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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론의 영주 1권(16화)
제7장 하늘이 내리신 우리 영주님(1)


카라스의 저택 앞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버지 하노스는 카라스가 영주로서의 업무를 담당하려면 근사한 건물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열심이었다.
“우리 아들! 내가 멋진 놈으로 지어 줄 테니 기대하거라.”
하노스는 무척이나 기쁜지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이제 기초 공사를 위해 터를 닦는 중인데도 그것만으로 뿌듯한 하노스였다.
“그냥 적당하게 지어도 되요. 경비대원들이 잠시 머물거나 쉬는 용도로 사용할 뿐인데요.”
카라스는 하노스의 과한 애정에 살짝 부담이 됐다.
지금 경비대가 쓰는 건물은 너무 좁기도 했거니와 이런저런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장소를 옮겨야 할 필요성이 있었지만 아버지 하노스의 반응으로 보아 엄청난 건물을 생각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생활해도 괜찮겠느냐? 명색이 영주인데. 지금은 허름해졌지만 영주들이 머물던 저택이 있지 않느냐? 네가 원하면 이 아비가 커다란 성을 지어 주마.”
하노스는 내심 카라스가 집앞에 집무실을 두는 것에 반겼지만 영주로서의 체통 문제가 있었기에 카라스의 마음을 떠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다 쓰러져 가는 영주의 저택을 헐어 버리고 그 일대에 성을 쌓아 주고 싶었다.
“성이요? 아니에요. 저는 집에 있는 게 좋아요.”
성을 쌓아 준다는 말에 카라스는 화들짝 놀랐다.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반응을 보인다면 정말로 성을 쌓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뭐 너만 좋다면야 나로서는 환영이지. 이렇게 우리 아들과 함께 사는 것이 바로 내 행복이 아니겠느냐? 푸하하하! 네 어미도 네가 집에 있는다고 하니까 좋아하는 눈치더라.”
성을 쌓아 주겠다고 해도 싫다며 자신과 함께 있는다는 말에 하노스는 더욱 입이 벌어졌다. 이제 다 큰 아들이었지만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하노스였다.
“헤헤. 저는 영원한 아버님 어머님의 아들이잖아요.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카라스도 부모님이 자신을 얼마나 아끼는지 마음 깊이 느끼고 있었기에 귀여운 척까지 해 가며 아들로서의 재롱을 톡톡히 부렸다.
“그럼그럼. 내 자랑스러운 아들이지. 아암.”
이제 성인이 되었지만 이렇게 귀여운 모습을 보일 때면 하노스는 세상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럼 일 보고 올게요.”
“그러거라. 돈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가져다 쓰고. 경비대 살림이 말이 아닌 것 같던데.”
“예. 세금으로 충당해야겠지만 당분간은 아버님 돈을 좀 써야겠는데요?”
카라스는 하노스의 말대로 아버지의 재산을 사용하기로 했다. 경비대의 살림이 워낙 열악했기 때문이다. 당분간 세금으로 충당이 되기 전까지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얼마든지 쓰거라. 내 돈이 네 돈이 아니냐? 이 아비가 팍팍 밀어 주마. 명색이 영주님인데 수하들은 챙겨 줘야지.”
“예, 아버님.”
하노스의 풍족한 인심에 카라스는 꾸뻑 인사를 하고는 경비대의 사무실로 향했다. 역시 돈이란 있는 것이 좋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카라스였다.

“영주님께서 오신다. 모두 차려!”
“영주님께 경례!”
“충성!”
이른 시각부터 경비대 본부에 모여 있던 대원들은 카라스가 도착하자 재빨리 정렬했다. 처음 카라스를 맞이했을 때와는 백팔십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마치 동네 형아우처럼 대하더니 이제는 제법 군기도 잡혀 있는 것이 경비대원으로서의 면모가 보이고 있었다.
“오늘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였군.”
지난번과는 달리 자신의 소집 명령에 전원이 대기하고 있자 카라스는 만족스러웠다.
“영주님 명이신데 당연히 모여야지요.”
헉스는 태연스레 대답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군기만큼은 헉스의 2조를 따라올 조가 없었다. 2조는 바로 키클롭스 파에서의 경험을 손수 체험했기 때문이다.
“각 조장들은 앞으로 나오도록.”
카라스는 조장들을 불렀다.
“하멜, 헉스, 브록, 티르.”
“옙.”
4개조의 조장들이 앞으로 나왔다.
