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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블레이드 1권(23화)
Chapter9 반드시 잡아낸다(4)
“리렌시아?”
“예, 주인님.”
리렌시아는 베스렐이 깊은 상념에서 깨어나자 반가운 얼굴로 대답했다. 예쁘게 미소 짓는 그녀는 정말 너무도 아름다웠다.
“나가서 메드레스 마도사와 기사단장, 그리고 집사를 불러와. 아니, 집사를 통하면 다 되겠군. 으음, 그래. 브론나드 집사에게 그 두 사람을 점심때 보잔다고 전해.”
리렌시아가 물었다.
“그럼 그때 식사를 같이 하시려고요?”
“그래. 점심을 들면서 그 두 사람이랑 같이 이번 일에 개입된 개자식들을 어찌 잡을지 계획을 짜 봐야겠어.”
리렌시아가 웃으며 말했다.
“호호. 그럼 그 점심식사에는 저도 껴 주시는 거죠, 주인님?”
“너도?”
“예, 주인님.”
사실 노예가 주인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 껴든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지만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워낙에 특별한지라 상관이 없었다. 특히나 베스렐은 고루불사마공을 수련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리렌시아와 둘이서 같이 식사를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던 것이다.
“으음, 좋아. 너도 그럼 같이 식사 자리에 참석해. 네가 비록 나의 노예라 하지만 마법 실력은 마도사라 할 수 있는 6써클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말이야. 사실 마도사의 경지라면 조그만 마법사의 탑을 하나 세워 그곳의 주인으로 지낼 수도 있는 실력이니까.”
“호호. 고마워요, 주인님.”
“고맙긴? 당연한 일을. 그리고 너도 이제는 마도사이니 앞으론 회의석상이나 그런 곳에 자주 참석하도록 해. 아니, 너도 앞으론 이곳 저택에 있지 말고 코펜 마을에 있는 탑에 들어가는 게 어떨까? 그곳에서 좀 더 체계적으로 마법을 연구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말이야.”
베스렐의 말에 리렌시아가 화들짝 놀랐다.
“시, 싫어요.”
“싫어?”
“예, 정말 싫어요.”
베스렐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그래도 거기가 마법을 배우고 익히는 데 있어서 여기 저택보다는 더 나을 텐데? 그곳엔 다양한 마법기자재들과 큰 규모의 마법실험실들이 있어서 훨씬 좋은 조건에서 마법을 연구할 수 있잖아.”
리렌시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전 싫어요. 저는 그냥 이곳 저택의 지하실에 있는 도서관과 마법수련실이면 만족해요. 그리고 만약 모르는 게 있거나 하면 주인님에게 물어보면 되는 거잖아요.”
“뭐, 네가 가기 싫다면 할 수 없는 거지. 그래도 언제든 그곳으로 가고 싶다면 말만 해. 내가 미리 메드레스 마도사에게 말해 둘 터이니까”
“호호. 예에, 알겠어요, 주인님.”
리렌시아는 예쁜 미소로 대답했다.
그리곤 속으로 생각했다.
‘에휴, 우리 주인님도 참으로 둔하다니까. 나는 언제나 주인님만을 생각하는데 어쩜 그렇게 쉽게 나를 떨쳐 낼 생각을 다 하시는 걸까? 그게 비록 나를 위한 것이라 하지만 말이야.’
리렌시아는 베스렐이 너무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정말 섭섭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 어서 나가 봐.”
베스렐은 리렌시아를 그만 밖으로 나가 보게 했다. 해 줄 말이 다 끝났으니 이제는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생각이었다.
잠시 후 리렌시아는 거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끼이익, 탁.
이제 실내에는 베스렐 혼자만 남게 되었다. 녀석은 자신의 개인 소파에 엉덩이를 걸치고는 왼쪽 벽 테이블 위에 있는 그림 한 장을 쳐다보았다.
블랙 드래곤이 심술 맞은 표정으로 그려져 있는 몽타주.
녀석은 베스렐에게 있어 흉악범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사형선고를 내려도 부족한 악질적인 흉악범.
“감히 나의 목숨을 노려! 흐흐흐, 가만둘 수 없지. 반드시 잡아낸다. 반드시 잡아내 찢어 죽인다!”
순간 베스렐의 손이 섬전처럼 움직였다.
쉬이익! 척!
빛살을 가르는 듯한 소음. 그리고 무언가 박혀 드는 소리가 겹쳐서 들려왔다. 실내는 그 소음이 들리고 난 후 무언가 변화를 일으켰다.
그것은 블랙드래곤의 몽타주에 있었다.
녀석의 미간에는 어느 샌지 날카로운 단도가 들어가 박혀 있었던 것이다.
“흐흐흐, 기다려. 몇 년 남지 않았으니…….”
