡아낸다(2)


덜컹!
“주인님! 무슨 일이세요?”
그녀의 눈에 금세 주인의 모습이 비쳐졌다.
“으응?”
두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는 리렌시아.
웃옷을 벗어 버린 채 맨살만을 내보이고 있는 베스렐은 지금 실내의 한가운데에 서서는 두 눈을 감고 있었다. 한데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그때 리렌시아의 귀로 모기 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그대로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말고, 내 몸에 손대지도 말고, 그대로만 있어.”
‘으응, 뭐지?’
마법은 절대로 아니었다.
방금 귓가에 들려온 주인의 목소리는 마법 중에서도 뜻을 전하는 ‘메시지 마법’과 비슷해 보이기는 했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방식의 비술이었다. 바로 무림에서 흔히 사용되는 전음술인 것이다.
“무, 무슨 일이에요, 주인님?”
리렌시아는 주인의 심상치 않은 모습에 겁을 집어먹고는 한 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그러자 곧바로 또다시 베스렐의 전음이 리렌시아의 귓가를 울렸다.
“움직이지 말라고! 왜 말을 안 들어? 지금 이 주변의 독 기운이 안 보여?”
푸스스스스.
그것은 회색빛의 기류였다.
베스렐의 몸에선 지금 미약한 회색빛의 기류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서 5써클의 해독마법으로 주위의 독 기운을 없애 버려. 괜히 가까이 다가와 중독되지 말고.”
리렌시아는 그제야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주인님이 왜 저렇게 가만히 서 있는 건지를, 또한 지금 주인님이 매우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이제는 모두 알 수 있었다.
이럴 때는 무엇보다도 침착함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그래, 내가 여기서 잘해야 돼. 침착함을 잃어서는 안 되는 일이야. 내가 주인님을 도와드려야 해.’
리렌시아는 곧바로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6써클의 마도사답게 그녀의 캐스팅 속도는 매우 빨랐고 곧 실내에는 하나의 마법이 펼쳐졌다.
“디톡시케이트!”
화아아아악.
마법으로 탄생한 새하얀 빛.
그것은 베스렐의 몸을 비롯해 주위에 퍼져 있는 독 기운을 하나하나 찾아서 잡아먹기 시작했다. 확실히 5써클에 속하는 해독마법답게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휘류류류류류.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독 기운들. 하지만 베스렐의 몸에서는 계속해서 독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얼마나 지독한 독인지 녀석은 끈질기게 계속해서 베스렐을 죽이기 위해 애썼다.
‘정말 지독한 기운이로구나. 어떤 개자식이 이걸 내 방에다 가져다 놓은 거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면 마시자마자 죽었을 거 아냐?’
베스렐은 속으로 치를 떨었다.
처음에 마셨던 것은 물이었다. 투명한 물. 하지만 그게 베스렐의 배 속으로 들어가자 녀석은 곧바로 돌변해 시커먼 흑암의 빛으로 변신했다. 그리곤 비 오는 날 미친년 널 뛰듯이 그것은 사방으로 날뛰며 베스렐을 죽이기 위해 애썼다.
사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진즉에 죽었을 일이다.
그건 제아무리 7써클의 대마도사라도 변함이 없는 일일 것이다. 치료마법을 펼칠 겨를도 없이 죽을 텐데 마법의 경지가 제아무리 높아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푸시시시시.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독 기운.
지금 베스렐의 신체에서는 치열한 싸움이 진행 중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독 기운과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고루불사마공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인 것이다.
‘내 이 독 기운을 죽이고 나서 바로 잡는다. 내 방에 들어와 먹는 물에 장난친 놈, 반드시 찢어 죽인다.’
베스렐은 속으로 마시는 물에 장난을 친 놈을 반드시 잡아서 죽이겠다고 결심하고는 계속해서 고루불사마공을 운기행공해 나갔다. 잠시라도 고루불사마공의 운기를 멈추면 그대로 끝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금의 상태였던 것이다.
한편 문 앞에 서 있던 리렌시아는 놀란 눈을 해야만 했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지?”
5써클의 해독마법인 ‘디톡시케이트’는 웬만한 독은 순식간에 해독시켜 버리는 것이었다.
한데 해독마법을 펼쳤는데도 불구하고 주인님의 몸에서 계속해서 독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으니 당황스러운 리렌시아였다.
