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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론의 영주 1권(17화)
제7장 하늘이 내리신 우리 영주님(2)
“애꾸 파를 말입니까? 아무리 변했어도 그들 역시 다른 불량배들과 마찬가지일 텐데.”
브록 조장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지금껏 시장통의 불량배들과 충돌해 온 경비대로서는 아무래도 그들에게 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애꾸 파는 그냥 일단 냅 둬 봐. 아무래도 시장통이나 뒷거래에 대한 정보는 그놈들이 더 나을 테니까. 내가 좀 알아볼 게 있거든.”
“아… 알겠습니다.”
카라스의 명령에 브록은 내키지 않았지만 순순히 따랐다. 이제는 예전 경비대가 아니었다. 엄연히 영주가 존재했고 자신들은 영주의 명을 직접 받는 헤론의 경비대인 것이다.
“그럼 나는 아버님과 약속이 있어서 가 볼 테니 순찰조는 순찰 돌고 나머지는 체력 단련을 한다.”
카라스는 오늘의 지시 사항을 모두 전달하고는 돌아섰다.
경비대원들에게는 한 가지 숙제를 남겨 두고서.
“체, 체력 단련이요?”
“갑자기 무슨…….”
경비대원들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술렁였다. 애들도 아니고 신참도 아닌데 이 무슨 날벼락인가.
“불량배들한테도 당한다면 경비대 체면이 서겠나? 내가 괜찮은 검술 정도는 가르칠 생각이니까 당분간은 체력 단련부터 한다.”
“우리가 무슨…….”
“굳이 그런 것까지…….”
“이상!”
경비대원들이 뭐라 항의하기도 전에 카라스는 할말을 다하고는 홱 돌아서 나가 버렸다.
“차려, 충성.”
“충서어어엉!”
급하게 걸어 나가는 카라스의 뒷모습에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던 헉스는 헉하며 큰소리로 경례를 붙였다. 그 뒤를 잇는 것은 2조 대원들의 충성 메아리였다.
***
순찰조를 제외한 나머지 대원들은 카라스가 시킨대로 열심히 체력 단련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미적대며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2조 조장 헉스가 열심히 체력 단련을 시작한 것이다.
그 뒤를 이어 2조 대원들 역시 헉스 조장을 따라 열심히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머지 대원들은 처음에는 어이없는 모습으로 2조를 바라보다가는 하나둘 체력 단련에 동참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경비대원들이 땀을 흘리고 있을 때 순찰을 나갔던 3조의 대원 하나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비상입니다! 비상! 다들 출동!”
“무슨 일이야?”
난데없는 비상 소리에 대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지금 순찰을 돌다 상인들한테 정보를 입수했는데 괭이 파 놈들이 애꾸 파를 친답니다. 전면전 같은데 주변 상인들까지 큰 피해를 입게 될 거라고 아주 난리입니다.”
3조 대원은 다급하게 이야기했다. 지금 애꾸 파 주변의 상인들이 길길이 뛰며 경비대원들을 애타게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영주님께 보고해야지 않을까?”
헉스는 전원 출동해야 하는 일을 임의대로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카라스에게 먼저 보고할 생각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카라스의 뜻은 절대로 거역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헉스였다.
“일단 모두 출동하자. 영주님께서 폭력 사건은 무조건 막으라고 하셨으니까. 대원 중 하나는 영주님께 보내고 나머지는 출동하는 것이 좋겠다.”
하멜은 일단 출동부터 하기로 했다. 카라스에게 보고는 해야겠지만 상황이 다급한 만큼 일단은 전면전만큼은 막아야 했다.
조금 전의 지시한 내용으로도 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응징하라고 했으니 임의대로 행동한 것은 아닌 것이다.
“이거 영주님이 오시니까 사건이 뻥뻥 터지네.”
브록 조장은 하루하루 무사태평했던 경비대가 연일 폭력배들과 얽히는 것이 아무래도 신임영주의 신고식처럼 느껴졌다.
“뭐가 걱정이야? 급료 빵빵하게 나오겠다 뭔 일 있으면 영주님께서 가족들까지 전부 책임져 주실 텐데. 우리는 영주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면 되는 거야.”
“좋아, 가자. 이 깡패 새끼들 아주 이참에 뿌리를 뽑아 버리자.”
경비대는 기세등등해서는 일제히 시장통으로 뛰었다. 더 이상 두려울 것은 없었다. 생활 보장에 가족들 안전까지 보장되는 마당에 무엇이 두려우랴. 그간의 아니꼬움과 수모를 갚아 줄 수도 있었으니 오히려 신이 났다.
특히 헉스와 2조 대원들의 머릿속에는 티끌만큼의 두려움조차 없었다.
그들은 카라스가 어떠한 영주인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시장통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폭력배들이 불쌍하게 보일 뿐이었다. 카라스가 기침 한 번 하는 순간 시장통의 폭력배들이 훨훨 날아가리라는 것은 해가 뜨고 지는 것만큼이나 변하지 않는 진실인 것이다.
한편 키클롭스 파의 두목 싸이클롭은 이러한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느긋하게 앉아 귀를 후비적거렸다. 크락슨이 없으니 다른 조직들을 접수하러 갈 수도 없었고 그저 하루하루가 무료했다.
