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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공자 1권(10화)
3장 진천뇌정신공(震天雷霆神功)(3)
그렇게 일각 정도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방 안으로 몇 사람이 더 들어왔다.
새로 들어온 세 사람은 풍모부터 범상치 않은 사내들이었다.
첫 번째로 들어온 사람은 적갈색의 장포를 입고 수염을 깔끔하게 다듬은 미중년이었다.
허리 양쪽에는 칼날이 좁은 협봉검을 두 개나 차고 있었는데, 보통 쌍수검을 우습게 보는 무림의 세태와는 달리 그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진가주(秦家主) 오셨소?”
“오랜만이구려, 건가주. 반년 만에 보는 것 같소. 강 대인도 별래무양하셨습니까?”
해검진가의 가주 진종극은 건청호와 강금산 두 사람에게 모두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해검진가의 무공을 대성했다고 평가받는 진종극은 하남 땅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검호다. 게다가 정의로운 성품을 지녀서 옳고 그름이 명확하며 모든 일을 공평무사하게 처리하기로 유명했다.
“몽효가 얼마 전에 무림대회에서 백걸(百傑)에 들었다더군요. 축하드립니다, 진가주. 뛰어난 아드님을 두셨으니 진가의 미래가 밝습니다.”
“허허, 이거 쑥스럽습니다. 십준(十俊)에는 들었어야 어딜 가도 자랑할 수 있을 텐데요.”
“무슨 말씀을! 무림강호에 뛰어난 후기지수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중 백걸에 들었다는 것은 훗날 대륙 어딜 가도 인정받을 수 있는 무인이 될 거란 증거 아니겠습니까?”
“허허허.”
진종극은 겸양을 보이면서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본래 자식의 뛰어남은 부모의 즐거움인 법.
이번에 전국의 모든 유망한 젊은이들이 모인 무림대회에서 진가의 장남이 그 능력을 증명했으니 아비 된 자로서 기분이 나쁠 리가 없는 것이다.
“허어, 건가주의 눈엔 진가주밖에 안 보이는 모양이군. 낙양사가(洛陽四家)가 서로 동등하고 공평해야 하거늘, 이거 너무한 것 아니오?”
사뭇 공격적인 말투를 내뱉는 사내는 맹창벽가(猛槍碧家)의 가주 벽태광이었다.
큰 키에 건장한 체구, 창을 다루는 사람답게 어깨가 넓고 가슴이 두툼했으며, 얼굴 하관엔 다듬지 않은 수염이 거칠게 자라나 있어 사나운 인상을 더해 주는 인물이었다.
그는 고리눈을 뜨고 건청호와 진종극을 쏘아보더니, 이내 강금산을 쳐다보며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다.
“저 사람은 왜 이곳에 있는 거요?”
그의 안하무인적인 태도에 건청호의 안색이 굳어지고 진종극 역시도 불쾌한 기색을 띠었다.
그 가운데 오로지 적룡보주 강금산만이 태연하게 웃고 있었다.
“이번 사안에 있어 직접 증언해야 할 말이 있어 이곳에 참석하게 되었소이다.”
“그렇군. 증언을 위해서인가. 난 또 사가회합(四家會合)에 파락호들의 우두머리가 낀 줄 알고 기분이 나빴지.”
“벽가주!”
평소 강금산을 친인척처럼 여기고 있던 건청호가 준엄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어찌 그리 무례하시오! 강 보주님은 선대 때부터 우리 사가가 손댈 수 없는 곳을 잡음 하나 없이 관리해 주신 대인이거늘!”
“허, 그게 뭐 남을 위해서였나. 다 자기 벌어 먹기 위해서였지.”
“뭣! 벽가주, 진정 이럴 거요!”
시비를 붙이는 듯한 말투가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건청호의 눈에서 차가운 안광이 번뜩이기 시작했고, 진종극 또한 오른손을 허리에 찬 협봉검의 손잡이에 가져갔다.
