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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기사들 1권(20화)
Chapter 8.(2)
“도대체 놈들은 뭘 하고 있는 거냐!”
베스크 백작은 거의 울부짖다시피 하며 집무실 책상을 두드렸다.
주시자의 눈에 의뢰를 신청한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갔다. 그런데도 티르 아벤트 그 괴물 같은 놈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평상시의 베스크 백작이었다면 좀 더 여유를 두고 기다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티르 아벤트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공포는 나날이 백작의 목을 옥죄었고, 이제는 한시라도 술이 없으면 견딜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암살, 티르 아벤트의 암살이 성공해야만 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좋든 싫든 전투가 시작될 터이니 기회는 좀 더 많을 터였다.
그래, 그러니 조금만 더 참으면 되는 일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주시자의 눈은 세계 최고의 암살 조직이라 할 수 있었으니까.
“술! 술을 좀 더 가져와라!”
벼락같은 외침이 터지자마자 집무실 문이 열리며 하인 하나가 술병을 들고 들어섰다. 그렇지 않아도 제정신이 아니던 베스크 백작은 평소와 달리 남자 하인이 들어오자 괜한 억지를 부렸다.
“시녀들은 죄 어디가고 네놈이 술을 가져오냔 말이냐! 전부 요절을 내기 전에 뛰어오라 전해!”
흐리멍텅한 얼굴부터 해서 완전히 술에 찌든 사람 그 자체였지만 독기가 어렸기 때문인지 백작의 두 눈만은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하인이 아니라 백작과 관계없는 보통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흠칫 놀랄 만한 기세였지만, 하인은 별다른 반응 없이 잠자코 백작의 빈 잔을 채웠다.
“이 자식! 지금 날 무시하는 거냐!”
화가 날대로 난 백작은 책상 위에 있던 작은 나무함을 하인에게 집어 던졌고, 하인은 자연스럽게 나무함을 낚아챘다. 백작이 순간 놀란 표정을 짓던 말든 다 따른 술잔을 내밀며 말했다.
“마셔, 독 넣었으니까.”
백작은 눈을 깜박였다. 취기가 단번에 가시는 것을 느끼며 하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검은 머리칼과 녹색 눈.
그날 홀멘에서 보았던 그 얼굴.
“티, 티……!”
티르가 재빨리 손을 뻗어 베스크 백작의 입을 틀어막았다.
압도적인 힘 앞에 옴짝달싹 못하는 백작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공포로 물든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을 암살하려 했으면서, 자기가 암살당할 각오는 하지 않았나?”
베스크 백작은 격하게 몸을 떨었다. 지난 한 달간 온몸을 옥죄던 공포가 마침내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베스크 백작, 이제 내가 어떻게 할까.”
은근한 목소리에 베스크 백작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티르는 계속해서 속삭였다.
“1번은 이대로 목을 벤 다음에 그 수급을 앞세워 네 수하들에게 항복을 받는다. 2번은 그냥 널 성벽 위까지 끌고 간 다음에 거기서 목을 쳐서 죽인다. 3번은 목을 치는 대신 성벽 위에서 떨어트려 죽인다. 4번은 그냥 네가 여기서 얌전히 독이 든 술을 마시고 죽는다. 어떤 게 좋을 것 같아?”
선택지는 네 가지나 되었지만 네 가지 모두 베스크 백작의 죽음으로 귀결되었다. 백작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참이나 그렇게 울더니 떨리는 손을 술잔으로 뻗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티르를 보며 말했다.
“하, 한 가지만 약속해 다오.”
“뭐지?”
“내, 내 아내와 자식들만은 살려 다오. 노, 노예로 팔지도 말고…….”
“…좋아, 그 정도는 들어주지.”
티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백작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마음을 굳힌 듯 거침없이 술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렇게 몇 초나 지났을까. 베스크 백작은 눈을 깜박였다.
조금은 멍한 얼굴로 다시금 티르를 바라보았다. 티르는 그런 백작의 시선에 입 끝을 일그러트리더니 품에서 묵직한 가죽 주머니 하나를 꺼내 백작 앞에 내려놓았다.
“난 널 죽이고자 했다. 상대가 행한 대로 돌려주는 것이 나의 신조니까. 그런데 바이스 발렌시아가 내게 울며불며 매달리더군. 이제부터 나를 모실 테니 제발 백작의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말이야.”
