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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공자 1권(8화)
3장 진천뇌정신공(震天雷霆神功)(1)


“으아아아악―!!”
석숭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뜨거운 돌덩이를 삼킨 듯한 고통이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린 것만 같다.
온몸의 겉과 속이 뒤집어진 듯한 느낌이다.
피부에선 불이 나는 것 같았다.
피가 흐르던 혈관은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팽창했고, 과도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 버린 눈과 코에서는 새빨간 선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필 진천뇌정신공을 갈무리하는 순간에 맞은 탓에 대비할 시간도 없었다.
아무리 무공이 강해도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그저 먼지처럼 무력할 뿐이다.
석숭의 어깨에 손을 짚고 있던 건소길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은 소년은 석숭과 달리 비명을 지를 만한 기력조차 없었다.
입을 쩍 벌린 채 머리 위로 김을 내뿜으며 굳어 있을 뿐이다.
온몸이 급살을 맞은 것처럼 부들부들 떨렸고, 충격을 받아 심장이 멈춰 버린 탓에 숨을 쉬지 못하고 꺽꺽거렸다.
억겁과도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건소길의 숨이 잦아들고, 새카맣게 빛나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졌다.
낙양건씨세가의 장남 건소길.
그는 그 순간에 분명 죽어 있었다.

“그…… 어어어…….”
온몸이 새카맣게 타 버린 채 한참을 굳어 있던 석숭의 입에서 짐승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징그러울 정도로 쭈글쭈글하고 시뻘건 피부가 움직이는 모습은 공포스러울 지경이다.
그는 천하에 보기 드문 무공을 익힌 몸.
죽어 버리기 직전, 단전에 잠들어 있던 순양한 뇌기(雷氣)가 스스로 움직여서 번개의 기운을 차츰 다스려 갔다.
새카맣게 타들어 가던 상처를 일시적이나마 멈추고 오그라들던 장기를 다시 빵빵하게 부풀렸다.
쭈글쭈글한 눈꺼풀이 올라갔다.
본래 흰자위와 검은 자위가 있어야 할 자리엔 시커먼 공동밖에 없다.
터지고 부풀어 올라 딱딱하게 굳어 버린 입술이 벌어지며 그 사이로 유난히 새하얀 이빨이 드러났다.
석숭은 신음했다.
극심한 고통에 괴로워했고, 천하의 고수인 자신이 이런 꼴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불행일까, 다행일까.
우르릉―
낙뢰가 떨어지기 직전의 전조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그것이 다 죽어 가던 석숭을 움직이게 했다.
“그으으으…….”
석숭은 보이지 않는 눈을 끔뻑이며, 껍질이 다 벗겨진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곧 두 손이 단전 앞에 가지런히 놓였다.
텅빈 동공이 반쯤 가려지고, 거칠었던 숨소리가 다시 일정한 박자를 되찾았다.
가공할 생명력이 그를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건져 올리고 있었다.
‘한 번만 더…… 번개를 한 번만 더 맞으면 나는 환골탈태한다!’
석숭은 천천히 진천뇌정신공을 다시 운용하기 시작했다.
상처를 막고 있던 내공이 빨려 나가면서 일시적으로 상세가 악화되기 시작했음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쾅!
그 순간, 벼락이 떨어졌다.
또다시 석숭의 머리 위였다.
그는 이번엔 괴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마어마한 내공이 그의 혈맥으로 스며드는 것에 희열을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순양한 자연지기가 그의 혈맥을 통과하고 있었다.
몸속의 노폐물이 모조리 태워지는 것과 동시에 반선(半仙)의 육신이 되어 가고 있었다.
드디어 대성이다.
삼십여 년을 이어 온 연공의 시간들이 드디어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새카맣게 타 버렸던 피부가 다시 제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석숭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낙뢰가 떨어졌다.

콰아아앙!!

‘허억!’
혈맥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가 다시 제 크기를 되찾았다.
석숭은 심장이 떨어질 듯이 놀랐다.
그는 방금 일어난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열 번째 낙뢰였다.

아홉 번도 채우지 못해서 끙끙거렸는데, 열 번째라니!
한 사람이 열 번이나 낙뢰를 맞는다는 게 가능하기나 하단 말인가!

