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행운공자 1권(12화)
3장 진천뇌정신공(震天雷霆神功)(5)
***
“도련님, 벼락을 맞고 나서 내공이 늘어나셨다구요?”
“응, 그런 것 같아. 자꾸 몸에 힘이 넘쳐. 게다가 이렇게 물건에 손을 대면…….”
건소길이 동경(銅鏡:구리 거울)을 집어 들자마자 샛노란 전류가 번뜩이더니, 이내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으악! 도련님! 손! 손 데요! 빨리 놓으세요!”
“아냐. 하나도 안 뜨거워. 난 전혀 뜨겁게 느껴지지가 않아.”
건소길이 손에서 내려놓자, 새빨갛게 달아오른 동경은 탁자를 파고들며 연기를 뿜어냈다.
그러자 방득이 황급히 일어나서 창문을 열어젖혔다.
매케한 연기가 빠져나가자 동경은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탁자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정말 신기하네요.”
방득은 탁자에 박힌 동경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감탄을 토해 냈다.
“말로만 듣던 삼매진화 같아요. 어떻게 손에서 불을 뿜어낼 수가 있죠?”
“그러게. 나한테 뭔가 일이 벌어진 것 같긴 한데, 아직 잘 모르겠어.”
“음, 이건 가주 어르신께 말씀드려야 하는 게 아닐까요?”
“안 돼, 형. 아버님께 괜한 걱정을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아. 아직 확실하지도 않고.”
“그래도…….”
“확실해지면 내가 아버님께 말씀드릴게. 기다려 줘, 형.”
“음. 알겠어요, 도련님. 하지만 꼭 말씀드려야 해요.”
“응, 알았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건소길은 당장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무공을 가르칠 때만큼은 호랑이처럼 무서워지는 건청호다.
그러니 뭔가 변화가 생겼다고 하면 지금 이상으로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할 것 같았다.
‘그럼 나가서 애들도 못 만나게 되는데.’
건소길은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렇게 되도록 놔둘 수는 없다.
“도련님, 그러고 보니 혹시 엄청난 내공을 얻었다거나 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벼락을 맞고 내공이 늘었다니, 그건 기연이잖아요? 우와, 우리 도련님이 기연을 얻다니, 꼭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 같네요.”
“아냐, 그런 거.”
“아니긴요. 혹시 내공의 고수가 되었다면 어쩌실 거예요? 무공을 더 열심히 수련해서 초고수가 되셔야죠!”
“에이.”
건소길은 생각만으로도 진저리가 난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난 지금이 좋아, 형.”
“지, 지금이 좋다구요?”
어처구니없는 건소길의 말에 방득은 순박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할 말을 찾았다.
“도, 도련님은 꿈이 없으세요? 보통 일세의 영웅이 되고 싶어 하잖아요?”
“영웅?”
건소길은 코웃음쳤다.
“됐어. 그런 피비린내 나는 일 따위, 절대 안 해.”
“예에? 왜요? 초고수가 되어서 무림을 종횡무진하셔야죠.”
“이렇게 가족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매일 나가서 동네 애들이랑 놀고, 형이랑 뒷산이나 놀러 다니고…… 난 계속 이렇게 살고 싶어.”
“하지만…….”
“됐어, 형. 내가 혹시 천하의 기연을 얻어서 내공의 고수가 된다고 해도 말이지!”
건소길은 선언하듯 말했다.
“난 그냥 지금처럼 살 거야.”
씩 웃는 건소길의 웃음이 햇살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방득이 간식을 가져오겠다면 잠시 부엌으로 갔을 때, 방 안에 혼자 남은 건소길은 품 안에서 노란 책자를 꺼냈다.
구산의 정상에 있던 노인이 곱게 접은 장포와 함께 보관해 두었던 책이다.
“진천뇌정신공…….”
건소길은 잠시 단전이 있는 아랫배를 손으로 쓰다듬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책장에서 책 한 권을 빼냈다.
천자문(千字文).
하도 많이 읽어서 이젠 닳아 없어질 지경의 책이다.
건소길은 책의 표지만을 남긴 뒤 속장을 북― 찢어 냈다.
그러고는 그 안에 진천뇌정신공을 숨겼다.
책장에 꽂아 넣자 겉으로 봐선 그 안에 천하의 신공이 있는지 절대로 구분이 되지 않았다.
“됐어. 지금이 좋지 뭐.”