Chapter10 영지 시찰(1)
넓고도 넓은 대륙, 그 이름은 알트라스였다.
이 알트라스 대륙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고 또한 그보다는 덜하지만 수많은 직업이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농사꾼에서부터 물건을 만드는 수공업자에, 유통업자. 또한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과 가게에서 일을 보는 점원들. 거기다 관청에서 일을 보는 수많은 관리들에 이르기까지 직업이란 걸 분류해 본다면 무수히 많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직업들 중에는 어둠에 속하는 것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도둑놈을 들 수 있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도둑길드를 형성한 그들은 대륙에 암약하며 물건을 훔친다. 나쁜 놈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둠의 직업군들 중 이런 도둑놈들은 나은 편이다. 이들은 그래도 일단 사람은 죽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하나 어둠의 직업군 중에는 어쌔신이란 것이 있다.
사람 죽이는 것을 업으로 살아가는 암살자들.
그들은 의뢰인이 지목한 사람을 몇 날 며칠에 걸쳐 파악한 다음 완벽한 기회를 노려 죽음의 세계로 보내 버린다.
그리고 이런 어쌔신들에게는 등급이란 게 있었다.
용병들의 실력을 나타내는 등급처럼 그들도 암살 능력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제일 밑바닥의 하급이라고 말할 수 있는 C급 어쌔신에서부터 그 위로 B급, A급, 그리고 마지막의 최고라고 말들을 하는 S급에 이르기까지 네 등급으로 나눌 수가 있었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어쌔신계에는 S급을 최고로 보지 않고 그 위에 하나를 더 얹어 놓기 시작했다.
바로 SS급이라 해서 누구든 죽일 수 있는 최고의 암살자를 입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설령 그 대상이 검술이 극의에 이르렀다는 소드 마스터라 할지라도 반드시 죽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어쌔신을 더블 S급이라 칭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더블 S급의 어쌔신은 대륙에 2명이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공포의 암살자와 회색의 암살자.
더블 S급의 암살자는 바로 그 두 사람이었다.
웅성웅성.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
이곳은 갈루안스 백작령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검문소였다. 아론즈 협곡을 지나면 나타나는 검문소는 수십 명의 경비병들이 오가는 사람들의 신상명세를 파악하고 있었다.
“뭐야, 이 사람 왜 새치기를 하고 그래?”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시오? 어어? 저기 경비병이 뭐라고 하잖소. 얼른 앞을 보시오.”
“어이, 거기 두 사람! 줄을 똑바로 서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은 나중에 신분 확인을 할 터이니.”
경비병 하나가 넓은 관도에 줄지어 선 사람들에게 한마디 했다.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상인들이었다. 그리고 일부의 사람들은 갈루안스 영지에서 살기 위해 원래 있던 터전을 버리고 도망쳐 온 부랑민 같은 자들이었다.
오래전부터 다른 주변 영지에 한 가지 소문이 알게 모르게 퍼져 있었다. 갈루안스 영지는 아무리 노예라 하더라도 다른 영지에서 사는 것보다는 훨씬 행복하다고. 그곳의 영주는 영지민들을 자기 몸같이 아끼는 훌륭한 분이시라 다른 곳처럼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거기 좀 빨리빨리 합시다. 잠시 후면 해가 떨어지는데 식사는 안에서 해야 하지 않겠소.”
상인들 중 하나가 큰 소리로 말했다.
큰 상단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은 검문소 옆의 따로 마련된 건물에서 몇 가지 확인절차만을 거치면 되지만 일반 보따리상 같은 상인이나 부랑민들은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꼼꼼한 신분 확인이 필수였다. 당연히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그렇게 되면 이곳에서 밤이슬을 맞으며 저녁을 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모니스 상단.
열 대의 짐마차가 줄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따가닥, 따가닥.
그들은 지금 막 검문소를 통과했다.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넓은 관도 사이로 비치고 있는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어 아무래도 잠시 후면 저녁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모니스 상단 사람들의 발걸음은 느긋하기 그지없었다.
잠시 후면 ‘길라’란 이름의 마을이 하나 나오는데 그곳에서 저녁을 들면 되기 때문이었다.
“흐음, 이제 범의 소굴에 들어선 것인가?”
“예에. 다른 곳과는 달리 이곳은 빠져나갈 곳이 방금 전의 그 검문소뿐이니 이제부터는 조심을 해야겠지요.”
열 대의 짐마차 중 가장 후미에 있는 마차. 지금 그 마차의 뒤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회색빛의 머리칼을 가진 평범한 외모의 40대 후반의 남자와 남색 머리에 조금은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30대 후반의 사내였다.
“다른 두 녀석은 먼저 도착했겠지?”
회색 머리의 사내가 물었다.
