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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론의 영주 1권(11화)
제5장 축제를 벌여라(3)
경비대의 사무실 앞에 옹기종기 모여 서 있던 경비대원들은 카라스가 도착하자 우르르 몰려들었다.
“영주님이시다.”
“안녕하십니까? 영주님.”
“안녕하세요.”
경비대원들은 무척이나 반가운 얼굴로 너도 나도 인사를 했다. 마치 동무들이 동네의 어른에게 인사하는 그런 분위기로.
“흐음.”
경비대원들의 모습에 카라스는 절로 신음이 나왔다.
이건 영주를 맞이하는 경비대의 모습이 아니었다. 군기는커녕 체계도 없었고 경비대원이라는 어떤 사명감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저 동네에서 볼 수 있는 모임 딱 그런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하멜 조장은 괜찮지요?”
“며칠 지나면 걸어다닐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경비대 인원이 이것뿐인가?”
헉스의 물음에 카라스는 하멜의 상태를 간략하게 대답해 주고는 집합해 있는 경비대원들을 둘러보았다. 분명 백여 명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지금 모인 인원은 반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모일 수 있는 인원은 이게 최대입니다.”
헉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렵사리 대답했다.
“총 몇 명이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서 경비대원 100명, 조장 4명, 경비대장 1명 총 105명입니다.”
헉스는 경비대의 총 규모와 인원에 대해서 보고했다. 말이 영지의 경비대지 이건 중소 상단의 경비 숫자보다 적은 인원이었다.
“그런데 지금 모인 인원은 몇 명인가? 경비대장은?”
“저희가 4교대 운용 중이라 2조만 모였습니다. 경비대장은 다른 일이 있으셔서…….”
헉스는 지금의 인원만이 모이게 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는 경비대장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말끝을 흐렸다.
“훗. 시장통 불량배들조차 무시할 만하군.”
카라스는 고작 시장의 불량배들이 경비대가 있음에도 그렇게 난동을 부릴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동네 불량배들 만도 못한 조직력에 인원조차 적으니 시장통에서 경비대의 눈치를 볼 리가 없는 것이다.
“영주님 마음에는 들지 않으시겠지만 사실 저희도 어렵습니다. 경비대 급료가 밀린지도 여러 달이 지났구요. 뭐 급료라고 해 봐야 얼마 안 되지만. 그리고…….”
헉스는 경비대의 재정 상황부터 자세한 내용을 상세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변명 아닌 변명이었지만 헉스의 이야기만 들어도 경비대가 왜 이토록 그 권위가 실추되었는지는 능히 알 수 있었다.
헉스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지금 이렇게라도 모인 것이 오히려 대단한 일이었다. 그만큼 경비대의 사정은 열악했고 경비대의 유지조차 지금은 한계에 부딪친 상황인 것이다.
“이해한다. 지금까지는 그래 어쩔 수 없었겠지. 나도 너희들을 특별히 변화시킬 생각은 없었다. 얼마 전까지는. 하지만 너희들이 조금 변해 줘야겠다.”
카라스는 현 경비대의 상황에 대해서 그리고 경비대원들의 상태에 대해서 이해했다. 이전이라면 이들에게 간섭할 생각도 이들에게 무언가를 시킬 생각도 없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자신이 이곳의 영주로 온 것이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렸고 경비대가 그 볼모가 되었기 때문이다.
카라스는 우선 이들을 변화시키기로 했다. 자신이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인 만큼 자신의 손발이 되어 주어야 앞으로도 필요할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직속 조직인 만큼 경비대가 얕보인다면 자신이 얕보이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받지 않을 피해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애꾸 파로 간다. 앞장서도록.”
경비대원들은 카라스의 말을 언뜻 이해하지 못하고는 서로의 눈치를 봤다. 느닷없이 애꾸 파는 왜 간단 말인가. 지난번에 애꾸 파에게 그렇게 당했는데 그들과 또 마주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애, 애꾸 파 말씀입니까? 그놈들이 예전에 그놈들이 아닙니다. 요즘 시장통에서도 승승장구하는 떠오르는 세력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영주님께서 가시다니요? 위험합니다.”
헉스는 결사적으로 카라스를 말렸다.
예전의 애꾸 파라면 시장통에서도 가장 세력이 약했지만 비겁한 짓을 일 삼아 웬만해서는 꺼려 하는 그런 하류 조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당시에는 경비대라 해도 애꾸 파와 정면으로 싸운다면 물러서지 않을 정도는 되었고 애꾸 파에서 알아서 양보를 해 주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경비대가 애꾸 파에게서 물러서야 하게 된 것이다. 하멜이 곤죽이 된 것은 물론 하멜이 속한 1조 대원들 대부분은 하멜만큼은 아니어도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무서운 건 아니고?”
카라스는 한심한 얼굴로 경비대원들을 둘러보았다.
“저희들이야 뭐… 큰 충돌까지는 안 가겠지만 영주님이 가시면 아무래도…….”
헉스는 사실 애꾸 파가 두렵기도 했지만 카라스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 부임해 온 영주가 첫날부터 시장통의 하류 불량배들에게 당한다면 이는 경비대의 위신에 직결되는 문제였다.
