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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공자 1권(6화)
2장 신투(神偸) 장일봉(2)
***
괴뢰마군(怪雷魔君)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다.
이름은 석숭.
그는 한때 중원제일살수문파라 불렸던 흑화방(黑花幇) 방주의 아들이었다.
흑화방주는 잠행과 암습에 경지가 있다면 초절정의 단계에 올랐다고 평해지는 사람이었다.
평생 살수 무학을 단련해 온 그는 살수의 무공을 정리해 체계적으로 경지를 나눠 두었다.
견성(見成).
체단(體鍛).
육화(六花).
견성은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즉시에 공격할 수 있는 중급 살수의 지표.
체단은 생각하는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도록 육신을 단련하는 상급 살수의 지표.
육화는 흑화방주조차 깨달은 지 얼마 안 된 깨달음의 경지였다.
흑화방주는 장담했다.
세 번째 단계인 육화의 경지에 오르면 상대가 누구든 죽일 수 있다고.
괴뢰마군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특급 살수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아 왔다.
여섯 살 때 소리를 내지 않고 걷는 법을 배웠고, 일곱 살 때 소리없이 다가가 토끼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여덟 살이 되었을 때는 단검을 잡을 수 있게 허락받았다.
처음엔 십 보 떨어진 곳에 있는 소나무를 맞추었고, 그 후엔 십오 보 떨어진 소나무를, 마지막엔 사십 보 떨어진 소나무를 맞출 수 있게 되었다.
과녁도 점점 작아졌다.
소나무는 대나무로, 대나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못에 박힌 메뚜기 한 마리로 변했다.
그때 그의 나이가 열한 살.
단검을 일직선으로 던지는 직투술(直投術)에 있어서 고작 열한 살의 나이에 견성(見成)에 이른 것이다.
당시에 기재라고 평가받던 전대 흑화방주가 견성을 열다섯에 이룬 것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성취였다.
주변의 모두가 극찬을 했다.
사상 최초로 살왕이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흑화보의 모든 살수들이 열광했다.
그 기대에 맞춰 훈련은 점점 강도를 더해 갔고, 종국에는 훈련인지 고문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가 되어 갔다.
손가락 하나로 물구나무를 설 수 있게 되었고, 숨을 멈춘 채 단단한 흙 속에서 사흘을 버틸 수 있게 되었다.
보통의 소년이었다면 그 과정에서 모든 근맥이 끊어져서 폐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재능이 출중한 소년은 그 고문조차 모두 뛰어넘었다.
스물두 살.
그가 흑화방주를 따라잡은 나이다.
그리고 그가 살수로서 첫 상대로 잡은 것이 바로 그 당시에 무림십대고수로 손꼽히던 뇌정신군이었는데, 선불금으로 먼저 받은 절반의 금액만으로도 흑화방이 창설된 이후 최고의 의뢰비를 경신할 만큼 큰 건이었다.
석숭은 열흘간의 밑작업 끝에 자신에게 주어진 화기(火器)들을 다 사용하고, 큰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결국 뇌정신군을 잡아 내는 것에 성공했다.
그뿐인가.
흑화방에서 받은 훈련을 바탕으로 뇌정신군의 진신무공인 진천뇌정신공(震天雷霆神功)의 비급까지 얻어 냈다.
하지만 뇌정신군의 마지막 반격은 무서웠다.
한 번 몸속으로 파고든 뇌정기가 내부를 불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석숭에게 남겨진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첫째, 진천뇌정신공보다 더욱 강한 내공심법으로 뇌정기를 없애 버리는 것.
둘째, 진천뇌정신공을 익혀서 뇌정기를 제어하는 것.
하지만 아무리 최고의 살수 문파라도 무림십대고수의 내공심법보다 더 효과가 좋은 내공심법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었고, 결국 석숭은 진천뇌정신공을 익힐 수밖에 없었다.
진천뇌정신공을 익히는 방법은 특이했다.
모든 신공이 그러하듯 익히는 것에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를 맞을 것.
한데 이 번개를 맞을 때의 몸은 내공을 익히지 않은 순수한 몸이어야 했다.
