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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공자 1권(5화)
2장 신투(神偸) 장일봉(1)


뀨에엑―! 뀨에엑―!
흔히 돼지 울음소리를 귀가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라고 표현한다.
누가 처음 만든 말인지는 몰라도 지당한 말이다.
돼지의 울음소리를 옆에서 듣고 있노라면 시끄럽다 못해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뱃심이 두둑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만큼 처절하게 우는 건지.
목장지기 장씨는 두툼한 대나무 막대기를 들고 돼지 우리를 땅! 소리가 나게 때렸다.
“조용히 안 해! 귓구멍이 찢어지겠다!”
뀨에엑―! 뀨에에엑―!
“이게, 더 시끄럽게 우네? 한 번 해보자, 이것이여?”
땅! 땅! 땅!
대나무 막대기를 미친 듯이 휘두르자 그제야 돼지가 조용해졌다.
아니, 조용해진 건 그저 서막에 불과했다.
퍽!
장씨가 기대고 있던 대나무 울타리를 뚫고 이내 새카맣고 뾰족한 무언가가 위협적으로 솟구친 것이다.
“으헉! 이 돼지가 미쳤나?!”
장씨는 기겁했다.
그의 동작이 조금만 더 느렸더라면 엉덩이에 구멍이 하나 더 뚫렸을 것이다.
“너, 인마! 대길(大吉)이! 너무한 거 아니냐! 같이 산 게 몇 년인데 누구 엉덩이를 뚫어 놓으려고…….”
퍽!!
“으헉! 인마!!”
퍽! 퍽! 퍽!
성질을 부리듯이 솟구친 뿔은 주변의 대나무 울타리를 세 번이나 더 뚫어 놓은 뒤에야 멈췄다.
장씨는 잔뜩 긴장한 채 구멍이 뻥뻥 뚫린 대나무 울타리를 응시하다가 조심스레 다가갔다.
울타리 안에는 새카맣고 커다란 돼지 한 마리가 흥분해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것만이라면 그저 평범한 돼지 우리의 모습이었을 텐데, 그 흑돼지의 머리에는 소죽(小竹)만 한 두께에 손바닥 한 뼘 반만 한 길이의 새카만 뿔이 돋아나 있었다.
누군가가 봤다면 기함을 토했을 것이다.
뿔 달린 돼지라니.
아무리 대륙은 넓고 세상엔 온갖 일이 다 벌어진다지만, 쉬이 볼 수 없는 기사(奇事)다.
장씨는 달래듯이 물었다.
“인마, 도대체 왜 그래? 뭔 일이 있었어?”
뀨에에엑―! 뀨에에엑―!
“너 열세 살이라며? 세가의 도련님이랑 같은 나이라던데…… 참 오래도 산다. 보통 돼지들은 몇 년 안 키우고 잡아먹어. 넌 되게 운 좋은 거야, 인마.”
뀨엑!!
퍽!
다시 한 번 뿔이 튀어나왔다.
“으악! 알았어! 인마! 내가 잘못 말했다! 잘못!”
퍽! 퍽! 퍽!
“돼지님은 잡아먹는 게 아닙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장씨가 사과를 하고 나서야 간신히 조용해졌다.
십삼 년을 산 뿔 달린 흑돼지 대길(大吉)이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신기한 동물이었다.
“네가 이럴 때마다 큰일이 있었는데…… 불길하다, 불길해. 오늘 뭔 일이 있으려나?”
뀨엑!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장씨는 걱정스런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울타리 안에 있던 대길이도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오대수는 감히 고개를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부리부리한 눈매에 하얗고 탐스러운 수염을 가진 노인이 눈앞에 서 있었는데, 오대수는 그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발가락만 꼼지락거렸다.
팔순이 지난 노인 앞에서 긴장을 하고 있다고 하면 모르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리라.
하지만 노인도 노인 나름이다.
지금 그의 앞에 있는 노인은 흑사회의 전설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다.
파락호들이 깡패짓을 몇 년이나 할 수 있는지 아는가?
보통 삼 년이다.
회의 막내로 들어온 놈들은 보통 방파 싸움이 벌어졌을 때 절반 이상이 칼받이로 소모되어 죽거나 선배 파락호들을 대신해 관에 잡혀간다.
일 년이나 이 년쯤 칼밥 먹은 놈들은 잘 안 죽기 시작하지만, 그런 놈들은 또 밑에 놈한테 배신을 당하거나 괜히 자존심 세워서 구역 싸움을 하다가 어느날 뒷골목 구석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살아남는 것은 일 할 남짓.
그나마도 십 년 이상 못 버티는 것이 비정한 파락호 바닥의 생리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노인이 그 세계에서 몇 년이나 왕으로 군림했는지 아는가?
자그마치 오십 년.
