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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론의 영주 1권(18화)
제7장 하늘이 내리신 우리 영주님(3)
“미쳤수? 저 괭이 놈이 얼마나 무식한 놈인데.”
위스커는 질겁을 하며 싸이클롭의 손을 뿌리쳤다.
뻔히 질 싸움에 미쳤다고 앞장서겠는가. 위스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꼼짝도 않했다.
“젠장! 우리 애들 다 어디 갔어?”
싸이클롭은 짜증이 치밀었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원래 쪽수만큼은 키클롭스 파가 많았는데 오늘은 태반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괭이 파 놈들 온다는 소리 듣고 반은 날랐수. 크락슨 그놈이 없으니 다들 눈치 보기 바쁜 것 같수.”
그렇다. 대부분 이미 날른 것이다. 크락슨 없이 괭이 파와의 전면전은 뻔한 결과였기에 애꾸 파의 조직원들은 멀리서 결과를 지켜보며 어느 쪽에 줄을 서야 하는지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이놈아! 우리 키클롭스 파의 두목은 나 싸이클롭이다!”
싸이클롭은 또다시 발끈했다.
조직원이라면 두목을 믿고 따라야지 고작 용병 하나 때문에 이렇게 흔들려서야 되겠는가. 싸이클롭은 자존심이 상했다.
“그럼 두목이 뭔가 카리스마를 보이던가, 어떻게 좀 해 보슈. 두목이 뭔가를 보여 줘야 아랫것들이 목숨 걸고 달려들 것 아니우?”
“젠장! 저 괭이 새끼들!”
위스커의 부추김에 싸이클롭도 앞장서서 달려 나가 괭이 파들을 끝장내고 싶었지만 주먹만 움켜쥘 뿐 달려 나갈 수는 없었다. 싸이클롭도 승산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 되겠수! 우리 애들 다 아작나겠수, 튑시다!”
위스커는 더 이상 안 되겠는지 싸이클롭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질 싸움이라면 수하들을 조금이라도 건져야 했다. 더 시간이 흐른다면 수하들 모두 초주검이 되서 애꾸 파의 미래는 아예 사라지는 것이 된다.
“이놈아! 이게 어떻게 해서 얻는 곳인데…….”
싸이클롭은 망설였다. 현실적으로는 도망가야 했지만 너무 아쉬웠다. 처음 애꾸 파를 만들어 이만큼의 세력을 얻기까지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았던가. 싸이클롭은 과거의 힘겨웠던 시절을 떠올리자 눈물까지 글썽였다.
“애들 터지는 거 안 보이우? 늦으면 괭이한테 잡혀 튀지도 못하우! 빨리 튑시다!”
위스커는 감상에 빠져 글썽거리는 싸이클롭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생각 같아서는 한 대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었다.
아무튼 이제 시간이 없었다. 자칫 수하들은 물론 자신들까지 잡히게 생긴 것이다.
“으… 내 평생을 걸려 올라온 자리인데…….”
마지막까지 어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싸이클롭은 갈팔질팡하고 있었다.
이때 낯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삐이이이익!
“경비대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싸움을 중단하라!”
“반항하면 가차없이 처벌하겠다! 반복한다! 무기를 버리고 싸움을 중단하라!”
이제야 도착한 경비대는 키클롭스 파와 타이거 파를 향해 호각을 불며 경고를 했다.
대기조까지 모두 출동한 경비대의 분위기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뭐야, 저놈들은? 언제부터 경비대가 이런 싸움에 끼어들었어?”
“그러게 말입니다. 영주가 새로 왔다더니 간이 부은 모양입니다.”
“계속해. 저놈들 가까이 오지도 못할 테니까.”
타이거 파의 부두목 밥캣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경비대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싸움이 끝날 때쯤 와서 사정사정하던 경비대가 아니었던가. 가끔 체면을 살려 주며 양보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대놓고 자신들의 행사를 방해한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마치 때려잡을 듯한 분위기와 경고는 뭐란 말인가. 밥캣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맛이 가도 단단히 갔다는 생각이었다. 타이거 파의 조직원들 역시 밥캣과 마찬가지로 경비대에는 일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두, 두목! 경비대요! 이참에 어서 튑시다!”
경비대의 등장에 위스커는 반색했다. 위스커 역시 경비대에 대한 생각은 타이거 파와 다르지 않았지만 경비대의 틈 사이로 도망칠 기회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놈아! 경비대 말 못 들었냐?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고 하지 않느냐?”
하지만 싸이클롭은 위스커와 생각이 달랐다.
경비대가 항복하라고 했으면 항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헤론 영지의 법을 집행하는 경비대에 대한 예의인 것이다.
