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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공자 1권(11화)
3장 진천뇌정신공(震天雷霆神功)(4)
“산동성이라면…… 하남을 중심으로 우리와 정반대에 있는 곳 아니오?”
“그렇습니다. 산동성은 하남의 동북 방향, 우리 낙양은 서쪽 방향이니 정반대입니다.”
“그럼, 무림맹의 병력이 그쪽으로 많이 집중되겠구려.”
“그렇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바로 핵심을 짚어 내는 이지학에게 건청호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무림맹의 병력이 한쪽으로 집중되면 상대적으로 반대쪽은 비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방향에 있는 게…….”
“우리가 있는 낙양…… 이라는 이야기군.”
진종극과 벽태광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무림맹의 병력이 비다니, 즉 낙양 쪽의 방비가 허술해진다는 뜻인데…….”
“그래서! 대체 누가 우리 낙양을 노린다는 거야!”
벽태광이 언제나처럼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진종극도 이번만큼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사안은 그만큼 심각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로 낙양사가의 존망이 걸려 있는 일이다.
“조금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삼괴?”
“그렇습니다. 정사 양도의 중간에 있는 자들. 굳이 따지자면 사파에 가까운 그들이 낙양을 노리고 있습니다.”
건청호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고, 연륜이 풍부한 이지학과 머리가 비상한 진종극은 곧바로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벽태광은 아니었다.
“다른 곳도 많은데 그들이 왜 하필 낙양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
“낙양은 중요한 지역입니다. 중원무림이라고 부를 만한 곳은 소림이 있는 하남이고, 낙양은 서남쪽 지방에서 하남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통로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그 중요한 낙양을 삼괴가 욕심 낸다는 건가?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무리를 지으려고 하지 않던 삼괴가? 이렇게 갑자기?”
“왜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지 궁금하긴 하지만, 어찌 됐든 간에 그들이 무리를 지으려 한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무슨 정보?”
“강 대인.”
건청호의 시선을 받은 강금산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몇 달 전부터 일괴(一怪)가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정보를 들었소. 돈을 받고 싸우는 낭인들을 대대적으로 모으기 시작했고, 심지어 제자까지 몇 명 만들었다고 하더이다.”
“일괴라면…… 파문장괴(破門掌怪)?”
파문장괴 최만궁.
본래 기련산 노도인의 제자였으나 그 특이한 성정 때문에 결국 사부로부터 도망치고는 무림에서 온갖 기행을 일삼는 초절정의 고수였다.
그는 기분이 나쁜 날에는 기련신장(起聯神掌)이라 불리는 절정의 장공(掌功)으로 눈에 보이는 족족 무림문파의 현판을 부수고 다녔다.
이유 따윈 없었다.
그냥 쳐들어가서 보이는 족족 때려눕히고 현판을 박살 냈을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림공적이 되지 않은 건, 파문장괴는 항상 일대일의 비무로 싸울 때만 상대를 죽였기 때문이다.
정도무림이 원칙과 명분을 중요시한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들 본인의 강함을 최우선으로 하는 무인이다.
정당하게 싸우고, 그로 인해 다치거나 죽게 되는 것은 당연한 법.
게다가 어이없게도 최만궁은 기분이 좋을 때는 협사의 일을 하기도 했다.
어떨 때는 나쁜 방법으로 돈을 버는 부자의 집으로 쳐들어가서 재물을 전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고, 때론 부패한 관료를 일장에 쳐 죽이기도 했다.
때로는 사악한 마인, 때로는 정의로운 협사.
그래서 괴(怪)다.
이해할 수 없는 자.
선과 악으로 정의할 수 없기에 정사 양도의 중간인 괴(怪)가 되었다.
“일괴가 사람을 모으다니, 초절정고수가 무공을 전수해 준다는 뜻이니 낭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겠구려.”
“그렇습니다. 대충 전해 듣기로도 기천 명에 이르는 자들이 최만궁의 밑으로 모였다고 하더군요.”
진종극은 침중한 얼굴로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초절정고수인 일괴와 그를 따르는 일천 명의 무인이 낙양을 노린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오싹한 일이었다.