적룡보가 낙양을 장악하고, 그 적룡보를 쭉 관리해온 전설적인 인물이 바로 그의 눈앞에 있는 적룡보주 강금산(姜金刪)인 것이다.
반백년을 지옥 못지않은 파락호들 사이에서 버텨 냈다.
강금산은 그것만으로도 존경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무슨 놈의 노친네가…….’
오대수는 조심스레 눈동자만 움직여서 위를 힐끗 쳐다봤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강금산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주름이 얼굴에 가득했는데, 여든 살이 넘었다는 나이는 얼굴에서만 느껴질 뿐, 목 아래쪽의 육체에선 노년기를 훨씬 넘은 나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붉은색 장포 사이로 엿보이는 목덜미와 가슴팍은 단단한 근육으로 덮여 있다. 육 척이 넘는 장신에 활활 타오르는 눈빛은 호랑이 못지않게 강렬했고, 소매 밖으로 드러난 커다란 손등에는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 같은 힘줄과 흉터들이 잔뜩 새겨져 있었다.
‘몸만 봐서는 새장가들어도 되겠네!’
과연, 적룡보의 보주라고 해야 할까.
오대수는 손가락을 꿈틀거리면서 인사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했다.
“소길(小吉)아!”
“할아버지!”
적룡보주 강금산.
흑사회의 전설인 노인은 껄껄 웃으며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은 날짜도 안 되었는데 웬일이냐? 부모님이 걱정하시진 않든?”
“괜찮아요. 몰래 나왔거든요.”
“예끼, 이놈! 부모님 걱정시키면 안 된다. 그분들이 너를 얼마나 아끼시는 줄 아느냐.”
“알아요.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제가 안 나오면 애들이 굶거든요.”
“허허헛!”
인자하게 웃는 강금산을 보며 오대수는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 같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인자한 동네 할아버지는 대체 누군가?
조금 전에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소변을 지릴 것 같던 그 위압감 가득한 노인은 어디로 갔느냔 말이다.
“인근의 동네 아이들이 너를 따른다는 말은 들었다. 오죽했으면 종팔이가 나중에 거지 왕초 자리 뺏기는 거 아니냐고 석웅에게 하소연을 했다는구나.”
“그래요?”
소길이라고 불린 소년이 옆에서 씩 웃고 서 있는 석웅을 힐끗 쳐다보더니 배시시 웃었다.
오대수로서는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까짓것, 거지 왕초나 한 번 해 볼까요?”
“이 녀석! 건씨세가의 하나뿐인 장손이 그 무슨 벼락 맞을 소리냐!”
강금산은 소년에게 꿀밤을 먹여 주면서도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졸지에 한 대 얻어맞은 소년조차 배시시 웃고 있으니 더 말할 필요가 무에 있을까.
강금산과 소년은 친손주와 할아버지처럼 다정해 보였다.
오대수는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멍하니 듣고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건씨세가…… 소길…… 건소길?”
비록 낙양이 아니라 위수분지에서 주로 활동하던 오대수였지만 그래도 건소길이라는 이름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십삼 년 전, 낙양건씨세가에선 귀한 독자가 태어난 기념으로 큰 잔치를 벌인 적이 있었다.
오대수는 그때 잔치에 참가했고, 자식의 이름을 소길(小吉)로 정했다는 말을 듣고 박장대소를 했던 적이 있던 것이다.
명문세가의 독자로 태어난 복 받은 놈의 이름이 소길(小吉)이 뭔가, 소길이.
차라리 남자답게 대길(大吉)이라고 붙여 주든가.
작은 행운이라니, 얼핏 들으면 굉장히 소심해 보이는 듯한 부끄러운 이름이다.
오대수는 그 당시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기에 지금까지도 그 이름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소길아, 지금은 때가 좋지 않구나. 오늘은 네가 나와서 놀기에 좋은 날이 아니다.”
“무슨 일이 있어요?”
강금산은 지그시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낙양 땅이 소란스러워진 상태지. 이럴 때는 괜한 일에 연관되지 않도록 집에 가 있는 것이 좋단다.”
“할아버지도 겁나는 게 있어요?”
“허헛! 물론 있지! 요즘은 내 몸도 예전 같지 않아서 말이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허리를 삐끗한단다. 이 나이에는 무리를 하면 안 되는 법이야.”
강금산은 주먹으로 허리를 툭툭 두드리며 엄살을 피웠다.
팔순이 넘은 노인이 하는 말이니만큼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강금산이 그런 말을 하자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안 믿기네요.”
“허헛, 이 맹랑한 녀석! 하지만 이번엔 진짜다. 절대로 연관되면 안 돼. 앞으로 한 달 정도는 밖으로 나다니지 말거라.”