“두목 미쳤수? 요즘 자꾸 왜 그러우? 경비대가 항복하랬다고 무기 버리고 그냥 서 있을 거유?”
하지만 위스커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근래에 싸이클롭의 행동이 이상한 것은 알았지만 설마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이럴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놈아! 니놈이 몰라서 그런다. 나는… 그럴 수밖에 없다.”
위스커의 기가 막힌 표정을 바라보는 싸이클롭의 복장은 터질 지경이었다. 자신이라고 이러고 싶겠는가. 자신은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 않은가.
“젠장! 그럼 애들이라도 튀라고 하슈! 우리 애들 다 맞아 죽겠수!”
“나는… 나는…….”
위스커의 마지막 제안까지도 싸이클롭은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과연 경비대의 경고를 무시하고 튈 것인가 아니면 순순히 경비대의 말대로 따를 것인지를.
“경비대 모두 돌격! 반항하는 자는 사정을 두지 마라!”
“와아아아아!”
싸이클롭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경비대에 돌격 명령이 떨어졌다. 경비대는 힘찬 함성을 지르며 한 손에는 곤봉을 들고 일제히 두 조직을 향해 달려들었다.
“히이익!”
“젠장!”
싸이클롭은 기겁을 하며 머리를 감싸쥐고는 웅크렸다. 위스커는 이제 도망칠 모든 기회가 사라지자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다다다다다.
경비대는 사나운 얼굴로 곤봉을 휘두르며 달려오더니 그대로 싸이클롭과 위스커를 지나쳐 갔다.
“어라? 뭐, 뭐지?”
“두, 두목? 이게 뭐유?”
곤봉에 맞을까 잔뜩 웅크려 있던 싸이클롭은 그저 지나쳐 가는 경비대의 모습에 멍해졌다. 위스커 역시 이 황당한 상황에 멀뚱멀뚱 싸이클롭만 바라보았다.
경비대는 그렇게 계속 달려 나가 키클롭스 파마저 지나쳐 갔다.
키클롭스 파는 싸우던 것을 멈추고는 마찬가지로 멀뚱하게 경비대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경비대가 멈춘 곳은 타이거 파의 조직원들 앞에서였다.
퍼퍼퍼퍽!
“크어억!”
“으으윽!”
타이거 파와 마주하자 경비대의 곤봉질은 시작되었다. 경비대는 일체의 사정도 두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곤봉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타이거 파는 난데없는 상황에 이렇다 할 반항도 제대로 못해 보고는 실컷 두들겨 맞았다.
부우우우웅!
퍼어어어억!
경비대의 곤봉은 허공을 가르며 춤을 추었다. 분위기가 무서운 것일까, 조금은 두려움을 가졌던 대원들도 곤봉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자신감이 생겼다. 경비대원들의 사기가 높아질수록 나가떨어지는 타이거 파의 조직원들은 늘어났다.
“뭐, 뭐냐? 왜 우리 애들만 때리느냐?”
타이거 파의 밥캣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경비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키클롭스 파는 그대로 두고 타이거 파의 조직원들만 때려잡고 있었으니 얼마나 황당한 노릇인가.
“괭이 파 놈들만 잡는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이때 선임 조장 하멜의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키클롭스 파에게는 안도를, 타이거 파에게는 울화가 치밀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런 씨팔! 니들 뭐야?”
밥캣은 하멜의 외침에 울컥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경비대라 해도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
부우우웅!
퍼어어억!
경비대와 타이거 파의 육탄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미 분위기를 탄 경비대에 타이거 파는 계속 밀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쥐 잡듯 타이거 파의 조직원들을 때려잡은 것이 한몫한 것이다.
“크으윽! 이, 이 새끼들이 정말…….”
어찌 한두 명은 상대하겠지만 사방을 에워싸고 휘둘러대는 곤봉질에는 밥캣도 당해낼 수가 없었다. 밥캣의 온몸은 곤봉 자국이 선명이 날 정도로 엄청나게 두들겨 맞은 것이다.
“두목! 이게 대체 어찌 된 씨츄에이션이우?”
이와 같은 광경을 멍하니 구경하던 위스커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인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라도 한 고비 넘겼으니 위스커의 얼굴에는 여유가 흘러나왔다.
“키, 키클롭스 파는 들어라! 모두 무기를 들고 싸워라! 경비대를 보호하라! 절대로… 경비대에 상처가 나선 안 된다! 싸워라! 안 그럼 우리가 죽는다! 어서!”
하지만 싸이클롭에게서는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 싸이클롭은 무척이나 긴장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동동 굴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결국 너무도 황당한 말이 터져 나왔다. 싸이클롭은 악을 쓰며 조직원들에게 삿대질을 했다. 싸이클롭의 얼굴은 너무나도 절박해 보였다. 마치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것처럼.