“당분간 하멜을 선임조장으로 하고 특별한 일이 없을 때에는 4교대로 돌아간다. 순찰을 돌지 않는 조는 이곳에서 대기하도록. 경비 막사가 지어질 때까지는 이곳이 우리의 본부다.”
“옙!”
카라스는 기존대로 4개조를 유지했고 티르만 공석인 4조의 조장으로 발탁했다. 그 이유는 티르 역시 키클롭스 파를 절단 낼 때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자신의 말을 잘 들을 인물을 쓰는 것이 여러모로 편한 것이다.
“그동안 밀린 급료는 모두 지급받았나?”
“옙, 영주님! 감사드립니다!”
4명의 조장들은 모두 목청껏 외쳤다. 이들이 이렇게 이른 시간에 전원 집결해 있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카라스는 그간 경비대원이 받지 못한 급료를 몽땅 지불했던 것이다.
“카라스, 아니, 영주님! 그런데 급료가 받아야 할 금액보다 너무 많이 지급된 것 같은데요?”
하멜은 좋으면서도 주위의 눈치를 보며 의문점을 이야기했다.
영주이기 전에 친구로서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카라스가 지급한 급료는 경비대원들이 받아야 할 급료에 비해 지나치게 많았던 것이다.
“아, 그 이야기군. 훗. 경비대의 급료가 너무 적은 것 같아 오백 프로 인상했다. 밀린 급료도 인상된 금액으로 지급했고. 대신 투잡 뛰는 대원들이 없도록 한다.”
카라스는 피식 웃으며 급료 인상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두 배도 아니고 무려 다섯 배가 인상된 것이다. 그것도 이전의 급료까지 모두 인상된 급료로 지급되었으니 경비대원들은 한순간에 돈벼락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처럼만 급료가 지급되면 투잡 뛰라고 해도 안 뛰지요. 투잡 뛰어도 택도 없는 액수인데.”
헉스가 재빨리 나섰다.
말이 투잡이지 버는 돈이 많다면 누가 두 가지 직업을 갖겠는가. 이제 경비대의 급료만으로도 편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등을 떠밀어도 경비대에 한 몸 바칠 생각이었다.
“이제야 경비대원으로서 뭔가 자부심이 듭니다. 안 그래, 다들?”
“그럼. 말해서 잔소리지.”
“당연하지.”
조장들 뿐만 아니라 경비대원들 모두는 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경비대원이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멜, 그동안 영주가 없었는데 세금은 어떤 방식으로 걷었는지 알고 있나?”
카라스는 기존의 경비대를 꾸려 나가는 방법이 궁금했다. 언제까지나 아버지의 돈으로 급료를 줄 수도 없는 일이었고 경비대를 꾸려 나가자면 돈은 필요한 것이다.
헤론 영지가 가난한 영지도 아니었고 헤론 영지에서 거둬들이는 세금만으로도 경비대를 충분히 꾸려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경비대에 들어온 지 3년째라 잘 모르겠는데.”
하멜은 고개를 저었다.
십 년간 영주 자리가 공석이었으니 세금이 어떻게 거둬지고 쓰이는지 알 리가 없었다.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저희는 그저 시장통에 순찰 도는 게 다인지라… 영주님이 안 계신 이후로는 그런 일 외에는 경비대가 따로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헉스 역시 하멜과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쪽으로는 아는 바가 없었다.
“혹시 아는 사람 없나?”
“…….”
카라스는 난감한 표정으로 대원들을 둘러보았지만 서로 눈치만 볼 뿐 누구 하나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으음. 이거 난감하네. 순찰 외에도 기본적인 일들은 영주로서 해 줘야 하는데. 나 영주에서 짤리면 아버님께 쫓겨날 거야 아마.”
카라스는 당혹스러웠다. 급료도 급료지만 영주로서의 기본적인 업무들은 해야 했다. 아무리 영주로서의 야심이 없다 해도 너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자칫 다른 영주가 부임해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버지인 하노스가 얼마나 공을 들여 바라던 숙원인데 카라스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저기…….”
이때 브록 조장이 말할까 말까 머뭇거리며 카라스의 눈치를 살폈다.
“브록 조장! 말해 봐. 자네가 지금 경비대원 중에서는 가장 연장자지 아마? 십 년 전에도 근무했었나?”
