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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블레이드 1권(22화)
Chapter9 반드시 잡아낸다(3)


포이즌 플라워.
이것은 리렌시아도 들어 본 적이 있는 독물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독을 지니고 있다는 독물 중의 독물이 바로 포이즌 플라워였다.
주로 드래곤 산맥의 남부에서 서식하고 있다는 그것은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꽃이었다.
동물이나 광물 같은 게 아닌 식물인 것이다.
이 독물은 크기가 보통 3미르(m)가 넘는 거대 꽃이었다.
특이한 것은 식물이라면 당연히 대지에 자신의 뿌리를 박아 넣고 자라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놈은 그게 아니라는 데 있었다.
자리를 이동하는 꽃.
평소엔 자신의 뿌리를 대지에 박아 넣고 있다가 필요하다 싶으면 바닥을 박차고 나와 돌아다니는 그런 녀석이다.
거기다 녀석의 대가리에는 커다란 이빨이 잔뜩 나 있는 입이 있어서 자신의 몸통 줄기에 나 있는 많은 가지를 이용 살아 움직이는 것은 뭐든 잡아채서는 씹어 먹는다.
한마디로 끔찍한 녀석인 것이다.
오우거 같은 육식 몬스터도 웬만하면 녀석의 곁을 피해 달아난다. 녀석이 비록 힘은 포이즌 플라워에 비해 월등히 강하다고는 하지만 포이즌 플라워는 독물이기 때문에 함부로 덤벼들 수가 없는 것이었다.
포이즌 플라워의 독은 녀석의 몸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힘으로, 또는 날카로운 몽둥이로 놈의 가지를 그냥 뽑아 버리거나 다져 버리면 그곳에서 상상하기도 끔찍한 독이 뿜어져 나오게 되어 있었다.
그 독은 꼭 누군가의 몸속으로 주입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물론 몸속으로 들어가면 세상의 그 누구라도 즉사를 면치 못하겠지만 그냥 피부에 살짝 닿기만 해도 끝나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그 포이즌 플라워를 생포하려 한다면 많은 인력이 투입되어야만 했다. 소드 익스퍼트의 기사와 5써클의 마법사 10여 명이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메드레스 마도사는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탑주님은 참으로 괴물이라고 할 수 있는 거로군. 포이즌 플라워의 독을 피부가 아닌 몸속으로 들이붓다시피 마시고도 멀쩡하시니 말이야. 보통 사람은, 아니 그게 아무리 극강한 소드 마스터라도 즉사를 면치 못했을 텐데 말이야. 그리고 이번 사건은…….’
그의 생각은 누군가의 방해로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럼 이제 다들 그만 일어나시죠. 어차피 이렇게 있어 봐야 사건이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리렌시아는 이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엔 이번 영주 독살미수사건은 아무래도 그 어떠한 결론도 내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날 것 같았다.
실종된 두 사람을 찾는다면 모를까, 그게 아닌 이상은 이번 사건은 묻혀질 확률이 높았다. 범인들이 직접 나서서 자신들이 이번 일을 저질렀다고 하지는 않을 게 아닌가.
메드레스 마도사는 할 수 없다 생각했다.
“으음, 그럼 리렌시아의 말대로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하지. 할 말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이러고 있어 봐야 어색한 침묵만이 가득 찰 테니 말이야.”
스윽.
이번 사건의 책임자인 메드레스 마도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하는 건가? 다들 나가지 않고?”
메드레스 마도사는 손짓을 하며 다시 한 번 밖으로 나가자고 말했다. 멍하니 서 있던 다른 사람들은 그의 말에 따라 할 수 없다는 듯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이번 사건이 영원한 미궁 속으로 빠질 것 같자 그들의 기색은 매우 어두웠다.

***

“어떻게 하면 좋겠나?”
호드리오 마법사가 물었다. 그러자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갈레빈 마법사가 대답했다.
“으음. 당분간은 아무래도 조용히 있어야겠소.”
“얼마나……?”
“이제 한 달이 지났으니 못해도 두 달 정도는 쥐 죽은 듯 있어야지 않겠소?”
“그렇게나 오래?”
호드리오 마법사는 지금 달아오른 상태였다.
그날 갈레빈 마법사가 해 준 이야기를 듣고 그는 잠시 동안 고민을 해야만 했다.
영주를 시해해야 하는 일이지 않은가? 그래야지만 그의 열망이라고 할 수 있는 6써클의 마도사로 오를 수 있는 어떤 비법을 얻을 수 있을 게 아닌가?