그는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참을 수 없는 희열에 몸을 떨었다.
낙뢰 한 번에 삼십 년 이상의 내공이 쌓인다.
그만한 낙뢰가 갑자기 떨어졌으니 이건 길가에서 금덩이를 주운 것보다도 더 큰 행운이다.
다행히 아홉 번의 낙뢰로 단련된 혈맥은 열 번째 낙뢰도 무난히 받아들였다.
석숭은 희희낙락했다.
이제 그는 천하제일의 내공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천하를 제패할 때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때, 또 한 번의 번개가 떨어졌다.

콰아아앙!!

‘이, 이게 무슨?!’
열한 번째.
장마철에 강물이 범람하듯 혈도를 타고 흐르는 내공이 크게 불어났다.
이번엔 혈맥이 조금 찢어졌다.
갑작스레 불어난 내공을 버티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단전이 꽉 찬 것은 물론이요, 심장 부근에 있는 중단전도 꽉 차 버렸으며, 이젠 백회혈과 미간 사이에 있는 상단전조차 꽉 채울 듯한 기세였다.
온몸이 내공으로 꽉 차서 터지기 직전인 인간.
그게 지금 석숭의 상태였다.
‘아, 안 돼! 이 이상은 무리다!’
석숭은 문득 진천뇌정신공 비급의 가장 끝머리에 쓰여 있던 문구가 떠올랐다.

과욕이초래마(過慾以招來魔).

과욕이 마(魔)를 불러일으킨다.
비급의 정식 내용은 아니고, 글을 쓴 뇌정신군이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덧붙인 후기(後記) 같은 것이었는데…… 어째서 이런 순간에야 그 진의(眞意)를 알게 되는지 통탄할 노릇이었다.
벼락은 벼락을 불러일으키고, 뇌기(雷氣)는 뇌기를 부른다.
즉,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뇌기를 많이 갖고 있으면 있을수록 벼락을 유도하기가 쉽다는 뜻이다.
석숭은 지금 자신의 상태라면 또다시 벼락을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뇌기를 다스려 보려 했지만, 하늘은 그를 돕지 않았다.

쾅! 쾅! 꽈광! 꽈과광!