카라스는 반색을 하며 브록 조장에게 말할 기회를 주었다. 브록 조장이라면 현재 경비대원중 가장 오래된 선임이었기에 뭔가 알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예. 십 년 전이라면 제가 경비대에 들어온 지 2년쯤 되던 해입니다. 당시에는 말단이라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그런 일들에 밝으신 분을 알고 있습니다.”
브록 역시 아는 것은 없었지만 그에 대해 잘 아는 인물을 떠올렸다. 그 인물이라면 카라스의 궁금해하는 부분을 해결해 줄 수 있을 만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래? 누구지?”
“당시 영주님의 총관으로 계시던 분입니다.”
“오, 그래? 그럼 많은 것을 알고 있겠군. 그래, 그를 데려올 수 있겠나?”
카라스는 다행스러웠다. 영주의 총관이라면 대부분의 살림살이는 물론 행정까지도 총괄했을테니 자신을 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당시 영주님께서 돌아가신 후 행방이 묘연합니다. 들리는 소문에는 상단에 들어갔다는 말도 있고……. 분명한 건 헤론 영지를 떠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브록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망설인 이유가 총관의 행방에 대해서는 몰랐기 때문이다. 헤론 여지 어딘가에 있다는 것 외에는 십여 년간 그에 대한 소식은 끊긴 것이다.
“찾을 길은 없고?”
“한 번 수소문해 보겠습니다. 제가 비록 말단이었지만 그분의 심부름을 종종 하곤 했으니 얼굴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분 성함이 러셀이었던 것으로 압니다.”
브록이 기억하는 것은 러셀이라는 이름뿐이었다. 브록은 스스로 말하고도 미안했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러셀 총관이라… 그럼 한 번 수소문해 보도록. 세금을 걷어야 경비대도 운영하고 영지 돌아가는 사정도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
카라스는 러셀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만으로도 일단은 만족했다. 헤론 영지를 떠난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정 안 된다면 상단의 도움이라도 빌려 알아볼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수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시장통 부근의 폭력배들 말인데 이제부터는 철저하게 단속한다. 반항하면 확실하게 응징하도록. 아무도 경비대를 우습게 보도록 해서는 안 된다.”
카라스는 마지막으로 경비대의 임무에 대해서 확실하게 짚어 주었다. 지금처럼 형식적인 순찰만 돈다거나 폭력 조직들에게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시대는 지난 것이다.
이제부터는 폭력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맞서며 경비대의 위상을 높일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경비대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판단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애꾸 파는 어떻게 할까요?”
브록 조장은 고개를 갸웃하며 뭔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애꾸 파는 왜?”
“요즘 시장통에서 애꾸 파 조직원들을 만나면 조금 이상합니다.”
“뭐가?”
“처음에는 저희들을 슬슬 피해 다니더니 어제 같은 경우는 반대로 저희들을 따라다니지 않겠습니까?”
브록 조장은 요 며칠간 시장통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것은 애꾸 파에 대한 것이었는데 지난날의 애꾸 파와 근래의 애꾸 파를 보면 완전히 묘하게 변해 버린 것이다. 브록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 왜?”
카라스도 애꾸 파가 따라다닌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혼을 내주었으니 조용히 지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경비대를 따라다니고 있으니 잠시 매가 부족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것이… 말 안 듣는 불량배들이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거참… 그리고 애꾸 파 두목이 식사라도 한 번 대접해 드리고 싶다고 영주님께 꼭 좀 전해 달랍니다.”
브록은 일그러진 얼굴로 애꾸 파들의 행태와 두목 싸이클롭의 이야기를 전했다. 말을 하면서도 과연 뭐가 뭔지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는 브록이었다.
“애꾸 파 놈들이 맛이 갔네.”
경비대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당시 크락슨이 당할 때 있었던 2조 외에는 모두가 의아해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지… 크흠.”
헉스는 애꾸 파의 돌변한 태도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아마 자신이라도 그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후후. 애꾸 파는 당분간 신경 쓰지 말고 혹시 다른 불량배들과 충돌하게 되면 애꾸 파는 놔두도록. 내가 조만간 애꾸를 만나 일을 좀 시킬 생각이니까.”
그제야 애꾸 파의 행동에 대해서 이해한 카라스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카라스는 일단 애꾸 파에 대해서는 방치하기로 했다. 싸이클롭과 해결해야 할 일이 남은 것이다. 조만간 싸이클롭의 말대로 식사라도 한 번 할 생각이었다. 물론 싸이클롭이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