“두목! 괭이 파 놈들이 아주 떼거리로 몰려왔수!”
이때 부두목 위스커가 사색이 되어 뛰어들어 왔다.
위스커는 부두목이 죽은 후 그 다음으로 오래 지냈던 싸이클롭의 수하였다. 싸이클롭은 부두목 자리를 비워 둘 수 없었기에 위스커를 곧바로 부두목으로 임명하였다.
“괭이 파 놈들이? 이 잡놈들이 얼마 전에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렸냐? 그리고 네놈은 그 수염 좀 어떻게 하라고 했지? 몇가닥 길게 늘어선 게 영락없는 쥐새끼가 아니냐?”
괭이 파 놈들이 몰려왔다는 말에 싸이클롭은 버럭 화를 내며 얼굴을 구겼다. 괭이 파는 크락슨이 죽기 직전에 손을 봐 줬던 곳이었고 당시에는 모두 무릎을 꿇고는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던가.
한데 이제 와서 배신을 하다니 싸이클롭의 입장에서는 열불이 치미는 일이었다. 싸이클롭은 씩씩거리다 위스커의 수염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 수염이라면 덥수룩한 정도의 숱이 되야 기르든 멋을 내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위스커의 수염은 덥수룩하기는커녕 고양이나 쥐처럼 몇 가닥뿐이었다. 그런데도 그 수염을 길게 기르고 다녔으니 싸이클롭의 눈에는 영락없는 쥐새끼로 보이는 것이다.
“왜 남의 수염 가지고 난리요? 내가 두목 눈깔 하나라고 놀리면 좋겠수? 왜 여린 마음에 상처 주고 그러슈? 그것보다 괭이 파 놈들이 크락슨이 없다는 걸 안 모양이우.”
싸이클롭의 짜증에 위스커는 울컥했다. 언제 수염에 물이라도 한 번 주었는가. 얼마나 공을 들여 기른 수염인데 이렇게 상처를 준단 말인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눈이 하나뿐인 애꾸가 다른 사람의 외모에 대해서 가타부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위스커의 신념이었다.
위스커는 한 번 발끈하고는 다시금 본론으로 돌아왔다. 지금 수염이나 애꾸 문제로 다툴 상황이 아닌 것이다. 크락슨이 없다는 정보가 새 나갔다면 괭이 파 외에도 애꾸 파를 잡아먹으려고 드는 곳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뭬야? 이 쥐새끼 같은 놈이 싹퉁머리 없게시리. 그런데 누가 불었어? 내가 주둥이 단속하라고 했냐, 안 했냐?”
위스커가 자신의 하나뿐인 소중한 눈을 걸고 넘어가자 싸이클롭은 다시 한 번 울컥했지만 지금은 참아야 했다. 크락슨이 죽었다는 정보가 정말 새 나간 것이라면 자신들은 시장통에 붙어 있기는 애당초 글러 먹은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애들이 한둘도 아니고 워떻게 그많은 주둥이를 단속하우?”
“아나, 이 잡노므 시키들. 애들 다 모아!”
싸이클롭은 각오를 단단히 했다. 비록 크락슨은 없었지만 사실 크락슨은 시장통 불량배들 사이에서는 사기 캐릭터가 아니던가. 불량배들 간의 싸움이라면 자신도 밀리지는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다 모였수! 근데 쪽수가 비슷한 것이 둘 다 박 터지게 생겼수.”
위스커는 이미 키클롭스 파에 비상을 걸고는 시장통에 나가 있는 조직원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하지만 다 불러모아도 괭이 파를 압도하지는 못했다. 대충 비슷한 수가 모인 것이다.
“그럼 같이 죽자는 거냐? 에잉, 그 꼴통 노무 시키들.”
싸이클롭은 짜증이 절로 치밀어 올랐다.
이런 싸움에서는 무조건 쪽수였다. 크락슨 같은 사기 캐릭터가 없는 이상 혼자서 날고 뛸 수는 없었다. 거의 쪽수가 많은 쪽이 이긴다고 봤을 때 비슷한 숫자라면 누가 이기고 지든 두 조직은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 분명했다.
“지난번에 우리가 좀 심하게 했잖수. 지들도 열받겄지. 크락슨 하나 때문에 괭이 파 두목이 반병신이 됐는데. 괭이 파 부두목이 친동생 아니우? 지 형 복수하겠다고 저리 설치는지.”
위스커는 다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 형이 반병신이 되었는데 이때가 기회다 싶었을 것이다. 사실 크락슨만 없다면 괭이 파가 애꾸 파보다는 알아 주는 조직이 아니었던가. 이제 다시 상황이 역전되었으니 참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깡패 노무 시키가 형은 무슨. 가자, 나 애꾸 아직 안 죽었어!”
싸이클롭은 버럭 화를 내며 불끈했다. 자신은 조직 생활로 잔뼈가 굵었고 언젠가는 시장통을 모두 제패하려는 야망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런저런 깡패들과는 다른 것이다. 자신은 협객이며 영웅이 아니던가.
