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행운공자 1권(7화)
2장 신투(神偸) 장일봉(3)
***
구산(舊山).
흔히 뇌산(雷山)이라 불리는 바위산은 낙양의 유명한 천진교(天津橋)에서 한 시진 정도만 걸어가면 볼 수 있는 흔한 돌산이었다.
물론 특이한 점은 있다.
산 모양이 너비가 좁고 위로만 길쭉하니 솟은 솟대 모양인데다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한 달에 한 번은 꼭 벼락이 내리친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을 지닌 산이었다.
벼락이 그냥 내리치는 것도 아니다.
인근 백여 리가 벌벌 떨 만큼 강렬한 뇌성벽력을 터뜨리는데다가, 구산의 정상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리꽂히며 빛을 내뿜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멋모르는 여행객들이나 뇌산에 오르지, 인근의 마을 사람들 중에서 뇌산에 올라가는 간 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괴뢰마군은 그런 구산으로 올라갔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즐거운 기색이 역력한 채 위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만박자는 바로 오늘, 구산에 큰 뇌기가 발생하여 그에게 천운을 가져다줄 거라 말했다.
점괘를 뽑으면서 연신 희한하다고 고개를 갸웃거리긴 했지만, 분명히 이곳에서 번개를 맞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다.
진천뇌정신공(震天雷霆神功)을 대성하게 해 줄 마지막 아홉 번째 낙뢰!
그 보물을 맞이하는 셈이니 어찌 웃음을 참을 수 있겠는가.
“흐흐흐흐.”
괴뢰마군은 뛰어난 경신법으로 금방 정상에 올라 희희낙락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엔 짙은 구름이 새카맣게 덮여 있었다.
은은한 뇌성벽력까지 울리는 것이, 심상치가 않은 날이다.
그는 구산의 정상에 놓인 평평한 바위 위에 올라 정확히 남향을 바라보며 가부좌를 틀었다.
도저히 육십에 가까운 나이로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에서 은은한 홍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쳤고, 그가 앉은 주변에선 파직거리는 뇌기가 번뜩였다.
괴뢰마군은 눈을 반개한 채 때를 기다렸다.
진천뇌정신공을 운용하고 있노라면, 자철석이 철을 쫓듯 벼락은 자신과 동질의 뇌기(雷氣)를 쫓아 그의 몸으로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약 한 시진가량의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하늘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하였다.
묘한 진동을 울려대는 비구름이 구산의 위로 몰려드는 것과 동시에 장대 같은 비를 쏟아붓기 시작한 것이다.
비가 오면 천둥도 따라오는 법.
괴뢰마군 석숭은 속으로 간절히 기원했다.
‘와라! 와라! 와라!’
그런데 어째선지 한참이 지나도 벼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반개하고 있던 석숭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그는 가부좌를 풀고 하늘을 살펴야 할지 고민했다.
만약 가부좌를 푸는 순간 벼락이 치기라고 하면 기껏 기다려 왔던 시간이 허사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미리 준비하고 있지 않는다면 벼락을 맞아 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석숭은 과거 살수로서 훈련받은 기억을 되살리며 인내심을 끌어 올렸다.
장대비가 쏟아진다.
잔뜩 예민해진 그의 감각에 한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산에 오니까 좋다.’
건소길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산을 타는 중이었다.
경사가 상당히 가파랐지만 돌멩이 사이를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건소길은 힘든 줄도 몰랐다.
왜 굳이 산에 올랐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대답할 말이 없다.
그냥 갑자기 구산에 올라오고 싶었다.
얼마 전에 다리 밑 아이들이 구산에 토끼가 많다면서 자랑을 하기도 했고, 아마 구산의 정상에서 바라보는 낙양의 모습도 멋있다고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상에 다 왔을 때 즈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잔뜩 끼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장대비를 쏟아 낸 것이다.
건소길은 황급히 근처의 소나무 아래로 몸을 피했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문득 넓적한 바위 위에 누군가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
건소길은 처음에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머리카락이 온통 새하얀 것을 보니 노인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노인이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산의 정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단 말인가!
“산신령님?”
건소길은 순간 그렇게 생각했으나, 산신령치고는 눈에 보이는 모습이 너무 선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년은 아직 여물지 않은 주먹으로 몇 번이나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미친 듯이 내리는 장대비 사이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노인과 그 주변에서 신비롭게 번쩍이는 불빛이 보였다.
그는 걱정스러운 마음 반, 호기심 반으로 노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손만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까지 다가왔을 때, 건소길은 번개가 치기 직전에 그러듯이 하늘이 우르릉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득 이 노인이 번개를 맞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노인의 주변에서 뭔가 불빛이 파직거리는 것도 예사롭지 않았다.
“저기요!”
하지만 노인은 대답은커녕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여기에 계시면 위험해요!”
건소길이 내뻗은 손이 노인의 어깨에 닿는 순간, 새카만 눈동자가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
‘이, 이 쳐 죽일 놈……!!’
석숭은 속으로 절규했다.
만약 입을 열어 말을 할 수 있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욕을 쏟아부었을 것이다.
그는 번개를 맞을 때를 대비해 진천뇌정신공을 극한까지 운용하는 중이었다.
내공을 대주천하는 중에는 어깨 위에 돌멩이 하나만 떨어져도 죽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어린아이가 나타났다.
‘산신령님?’이라고 중얼거리는 것도 똑똑히 들렸다.
‘왜 하필 지금! 이런 젠장, 난 산신령이 아니야!’
석숭은 어린아이의 멍청함을 저주하며 서둘러 진천뇌정신공을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이미 임맥을 돌아 독맥으로 들어가고 있는 내공을 거두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발만 삐끗하면 주화입마.
하지만 억울하게 죽지 않기 위해서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내공을 빨리 갈무리해야만 했다.
“저기요!”
장대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는데도 아이는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석숭은 마음이 더 급해졌다.
백회혈을 지나는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내공을 가속시켰다.
“여기에 계시면 위험해요!”
이젠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다.
석숭의 내공은 백회와 인중을 지나 다시 단전으로 되돌아가는 중이었다.
서서히 다가오는 아이의 손이 느껴진다.
손이 닿기 직전, 그는 운용하고 있던 내공을 다시 단전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간발의 차이였다.
내공은 단전으로 되돌아갔고 운기조식은 끝나 있었다.
석숭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젠 움직여도 되는 것이다.
툭, 하고 소년의 손이 그의 어깨에 닿았다.
‘이 꼬맹이, 비명을 지르게 만들어 주마.’
석숭의 얼굴에서 잔인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는 일단 자신의 어깨에 닿아 있는 소년의 손을 꺾어 버리기 위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바로 그 순간,
콰과쾅―!!
석숭의 머리 위로 강렬한 벼락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