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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론의 영주 1권(9화)
제5장 축제를 벌여라(1)


빵빠바바빵.
카라스가 저택에 들어서는 순간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며 하인들이 모두 나와 만세를 불렀다. 하녀 리아는 카라스의 주변을 맴돌며 꽃잎을 허공에 뿌려댔다.
“리아! 뭐하는 거야?”
카라스는 리아의 조금은 맛이 간 듯한 행동에 당황했다.
자신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쉴 새 없이 꽃잎들을 머리 위로 뿌려대는 리아가 결코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우리 멋진 영주님! 환영해요!”
휘익휘익.
카라스의 반응이 어떻든 리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환한 얼굴로 웃으며 계속해서 꽃잎을 뿌리는데 여념이 없었다.
“하아. 리아…….”
카라스는 절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집에 도착하면 어느 정도 환영 인사가 있을 것이란 건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더욱이 저 시끌벅적한 나팔 소리는 또 뭐란 말인가. 집안의 모든 하인들이 일제히 나와 만세를 부르며 자신을 맞이해 주는 모습 역시도 카라스로서는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님, 어머님! 다녀왔습니다.”
아버지인 하노스와 어머니 앞까지 걸어올 동안 나팔 소리와 만세 소리는 물론 리아가 뿌려대는 꽃잎을 맞으며 카라스는 애써 무안한 표정을 감추어야 했다.
“오! 우리 아들! 이제 영주라고 불러야겠구나. 장하다 내 아들! 네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들이다. 푸하하하!”
“호호. 우리 아들 축하한다.”
카라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랑스럽게 카라스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하노스는 감격스러웠는지 눈가에는 눈물까지 고여 있었다. 하노스는 카라스를 덥썩 부등켜 안고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큰소리로 웃어 젖혔다.
“기뻐하시니 저도 좋네요.”
긁적긁적.
너무도 크게 기뻐하는 부모님의 모습에 카라스도 절로 기분이 좋아졌지만 그렇다 해도 지나치게 오버스러운 환대에는 절로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자신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라면 몰라도 이는 순전히 거저 얻은 작위였기 때문이다. 아버지인 하노스의 노력으로 자신은 단지 작위만 받아 온 것일 뿐 특별한 노력을 했다거나 공을 세운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대단한 업적이라도 세운양 이렇게 찬양에 가까운 환대를 하니 무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은 우리 가문에서 남작이 탄생한 기념비적인 날! 거하게 파티를 열어 보자꾸나. 부인! 준비는 돼 있겠지?”
“네 아버지가 너 떠난 날부터 이렇게 성화란다.”
“어허, 성화라니. 이 얼마나 경사스러운 일이오? 우리 집안에서 귀족 나리가 나왔는데.”
“이미 다 준비했으니 걱정 붙들어 매세요.”
아버지 하노스는 마음이 급했는지 카라스의 어머니를 재촉하며 성화를 부렸다. 어머니는 그런 하노스의 주책을 웃으면서도 마음은 서로 다르지 않았다.
“이보게 남작!”
“말씀하시지요. 아버님!”
하노스는 점잖은 목소리로 카라스를 불렀다. 얼마나 불러보고 싶은 말이었던가. 카라스는 하노스의 마음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그에 걸맞는 목소리와 태도로 정중하게 대답해 주었다.
“어여 가서 네 수하들도 데리고 오너라. 이제 한식구인데 함께 즐겨야지.”
“수하라니요?”
카라스는 잠시 갸웃했다.
어릴 때 이후로는 밖으로 잘 돌아다니지 않는 카라스에게 수하 따위가 있을 리 없는 것이다. 친구라고 해 봐야 하녀인 리아와 하멜이 다인 것이다.
“경비대가 있지 않느냐? 헤론 영지의 직속 수하들이 경비대 말고 또 있느냐?”
“아, 경비대요?”
그제야 카라스도 하노스가 가리키는 것이 경비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헤론 영지의 영주가 거느리는 유일한 무력 단체이자 유일한 치안 담당 기구가 바로 경비대인 것이다.
