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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공자 1권(9화)
3장 진천뇌정신공(震天雷霆神功)(2)


***

“도련님―! 도련니임―!”
장대비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할 때 즈음, 아직 앳된 느낌이 남아 있는 목소리가 구산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한창 돌멩이를 쌓고 있던 건소길이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형?”
“도련니임!”
나이는 열네 살.
건소길보다 고작 한 살 위였지만 워낙 몸집이 크고 어깨가 넓어서 다들 처음 보면 어른으로 착각하고는 했다.
한껏 걱정이 담긴 얼굴이었다가 건소길을 보는 순간 환한 웃음을 지으며 한달음에 달려오는 소년의 이름은 방득(防?).
건씨세가에서 건소길의 시중을 들기 위해 붙여 준 소년이었다.
방득의 아버지는 건소길의 아버지인 건청호를 섬겼고, 방득의 할아버지는 건소길의 할아버지를 섬겼다.
벌써 삼대째 이어 오는 인연인 것이다.
그런 탓에 건씨 가문의 사람들은 방득을 한 가족으로 생각했고, 방득도 건소길을 잘 지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인 양 언제나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형이 여긴 웬일이야?”
“웬일은요! 집안에 난리가 났어요! 그, 저기…… 그, 강 대인께서 도련님이 집에 잘 들어가셨는지 사람을 시켜 안부를 물으러 왔는데 도련님은 집에 안 계시고……!”
허둥대며 하는 말에서 방득의 순박한 성품이 그대로 드러난다.
적룡보주인 강금산이 건소길이 걱정되어서 사람을 보냈고, 건씨세가에서는 장남이 없어졌다고 생각해서 난리가 났다는 소리인 듯했다.
건소길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야기를 하고 나올 걸 그랬네.”
“그러게 항상 저를 데리고 가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따라다녔으면 집안의 어르신들도 걱정을 안 하셨을 텐데…….”
“나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어. 그냥 토끼나 한두 마리 잡고 돌아가려고 그랬단 말이야.”
“토끼요?”
방득의 눈이 동그래졌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방득은 음식들 중에서도 토끼 고기를 가장 좋아했다.
“자, 잡으셨어요?”
“아니, 못 잡았어. 이렇게 장대비가 잔뜩 오는데 어떻게 토끼를 잡겠어?”
“아, 그렇군요. 못 잡은 것도 당연하네요.”
방득의 얼굴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도련님, 이럴 게 아니라 빨리 비를 피해서 나무 밑으로…… 어어? 도련님, 왜 그런 일을 하세요! 저에게 맡기세요. 제가 할게요.”
“아니야, 형. 내가 하던 거니까 내가 끝낼게.”
“건씨세가의 외동아들이 손에 흙을 묻히다니요! 그걸 가만히 지켜보다가는 저는 아버지께 혼나요, 도련님!”
방득은 황급히 건소길이 들고 있던 돌멩이를 뺏어 들고는 자신이 대신 돌무덤을 쌓기 시작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실랑이를 벌이기도 싫은지라 순순히 물러난 건소길이었지만, 그래도 손을 놓지 않고 옆에서 다른 돌멩이를 집어서 무덤 위에 얹었다.
방득은 그조차도 마뜩치 않은 듯 말리려 했으나 순순히 말을 들을 건소길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경쟁하듯 돌멩이를 쌓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큰 바위만 한 돌무덤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런 뒤, 인근의 큰 나무 밑으로 피신한 후에야 방득은 참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도련님, 그 안 맞는 옷은 뭐래요? 저 무덤은 또 뭐구요?”
“아, 이거?”
건소길은 품이 크게 남는 장포를 내려다보며 멋쩍게 웃었다.
“주웠어. 마침 옆에 곱게 개어 뒀더라구.”
“네에? 누가요?”
“저 무덤 주인이.”
방득이 입을 쩍 벌리며 놀랐다.
“저, 저게 사람 무덤이었어요? 아니, 저기…… 난 예전처럼 그…… 짐승 무덤인 줄 알고……!”
“아니야, 사람이야. 불쌍한 노인. 번개를 맞고 돌아가셨어.”
“예에?!”
충격의 연속이었다.
방득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쌓은 돌무덤과 건소길을 번갈아 쳐다봤다.
“사, 사람이 여기서 번개를 맞았다구요?”
“응.”
“도, 도련님은요? 도련님도 혹시 번개를 맞은 거예요?”
“그런 것 같아. 옷도 다 타 버렸고.”
건소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방득은 뭐든지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인데다가 어린아이답게 번개를 맞고도 살아났다는 것에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던 것이다.
방득은 건소길의 예상대로 입을 쩍 벌린 채 굳어 버렸다.
그러고는 황급히 건소길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으며 무사한지 살폈다.
“다치신 곳은, 다치신 곳은 없어요? 세상에! 번개를 맞았다니!”
“아니, 난 괜찮아. 봐, 멀쩡하잖아?”
건소길이 빙긋 웃으며 멀쩡한 팔다리를 보여 주자 방득은 그제야 조금 안심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이 걱정된다는 듯 계속 위쪽을 흘끔흘끔 쳐다봤다.
“이게 대체 뭔 일인지 모르겠어요. 도련님은 사라지고, 기껏 찾았더니 번개를 맞았고. 근데 또 멀쩡하다니.”
“집에는 이야기하지 말아 줘. 괜히 걱정하시면 곤란하잖아?”
“그래도…….”
“어머니를 생각해 봐. 내가 번개에 맞았다고 하면 기절하실걸?”
건소길의 모친인 정씨는 정사품 문관의 종갓집에서 귀하게 키워지다가 시집온 여인이었다.
곱고 기품이 있지만 그만큼 순수하고 여린 여인인지라, 건소길이 사고를 치면 그때마다 기절을 하기로 유명했다.
방득은 난감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큰일은 말씀드려야 한다는 생각과 마님이 기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부딪쳐서 그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었다.
“부탁할게, 형. 난 부모님을 걱정시켜 드리기 싫어.”
“끄응. 알았어요, 도련님. 입을 꾹 다물고 있을게요.”
“그래야 우리 형이지!”
건소길이 기뻐하자 방득도 기분이 좋아진 듯 씨익 웃는다.
장대비가 서서히 그쳐 가며 하늘도 점점 밝아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잎이 넓은 나무 아래에서 점점 밝아 오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도련님, 근데 무슨 소리 안 들리세요? 뭔가 타는 것 같은…….”
“소리? 무슨 소리?”
“으음, 잘못 들었나?”
“난 잘 모르겠어. 아, 봐봐! 이제 거의 그쳤다. 내려가도 되겠어.”
방득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으나 밖으로 뛰쳐나가는 건소길을 따라가느라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도련님! 같이 가요!”
“누가 집에 빨리 도착하나 경주하자, 형!”
“히히. 이번에도 제가 이길 거예요, 도련님!”
“아냐! 이번엔 꼭 이길 거야! 내가 이기면 형은 내 부탁 하나 들어줘야 해!”
“얼마든지요!”
두 사람은 즐겁게 떠들며 내려갔다.