“내 예전부터 생각은 했지만, 맹창(猛槍:용감한 창)이 아니라 맹창(盲槍:장님의 창)이었군. 어찌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몰라보고 앞뒤 구분 없이 날뛴단 말인가. 벽가가 가주를 잘못 뽑았어.”
“뭐라? 방금 뭐라 했느냐, 이 허여멀건한 놈!”
“말조심해라, 벽가야. 지금 우린 어린 시절의 동무가 아니라 각자 수천 명의 가솔들을 책임지고 있는 가주다. 전쟁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냐?”
진가주는 점잖은 목소리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고, 안 그래도 폭급한 성정을 지닌 벽태광은 이미 내공까지 끌어 올리고 있었다.
진종극과 벽태광, 거기에 건청호까지 세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많은 일들을 함께하였으나, 성격들이 워낙 다른 탓에 자주 다투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싸웠던 것이 진종극과 벽태광이다.
진중하면서 정의로운 진종극과 폭급하고 생각하기에 앞서 행동부터 하는 벽태광은 서로 견원지간이라고 할 정도로 성격이 안 맞았던 것이다.
“전쟁? 크핫핫! 허약해 빠진 진가와 전쟁이라…… 못할 것도 없지.”
“그 말, 책임질 수 있겠느냐?”
철컥.
스릉―
반쯤 모습을 드러낸 쌍검과 등 뒤에서 뽑혀 나오는 단창.
두 사람 사이에선 당장에라도 서로 부딪칠 것 같은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어허!”
그런 두 사람을 진정시킨 건 사가회합에 참석한 마지막 한 명이었다.
선풍도골의 풍모.
꼬장꼬장한 분위기를 가진 학사풍 노인이 혀를 차며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너무들 하는구만. 아무리 내가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다지만, 그래도 내 앞에서 싸우는 건 좀 자제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세 사람의 안색이 변했다.
“이가주 어르신.”
“어르신.”
“…….”
건청호와 진종극이 정중하게 포권을 취해 인사하고, 벽태광 역시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짧게 인사를 보냈다.
건청호, 진종극, 벽태광이 모두 ‘당대’의 인물들이라면, 협도이가(俠刀李家)의 가주 이지학은 선대의 인물이었다.
건청호나 진종극의 아버지가 가주였던 시절에 이미 이지학 역시도 가주였다는 뜻이다.
어째서 모두가 세대가 교체되었는데 이지학만 남아 있는가.
거기엔 비극적인 이유가 있었다.
본래 이지학에게도 아들이 하나 있었으나, 십오 년 전 사파의 어느 고수에 의해 살해를 당하는 바람에 후사가 끊기고 말았던 것이다.
다행히 딸을 통해 본 손자가 있어서 그 아이를 통해 가문을 잇는다고 하지만, 아직 어린지라 그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 이지학은 스스로 가주의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내 체면도 좀 세워 주게. 가주들 간의 우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가회합인데, 자네들의 선친께서 이리 다투는 모습을 보면 통탄을 할 것이야.”
아무리 앞뒤 가리지 않는 성정의 벽태광이라도 아비의 친구를 막대할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침묵을 지키며 물러났고, 건청호와 진종극은 나란히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추태를 보였군요. 주의하겠습니다.”
“허허, 내 체면을 살려 줘서 고마우이.”
이지학의 목소리는 점잖으면서도 힘이 있었다.
나이가 칠순이 훌쩍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남의 유명한 무인들을 거론하다 보면 반드시 이름이 들어가곤 하는 이지학이다.
수많은 은원이 넘치는 무림에서 그 나이까지 생존해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그는 협도이가가 자랑하는 삼문패혼도(三門覇魂刀)를 극성으로 익힌 절정의 고수였다.
“자, 그럼 대충 마무리된 것 같으니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지 말고 앉으세. 어차피 동향 지역 문파들인데 서로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나. 건가주가 회합을 소집했으니 건가주가 시작하는 것이 좋겠군.”
이지학의 말은 타당했기에 모두가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건청호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짧은 포권을 취한 뒤 말문을 열었다.
