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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블레이드 1권(24화)
Chapter10 영지 시찰(2)


마법등이 희미하게 빛을 내보이고 있는 넓은 석실.
주위의 벽은 온통 단단한 청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또한 청석으로 이루어진 벽들은 마법이 걸려 있음을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은 다른 게 아닌 바로 내구력을 올려 주는 마법이었다. 그 어떠한 강력한 타격도 견딜 수 있게끔 강화마법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한데 자세히 살펴보면 석벽의 곳곳엔 놀랍게도 그 무언가에 타격을 받았는지 움푹움푹 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베스렐 갈루안스.
녀석은 지금 청석으로 이루어진 이곳 석실 한가운데에 서서 무공을 연마 중이었다.
쾅! 콰앙!
순간 귀청을 때리는 폭음 소리가 들려왔다.
강화마법이 걸려 있는 단단한 청석이 놀랍게도 다시 움푹 패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폭음 소리는 한동안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쾅! 쾅! 콰앙! 콰앙!
끝없이 이어지는 폭음 소리.
한데 이상한 일이었다.
타격이 가해지고 있다는 건 그에 합당하는 어떤 동작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데 지금 베스렐은 뒷짐을 지고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일까?
쉬이익. 쉬이익. 콰앙! 쾅!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가는 소음 뒤에 폭음이 일었다. 아아, 그랬다. 이제 보니 베스렐은 뒷짐을 진 채 가만히 서 있는 게 아니었다. 녀석은 지금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 빠른 속도로 뒤에 가 있는 손을 앞으로 한 번씩 내뻗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쉬이익.
이것은 염라수(閻羅手)였다.
베스렐은 특별한 목적으로 만든 이곳 석실에서 지금 최강의 무공 중 하나인 염라수를 연마하고 있었던 것이다.
쾅! 쾅! 콰앙! 콰앙!

잠시 후.
계속될 것 같던 폭음 소리가 멈추었다.
베스렐은 염라수의 수련을 멈추고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보았다.
약간은 검은빛을 내보이고 있는 양손.
“으음, 염라수가 곧 8성 경지에 이르겠군. 8성 경지에 이르면 손이 다시 원래의 색으로 돌아간다고 했으니 말이야.”
씨익.
베스렐은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몸으로 직접 익혀 보니 지옥도법보다는 염라수가 확실히 더 편하긴 한 것 같아. 무기가 없더라도 이렇게 강대한 위력을 발휘하니 말이야. 전력으로 펼치면 이런 강화마법이 걸려 있는 청석쯤은 단번에 날려 버릴 수 있으니 앞으로도 이 염라수는 지옥도법의 수련과 함께 계속해서 병행해 수련해 나가야겠어. 후후, 좋아. 그럼 이번엔 염라수의 다른 걸 펼쳐 볼까.”
검은빛을 살짝 드리우고 있는 양손.
베스렐은 이번엔 그 양손을 이용하여 허공에다 부드러운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그러자 곧바로 그 원형의 손짓 속에서 작은 진동음이 들려왔다. 원형 속에서 무언가 흐릿한 기류들이 흘러 다니기 시작했다.
염라수. 이것은 수공(手功)이다. 사실 강기(|氣)를 뿜어낼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는 수공은 초식이란 게 그다지 필요치 않았다. 그 강대한 위력만으로도 모든 것이 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염라수는 그 강대한 위력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의 초식이 존재하고 있었다.
공격용 초식인 염라지옥(閻羅地獄)과 수비용 초식인 염라수호(閻羅守護).
위이이이이잉.
지금 베스렐이 양손을 허공에다 휘젓고 있는 행동은 바로 수비용 초식인 염라수호였다. 사실 이 염라수호란 것도 따지고 보면 공격용 초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염라수호는 바로 이화접목(移花接木)처럼 상대가 발휘하는 무공을 되돌려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둥근 원 안으로 들어온 상대의 공격은 허공을 격해서 공격하는 장풍이든 아니면 검이나 도와 같은 병기로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든 모두 튕겨 내 버리는 것이었다.
상대방은 자신이 사용한 공격 기법에 자신이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니 이 염라수호란 초식은 진정 대단한 초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아, 이거 참.”
무슨 일일까?
베스렐은 곧 염라수호의 초식 사용을 멈추었다. 뭐가 못마땅한지 그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다른 건 괜찮은데 이 염라수호의 초식은 어떻게 실험을 해 볼 수가 없으니 답답하네. 그렇다고 기사단 녀석들에게 공격을 해 보라고 할 수도 없고.”
상대의 공격을 막아 낼 뿐 아니라 오히려 그 공격을 되돌려 줄 수 있는 게 염라수호의 초식이다.
당연히 초식을 사용하는 데 있어 적이라면 모를까 같은 편에게 사용하는 것은 자제해야 하는 일이었다. 조심한다고 해도 잘못하면 상대를 죽일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쳇! 할 수 없군. 나중에 리렌시아에게 마법으로 멀리서 공격을 해 보라고 해야겠어.”