비급에선 이미 혈맥에 잡스러운 기가 쌓여 있는 사람이 벼락을 맞게 되면 강한 반발력으로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석숭은 충격을 받았다.
즉, 진천뇌정신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그가 평생을 익혀 온 내공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진 좋다.
목숨을 건지기 위한 건데 내공이 문제겠는가.
게다가 만약 아홉 번의 번개를 맞는 데 성공하면 내공이 경지에 올라 환골탈태(換骨奪胎)하여 반로환동(返老還童)까지 할 수 있다고 하니, 무인으로서 어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다만 평생에 번개를 보는 것만도 힘든데, 대체 어딜 가야 번개를 맞는지가 문제였다.
도저히 답을 내릴 수 없던 그는 과거 뇌정신군의 행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뇌정신군은 열흘 중 엿새를 무공을 수련하는 연공실에서, 이틀을 가족들과 보내고, 나머지 이틀은 자신이 거둔 제자들과 시간을 보냈다.
한 달에 한 번씩 어딘가로 떠난다는 이야기는 있는데, 아무리 흑화방의 정보망을 이용해 보아도 도저히 어딜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석숭은 결국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았다.
번개를 쫓아다닐 수는 없으니 번개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을 찾기로 한 것이다.
우선 호풍환우를 부른다는 태극관(太極館)의 청안 도사를 찾아갔다.
함부로 술법을 쓸 수 없다며 거절하던 청안 도사의 처자식을 반쯤 죽여 놓고 협박했다.
결국 청안 도사가 평생을 쌓은 도력을 절반 이상 쓰고 나서 처음으로 벼락을 맞았다.
석숭은 흥분했다.
단 한 번의 낙뢰(落雷)였는데, 그 한 번으로 무려 반 갑자의 내공이 쌓인 것이다.
그가 원래 가지고 있던 내공이 한 갑자 반이었으니, 두 번의 낙뢰만 더 받으면 원래의 내공을 회복하는 셈이다.
그뿐인가.
낙뢰로 쌓인 내공은 자연지기의 상태 그대로여서 보통의 내공보다 훨씬 순양한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한 번 초식을 사용해 보니 본래보다 두 배나 더 위력이 증폭했을 정도다.
석숭은 그 길로 명망있는 술법사들은 모조리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삼곤륜(三崑崙), 육도회(六道會), 모산파까지.
무려 십 년을 유랑하였지만 누구 하나 낙뢰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낙뢰를 떨어뜨리는 것은 술법 중에서도 최고위의 술법이라 웬만한 경지의 술법사는 시전할 꿈도 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청안 도사만 한 술법사가 없다는 소린데, 정말로 그 이후로 석숭은 술법을 통한 낙뢰를 단 한 번도 맞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다시 방법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자연과 호풍환우를 다스릴 수 있는 자들.
술법사가 아니면 기문진식의 대가들뿐이지 않은가.
그는 기문진식의 달인들을 찾아다녔고, 마침내 마도제일의 두뇌로서 사도와룡(邪道臥龍)이라 불리는 만박자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 석숭은 만박자를 우습게 보았다.
일신에 아무런 무공도 없이 머리만 굴리는 자들이 위험해 봤자 얼마나 위험하겠는가.
하지만 과연 마도제일의 두뇌랄까.
그는 석숭을 보자마자 그가 진천뇌정신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당당하게 약속했다.
이십 년.
만박자가 속한 단체를 위해 이십 년만 일해 주면 남은 여덟 번의 낙뢰를 모두 맞을 수 있게 해 주겠노라고.
석숭은 의심했지만 이튿날 만박자가 예언한 곳에 정확하게 낙뢰가 떨어지자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석숭은 그날 이후, 만박자가 속한 단체를 위해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정정당당한 무력시위를, 또 어떨 때는 암습도 서슴지 않으며 승승가도를 달려 나갔다.
석숭이 한 번 모습을 드러낸 곳엔 언제나 새카맣게 탄 시신이 난무했고, 사람들은 그의 괴이하고 잔혹한 성품을 칭하며 그를 괴뢰마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삼십 년 후.