가만히, 그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가 없는 법이었다. 행동하는 자만이 그 무언가를 쟁취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할 수 없는 일이오. 무엇이든 일이란 것은 완벽히 해야 하는 것이니. 한데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한 일이오. 분명 영주는 그 독이 든 물병을 마셨다고 하던데 어떻게 살아남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오.”
“그러게 말일세. 자네가 건네준 그 포이즌 플라워의 독은 마시기만 하면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가 없는 일일진대 어떻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는지…….”
그때 갈레빈 마법사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아! 그리고 그 두 인간은 완벽히 처리한 것이오?”
앞뒤 다 자르고 나오는 뜬금없는 물음. 하지만 호드리오 마법사는 어렵지 않게 알아들었다.
“당연하지 않나? 그 두 아이는 마법의 힘으로 완전히 불태워 버렸네. ‘인시너레이트’ 마법으로 말일세.”
지금 이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나오고 있는 인물들은 다름 아닌 바로 백작가의 시녀인 로렌과 그녀의 남자친구였던 조디스였다.
“한데 당신도 참 대단하오. 조디스란 그 어린 녀석과 로렌이란 계집아이의 관계를 어찌 알고서 그런 일을 다 계획했는지 말이오.”
“그게 뭐가 대단한가? 영주 저택가를 몇 번 드나들고 그 다음 그곳의 시녀들을 알아낸 뒤에 주변에서 정보를 긁어모으면 금세 알 수 있는 일일진대.”
그의 대답에 갈레빈 마법사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으음, 당신이 그리 말하니 그것도 그런 것 같소.”
이 두 사람의 영주 독살계획은 간단했다.
영주의 거처에 자주 들락거리는 시녀들 중 누군가 한 사람을 정해서 5써클 정신계 마법 중의 하나인 순간최면마법으로 자신들이 시키는 명령을 이행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시녀들은 대부분이 영주 저택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 누군가의 도움은 당연히 로렌의 남자친구인 조디스였고 갈레빈과 호드리오 두 마법사는 조디스에게 거금을 주어 로렌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유인해 내게 한 것이다.
그 뒤의 일은 갈레빈 마법사와 호드리오 마법사의 생각대로 다 잘 풀렸다.
로렌은 포이즌 플라워의 독이 든 물병을 영주의 처소에 가져다 놓고는 바로 저택 밖으로 나와 죽음을 당했다.
마법에 걸려든 로렌이니 그대로 놔둔다면 영주나 다른 마법사들이 눈치를 챌 수도 있는 일이라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당분간은 조용히 있어야겠군. 제길, 빨리 6써클 마도사의 경지에 오르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일이오. 그래도 두 달 정도만 더 참으면 틈이 보일 것이니 우리 그때를 기다려 봅시다. 다음에는 반드시 죽일 수 있는 방법을 내 강구해 볼 터이니.”
“으음, 그럼 자네가 이 일은 좀 더 신경을 써 주게.”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은 주로 영주가 죽게 되면 백작가의 집 안에 있을 그 수많은 마법서적들과 가장 중요한 6써클과 7써클의 경지를 넘어설 수 있는 비법서를 어떻게 빼돌릴 것인가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조용한 실내.
갈레빈 마법사는 호드리오 마법사를 보내고 지금은 홀로 책상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깊은 고민의 표정이 그의 얼굴에 담겨 있다.
“제길, 포이즌 플라워의 독이 어떻게 실패를 할 수 있었던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군.”
그는 신경질적인 모습을 내보였다.
실패할 리 없다고 생각한 일이 실패해 버렸으니 당황스러운 그였다.
일이란 건, 특히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은 완벽에 완벽을 기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갈레빈 마법사는 자신의 계획이 완벽했음을 자부하고 있었다.
호드리오 마법사와 같이 영주의 행동패턴을 읽었고 그 패턴에 맞추어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독을 마시게 하지 않았던가.
한데 분명히 완벽했다고 생각한 그 계획이 어떻게 해서 일그러지게 됐는지 답답한 마음이 드는 갈레빈이었다.
“으음, 할 수 없어. 두 달 정도 뒤에 다시 시도하는 수밖에. 그때를 생각해서 지금부터 계획을 세워야 해. 가문에 연락을 넣어 이번엔 독살이 아닌 암살 쪽으로 생각을 해 보자고 해야겠어.”
갈레빈 마법사는 팔짱을 낀 채 이번엔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누구의 도움을 받아서 일을 진행시킬지 생각해 보았다. 그의 머리는 지금 이 순간부터 맹렬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

창문을 통해 비치는 햇살이 따뜻했다.