“바, 바이스가?”
“그래, 바이스 발렌시아가.”
티르는 턱짓으로 가죽 주머니를 가리켰다.
“바이스가 그간 모아 둔 돈들이 들어 있다. 이걸 가지고 어디 먼 데 가서 조용히 살라더군.”
백작은 주머니를 열어 볼 생각도 못하고 그저 멍한 얼굴로 바라만 보았다. 티르는 그런 백작의 멱살을 움켜쥐며 말했다.
“네가 이번에 살아난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다. 내가 한번 정한 일을 바꾸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니까. 그러니 바이스의 말대로 조용히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네가 어디에 있든 간에 내가 널 찾아갈 테니까.”
백작은 숨넘어가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티르는 백작의 멱살을 집어 던지듯이 놓았다.
“지금 당장 자식들을 데리고 이 성을 나가라. 내 살의가 언제 바이스의 가치를 뛰어넘을지 몰라.”
백작은 부들부들 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죽 주머니를 한 손에 쥔 채 집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2시간 후, 주인 없는 성을 향한 아벤트 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베스크 백작의 본성이 함락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격렬히 저항하던 백작군이었지만 백작이 자신들을 두고 홀로 사라진 것을 알고는 이내 저항 의지를 버렸기 때문이었다.
처자식만을 데리고 성 밖으로 나온 베스크 백작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함락되는 본성을 바라보았다.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 이게 과연 살아남은 것일까.
가슴에 품었던 야심도, 앞으로 살아갈 의욕도 모두 잃은 백작은 아무 말 없이 말을 몰았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더 이상 싸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산중턱에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아, 아버지?”
아들 녀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길 너머를 가리켰다. 회색 투구를 쓴 남자 하나가 말 위에 탄 채로 길 한가운데 버티고 있었다. 마른침을 삼킨 백작은 조금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누구시오?”
물음에 남자는 답하는 대신 말의 배를 찼다. 갑자기 말을 달림과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꺄아아아아!”
베스크 백작의 부인과 딸이 비명을 질렀지만 소용없었다. 남자는 그대로 검을 휘둘러 백작의 목을 베었다.
멈추지 않고 백작의 부인과 아들딸마저 모조리 베어 죽였다. 일가족이 몰살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수초 남짓에 불과했다.
검을 크게 휘둘러 피를 털어 낸 남자는 말에서 내리더니 백작 일가의 시신들을 산 아래로 던져 버렸다. 주인 잃은 말들은 마구를 벗겨낸 뒤 길을 따라 달리게 했다.
일련의 과정이 모두 끝나자 남자는 투구를 벗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 남자는, 실버 나이츠 단장 트라이곤 카노에는 짧게 묵념한 뒤 다시 말 위에 올랐다. 공주에게 일의 완수를 전하기 위해 말을 달렸다.
Chapter 9.(1)
어째서 그렇게까지 싸우느냐고, 강아지를 지켜보는 고양이가 물었을 때 인간을 지키는 강아지는 상처투성이 얼굴로 환히 웃으며 답했다.
“아이들의, 사람들의 웃음을 지키고 싶으니까.”
***
백작 령을 접수한 티르는 빠르게 행동했다. 백작에게 이미 복속해 있던 다섯 개 영지의 영주들에게서 항복 선언을 받아 내었고, 노포크가 있는 록튼을 비롯한 중소 영지 네 개와 동맹 체제를 구축하였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형식적으로나마 바로크 지방은 전부 티르의 세력권에 속하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되는데 걸린 시간은 모두 합쳐 3주가량, 레오나 공주가 의외의 역량을 보여 준 덕에 이룰 수 있었던 쾌거였다.
3급 용갑주 두 대는 각각 슈나이더와 에이다에게 전속 배정이 되었다. 에이다의 경우 기량은 문제없다고 쳐도 체력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티르가 꽤나 고심하긴 했지만, 에이다를 대신할 만한 인재는 레오나 공주 휘하의 실버 나이츠밖에 없었기에 별 다른 방도가 없었다.
약속에 따라 티르 휘하에 합류한 바이스 발렌시아는 2급 용갑주 적색의 힐데가르트를 그대로 이어받기로 하였다.