싸이클롭은 키클롭스 파의 조직원들에게 경비대를 보호하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두목?”
이제 위험한 고비도 넘기고 괭이 파의 문제도 해결되었는데 오히려 더욱 불안해하는 모습으로 웃기지도 않은 명령을 내리는 싸이클롭을 황당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놈아! 어서 싸워! 안 그럼 경을 친단 말이다! 우와아아아!”
싸이클롭은 더 이상 안 되겠는지 타이거 파를 향해 무작정 달려 나가며 악을 썼다. 조직원들이 그렇게 얻어터져도 꼼짝 안 하던 것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이런 젠장! 으라라라라!”
싸이클롭이 달려 나가자 위스커도 하는 수 없이 싸이클롭의 뒤를 따랐다.
제8장 하노스의 전폭적인 지원(1)
경비대가 기념에 남을 만한 활약을 펼치는 사이 카라스는 아는지 모르는지 르노와르 상단 본부를 향하고 있었다.
모처럼 상단에서 식사를 하자는 아버지 하노스의 부탁(?) 때문이었다.
아마도 르노와르 상단 식구들 전체가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함성 세 번은 물론 일장 연설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아마 그럴 가능성이 백 프로였다.
카라스는 잔뜩 부담을 앉고 르노와르 상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너무도 기뻐하는 아버지 하노스의 바람인 만큼 아무리 무안하고 멋쩍어도 자신은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는 웬만한 일에는 얼굴에 철판을 두를 때도 되었건만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카라스였다.
“도련니이이임!”
“어? 이 목소리는?”
한창 생각에 잠겨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카라스는 절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며시 고개를 돌려 보았다.
“도련니이이임!”
“헉! 리, 리아!”
다시 한 번 해맑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설마했는데 역시나 리아의 목소리였다. 리아는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었다.
“흥! 도련님 미워욧!”
리아는 토라진 얼굴로 고개를 홱 돌렸다.
“응? 왜? 내가 또 뭘 잘못했어?”
또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 카라스는 애써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특별한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제가 아까부터 그렇게 불렀는데 들은 척도 안 하시고. 너무하세요. 흥.흥.흥이에욧.”
리아는 얼굴을 바짝 가까이 대고는 쉴 새 없이 카라스를 공격하고는 콧방귀를 날렸다.
“아, 미안!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어서 못 들었나 보네.”
리아가 이렇게 쌀쌀맞게 구는 것이 알고 보니 별것도 아닌 이유라는 걸 알자 카라스는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못 이기는 척 리아에게 사과를 해야 했다.
“지금 상단 본부 가시는 길이죠?”
“응. 리아는 웬일이야?”
“내가 웬일로 왔겠어욧. 도련님 데리러 왔지.”
리아는 신이 나서 카라스의 팔짱을 냉큼 꼈다. 누가 보면 체포라도 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나를?”
“집으로 모셔 오래요. 상단 축하 파티는 나중으로 미루시겠다고 하셨어요.”
“상단 축하 파티? 그냥 식사만 하시자고 하셨는데…….”
카라스는 역시나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다는 생각에 절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지난번 경비대와의 파티에서도 얼마나 낯 뜨거운 장면들을 연출했던가.
아버지인 하노스의 선창에 이어 집안의 식솔들은 물론 경비대마저 한목소리로 떠나갈 듯 카라스 만세를 외치지 않았던가. 모두들 목이 다 쉴 정도가 되어서야 끝이 난 만세 합창 사건은 카라스로서는 정말이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일이었다.
하지만 입이 귀에까지 걸려 있는 아버지 하노스와 시종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방방 뛰며 좋아하던 리아 때문에 그저 딱 죽었다 생각하고 시키는 대로 모두 한 카라스였다.
“어떻게 도련님은 저보다 나리에 대해서 모르세욧! 아직 상단에서는 파티를 안 하셨으니 당연히 상단 차원에서 거하게 파티를 해야지욧. 상단 파티가 끝나면 헤론 영지 차원에서 거국적으로 아마 축제를 벌이실 거예요.”
리아는 서운한 표정으로 발끈했다. 아버지 하노스가 얼마나 위해 주는지 아직까지 모르는 듯한 카라스의 모습에 토라진 듯했다. 무엇보다 하노스의 생각과 리아의 생각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 문제였다. 리아는 카라스의 영주 취임을 기념하는 헤론 영지 전체의 축제가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아. 그, 그렇구나.”
카라스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매번 느끼지만 아버지 하노스와 리아의 코드는 너무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빨리 집으로 가세요. 손님도 와 계신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