“네 친구 하멜 그녀석도 경비대였지? 그놈도 참. 상단에 있으면 좀 좋아? 네가 상관으로서 그놈 짤라 버리거라. 쥐꼬리만 한 월급받으면서 그게 뭐하는 짓인지. 에잉.”
하노스는 하멜을 생각하니 얼굴이 잠시 찌푸려졌다.
카라스의 유일한 친구는 하멜뿐이었고 그것은 하노스 역시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노스는 하멜에게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고 하멜의 성실함은 상단주로서도 높이 사고 있었다.
하노스는 장차 상단의 일을 맡겨 볼 심산이었지만 하멜은 하노스의 뜻을 거절하고는 경비대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나중에 전후사정을 들어 하멜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괘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카라스가 영주로 부임했으니 하노스는 지금이라도 하멜을 상단에 두고 싶은 것이다.
“하하! 아버님도 참. 그럼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님, 그럼 수고 좀 해 주세요.”
“어여 다녀오거라. 하나도 빼지 말고 다 데려오고.”
“네 아버지 더 기다리시면 쓰러지실라. 빨리 다녀오렴.”
“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카라스는 축하 파티에 잔뜩 들떠 있는 하노스를 뒤로하고는 경비대로 향했다. 자신이 떠날 때 애꾸 파의 소동을 진압하기 위해 떠나는 걸 봤는데 별일은 없는지도 궁금했다. 카라스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자신을 반겨 줄 하멜을 떠올렸다.

***

경비대의 사무실은 오늘따라 한산했다.
영주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만 해도 경비대의 건물은 제법 컸고 경비대의 규모도 상당했지만 영주들에게 불행한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부터는 경비대의 규모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결정적으로 십 년 전 마지막으로 영주가 살해된 후부터는 경비대는 이름만 남게 되었고 이렇게 조그마한 사무실이 경비대의 전부였다.
“오늘 새로운 영주가 온다지?”
경비대원 티르는 간만에 들려오는 새로운 소식에 눈을 반짝였다.
“아마도. 르노와르 상단에서 하루에도 열두 번씩 떠들고 다니니까 뭐 맞겠지.”
티르와 당번 근무를 서고 있던 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헤론 영지에서 이 소문을 듣지 못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데 모든 것을 걸 수 있었다.
“르노와르 상단주의 아들이라며? 어떤 위인이야? 하멜 조장하고는 제법 친한 사이라던데?”
티르는 여전히 호기심 어린 표정이었다.
사실 티르는 헤론 영지가 고향이 아니었다. 그저 돈을 벌어 보겠다고 무작정 헤론 영지에 왔지만 이곳에서 상단의 일을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티르는 상단의 가장 하급의 잡일만 하다가 이곳 경비대로 오게 된 것이다.
“글쎄, 나도 잘은 모르지. 하멜 조장 외에는 특별히 친구도 없는 것 같고. 별로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것 같지도 않던데.”
헉스는 이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카라스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헤론 영지는 무척이나 큰 무역도시였고 인구밀도로 치자면 그 어떤 영지보다 높은 곳이었다.
각국의 상인들은 물론 사신이며 외교관들이 수도 없이 드나들었고 그 외에도 돈을 벌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곳이 바로 이곳 헤론 영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 영주로 오려는지 알 수가 없네. 르노와르 상단주의 아들이면 부러울 게 없을 텐데 굳이 험한 자리에 오려고 하는 걸까? 예전 영주가 어떻게 죽었는지 안다면 절대 안 올 텐데.”
티르의 입장에서는 의문이었다. 자신이야 부자 도시인 이곳에 오직 꿈을 안고 왔지만 이미 부족한 게 없는 상단주의 아들이 위험천만한 자리에 오르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르노와르 상단에서 그런 정보 하나 모르려고? 돈은 많지만 태생이 평민이니 아마도 귀족에 대한 선망 같은 거겠지.”