애당초 바이스가 주인이기도 했고, 힐데가르트의 조종 시스템 자체가 꽤나 세부적인 구석까지 바이스에게 조정이 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을 태우려면 아예 시스템을 갈아엎는 수밖에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바로크 지방을 완전히 차지하기도 했고, 이제 티르 자신에 대한 소문도 꽤나 퍼졌을 테니 왕자 쪽에서 무엇이 되었든 접촉이 있을 터였다.
겨울이기도 하고, 아직 존 레지세이어가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있으니 극단적인 사태로 치닫거나 하지는 않을 테지만 이래저래 터지기 전의 화약고 같은 상황인 것은 변함없었다.
하지만 일단 급한 불은 모두 껐다고 할 수 있었다. 바로크 지방의 전 영주가 모일 연회에 관한 서류에 서명을 마친 티르는 한동안은 다른 일에 몰두하기로 결심했다.
“안녕.”
지하 감옥 안, 입에 재갈을 문 미녀를 마주한 채 티르는 입술로만 웃었다.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듯한 티르의 녹색 눈동자에, 검은 머리칼의 미녀, 워치 로벤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리기라도 할 것처럼 검은 눈망울 한가득 물기를 머금었다.
“이번엔 기절 같은 거 안 하네?”
요 3주 동안 티르는 워치 로벤을 3번 찾아왔고, 그때마다 워치 로벤은 금방금방 기절해 버리곤 했었다.
그래도 암살 조직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까지 올랐던 여자이니 본래부터 심약했을 것 같지는 않았고, 아무래도 연달아 이어진 사태로 인해 티르에 대한 공포가 뼛속 깊이 박힌 모양이었다.
티르는 율리아나 에이다에게 그러듯 워치 로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완벽하게 죽을 자신 없으면 엉뚱하게 자살 같은 거 할 생각하지 마. 어떻게든 되살려서 죽음보다 끔찍한 꼴을 당하게 해 줄 테니까.”
목소리는 더없이 상냥했지만 내용이 무시무시했다. 오들오들 떨던 워치 로벤은 어떻게든 티르의 시선을 피하고자 고개를 돌렸지만 티르가 그것을 용납지 않았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으로 목뒤를 붙잡더니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 했다. 거의 숨결이 닿을 거리에서 그 눈을 마주한 채 장난스럽게 말했다.
“어금니에 끼어 둔 독약보고 놀라긴 했다. 그런 거 껴두고 평소에 밥이 넘어가? 실수로 씹기라도 하면 끝인데 말이야.”
워치 로벤의 왼쪽 어금니에는 스위치형 캡슐이 부착되어 있었다. 강하게 깨물면 캡슐 안에 있는 독이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구조였는데, 아마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자살용으로 쓰기 위한 물건 같았다.
혀 깨무는 걸 막겠다고 재갈을 물렸으니 워치 로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벌벌벌 떨었다.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은 모습에 티르는 결국 뒷머리를 긁적였다. 더 해야 하냐는 얼굴로 워치 로벤의 좀 더 뒤, 팔짱을 끼고 선 전마 갈천을 바라보았다.
“이쯤하면 된 거 같다.”
티르가 무슨 세디스트라서 워치 로벤을 겁주고 괴롭힌 것이 아니었다. 지난 3번의 방문에 걸쳐 티르는 전마 갈천을 비롯한 영들의 도움을 받아 워치 로벤의 심령을 제압했다. 아니, 제압했다기보다는 티르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공포를 심어 두었다고 해야 할까.
청동의 시대에 악명 높은 해결사인 동시에 암살자였던 갈천은 끌끌하고 혀를 찼다.
“더 이상 겁줄 필요도 없어. 이미 완전히 포기했으니까. 재갈 풀어 주면 이제 있는 거 없는 거 다 불거다. 요새 암살자들은 어째 나약하구만.”
갈천의 노인네다운 뒷말은 흘려들으며 티르는 가만히 손을 뻗었다. 티르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워치 로벤의 재갈을 풀어 주었다.
하도 오랫동안 재갈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워치 로벤은 한참을 켁켁거렸다. 어느 정도 숨이 가라앉자 티르는 지체하지 않고 물었다.
“이름이 뭐지?”
“…워치… 로벤.”
워치 로벤이 띄엄띄엄 답하긴 했지만 여전히 시선은 땅바닥을 향한 채였다. 티르와 눈을 마주치는 것이 어지간히 무서운 모양이었다.
“좋아, 워치. 나이는?”
“아, 아마도 스물 둘…….”
“아마도?”