“강 대인, 대답해 주십시오. 삼괴가 모두 같은 뜻인 것은 확실합니까? 내가 듣기로는 몇 년 전에 삼괴가 크게 다투고 헤어져서 따로따로 다닌다고 들었습니다만.”
“안타깝지만, 다시 화해를 하고 함께 일을 도모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괴는 이미 홍화궁에 들러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문호를 개방한다는 포고를 내렸다고 하더군요.”
“홍화궁!”
진종극이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토해 냈다.
“사정이 있는 여류 무인들이 모여 있다는 그 홍화궁에 말입니까?”
“예. 아마도 이괴는 여류 고수들로 이루어진 문파를 만들려는 것 같습니다. 홍화궁주 역시도 이괴의 문하에 들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중이라더군요.”
“이럴 수가.”
이지학이 침통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단수괴녀(斷首怪女)도 문호를 열다니…… 허허, 말세로다, 말세야.”
단수괴녀 봉일래.
자를 단(斷)에 머리 수(首) 자다.
봉일래는 본래 청해 천마신교의 여인이었는데, 서열을 정하는 비무에서 남편이 죽은 뒤 천마신교를 원망하며 밖으로 뛰쳐나와 무림을 흔들어 놓은 일대의 여걸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죽음에 이른다는 소수마공(素手魔功)을 극성으로 익혔고, 누군가 여인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만약 그런 경우를 보면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았다.
단지 그것뿐만이라면 온갖 무림인들이 환호했을 터.
한데 그녀는 그런 자들을 보면 반드시 맨손으로 목을 잘라 버리는 바람에 결국 단수괴녀라는 무시무시한 별호를 얻었다.
게다가 잘못을 저지르기만 하면 상대가 민간인이든 무공을 익힌 무인이든 가리지 않고 살행을 저질렀기에 관가에서는 수배까지 내린 상태.
하지만 워낙 강한 인상을 남긴지라, 대부분 무림의 여걸들은 그녀를 흠모하기도 했다.
“낭인들을 모은 파문장괴와 홍화궁의 여인들을 모은 단수괴녀…….”
진종극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럼 삼괴는? 괴뢰마군은 무엇을 한답니까?”
파문장괴와 단수괴녀에 이은 세 번째 괴인.
괴뢰마군(怪雷魔君) 석숭이다.
그는 출신이 불분명한데, 그의 기묘막측한 신법과 은신술을 본 무림인들은 그가 살수의 후예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절정의 뇌공(雷功)을 익혔고, 그 뇌공을 익히기 위해 대륙 곳곳으로 번개를 맞으러 돌아다닌다는 소문은 한때 무림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었다.
“괴뢰마군은…… 딱히 드러난 게 없습니다.”
“그자는 항상 그렇지요. 딱히 드러난 선행도 없고, 그렇다고 드러난 악행도 없으니 가장 주의해야 할 자입니다. 한때 왜, 그런 소문도 있지 않았습니까?”
“괴뢰가 지나간 뒤에는 항상 시체가 남는다.”
이지학이 중얼거렸다.
“맞습니다. 그 소문 말입니다. 그 소문을 쫓던 개방의 협선풍(俠旋風) 대협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게 괴뢰마군이 한 일이라는 증좌가 없지 않았나?”
“그래서 개방이 대대적으로 나서지 못했지요. 하지만 솔직히, 절정의 끝자락에 오른 협선풍 대협을 어느 누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단 말입니까? 무공으로 보나 동기로 보나, 괴뢰마군이 한 짓이 분명합니다.”
“으음.”
“그는 채음보양(採陰補陽)을 통해 천하제일의 내공을 쌓았다는 음행마(淫行魔)를 내공 대결로 이겨 버린 적도 있습니다. 절정고수였던 천마신교의 황산삼마(黃山三魔)를 혼자서 몰살시킨 일은 지금까지도 유명합니다. 그 정도의 무공에 천하제일의 정보력을 지닌 개방이 전력을 다해 쫓고도 증좌를 찾아내지 못한 점까지. 괴뢰마군은…… 삼괴 중에 가장 위험한 인물입니다.”