다시 한 번 건소길의 머리를 쓰다듬는 강금산의 눈빛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와 함께 육 척 장신의 노인에게서 묵직한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오대수는 하필이면 바로 그때 강금산과 눈이 마주쳤다.
‘노친네 눈빛이 무슨!’
오대수의 등골에서 소름이 쫘악 돋아났다.
“그런데, 이쪽은 누군가?”
“보, 보주님을 뵙습니다!”
오대수는 황급히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제 이름은 오대수라고 합니다. 저기, 여기 이 꼬…… 아니, 공자님과 함께 오게 된 건 인연이 인도한 탓으로…….”
“허어, 소길이가 데려왔다고?”
“예, 예. 저를 구해 주셨습니다.”
오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흑선파에게 쫓기는 사람을 적룡보로 데려와 줬으니 구해 준 것이 맞다.
“구해 줬다? 자네는 어디 출신인가?”
“저기, 위수분지에 있었…… 습니다.”
오대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위수분지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옆에 서 있던 석웅의 눈빛이 다시 한 번 번뜩였던 것이다.
“위수분지? 흑선파가 있는?”
“예…….”
“혹시 흑선파 사람인가?”
“그랬…… 습니다.”
“그랬다? 지금은 아니고?”
“예, 보주님.”
강금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석웅이 으스스한 살기를 내뿜었다.
“오늘 흑선파 놈들 열댓 명이 양선교(陽船橋)를 넘어왔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저놈을 쫓아온 것 같습니다.”
양선교는 위수분지와 낙양 땅을 가르는 지표 같은 곳이었다.
양선교를 건너오면 낙양이 시작된다.
당연히 흑선파는 양선교를 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강금산은 흥미롭다는 듯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자네는 무슨 죄를 지었나?”
“예?”
“큰 죄를 지었으니까 흑선파 놈들이 전쟁의 위험을 무릅쓰고 넘어온 것 아니겠나?”
“그, 그게…….”
오대수는 우물거리며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옆에 있던 석웅이 버럭 화를 냈다.
“똑바로 말하지 못해!!”
“윽!”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호통에 오대수의 어깨가 더욱 좁아졌다.
“그, 그게…….”
오대수는 우물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너무 안 게 죄입니다.”
“음?”
강금산의 눈에 호기심이 감돌았다.
“무슨 말인가, 그게?”
“여기서 말을 해도 될는지…….”
오대수가 힐끗 양옆의 눈치를 살폈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데 건소길과 석웅이 있어도 되느냐는 뜻이었다.
“소길아.”
강금산이 쳐다보니 건소길은 이미 눈치채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할아버지, 이 아저씨 데리고 있어 줘요.”
“응? 웬일이냐, 그런 말은 잘 안 하던 녀석이.”
“나랑 인연이 있는 사람 같아요. 성격도 삐뚤어지긴 했지만 근본은 나쁘지 않은 것 같고, 좀만 다듬으면 쓸 만한 사람이 될지도 몰라요.”
오대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강금산의 앞이라는 사실도 잊고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아무리 그가 파락호 나부랭이의 삶을 살아왔다지만, 나이 서른이나 먹어서 열세 살짜리 꼬마한테 저런 이야기를 들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천하의 적룡보주가 그런 꼬마의 말을 순순히 들어준다는 사실이었다.
“허허허, 그러냐? 알겠다. 이 할애비가 그렇게 하마.”
“그럼 할아버지만 믿을게요!”
“오냐!”
건소길은 강금산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는 나가기 전에 오대수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저씨, 더는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살아요. 안 그러면 다음에 저를 만났을 때 크게 혼날 거예요.”
“뭐……?”
오대수는 멍하니 건소길을 응시했고, 건소길은 그런 오대수의 팔을 어른스럽게 툭툭 친 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지금 이 순간, 오대수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저 아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그가 미친 걸까?
아니면 저 아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주변 사람들이 미친 걸까?
그때, 강금산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자네, 운이 좋군.”
“예?”
“저 아이와 인연이 닿다니. 그건 큰 행운이나 다름없는 일이지.”
“…….”
오대수는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강금산이 미쳤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럼 이야기해 보게.”
강금산은 자리에 앉아 차분한 눈빛으로 오대수를 바라봤다.
오대수는 옆에서 부동명왕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석웅을 힐끗 쳐다봤으나 강금산은 그런 오대수의 내심을 짐작한 듯 손을 내저었다.
“석웅은 한 가족 같은 사이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네.”
“예.”
오대수는 역시 그랬다고 생각하면서 석웅을 살짝 째려보았다.
자신이 충복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며 그를 핍박했던 석웅은 실제로 적룡보주의 측근이었던 것이다.
“뭘 봐?”
“아닙니다.”
오대수는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주먹은 진실도 침묵시킨다.
오대수는 그가 알고 있는 기밀 정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