괴뢰마군은 무림십대고수와 동등하다는 삼괴(三怪)중 한 명이 되었다.
“이제 마지막 하나.”
괴뢰마군 석숭은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거리를 지나가며 중얼거렸다.
삼십 년의 세월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흑화방에서 가혹한 수련을 하던 예비 특급 살수는 강호에서 인정받는 초절정의 고수가 되었다.
팽팽하던 피부엔 작은 잔주름이 생겨났고, 뻣뻣하던 머리카락은 연륜이 느껴지는 가느다란 굵기로 변했다.
세월의 흐름은 강대한 내공으로도 막을 수 없던 것이다.
게다가 항상 사납게 번뜩이던 두 눈엔 온화하면서 여유로운 빛마저 감돌았다.
길을 지나다가 누군가와 시선을 마주치면 웃으면서 먼저 인사를 건네올 정도였다.
“후후후, 드디어…….”
괴뢰마군은 나직하게 웃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잠시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지만, 괴뢰마군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주체를 못할 정도였다.
“이보시오.”
“하나 드릴까요?”
길가에서 튀긴 전갈을 팔던 노점상이 웃는 얼굴로 꼬치 하나를 내밀었다.
괴뢰마군은 웃으며 그것을 받았다.
반질반질하게 튀겨진 전갈을 깨물자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음, 맛있군.”
“그렇죠? 제 비법이 첨가된 요리입죠! 꼬치 하나에 철전 하나입니다요!”
노점상은 기분이 좋아진 듯 꼬치 하나를 더 내밀었다.
괴뢰마군은 그것마저 받아서 우적우적 씹어 먹은 뒤 씩 웃으며 빈 꼬치 두 개를 오른쪽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손에서 꼬치가 사라졌다.
“어……?”
노점상이 마치 진기한 묘기라도 본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놀라다가 피를 토했다.
“커허……?”
경악하여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는 노점상.
그의 심장 부근에 두 개의 빈 꼬치가 나란히 꽂혀 있었다.
그가 비명을 토해 내려는 그때, 괴뢰마군은 이미 단단한 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쉿, 쉬잇. 조용히 하게.”
“읍! 으읍!”
“미안하게 됐군. 하지만 내가 지금 너무 기분이 좋아서 말이지. 조금 마음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겠어. 간단히 말해서 자네는 내 기분 전환용이란 말이지.”
어깨동무를 하며 노점상 쪽으로 걸어가는 괴뢰마군과, 그런 그의 옆에서 나란히 걸어가는 듯이 보이는 노점상은 겉으로 보기엔 오랜만에 만난 친구 사이처럼 보였다.
노점상은 발버둥치려 했으나 괴뢰마군은 교묘한 동작으로 모든 시도를 막아 버렸다.
오른손으로 턱을 붙잡고 왼손으로는 왼쪽 허리에 손을 대고 교묘하게 몸을 비틀었다.
단지 그뿐인데 노점상은 땅에서 발이 떨어진 채 허공을 질질 끌려갔다.
“너무 원망하지 말게나.”
괴뢰마군은 노점상의 앞섶을 축축하게 적신 피에 코를 대고 숨을 들이쉬었다.
“스으읍―”
짙은 혈향이 콧속으로 파고들고, 그제야 제정신을 찾은 듯 괴뢰마군의 눈에서 영리한 지성이 번뜩였다.
“역시, 피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지.”
괴뢰마군은 축 늘어진 노점상을 가판대 뒤에 내려놓고 몸을 쭉 폈다.
허리에서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침에 일어나 차가운 물을 한 사발 들이켠 것마냥 상쾌한 표정이었다.
“좋아, 그럼 가 볼까?”
괴뢰마군은 비어 버린 가판대에서 전갈꼬치를 한 움큼 움켜쥐고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주인이 비어 버린 가판대 아래에서 붉은 피가 스물스물 흘러나왔다.
지나다니던 사람들은 많았으나 가판대 뒤에 시체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