“그럼 사가회합을 시작하겠습니다. 낙양건씨세가, 해검진가, 협도이가, 맹창벽가는 백오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낙양 땅을 분할해 관리하며 타지 세력들의 침투를 방비해 왔습니다. 우리는 원나라의 패망과 명 제국의 시작을 모두 보았으며, 시대의 패자인 영락제가 정권을 잡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 사가의 역사야말로 낙양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진종극과 이지학은 물론, 벽태광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가의 역사는 곧 낙양의 역사.
모두 그 정도의 자부심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번에 위험이 찾아왔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 사가의 기반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큰일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러는 거요? 뜸 들이지 말고 말하시오!”
벽태광이 폭급한 성정을 감추지 못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건청호는 차분하게 그에게 기다려 달라며 양해를 구하고 말을 이었다.
“이 일은 강 대인께서 말씀하시는 게 나을 듯하군요.”
건청호는 정중하게 자리를 비켜 주었고, 강금산은 사가의 가주들에게 포권으로 인사를 한 뒤 상석에 올라섰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삼괴가 낙양으로 들어왔소이다.”
“……!”
건청호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의 눈빛이 흔들렸다.
“삼괴라니…… 이존(二尊), 사왕(四王), 삼괴(三怪)의 그 삼괴 말이오?”
“그렇소, 바로 그 삼괴요.”
정도문파에 십대고수가 있다면, 사마외도에는 이존사왕삼괴가 있다.
사혈련과 천마신교에 각각 적을 두고 있는 이존과 사왕, 그리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으면서 괴이한 행동을 일삼는 세 명의 초고수를 삼괴라고 부른다.
그들은 천하에서 손꼽히는 고수이며, 홀로 웬만한 중소 문파 하나를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
“그래서, 삼괴가 왔는데 뭐가 어떻다는 거요? 그냥 지나가는 걸 수도 있지.”
벽태광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옆에서 진종극이 혀를 찼다.
“쯧쯧쯧.”
“뭐야! 불만있나!”
“가주라는 자가 이렇게 생각이 짧아서야. 그냥 지나가는 거면 건가주가 이렇게 소집을 할 리가 있나. 뭔가 단서가 잡힌 것이겠지. 그리고 설령 지나가기만 한다고 해도, 한 사람이 중소 문파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는 고수들인만큼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이놈이 진짜!”
벽태광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가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생각을 하기에 앞서서 우선 말을 툭 내뱉어 놓고 본다는 게 문제다.
그는 진종극의 말이 옳다는 것을 듣고 나서 깨달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는 없어서 벌컥 화부터 냈다.
“한 번만 더 함부로 말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
그는 거칠게 숨을 씨근거렸다.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건청호는 그가 가만히 입을 꾹 다물자 강금산에게 다시 신호를 보내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음, 사실 삼괴가 낙양 땅에 들어온 것에는 이유가 있소. 삼괴가 낙양 땅에 들어왔다는 것보다 몇 배나 더 중요한 안건이기에…… 건 가주께서 나를 이 자리에 청한 것이오.”
진종극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삼괴가 들어온 것만 해도 큰일인데, 그보다 더 큰일이 있단 말입니까?”
“그렇소.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 적룡보는 하오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들을 수 있는 정보가 많은 문파요. 그리고 최근에 낙양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절대로 좌시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 버렸소.”
“무슨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이지학은 강금산을 향해 친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혈련이 본관을 산동성으로 옮기겠다고 하더이다.”
“산동성으로……?”
산동성은 북경 동쪽에 있는 반도 지역.
그리고 사혈련은 사파무림인들의 총본산으로서 수많은 고수들을 데리고 있는 무림강호의 거대 세력 중 하나였다.
“으음.”
“크흐음!”
“어허!”
낙양사가의 가주들은 모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본래 사혈련의 본문은 남만 근처인 운남 지역에 있었는데, 그걸 갑자기 산동성으로 옮긴다면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사혈련이 중원무림의 패권을 도모하겠다는 것!
그리고 그건 하남 지역에 속해 있는 낙양의 무가(武家)로서 쉽게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