5써클의 해독마법이 통하지 않는 독이라니…….
물론 세상은 넓으니 그녀가 모르는 지독한 독이 있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그런 지독한 독이 주인님의 몸속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냔 말이다.
“좋아, 한 번 더 해 보자!”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분이 바로 주인님이었다.
리렌시아는 다시 한 번 해독마법을 펼쳤다.
“디톡시케이트!”
화아아아악.
새하얀 빛이 다시 한 번 베스렐의 신형을 덮었다.
그러자 이번엔 처음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던 베스렐 내부의 싸움이 서서히 한쪽의 승리로 가닥을 잡아 가기 시작한 것이다.

고루불사마공은 성질이 났다.
마공 중의 마공이요, 사공 중의 사공인 자신에게 같잖은 독 기운이 힘을 쓰고 있으니 열이 올랐다.
이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우우우웅.
고루불사마공은 힘을 내서 베스렐의 전신을 빠르게 돌아다녔다. 그리곤 흑암의 빛을 내뿜고 있는 독 기운들을 하나씩 잡아서는 몇 번 쥐어 패 준 다음에 자신의 힘으로 삼았다.
퍼억! 슈슈슈슈슈.
단물만을 뽑아 먹고 나머지 찌꺼기라고 할 수 있는 회색빛기운은 베스렐의 몸 밖으로 배출시켜 버렸다.
그러자 다급해진 흑암의 독 기운이었다.
녀석은 이제 자신이 함부로 고루불사마공에 대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베스렐의 전신 경락을 돌며 자신이 숨을 곳을 찾았다.
하지만 그 같은 일은 소용이 없었다.
베스렐의 신체는 이미 고루불사마공의 세상이었다.
고루불사마공은 자신의 안방에 침입해 온 도둑놈을 용서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녀석은 기경팔맥과 십이경맥 심지어 자잘한 세맥들까지 모조리 뒤져서는 흑암의 독 기운을 한 놈도 빠짐없이 전부 제압해 잡아먹어 버렸다.
우우우우우우웅.
베스렐 내부에서 커다란 울림이 일었다.
고루불사마공은 신이 났다.
평상시 운기행공을 할 때보다 좀 더 힘이 강해진 느낌이었다.
바로 이러한 때가 상승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할 수 있었다.
베스렐은 고루불사마공의 법문을 떠올리며 서서히 한 단계 높은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무공이란 것은 대체적으로 12성을 대성의 경지로 본다.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경지.
현재 베스렐의 고루불사마공의 경지는 6성이었다.
그에게 있어 6성의 경지란 것은 무림상의 경지로 말하자면 절정의 경지라 말할 수 있는 것이었고 알트라스 대륙의 검술 경지로 말하자면 오러 블레이드를 발현시킬 수 있는 소드 마스터의 경지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한데 지금 베스렐은 흑암의 독 기운으로 인해 무공의 경지가 한 단계 더 상승하려 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베스렐의 몸이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절정의 초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경지.
순간 베스렐의 몸에서 독 기운이 지닌 색감보다도 더욱 진한 흑암의 빛이 터져 나왔다.
화아아아아악.
순식간에 고루불사마공이 7성의 경지로 진입했다.

***

갈루안스 성에 때 아닌 광풍이 불었다. 아니, 그것은 광풍이라기보다는 차가운 바람이라고 해야 옳았다.
영주 독살미수사건.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절대로 아니었다. 다른 곳도 아닌 영주의 침소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당연히 블레스 기사단장과 메드레스 마도사, 그리고 영주의 저택의 살림을 맡고 있는 브론나드 집사는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만 했다.
특별수사대가 조직되어 영주 독살미수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 것이다.
은밀하면서도 빠르게 진행된 조사.
하지만 그것은 별 소용이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그들 특별수사대는 무려 한 달을 넘게 수사했는데도 불구하고 범인의 윤곽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과연 범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영주를 살해하려고 한 것인지를 하나도 밝혀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범인의 흔적은 이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영주 저택의 1층 거실.
실내에는 다섯 사람이 모여 있었다.
메드레스 마도사를 위시하여 기사단장인 블레스 라신, 저택의 집사인 올해 예순여덟의 브론나드 켈드, 시녀장인 케이시, 마지막으로 리렌시아, 이렇게 다섯 사람이 모여 있었다.