베스렐은 결국 리렌시아를 떠올려야만 했다.
“한데 염라수호가 전격 계열의 마법도 막아 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 번개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찰나의 공격이라고 할 수 있으니 그것이라면 염라수호의 반탄지력(反彈之力)을 뚫고 들어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그가 여국현이었을 때 만든 염라수는 최고를 지향해서 만든 무공이었다. 황제가 원한 게 천하제일의 무공이었으니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든 죽일 수 있고 또한 그 어떠한 공격이라도 막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든 무공이 염라수였다. 하지만 무림에서 고수 소리 좀 듣는 자들은 물론 수많은 비급들 속에도 번개를 직접적으로 이용해서 사용하는 공격 기법은 없었다.
물론 번개처럼 빠르다 해서 섬전도(閃電刀)나 벽력검(霹靂劍)과 같은 무공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 무공이 실지로 번개와 똑같은 빠름을 지닌 건 아니었다.
“으음, 뭐 내게 위험할 것은 없으니 리렌시아에게 우선 ‘라이트닝 볼트’ 마법이나 펼쳐 보라고 해야겠다. 염라수호 초식이 만약 그걸 막아 내면 다음엔 또 ‘체인 라이트닝’을 펼쳐 보게 하는 거야.”
베스렐은 자신의 양손을 다시 한 번 바라보더니 곧 걸음을 석실의 입구 쪽으로 향했다.
저벅저벅.
이제는 그만 돌아가 봐야 할 시간이었다.

영주 전용 식당.
지금 이 자리엔 다섯 사람이 모여 앉아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영주인 베스렐을 위시해 갈루안스 마탑의 메드레스 마도사와 기사단장인 블레스 라신, 그리고 집사인 브론나드 켈드와 마지막으로 베스렐의 노예인 리렌시아가 함께 저녁을 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식사를 하는 내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아니다. 단 한 사람만은 예외였다. 영주인 베스렐은 다른 네 사람과는 다르게 전혀 심각한 모습을 내보이지 않고 있었다. 녀석은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
“우물우물. 으음, 정말 맛있군. 끝내 주는 맛이야. 언젠가는 이런 맛난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베스렐은 작은 접시에 든 닭고기 스튜를 오십 번씩 꼭꼭 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포크와 스푼으로 두어 번 떠서 먹으면 끝날 정도의 극히 적은 양이지만 베스렐은 남들에 비해 서너 배 이상 악착같이 씹으며 그 맛의 여운을 길게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으음…….”
블레스 기사단장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는 행복한 표정으로 음식을 들고 있는 영주에게 마지막 만류의 말을 해 보았다.
“내일부터 있을 예정인 영지 시찰 건은 다시 한 번 재고해 보심이 어떨까 싶습니다, 영주님.”
“됐어. 그 건은 이미 다 끝난 얘기인데 왜 또 꺼내는 거야? 내가 두려워할 게 뭐가 있다고 그래?”
베스렐은 닭고기 스튜의 깊은 맛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즐거운 식사 시간을 망치는 언행을 하다니. 하지만 여기서 그만둘 블레스 기사단장이 아니었다.
“영주님은 혼자의 몸이 아니십니다. 만약 잘못되기라도 하시는 날에는 저희 영지의 앞날은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맞습니다, 탑주님.”
메드레스 마도사가 블레스 기사단장의 말을 거들었다.
“놈들을 끌어내기 위해 내일부터 영지를 시찰한다는 계획은 일면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그건 위험을 동반하는 일입니다.”
“그럼 어쩌자고? 응? 이렇게 저택에서 가만히 마법공부와 검술수련만 하면 일이 해결되는 거야? 그 개자식들을 어떻게든 잡아야 할 거 아냐? 가만히 앉아서는 아무것도 안 돼!”
큰 소리로 소리치는 베스렐.
녀석은 짜증이 나려고 했다.
이미 두 달 전부터 계획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 내일이면 그 계획한 일을 실천에 옮기는 날이었다. 한데 이제 와서 너무 위험하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적에게 몸을 노출하여 공격할 빌미를 만들어 주는 일.
사실 영주란 사람이 표적이 되어 스스로 그렇게 직접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마 다른 영지 같으면 영주가 그 같은 계획을 세운다면 다들 들고 일어나 뜯어말릴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 영지의 주인은 베스렐이었다.
그리고 베스렐은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이었다.
“그럼 수행기사로 그 아이들보다는 두 부단장이 어떻습니까, 영주님?”
블레스 기사단장이 말했다.
“부단장의 아들들인 그 두 녀석이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이르러 이제 진정한 기사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아직 초급의 경지에 있으니 말입니다. 아직 실전이나 위기의 순간을 별로 겪어 보질 못한 아이들이니 급작스러운 일에 제대로 대처를 못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우려 섞인 말에 베스렐이 대답했다.