이지학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종극의 말만 들어도 괴뢰마군이 얼마나 치밀하고 음험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건가주, 그래서 정확하게 뭘 말하고 싶어서 우릴 부른 것이오?”
“삼괴가 낙양 땅을 노리는 이상, 우리는 낙양의 전통 문파로서 그에 방비해야 합니다.”
“그야 당연한 이야기요. 하지만 어떻게?”
“사가의 힘을 하나로 합치는 동맹을 공고히 하고, 구체적인 규칙을 정하며, 그리고…… 소림에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소림!”
나머지 세 사람의 안색이 변했다.
소림사(少林寺).
대륙에 무공을 전파한 달마 대사가 바로 소림사의 승려다.
세상 모든 무공의 기원이라 불리는 무림의 영원한 태산북두가 바로 소림 아니던가.
하남무림에 포함되어 있는 낙양사가의 입장에서 소림은 존경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그늘과 마찬가지였다.
“자칫, 늑대를 피하려고 호랑이를 부르는 격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지학의 걱정은 타당했다.
“소림이 다른 지역을 욕심 내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그렇겠지만, 이런 식으로 한 번 길을 열어 주게 되면 후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소림과 대화를 나눠야 할 걸세.”
“소림이 그러길 원한다면 지금도 그럴 수 있습니다.”
쾅!
벽태광이 탁자를 내려치며 소리쳤다.
“아무리 천하의 소림이라도 낙양에서 우리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정도의 문파로 남아 있는 한 이래라저래라하지는 않을 겁니다. 소림은 그런 선은 확실하게 지킨다고 알고 있습니다.”
“미래란 알 수 없는 일이지! 안 그래도 최근에 소림이 문파의 영향력을 확장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사혈성이 산동성으로 오고 천마신교도 움직이기 시작하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소림은 정도무림의 뿌리가 아닙니까?”
“건가주, 왜 자꾸 소림의 편을 드는 거요!”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혹시 건가는 이미 소림과 먼저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니오? 낙양에 길을 열어 주는 대신 뭔가 이득을 취한다든가 말이지.”
“벽가주!”
점잖게 평정을 유지하던 건청호였지만, 그 말만큼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서릿발 같은 기세가 넘실거리며 회의실 전체를 내리눌렀다.
‘허어, 건가주의 무공이 상당하구나.’
‘기파가 눈에 보일 정도라니, 절정의 끝이다. 건가주는 소문보다 더 강해.’
진종극과 이지학이 놀란 눈으로 건청호를 바라봤다.
“말을 가려 하십시오! 우리 낙양건씨세가가 그 정도로밖에 안 보였단 말입니까!”
“난 그것도 마음에 안 들어! 왜 건씨 집안에만 낙양이 붙냔 말이야! 마치 사천당가처럼 건씨세가가 낙양을 대표하는 것 같지 않느냐는 말이지!”
“대외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다른 세가들도 다 낙양을 붙일 겁니다!”
“그거랑 이건 다르지!”
“다르지 않습니다!”
이지학이 나서서 두 사람을 다독였다.
“두 사람 다 진정하게. 그리고 벽가주가 이번엔 심했던 것 같군. 사과하게.”
“내가 왜……!”
“사과하시오. 낙양사가의 동맹을 깬다면, 그건 벽가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이지학과 진종극이 하나같이 건가주의 편을 들며 쏘아붙이자 벽태광은 벌레를 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세 사람의 압박을 이길 수는 없었기에 벽태광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한 채 고개를 숙였다.
“으음, 실언…… 이었군. 사과하겠소.”
“알겠습니다.”
건청호의 안색은 여전히 굳어 있었지만 그 이상 벽태광을 탓하지는 않았다.
“그럼, 자세한 사안에 대해 논의해 보겠습니다.”
건청호가 이야기를 시작했고, 진종극과 이지학이 중간에 한마디씩 말을 보태며 논의가 시작되었다.
종국에는 벽태광도 끼어들어 의견을 내놓았다.
점점 열기를 더해 가는 회의장.
낙양사가의 가주들의 회의는 해가 질 때까지 쭉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