헉스는 카라스가 굳이 남작이 되어 이곳의 영주로 오는 이유를 대부분의 평민들이 그렇듯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로 이해했다. 아무리 돈이 많다 해도 결국은 평민일 뿐. 귀족과 평민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그렇게 돈이 많았다면 이곳의 영주로는 절대 안 올 텐데.”
티르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 돈만 있으면 됐지 신분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목숨까지 담보해 가며 위험을 무릅쓰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나저나 영주가 하멜 조장 친구라면서 어째 이곳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냐? 지금쯤 파티하고 난리가 났을 텐데. 뭐 조장 상태로 봐서 같이 가기도 힘들겠지만.”
헉스는 헤론 영지에 도착하고도 경비대에 들리지 않는 카라스에 대해서 조금은 서운한 듯한 투였다. 이곳 경비대는 영주 직속이었고 무엇보다 하멜과의 사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라스가 온다 해도 지금의 하멜은 아마도 카라스와 파티를 하기에는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멜 조장 상태가 어떤데?”
이때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긴? 아주 오지게 얻어 터져서 누워 있지. 애꾸 파 놈들이 그것들이… 그런데 누구……?”
헉스는 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고 얼떨결에 묻는 대로 이야기를 해 주다가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처음 보는 낯선 인물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나? 남작 카라스! 헤론 영지에 새로 부임해 온 영주라고들 하지.”
카라스는 자신의 소개를 간단하게 했다.
“헉! 여, 영주님을 뵙습니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티르와 헉스는 급격하게 당황하며 얼른 카라스에게 예를 올렸다.
말은 했지만 설마 진짜 이곳에 나타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말이 영주 직속의 경비대지 지금의 경비대는 카라스가 방치한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사는 됐고. 아까 그 이야기마저 해 봐. 하멜이 어떻다고?”
카라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티르와 헉스의 이야기로 하멜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사실은…….”
헉스는 하멜의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것은 카라스가 떠나던 날 있었던 애꾸 파와의 다툼 때문이었다. 평소 같으면 경비대의 체면을 봐서 양보하고 돌아가는 것이 관례였지만 그날은 애꾸 파가 과격하게 나왔던 것이다.
경비대가 보는 앞에서 상인들을 구타하고 물건들을 깨부수는 건 물론 상인의 마누라와 딸한테까지 폭력을 행사하자 하멜이 보다 못해 나선 것이다.
하멜도 힘이라면 어려서부터 뒤지지 않았고 간단한 검술도 배운 상태였기에 웬만한 불량배라면 하멜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멜을 상대한 애꾸 파의 일원은 단순한 불량배라고 보기에는 힘들 만큼 실력이 뛰어났고 하멜은 죽지 않을 만큼 심하게 당한 것이다.
그 일로 하멜은 팔다리가 부러져 옮겨졌고 지금은 뼈가 붙는 동안 집에서 쉬고 있다는 것이 사건의 전말이었다.
“그렇단 말이지. 경비대 전원 집합한다.”
하멜과 애꾸 파와의 사건을 전해 들은 카라스의 얼굴빛이 변했다.
카라스는 무척이나 화가 난 상태였다. 카라스는 경비대 전원에게 집합 명령을 내렸다.
“전원이요? 그게…….”
헉스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렸다.
“무슨 문제 있나?”
“지금은 비번도 있고 또 휴가 중인 대원들도 있고… 잠시 볼일을…….”
헉스는 어렵사리 사정을 이야기했다.
이것이 경비대의 현 주소인 것이다. 다 합쳐 봐야 백여 명인 경비대원 중에서도 하루에 출동할 수 있는 인원은 기껏해야 열 명 내외인 것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또 다른 부업을 하고 있었다. 부업이라고 해 봐야 막일이나 상단에서의 잡일이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경비대의 월급으로는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예외 없이 전원 집합시키도록. 지금 당장! 이건 영주로서의 첫 명령이다. 나는 잠시 하멜에게 다녀오겠다. 실시!”
“옙!”
카라스의 딱 부러지는 명령에 헉스와 티르는 경비대원들의 집과 일하는 곳을 일일이 찾아다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