“아아, 이것 참! 그럼 내가 부단장들과 동행하지 않으면 그깟 알 수 없는 어떤 미지의 적에게 당하기라도 한다는 소리야, 뭐야, 앙?! 아직도 나를 몰라? 저번에 나한테 그렇게 깨지고도 모르는 거야?”
“영주님의 검술 실력이야 저를 비롯해 기사단원들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비록 영주님이 오러 블레이드를 보여 주진 않았지만 녀석들도 아마 지금쯤이면 영주님이 소드 마스터란 절대의 경지에 들어섰음을 짐작하고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뒤에서 다가오는 칼날에는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영주님은 일부러 적에게 허점을 내보이려는 것이지 않습니까.”
스윽, 탁.
베스렐은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았다.
녀석은 답답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다른 녀석들 같으면 머리를 한 대 쥐어 패기라도 하겠지만 블레스 기사단장의 가문은 예전부터 충성스러운 가신 가문인지라 어떻게 하기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 블레스 기사단장이 하는 얘기는 다 베스렐 그를 위해서 하는 말이지 않은가.
한숨 소리와 함께 그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하아……. 이봐, 블레스 기사단장.”
“예, 영주님.”
“나 아주 강한 사람이야. 블레스 기사단장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강해.”
“…….”
아무 말 없는 블레스 기사단장.
“얼마나 강하냐 하면 2, 3명의 소드 마스터가 동시에 공격을 해 와도 나는 그들을 막을 수가 있어. 아니, 마음만 먹으면 그들을 단 한 번의 칼질로도 죽일 수 있지.”
“…….”
“…….”
조용한 침묵이 식당을 가득 메웠다.
블레스 기사단장을 위시해 모두의 눈이 동그랗게 치켜떠졌다. 마치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그렇게.
검술이 극의에 이렀다고 하는 소드 마스터를 1명도 아니고 2, 3명을 한꺼번에 죽일 수 있다니. 그것도 단 한 번의 칼질로 끝낼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어느 누가 그런 거짓말 같은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까지 그들의 영주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허튼소리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는 건 지금의 말도 허튼소리가 아닐 확률이 아주 높다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는 얘기였지만 또한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인 것이다.
“에에, 주인님?”
리렌시아가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왜?”
“저어, 주인님이 그렇게 강하신 분이셨어요? 저도 주인님이 강하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절대적으로 강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말이에요.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든 강자를 한 번에 2, 3명을 쓰러뜨릴 수 있다면 그건 정말 절대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거잖아요.”
“흥! 그까짓 일에 절대적이란 말을 다 붙이다니. 드래곤이 실소를 터트릴 일이군.”
베스렐의 목표는 드래곤이다. 그것도 그냥 드래곤이 아닌 오천 살 가까이 된 에이션트 드래곤의 목을 따는 일이었다.
드래곤이라고 하는 생물체가 어떠한 존재던가?
이곳 중간계의 절대자.
그들의 힘은 한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소드 마스터가 제아무리 많아도 드래곤이 브레스를 한 번 내뿜으면 그걸로 끝이라 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런 드래곤을 목표로 하고 있는 베스렐에게 있어서 소드 마스터 2, 3명은 식후 간식거리도 되지 않는 상대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은 절대적이란 말을 사용할 수가 없는 베스렐이었다. 그가 익히고 있는 무공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절대자란 거대한 명칭이 붙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다.
“어쨌든 블레스 기사단장은 이걸 알아야 해. 가끔 하는 그 대련들이 사실은 내 힘의 전부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란 걸 말이야. 단지 기사단원들이 다칠까 봐 오분지 일 정도로만 힘을 발휘하고 있단 말이지. 뭐,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겠지. 다음 하반기 몬스터 토벌에는 나도 출전할 테니까.”
“흐음…….”
블레스 기사단장이 감탄의 신음성을 흘렸다.
아무래도 진짜인 것 같았다.
그의 주군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검술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자신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아득한 경지에 말이다.
“하여간 이제 밥맛 떨어지는 그런 얘기는 여기서 끝내고 다들 다시 식사나 해. 맛있는 음식을 이렇게 편안히 앉아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니까.”
베스렐은 식탁에 앉아 있는 네 사람에게 내일의 일에 대해서 더 이상 왈가불가하지 못하게 하고는 마저 식사에 들어갔다.
“으음. 예, 알겠습니다.”
“탑주님께서 그렇게 강하다고 하시다면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두들 영주의 말에 다시 식사에 들어갔다.
즐거운 듯, 행복한 듯 닭고기 스튜를 드시는 영주를 보니 더 이상 내일의 일로 심기를 거슬리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 그들이었다.
“우물우물. 으음, 정말 맛있군.”
베스렐은 눈을 감은 채 닭고기 스튜의 깊은 맛을 느꼈다.
그는 요즈음 행복이란 걸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