자신들이 당하는 것과 자신들의 최고 상관이자 영지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카라스가 험한 꼴을 당한다면 이후부터는 영주와 경비대의 그나마 남아 있던 권위마저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위험에 처하면 너희들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날 두고 도망갈 것인가?”
카라스는 헉스의 시선을 마주하고는 물었다.
“그, 그럴리야 있겠습니까? 아무리 경비대의 권위가 추락했다고 해도 영주님의 유일한 직속조직인데요.”
헉스의 대답은 그래도 카라스가 가지고 있던 경비대에 대한 선입견을 조금은 바꿔 주었다. 말뿐인지는 몰라도 아직은 경비대에 대한 사명감이 조금은 남아 있는 듯했다. 아직 불씨가 살아 있다면 다시금 태우면 되는 것. 카라스는 지금의 경비대를 새로이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그래? 고맙군. 안내해라. 하멜을 그렇게 만든 놈 면상이라도 봐야겠으니까.”
“영주님. 제발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하멜 조장을 그렇게 만든 놈은 외지에서 온 놈입니다. 애꾸 파에서 고용한 용병 같은데 보통이 아닙니다. 애꾸 파 두목하고도 호형호제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세력 다툼에서 이기기 위해 꽤 실력 있는 자를 데려온 모양입니다.”
카라스가 고집을 꺾지 않자 헉스는 하멜을 그꼴로 만들었던 애꾸 파의 용병에 대해서 하는 수 없이 털어놓았다. 그의 몸값으로 얼마나 지불했는지는 몰라도 그 용병의 능력은 상단의 호위대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실력인 것이다.
상단의 호위대라면 웬만한 기사단보다는 한 수 위라고 평가되는 만큼 그 용병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략 알 수 있었다. 호위대에서도 상당한 위치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었으니 경비대로서는 싸워 볼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그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누구지?”
카라스는 자신을 가리켰다.
“여, 영주님이시지요.”
헉스는 뭔 소리냐는 표정이었다.
“어디의?”
“그야 이곳 헤론 영지의…”
카라스의 지금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물음에 헉스와 나머지 경비대원들은 뚱한 표정을 한 채 마음속으로는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크게 다치면 막상 생계가 힘들었고 그렇다고 큰 보상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저 몸 상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길이었다.
“나는 이곳 헤론 영지에서 국왕 폐하를 대신한다. 안내하도록. 그리고 오늘 보고 들은 일은 외인에게는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카라스는 근엄한 목소리로 엄포를 놓듯 경비대원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자신의 명을 어기는 것은 국왕 폐하의 명을 어기는 것. 대역죄로 다스리겠다는 뜻이었다.
“그럼 안내할 테니 한 가지만 약속해 주십시오.”
헉스는 더 이상은 카라스의 뜻을 거스를 수 없자 마지막 제안을 했다.
“약속?”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영주님께서는 그냥 뒤에서 구경만 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헉스와 나머지 경비대원들의 얼굴 표정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카라스를 바라보는 눈빛은 제발 그것만이라도 들어 달라고 간절하게 애원하는 눈빛이었다.
“너희들의 조치가 마음에 들면 그렇게 하지. 가자.”
카라스도 결국 한 발 양보하는 수밖에 없었다. 너무도 절절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단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비대원들의 둔함이 장차 가져올 여파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제6장 살고 싶으면 납작 엎드려 머리를 처박아라(1)
카라스의 명령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며 경비대는 시장통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애꾸 파의 본거지인 키클롭스 상가 번영회가 목적지였다.
키클롭스 상가 번영회는 애꾸 파 두목 싸이클롭이 만든 조직으로 시장통 귀퉁이에 작은 가게 몇을 봐주며 시작하다가 점차 그 세력을 넓혀 지금은 시장통에 어느 정도 자리를 굳히는 군소 조직 중 하나였다.
그리 큰 세력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잔인함과 악랄함은 상인들 뿐만 아니라 다른 조직들에서도 치를 떨 정도였고 그들은 그러한 수법으로 그 힘을 키워 나갔다.
하지만 애꾸 파는 두목인 싸이클롭 외에는 특별히 강하거나 다른 조직을 압도할 만한 실력자가 없는 것이 약점이었고 그러한 이유로 세력을 넓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영입한 외지 용병의 덕택에 지금은 애꾸 파와 비슷한 규모의 조직들을 하나하나 흡수해 가며 그 세력을 점차 시장통 전체로 확장하는 중이었다.
싸이클롭이 영입한 용병은 인근 조직의 조직원들과는 확연한 수준 차이를 보여 주었고 인근 불량배들은 용병의 활약에 연일 밀리며 자신들의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푸하하하! 키린코 파 놈들마저 항복했단 말이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릴 그렇게 업신여기더니 아주 고소하구만.”
애꾸 파의 두목은 무척이나 기쁜지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언제나 애꾸 파를 무시하며 거들먹거리던 키린코 파가 결국 자신들의 밑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는 조직 세계의 지각 변동이라 할 만큼 큰 이변이었고 그만큼 애꾸 파가 승승장구한다는 뜻이었다.