건소길은 벌러덩 뒤로 드러누웠다.
시간이 구름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4장 이괴(二怪)(1)
개의 후각은 사람보다 수백 배나 발달되어 있다.
훨씬 멀리 떨어진 곳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땅속에 묻힌 물건까지 찾아낼 수 있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쫓아야 할 일이 생길 때 사람들은 잘 훈련된 개를 이용하곤 한다.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구산에 한 마리의 개가 달리고 있었다.
온몸이 붉은색 털로 뒤덮인 개였는데, 몸집이 얼마나 큰지 웬만한 늑대도 물어 죽일 수 있을 것처럼 위압감이 느껴졌다.
개는 허공과 땅에 번갈아 코를 가져다 대며 냄새를 맡으며 결국 구산의 정상까지 올라왔다.
“돌무덤?”
어둠 속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의제가 돌무덤에 묻혔다는 건가?”
끼잉― 끼잉―
호랑이도 두려워하지 않는 신견(神犬)이 꼬리를 내린 채 낑낑거렸다.
상대가 그만큼 무서웠던 탓이다.
“적아(赤兒)야, 의제가 이곳에 묻혀 있는 게 맞느냐!”
끼잉― 낑―
“으음!”
달빛에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고급스러운 검은색 장포를 입고 있었는데, 팔꿈치 부근에서 소매가 잘려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노인임에도 체구가 건장했고, 드러난 양팔에선 잘 발달된 근육이 꿈틀거렸다.
한마디로 여러모로 범상치 않은 노인이었다.
“오라버니, 일단 확인부터 해보면 되지요.”
뒤에서 나타난 중년의 미부는 붉은색 비단 경장을 펄럭이며 말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미모가 퇴색하지 않았으나, 사내처럼 바지를 입은데다 유난히 사나워 보이는 눈매에선 얼음장처럼 차가운 빛이 흘러나왔다.
“그래, 그렇지.”
그는 허공에다 대고 손을 한 번 털었다.
그러자 차곡차곡 쌓여 있던 돌무덤이 부드럽게 떠오르더니 옆으로 우르르 쏟아졌다.
초절한 경지에 오른 허공섭물이다.
단 한 수에 자신의 경지를 드러낸 노인은 곧바로 돌무덤이 있던 자리를 쳐다보며 신음을 흘렸다.
“의제……!”
“석 동생……!”
노인과 중년의 미부가 모두 장탄식을 터뜨린다.
시신의 모습은 신기하면서도 처참했다.
코를 중심으로 좌측의 얼굴은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마냥 피부가 팽팽했고, 우측의 얼굴은 심한 화상을 입은 것처럼 징그럽게 녹아내려 있었다.
몸도 마찬가지다.
오른쪽의 몸은 오그라들고 구부러져 있었고, 좌측의 몸은 손등과 발가락까지도 탱탱했다.
죽기 직전 얼마나 처참한 고통을 겪었을지 익히 상상이 되었다.
“이건……!”
“주화입마로군요.”
“맞아. 그래그래! 그것도 환골탈태와 주화입마가 동시에 일어났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내공이 있었기에……!”
중년의 미부와 노인의 눈빛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각 좌측과 우측의 손목을 잡고 기를 유통시켜 보았다.
“일 갑자.”
“혈맥이 가닥가닥 끊어졌어요. 밖으로 모든 걸 분출하고 남은 기운이 이 정도라니, 석 동생은 어마어마한 내공을 쌓았던 게 분명하군요.”
“그렇군. 만약 이번 대법이 성공했다면 천하제일의 자리는 아마 석 동생이 차지했겠어.”
두 사람은 서로의 의견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삼괴(三怪)라 불리며 천하에 손꼽히는 고수인 두 사람이지만, 죽기 직전 석숭이 쌓았던 만큼의 내공을 만들려면 적어도 이십 년은 더 걸릴 게 분명했다.
“흐흐흐, 이렇게 허무하게 갈 줄이야. 누구한테 죽었다면 복수라도 해 주겠건만,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을 맞고 죽다니. 도대체 이걸 누구에게 탓한단 말인가!”
“오라버니, 이걸 좀 봐요.”
허공에 삿대질을 하고 있는 최만궁을 단수괴녀 봉일래가 불렀다.
“응?”
“번개가 몇 번이나 떨어졌어요. 네 번, 다섯 번…… 세상에! 번개가 한 곳에 이렇게나 많이 떨어지다니…….”