마치 중양절에 터뜨리는 폭죽마냥 연속적인 충격이 그의 몸을 관통했다.
무려 여섯 번의 낙뢰였다.
석숭의 혼백이 산산이 흩어졌다.
몇 번이나 재생하려던 육신은 얼굴이 반쯤 녹아내린 채 멈춰 버렸고, 과도한 내공을 흘려보내던 혈맥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하지만 혈맥이 찢어졌다고 해서 내공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총합 열일곱 번의 낙뢰.
한 번의 낙뢰마다 반 갑자의 내공을 주었으니 총 팔 갑자 반, 오백십 년이라는 어마어마한 내공이 석숭의 몸 안에 갇힌 채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수승화강(水昇火降)이라!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뜨거운 기운은 위로 솟구치는 법.
포화 상태에 이른 자연지기(自然之氣)는 석숭의 몸을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이내 석숭의 어깨에 얹혀 있던 건소길의 손을 발견했다.
원래 장심(掌心)이라는 곳은 몸속의 내공이 수월하게 드나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통로 중 하나다.
내상을 입은 무인들을 치료할 때도 보통 장심을 명문혈에 가져다 대고 치료하지 않던가.
그러니 간절하게 갈 길을 찾아 헤매던 거대한 내공덩어리가 건소길의 장심을 통해 흘러들어 간 건 당연한 결과였다.
총 팔 갑자 반의 막대한 내공은 석숭의 장심을 통해 노도와 같이 흘러 들어갔다.
건소길의 몸이 갓 잡은 생선처럼 펄떡거렸다.
사방으로 전류가 방전되었고, 샛노란 불빛이 구산의 정상에서 몇 번이나 번뜩였다.
강렬한 불빛과 함께 새까맣게 탄 채 딱딱하게 굳어져 있던 건소길의 몸이 가공할 속도로 회복되어 갔다.
새카만 잿가루가 장대비와 함께 쓸려 갔다.
새로 돋아난 살이 뽀얀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건소길은 무려 세 번이나 몸의 껍질이 벗겨졌다.
여덟하고도 반 갑자나 되는 내공을 받아들인 덕분에 환골탈태를 세 번이나 하게 된 것이다.
새카맣고 흑단 같은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발목에 닿을 만큼 길어졌다.
피부는 대리석처럼 매끄럽게 변해 버렸고, 허리가 곧게 펴지면서 골격마저 바뀌어 버린 건소길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커져 버렸다.
이제 밖에 나가면 누구도 그를 열세 살짜리 꼬마로 보지 못할 터였다.
석숭처럼 번개를 통해 한꺼번에 내공이 주입된 것이 아니라, 장심을 통해 천천히 밀려 들어왔다는 점도 컸다.
건소길에게는 내공을 받아들일 준비를 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고, 한 번 번개를 맞아 죽었다가 되살아났다는 점도 기연으로 작용했다.
건소길은 이 세상에 드문 완벽한 육체, 그리고 여덟 갑자 반이라는 막강한 내공을 지닌 존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으음…….”
신음을 흘리면서 깨어난 건소길은 얼굴 위로 장대비가 후두둑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벌떡 일어섰다.
뭔가가 허전하다 싶어서 내려다보니 알몸이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완전한 알몸.
바지는 고사하고 속곳 하나 입고 있지 않았다.
혹시 어딘가에 벗어 두었나 싶어서 주변을 찾아보았지만, 주변엔 장대비에 흠뻑 젖은 바위들뿐이다.
그는 멍하니 자신의 몸을 더듬어 보았다.
다친 곳도, 아픈 곳도 없었다.
다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달라져 있었다.
“어……?”
남자의 가장 중요한 부분.
‘거기’가 많이 달라졌다.
원래 새끼손가락만 했던 자신의 분신이 엄지 두 개를 합쳐 놓은 것처럼 변해 버렸으니 모를 리가 없다.
다리 밑에서 매일 함께 놀던 거지아이들.
그중 차기 왕초라는 봉택이가 나름 ‘대물’ 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봉택이도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야 할 정도다.
“뭐, 뭐야?”
건소길은 당황했다.
왜 거기가 달라졌을까?
그리고 알몸으로 장대비를 맞고 있는데 왜 전혀 춥지 않은 것일까?
희한한 기분이었다.
기억을 되짚어 보려 했는데, 자꾸 머리가 아파 왔다.
“어……?”
그는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고, 자신이 산 정상에 있는 바위에서 열 걸음 정도 아래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를 보니 모든 게 다시 기억이 났다.
기절한 틈에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장대비가 쏟아지자 커다란 나무 밑으로 몸을 숨겼던 일.
웬 노인이 죽은 듯이 앉아있기에 걱정이 되어서 다가갔던 일.
노인의 어깨에 손을 대는 순간, 번쩍거리는 낙뢰를 맞고 느꼈던 어마어마한 고통.

그 모든 것이 다시 기억났다.
“으으…….”
절로 치가 떨린다.
건소길은 산 정상을 향해 뛰어올랐다.
죽다 살아났는 데도 불구하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몸이 가벼웠다.
산 정상의 평평한 바위에 다가가자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있는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코를 기점으로 얼굴의 왼쪽 절반은 젊은이 못지않게 혈색이 좋은 반면에 다른 오른쪽은 피부가 녹아내려 처참한 몰골이었다.
“아…….”
건소길은 마음이 안 좋아졌다.
옷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혹시 노인이 살아서 심술을 부린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문득 노인이 불쌍해졌다.
아무리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라지만, 혼자서 이런 외진 산 정상에 있다가 벼락을 맞고 죽다니, 이런 기구한 운명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강 할아버지는 호상(好喪)으로 돌아가셔야 할 텐데…….”
그러고 보면 친할아버지나 다름없는 적룡보주 강금산도 이 노인과 비슷한 또래였다.
그 생각을 하니 왠지 이 노인도 남 같지가 않았다.
어찌 됐든 자신과 함께 벼락을 맞고 죽은 노인이다.
건소길은 그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이 노인을 잘 보내 주기로 마음먹었다.
장사를 지내는 것까지는 무리지만, 사람의 도리가 있지 시신이 산 정상에서 썩어 가게 내버려 둬선 안 되지 않겠는가.
“걱정 마세요, 할아버지. 제가 무덤을 만들어 드릴게요. 편안히 가세요.”
진지하게 합장을 하며 명복을 비는 건소길.
만약 석숭이 들었다면 자신이 대체 누구 때문에 죽은지 아느냐며 기함을 토할 일이었다.
건소길은 당장 근처의 좋은 자리를 골라 돌멩이들을 들어내고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파란만장했던 하루는 그렇게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