티르가 되묻자 워치 로벤은 두 손까지 내저으며 얼른 말했다.
“저, 정확히는 저도 몰라요!”
대답이 아니라 거의 비명으로 들릴 지경이었다. 어지간한 티르도 이런 상황이 되자 조금은 입맛이 썼다. 차라리 사내자식이면 모르겠는데 척 봐도 가련해 보이는 미녀가 이러고 있으니 원.
“이거 왠지 내가 엄청 나쁜 놈 같네.”
“너 나쁜 놈 맞아.”
말하기가 무섭게 베아트리체가 귓가에 속삭였다. 아예 상대를 안 하는 것이 최선임을 잘 아는 티르는 애써 무시하며 다시 워치 로벤에게 집중했다.
“조직에 대해 말해 봐.”
“주시자의 눈은…….”
전마 갈천의 말마따나 워치 로벤은 묻지 않은 것까지 술술 불기 시작했다.
주시자의 눈의 본거지, 활동 영역, 현재 인원 수, 훈련 방법, 이제까지의 주요 임무, 산발적으로 튀어나오는 정보들을 가만히 듣던 티르는 조직의 수령 이야기가 나오자 눈썹을 찌푸렸다.
“클락 윈체스터? 호른의 윈체스터 후작 말하는 거 맞나?”
워치 로벤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호른의 윈체스터 후작.
호른 왕가의 방계로 지금도 왕궁에서 힘 꽤나 쓰는 실력자였다. 티르도 호른에서 용병왕 행세를 할 때 한번인가 본 적이 있었다.
영지 내에 무역항도 있어서 돈을 벌만큼 버는 작자가 암살 조직의 수령이라니. 단순히 귀족의 도락으로 넘길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이제부턴 티르 자신의 적.
티르에게 있어 그는 윈체스터 후작이 아니라 주시자의 눈의 수령인 클락에 불과했다.
워치 로벤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자 티르는 팔짱을 꼈다. 어떻게든 더 할 이야기를 쥐어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워치 로벤을 보며 말했다.
“그래, 이제부터 어쩔 셈이지?”
“…네?”
워치 로벤이 멍한 얼굴로 티르를 마주하였다. 생사여탈권은 한 손에 거머쥔 작자가 포로로 잡힌 암살자에게, 그것도 이제 정보란 정보는 다 불어 버린 암살자한테 앞으로 어쩔 거냐니. 거의 본능 수준에서 황당한 감정이 샘솟을 수밖에 없었다.
티르는 별말 없이 아까부터 튀어나와 있는 영들을 돌아보았다. 제일 먼저 검마 백야흔이 말했다.
“심령 제압이라면 문제없어. 그녀가 배신하는 일은 없을 거다.”
“저 정도면 심령 제압도 필요 없겠다. 너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걸 뭘.”
“음음, 훌륭하다 티르. 너도 이제 어엿한 나쁜 놈이다.”
어째 마지막에 이상한 말이 끼어 있긴 했지만 베아트리체까지 저렇게 말할 정도면 확실하다 할 수 있었다. 티르는 한차례 심호흡을 한 뒤 워치 로벤에게 말했다.
“워치 로벤, 오늘부터 넌 내 밑에서 일한다.”
“…예?”
짧은 되물음이었지만 그 눈에는 온갖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어째서, 왜, 싫어, 무서워.
하지만 티르도 워치 로벤이 필요했다. 앞으로 주시자의 눈과 싸울 걸 생각하면 티르 자신 외에도 암살 기능에 대해 잘 아는 자가 필요했다.
더욱이 앞으로 제2, 제3왕자와의 싸움에서도 워치 로벤은 이래저래 요긴하게 쓰일 데가 많을 터였다.
티르는 다시 한 번 손을 뻗어 워치 로벤의 머리를 붙잡았다. 바로 코앞으로 얼굴을 가져간 뒤 그 머릿속에 새기겠다는 듯 강건한 어조로 말했다.
“네 몸과 마음, 목숨에 영혼까지 모두 다 내 것이다. 그 사실을 잊지 말도록.”
머리가 붙잡힌 채로 워치 로벤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티르는 그런 워치 로벤을 놓아준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좋아, 함께 나가도록하지. 정식으로 인사하마. 난 티르 아벤트다.”
“…워치 로벤입니다.”
워치 로벤은 떨리는 손으로 티르의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