“뭐? 으음, 진천뇌정신공에 번개를 불러모으는 능력이라도 있었나?”
“아니면…….”
“…….”
봉일래가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문다.
그러자 최만궁이 벌레라도 씹은 것마냥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녀가 하려던 말이 짐작되었던 것이다.
천벌(天罰).
그동안 저지른 악행에 대해 하늘이 벌을 내렸다는 말이다.
최만궁과 봉일래가 그러하듯, 석숭도 뒤에 숨겨진 어두운 면이 있다.
선(善)도 아니고 악(惡)도 아닌 자들.
그래서 괴(怪)가 아니던가.
그러나 석숭은 주기적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도저히 못 견뎌 했다.
최만궁과 봉일래는 그러한 석숭의 습관을 알고 있었지만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음…….”
“으음.”
봉일래와 최만궁이 서로를 힐끗 쳐다봤다.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지만…….”
“그래도 하늘은 좀 다른 문제죠.”
“흐흐, 이거야 원. 한동안 자숙 좀 해야 하려나.”
“어차피 너무 급하게 일을 진행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잖아요. 이참에 좀 내실을 다지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죠.”
“좋아, 좋아. 그런데 얼마나?”
“삼 년. 어때요?”
“……너무 길지 않아?”
“새로 받아들인 애들이 있잖아요. 걔들 실력 좀 높이려면 그 정도는 있어야죠.”
“으음.”
최만궁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석 동생이 죽은 것도 그렇고, 이건 하늘의 계시라고 봐요.”
“그래. 이참에 내실을 좀 다져 보자고.”
최만궁은 죽어 버린 석숭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일 갑자의 내공은 쓸 수 없겠지?”
“가져가 봤자 쓰지도 못할 걸 뭐 하러 가져가요? 동생한테 선물로 남겨 두세요.”
“하긴, 의제의 내공은 특별하지. 진천뇌정신공이 없으면 누구도 쓰지 못할 거야. 음, 이제 그게 절전된 것인가. 뇌정신군의 비기가 여기서 끝나다니. 아깝구만, 아까워.”
“어쩔 수 없죠. 이젠 더욱 정신 차려야 돼요. 삼괴가 아니라 이괴가 되었으니 우리의 할 일이 더 많아졌어요.”
봉일래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렇듯 무감정했다.
“끄응, 늘그막에 이게 뭔 고생인지.”
“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예요. 그분이 말씀하시길, 낙양에서 난이 일어날 거라고 그랬죠. 그리고 그때가 기회라고 했어요.”
“십 년 뒤잖아, 그게!”
“십 년 뒤면 뭐 어때요? 난 여인들의 땅을 만들 수만 있다면 백 년도 기다릴 수 있어요.”
“흐흐, 차분한 의매는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난 힘들다, 이거지. 뭐, 당분간은 하늘을 봐서 참겠지만, 그래도 가끔 현판은 부숴야 돼.”
최만궁이 주먹을 불끈 쥐자 굵은 힘줄이 불끈 솟아올랐다.
“어련하시겠어요. 대신 작은 문파들로 만족하세요.”
“알았어, 알았어. 그거면 되지. 의매도 엄한 놈들 너무 죽이지 마. 의매처럼 대가리만 썩둑썩둑 자르면 무림에서 주목한다고.”
“알아요. 죽인 뒤에 조용히 처리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흐흐, 그래. 아! 그러고 보니 이 돌무덤은 누가 쌓은 거야? 의제가 죽었다가 벌떡 일어나서 돌무덤을 다시 쌓지는 않았을 것 아냐?”
최만궁은 자신의 농담이 마음에 드는 듯 흐뭇한 얼굴로 깔깔 웃어댔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누군지 고맙군요. 밖에 나와 있었으면 짐승들이 시신에 손을 댔을 텐데.”
“그래. 고마운 일을 했어. 대체 누굴까?”
“비 때문에 흔적이 많이 지워졌는데…… 사냥꾼이나 약초꾼 아닐까요? 적아에게 물어보세요.”
“그래. 적아야, 누구냐? 누가 여기에 또 왔었느냐?”
끄응―
적아는 한참 동안 냄새를 킁킁대더니, 모르겠다는 듯 혀를 헥헥대며 고개를 저었다.
며칠간 내린 장대비 앞에선 아무리 신통한 개라도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