“허허. 이거 참! 탑주님을 볼 면목이 없으니…….”
특별수사대의 책임자로 있던 메드레스 마도사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모두들 그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 달이 넘도록 범인의 윤곽조차 잡을 수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에휴, 며칠 전 보니까 주인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던데 어쩌죠? 어제도 놈인지 년인지 모를 것들을 아직 잡지 못했냐고 하셨는데…….”
리렌시아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블레스 단장이 바로 앞에 있는 케이시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로렌이란 시녀의 신분은 확실하다 이건가?”
“예에, 그 일은 저보다는 브론나드 집사님께 여쭈어 보는 게 더 확실합니다. 제가 그 아이를 시녀로 추천하긴 했지만 최종적으로 백작가의 시녀로 들이신 건 집사님이시니까요.”
케이시의 말에 브론나드 집사가 말했다.
“로렌이란 아이의 신분은 확실하오, 블레스 경. 사건이 터진 날 다시 한 번 그 아이의 고향 집에 가서 신분을 비롯해 모든 걸 다시 알아봤으니 말이오.”
“으음, 로렌……! 그리고 그 아이와 몰래 사귀고 있었던 조디스란 청년이 모두 실종되고 말았으니 이건 어떻게 사건을 해결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일이군.”
블레스 기사단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영주 독살미수사건.
이것의 윤곽은 어느 정도 밝혀졌다.
그날 아침 저택의 시녀로 있던 로렌이란 열여덟 살의 아이가 영주의 침소에 독이 든 물병을 가져다 놓은 것이다.
당연히 특별수사대의 일은 로렌이란 아이를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었고 그것은 곧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끝나 버리고 말았다.
로렌은 그날 아침 영주의 침소를 청소하러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 후 실종된 것이다.
특별수사대는 할 수 없이 그녀의 주변 인물들을 들쑤시고 다녀야 했다. 그 뒤, 걸려든 게 바로 로렌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는 조디스란 청년이었다.
사실 시녀가 영주의 허락 없이 사사로이 남자친구를 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특별수사대는 그 남자친구란 녀석에게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결과는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조디스란 청년도 로렌이 실종된 그날 같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영주성을 이 잡듯이 뒤져 보고 근처의 다른 도시와 마을에도 몽타주를 그려 탐문에 들어가 보았지만 녀석은 하늘로 사라졌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누구도 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바삐 돌아다녀 보았지만 결국 헛수고로 끝나게 된 것이다.
“그들 두 사람이 이번 영주님의 독살계획에 관여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으음, 아무래도 제 생각에는 실종된 그들 두 사람은 이번 일의 배후 인물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았나 싶군요, 메드레스 마도사님. 그처럼 감쪽같이 사라진 걸로 봐서는 말입니다.”
블레스 기사단장의 말에 메드레스 마도사가 고개를 끄떡였다.
“으음, 아무래도 그렇겠지. 배후 인물이 입막음을 하려고 어떻게든 했을 걸세.”
“그런데, 메드레스 마도사님?”
리렌시아가 이제 막 생각났다는 듯이 불렀다.
“으응, 그래 뭐지, 리렌시아?”
“주인님의 물병에 들어 있었던 독은 이제 분석이 다 끝난 건가요?”
“으음, 그거? 그래, 그건 보름 전에 이미 분석이 다 끝났단다.”
리렌시아는 메드레스 마도사가 독의 분석이 다 끝났다고 하자 두 눈을 빛냈다. 그날 리렌시아는 알 수 없는 독에 중독된 베스렐을 해독시키기 위해 5써클의 해독마법인 ‘디톡시케이트’를 사용했었다.
하지만 해독마법은 베스렐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던 찌꺼기 같은 독 기운만을 해독시킬 수 있었을 뿐 주인님의 몸 자체는 해독시킬 수가 없지 않았던가.
그녀는 바로 물어보았다.
“어떤 독이었나요? 과연 어떤 독이기에 저의 해독마법이 통하지를 않은 것인가요?”
메드레스 마도사는 리렌시아의 물음에 양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
“으음,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독이었더구나.”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독이요?”
“그래. 그것은 너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야. 바로 ‘포이즌 플라워’의 몸에서 추출된 독이니 말이다.”
“예에, 그게 포이즌 플라워의 독이었다고요?”
리렌시아는 놀랐다는 듯이 예쁜 두 눈을 치켜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