리렌시아는 그 따뜻한 햇살의 곁에 서 있는 누군가를 조금 전부터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키가 197다르(cm)에 몸무게가 162크롬(kg)이다.
이 정도면 뚱뚱한 체격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돼지라고 말할 수는 없을 터였다. 왜냐하면 그 체격에는 물렁한 지방살 대신 전부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베스렐은 지금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맑은 하늘이다. 그리고 흘러 다니고 있는 구름들은 풍성하면서도 예뻤다.
“결국은 누가 그 개짓거리를 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군. 제기랄! 그 쳐 죽일 놈이 누군지만 알아내면 당장에 달려갈 텐데.”
“주인님, 말을 좀 가려서 하시면 안 되나요? 그래도 이 넓은 땅의 영주님이신데 너무 품위가 없으신 것 같네요.”
리렌시아의 말에 베스렐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 말투를 지금 어떻게 바꿔? 이미 몸에 배어 버린 상황인데.”
“그래도 바른 말, 품위 있는 말을 할 수 있도록 노력은 해 보셔야지요. 그래야 아랫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지요.”
스윽.
베스렐이 신형을 돌려세웠다. 그리곤 테이블 앞의 작은 소파에 앉아 있는 리렌시아에게 퉁명스러운 한마디를 꺼냈다.
“됐어. 나 이대로 살다 죽을 거니까 말투 가지고 더 이상 따지지 마.”
털썩.
베스렐은 리렌시아 앞에 있는 커다란 소파에 가 앉고는 팔짱을 끼었다. 뭔가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는 모습. 지금 녀석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의 생각만이 가득 찼다.
포이즌 플라워라는, 독물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녀석의 독을 구해다가 영주의 처소에 가져다 놓은 놈들.
베스렐은 지금 그놈들을 어떻게 하면 잡아서 족칠 수 있을지 그것만을 생각했다.
“무슨 목적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어. 나의 영지를 빼앗으려는 어떤 멍청한 놈들의 짓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면 나의 가문인 갈루안스가에 전해지고 있는 마법서들을 훔치려고 내 목숨을 노린 것일 수도 있어.”
베스렐은 생각했다.
자신이 죽게 되면 어찌 될지를. 그리고 만약 일이 그렇게 된다면 누가 이득을 보게 될지를.
그래서 나온 결론이 그 두 가지였다.
영지의 외곽인 아론즈 협곡 너머의 주변 영지들이 이곳을 차지하려는 욕심에 일을 벌였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갈루안스가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것이었다.
바로 마법에 관련된 그것.
대륙에서 오래전부터 천재마법사 가문이라 소문이 난 갈루안스 가문이니 상상도 못할 그런 마법서들이 즐비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에 일단 영주의 목숨을 노리고 보는 것이었다. 생각대로 죽게 되면 혼란해진 틈을 타 이곳으로 몰래 잠입해 마법서를 훔치려는 생각에서 말이다.
“분명 이 둘 중의 하나가 틀림없어. 이건 메드레스 마도사나 블레스 기사단장도 같은 생각이니 말이야.”
스윽.
베스렐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실내를 이리저리 빠르게 걸어 다녔다.
저벅저벅.
리렌시아는 바삐 왔다 갔다 하는 베스렐의 모습을 그냥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에휴…….”
그녀는 알고 있었다. 지금 주인에게 말을 걸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베스렐은 깊이, 그것도 아주 깊이 생각에 잠길 때면 주위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도 잘 대답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저벅저벅.
계속되는 어지러운 걸음걸이.
잠시 후, 베스렐은 그 어지러운 걸음을 멈추고 실내의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빛나는 갈색의 눈동자.
아무래도 무언가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모양이었다.
‘으음, 방법은 역시나 놈들을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어. 지금처럼 매일 수련을 하느라 오그란 산과 이곳 저택으로만 왔다 갔다 해서는 일이 해결되지 않아.’
베스렐은 고개를 들어 저 멀리에 있는 산을 바라보았다.
울창한 숲이다.
때는 바야흐로 여름이 시작되는 6월 말경.
‘그 개자식들을 끌어들이려면 아무래도 내가 밖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어. 그래도 너무 갑작스럽게 그러면 안 되겠지? 으음, 그래. 길게 두 달 정도만 지금처럼 조용히 수련만 하다가 그 뒤에 조심스레 일을 진행시키는 거야. 일부 녀석들의 귀에만 내가 영지 시찰을 나간다고 소문을 내는 거야.’
베스렐은 생각을 멈추고 신형을 돌려세웠다. 그의 시선에 리렌시아의 예쁜 얼굴이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