두 사람이 사라진 구산의 정상.
방금 전까지 건소길이 머물렀던 나무 밑에는 누가 불로 지지기라도 한 듯 새카맣게 탄 동그란 자국 두 개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

건소길은 혼이 났다.
아버지 건청호는 위험한 시기에 함부로 돌아다니는 건 낙양건씨세가의 아들로서 자각이 없는 거라며 크게 꾸짖었다.
어째서 위험한 시기냐고 물었지만, 아버지는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그저 당분간 절대로 혼자 외출해선 안 된다며 주의만 잔뜩 들었을 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건소길은 궁금했지만 집요하게 캐묻지 않고 묵묵히 넘어갔다.
가볍게 행동하기엔 집 안의 분위기가 너무 살벌했기 때문이다.
피곤에 지친 건소길은 방 안으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쓰러져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한식경 뒤.
코끝을 자극하는 냄새에 놀라 슬며시 눈을 뜨자 방안을 뿌옇게 채우고 있는 진회색의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우왁?!”
건소길은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연기라니.
혹시 방 안에 불이라도 났다면 큰일이었다.
원래 작은 불씨가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법이 아니던가.
건소길은 황급히 방구석에 피워 놓은 화로를 살펴보았으나, 의외로 화로는 멀쩡했다.
아니, 멀쩡하다 못해 차갑게 식어 있을 정도였다.
“뭐야? 화로가 아니야?”
건소길은 일단 창문을 활짝 열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는데, 갑자기 어깨 언저리에서 뭔가가 후두둑 떨어졌다.
“어……?”
새카만 잿가루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건소길은 잿가루가 수북이 쌓인 양 손바닥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양 손바닥뿐만이 아니다.
상의는 물론이고, 하의까지.
타다 남은 듯한 천 조각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건소길은 알몸이나 다름없는 몰골을 하고 있던 것이다.
“어어……?”
건소길은 자신이 누워서 잠을 청했던 자리를 살펴보았다.
새카맣다.
까맣게 타서 불이 붙기 직전인 방바닥에서 연기가 풀풀 피어오르고 있었다.
“뭐, 뭐야?”
건소길이 입을 쩍 벌리는 순간, 입술 앞에서 불빛이 번뜩였다.
“우왓?!”
깜짝 놀라서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러자 치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방바닥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건소길이 찐득하게 달라붙는 바닥에서 황급히 손을 떼어 내자 이번엔 방바닥에 손바닥 자국이 새카맣게 새겨졌다.
“내 몸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겨지지가 않는다.
손끝이 저릿저릿한가 싶더니, 샛노랗게 빛나는 번개가 손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건소길은 한참 동안이나 자신의 손을 멍하니 응시했다.

***

“강 대인.”
“허허, 대인이라니……. 가주, 그러지 마시오. 나야 뒷골목의 한낱 하오패 두목 아니오?”
“어찌 그런 말씀을. 제 선친께서도 항상 적룡보와 보주님의 의기를 칭찬하셨습니다.”
“그야말로 과분한 말씀이시오.”
강금산과 건청호는 서로 덕담을 나누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강금산은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건장한 장한이고 건청호는 얼핏 글만 읽는 유생처럼 보이면서도 호탕한 기상을 뿜어내는 장부이니, 두 사람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항상 소길이를 예뻐해 주신다지요.”
“허허, 그 녀석이야 워낙 특별한 아이가 아니오? 인정 많고 덕망도 있고. 가끔 그 ‘재능’ 탓에 사고를 치긴 하지만…… 오히려 그 덕에 또래 아이들이 더 따르는 모양이더이다.”
“사고뭉치 녀석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동네를 휘젓고 다니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무슨 말씀을. 사내대장부가 그 정도 활기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소.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는 녀석인지라 예뻐할 수밖에 없는데, 그 때문에 괜히 명가(名家)의 버릇을 망가뜨리는 것은 아닌지 항상 걱정이오.”
“하하, 그럴 리가요. 강 대인이 제 아들놈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신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지요.”
“가주께서 나를 그렇게나 추켜올려 주시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두 사람은 환담을 나누며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