“두목, 애꾸라는 말 끔찍하게 싫어하지 않았수? 남들이 다 애꾸라고 해도 곧 죽어도 키클롭스 파라고 떠들면서. 그리고… 두목도 남들은 깡패라고 한다우.”
“커험. 아무튼 가자! 내가 본때를 보여 주마.”
한참 기분에 들떠 있는데 위스커가 찬물을 끼얹자 싸이클롭은 맥이 탁 풀렸지만 사실 틀린말은 아니기에 조금은 무안해지는 사이클롭이었다.
하지만 싸이클롭은 괭이 파에 대한 적개심을 다시금 활활 불태우며 전장의 한복판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애꾸 파와 괭이 파가 서로를 마주보며 대치했다. 스산한 바람이 싸이클롭의 안대를 어루만지며 비장함을 더했다.
“어이, 외눈깔! 애꾸 파 똥꼬 닦아 주던 놈이 뒈졌다며?”
싸이클롭이 앞에 나서자 괭이 파의 부두목 밥캣은 싸이클롭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크락슨이 없는 지금 밥캣에게 싸이클롭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런 괭이 새끼가 어디서 감히 주둥이를 놀려! 확 찢어 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무릎을 꿇고는 울며불며 용서를 구걸하던 밥캣이 대놓고 자신을 멸시하자 싸이클롭의 얼굴 표정이 사나워지며 당장에라도 달려갈 기세였다.
“그 용병 놈만 아니었으면 외눈깔 네놈이 감히 우리 타이거 파 이름이나 입에 올릴 수 있을 것 같냐?”
밥캣은 같잖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크락슨이 없을 당시에는 타이거 파가 키클롭스 파에 비해 세력이나 영향력 면에서 더 컸기 때문이다.
“야 이 정신 나간 새끼야! 내가 밟아 죽인 괭이만 열 마리가 넘는다! 밤마다 쓰레기통이나 뒤지는 괭이 놈이 주둥이만 살았구나!”
“뭐야? 눈깔 하나밖에 없는 놈들이 뒈지려고 발악을 하는구나.”
싸이클롭과 밥캣은 인신공격을 비롯해 온갖 욕설로 상대를 깔아뭉개며 정신없는 공격을 퍼부어댔다. 물론 입으로만.
서로 욕을 하면 할수록 왠지 누워서 침을 뱉는 것처럼 돌아오는 것은 배가되었다.
“야 이 정신 나간 놈아! 입은 삐뚫어졌어도 말은 바로해라! 여기서 눈깔 하나인 놈이 우리 두목 외에 또 있느냐? 봐라, 우리는 눈깔이 두 개씩이다!”
밥캣이 애꾸 파를 싸잡아서 외눈이라고 조롱하자 옆에 있던 부두목 위스커가 억울했는지 발끈하며 밥캣에게 고함을 쳤다.
싸이클롭이 애꾸라서 애꾸 파가 된 것이지 자신을 비롯해 수하들은 분명 두 눈 멀쩡한 정상이 아닌가.
“너, 너 이……!”
서로를 헐뜯으며 맹공을 퍼붓는데 부두목이라는 놈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는 못할망정 밥캣과 한통속이 되어 자신을 물어뜯자 싸이클롭은 울컥했다.
“두목. 그게 아니고 말은 바로 하랬다고…….”
따아아악!
“아악!”
번개 같은 손바닥이 뒤통수에 작렬하자 위스커는 머리를 부여잡고는 고꾸라졌다.
“아무튼 너 이따 보자. 모두 괭이 새끼 잡으러 돌겨어억!”
“외눈박이 놈들을 시장통에서 몰아내자! 쳐라!”
욕설전이 막바지에 치닫자 싸이클롭과 밥캣은 수하들에게 일제히 명을 내렸다. 이로써 키클롭스 파와 타이거 파의 혈전이 그 막을 올렸다.
퍼퍼퍼퍼퍽!
퍼어억!
퍽퍽퍽퍽!
키클롭스 파와 타이거 파의 조직원들은 정신없이 주먹을 휘두르고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래도 몽둥이 외에는 이렇다 할 흉기를 지닌 이들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나름대로의 룰이 있는 모양이었다.
대부분은 주먹과 발길질을 해 가며 정신없이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타이거 파로 승기가 기울고 있었다. 일단 쪽수에서 밀리고 시작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두, 두목! 괭이 놈들 무식하게 나오는데 어렵겠수!”
위스커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바로 파악했다.
쪽수에서도 밀렸지만 괭이 파 조직원들 하나하나가 무식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젠장! 저놈들이 이렇게 셌었나?”
싸이클롭도 괭이 파의 무데뽀 같은 힘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괭이 파에 비한다면 자신들의 수하들은 순한 양처럼 보였다.
“원래 괭이 파 놈들이 이쪽에서도 한가락하는 걸로 알려지지 않았수? 크락슨 때문에 눌렀던 거지.”
“이놈아! 니가 가서 좀 어떻게 해 봐!”
싸이클롭은 위스커의 등을 떠밀었다.
부두목쯤 되었으면 이런 위기의 순간에 뭔가 한 건 해야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