“예, 그 둘은 이미 영주성으로 잠입해 활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타산그론 님.”
“흐음, 그럼 보름 정도 더 정보를 캐 보고 일을 시작하지. 상대는 검사가 아닌 마법사이니 내가 나설 필요까지는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직접 내게로 온 의뢰이니.”
“그렇습니다. 사실 5써클의 마법사를 죽이는 일은 저와 같은 S급 어쌔신 둘이면 충분한 일인데 말입니다. 그쪽에서 확실한 일 처리를 위해 타산그론 님이 직접 나서 주길 바라니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지금 이 두 사람이 나누고 있는 대화.
그렇다. 이들은 그냥 평범한 상단 일원이 아닌 어쌔신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타산그론이란 이름의 사내는 어쌔신들 중에서도 더블 S급에 속하는 무시무시한 자였다. 대륙에 단 2명만이 존재한다는 바로 그자인 것이다.
지금까지 그의 손에 죽은 강자들 중에는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기사도 있었고 6써클 마도사의 경지에 이른 자도 1명 포함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그는 어쌔신계에서는 전설과도 같은 사람인 것이다. 최강의 암살자, 또는 회색의 암살자라고 불리는 사내가 바로 그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거기선 몇 명을 더 보내 준다고 했지?”
“예에. 5써클의 마법사 2명과 용병들 중 S급에 있는 녀석들 3명을 보내 준다고 했습니다. 아마 그들도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이곳 백작령에 들어설 것입니다.”
타산그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제 한번 시도를 해 본 적이 있던가?”
“예에, 시도라니요?”
타산그론이 말했다.
“5써클의 마법사를 암살하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기사들이나 용병들보다는 한층 쉬워. 한데 그런 쉬운 상대를 나와 S급의 어쌔신 3명에게 의뢰를 하면서도 다른 몇 명의 사람들을 더 붙여 주겠다고 하니 이상하지 않나?”
“으음, 그건 그렇긴 하군요.”
남색 머리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같은 일이 특별히 이상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일이란 건 완벽하면 완벽할수록 실패할 확률이 적어지니 말이다.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일이고 또한 금전이 충분하다면 최고의 어쌔신을 구해 일을 진행시키는 게 합리적일 수 있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전에 암살을 시도하다가 한 번 실패한 모양이야. 한데 이곳 영주가 5써클의 마법사라는 건 확실한 건가?”
“예, 아까 상단주가 검문소에 있던 경비병들과 하는 얘기를 들어 보니 5써클 마스터의 경지에 있다고 합니다.”
그의 말에 타산그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군. 이제 나이가 열여덟이라고 한 것 같은데 벌써 5써클 마스터의 경지에 있다니.”
“그렇지요. 들리는 얘기로는 2, 3년 안에 6써클 마도사의 경지에 들 것이라 하니 진정 마법의 천재라 할 수 있는 녀석입니다.”
차분히 이어지는 대화들. 한데 이상하게도 이들이 하는 대화는 왠지 어쌔신들의 그것 같지는 않았다.
보통 암살자들이라고 하면 몸에서 풍기는 기운이 음침하고 또한 말투도 상당히 날카로울 것 같은데 이들에게서는 그런 걸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주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사람. 그 평범한 사람들과도 전혀 다를 게 없었다. 이웃집에 사는 아저씨들 같았다. 말투도 진짜 이웃집에 살고 있는 아저씨들처럼 딱히 튀는 게 없지 않은가.
이것은 이들 두 사람이 1명은 SS급이고 또 한 사람은 S급의 어쌔신이기 때문이었다.
S급 이상의 어쌔신부터는 자신의 기운을 숨길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해진다. 당연히 그냥 보면 이들이 암살자인지 일반인인지를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터벅터벅.
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대화의 내용은 주로 이번 암살을 어찌하면 보다 빠르고 완벽히 할 수 있을지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에게서 받은 사전 조사 자료를 오늘 밤 가져오게. 한번 검토해 봐야겠어.”
“예,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모든 암살을 성공시킨 타산그론은 이번 의뢰도 완벽히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이런 것을 자만이라고 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는 자만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다.
다만 암살을 하는 데 있어 철저한 사전 조사와 완벽한 장소에서 완벽한 살행을 계획하는지라 실패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물론 타산그론은 순수 무력도 뛰어난 어쌔신이었다. 그의 검술 실력은 놀랍게도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한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소드 마스터란 절대강자도 암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날은 점점 저물어 갔다.
그리고 그때 선두에서 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아, 다 왔다! 앞에 길라 마을이 보이니 걸음을 좀 더 빠르게 한다!”
잠시 후, 그들 모니스 상단은 길라 마을의 한 숙소에 짐을 풀고 하룻밤을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