“조만간 시장통의 모든 조직들을 발 아래 꿇리게 될 것이오.”
두목 싸이클롭의 옆에서 태연하게 앉아 있는 중년의 사내는 애꾸 파와는 어울리지 않는 뭔가 무게감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두목 싸이클롭 앞에서도 전혀 주눅들거나 눈치를 보지 않았고 마치 자신의 집처럼 편안하게 앉아서 다리를 꼰 채 두목 싸이클롭과 이야기 중이었다.
“이게 다 크락슨 자네 덕이네. 자네가 없었다면 우리 키클롭스 파가 어찌 키린코 파 놈들과 싸울 생각이라도 할 수 있었겠나? 자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들어줄 테니 말만 하게.”
싸이클롭은 중년의 사내에게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중년의 사내는 다름 아닌 최근 애꾸 파가 승승장구할 수 있도록 해준 용병 크락슨이었다.
크락슨은 그저 그런 불량배라는 느낌은 전혀 풍기지 않았다. 마치 잘 다듬어진 검을 보듯 그에게서는 날카로운 예기마저 느껴졌다. 그는 결코 막싸움에 길들여진 그런 인물은 아닌 듯 보였다.
“이미 대가는 충분히 받았소. 그러니 내게는 신경 쓰지 마시오. 나는 그저 할 일만 할 뿐이오.”
싸이클롭의 파격적인 제안에도 크락슨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한 계단이라도 위로 올라가려는 조직 세계에서 보자면 의외의 모습이었다.
“그야 자네가 고마워서 그러지. 그것보다 어떤가? 이참에 아예 키클롭스 파에 들어오는 것이? 자네가 그렇게만 해 준다면 지부장 자리는 보장하겠네. 원한다면 키클롭스 파의 부두목 자리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싸이클롭은 넌지시 떠보는 것이 먹혀들지 않자 이번에는 대놓고 높은 자리를 보장해 주며 크락슨을 자신의 곁에 두고자 했다. 크락슨만 자신의 사람이 되어 준다면 시장통 전체를 차지하는 것도 결코 꿈은 아니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두목! 크락슨의 능력이야 높이 사지만 지금까지의 관례가 있는데 조직원이 되자마자 지부장은 좀…….”
싸이클롭의 파격적인 제안에 부두목의 안색이 살짝 찌푸려졌다.
크락슨의 능력이 뛰어나긴 해도 그는 어디까지나 외부인이었고 그런 인물을 한순간에 높은 위치로 기용한다면 부하들의 반발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자리가 직접 위협받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네놈이 지금 시기라도 하는 것이냐? 네놈이 한 일이 무엇이냐? 크락슨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키클롭스 파가 있을 것 같으냐?”
싸이클롭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능력 있는 인물은 중용해야 하는 법. 자신의 밥그릇이나 지키겠다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모습이 싸이클롭의 눈에는 영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누가 시기를 한다고 그러슈? 내가 그런 위인으로밖에는 안 보이는 거유? 내가 두목과 함께한 지가 벌써 이십 년이요. 너무하시네.”
“어허! 이놈이 꼬박꼬박 대드는 거 보게? 어째 하나같이 에잉.”
부두목의 변명 아닌 변명에 싸이클롭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사실 부두목과는 형제라 할 수 있을 만큼 숱한 고난을 함께해 온 사이였기에 싫든 좋든 자신의 사람인 것이다.
“나는 보수를 받은 대로 일을 할 뿐, 이곳에 머무를 생각은 없으니 그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둘의 말다툼에 분위기가 안 좋아지자 크락슨은 싸이클롭에게 거절의 의사를 분명히 했다. 보수를 받은 만큼은 도와주겠지만 맡은 일이 끝나면 미련없이 떠나겠다는 의미였다.
“자네의 능력이 아까워서 그러는 것이지. 혹 그분께서 특별히 자네에게 자리라도… 쩝.”
싸이클롭은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크락슨이 떠난다면 당장 애꾸 파의 위치가 흔들릴 판이었고 크락슨만 한 능력 있는 인물을 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싸이클롭은 크락슨을 소개해 준 인물이 혹시라도 크락슨에게 이미 어떤 제안을 한 것이 아닌지 넌지시 물어보았다.
만일 그런 것이라면 자신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여 어떻게 해서든 크락슨을 끌어오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크락슨의 얼굴이 사나워지며 눈빛에서는 엄청난 살기마저 뿜어져 나왔다.
“허억! 자, 자네 왜 그러나?”
“크, 크락슨!”
싸이클롭과 부두목은 크락슨의 기세에 눌려 하마터면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그만큼 크락슨의 기세는 평생을 싸움터에서 지낸 이들마저 질리게 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다시는 그분에 대해서 입 밖에 내지 마시오. 그 순간 우리의 관계는 끝이 날 테니.”
크락슨의 입에서는 나직하면서도 상대방의 폐부를 찌를 듯한 날카로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마치 거절한다면 당장 목이 달아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절로 받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 알았네. 자네도 참…….”
싸이클롭은 진땀을 흘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말이 두목이지 이곳에서 크락슨의 뜻을 거스를 만한 인물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