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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공자 1권(13화)
4장 이괴(二怪)(2)


“오라버니, 여길 보세요!”
“응?”
그때, 봉일래가 커다란 나무 밑에서 뭔가를 발견한 듯 최만궁을 불렀다.
“이건……!”
“뇌기의 흔적이에요. 그리고 이 작은 발자국. 크기로 봐선 어린아이예요. 여인일 수도 있겠지만, 발가락이 눌린 흔적으로 봐선 그건 아니군요.”
최만궁이 두 눈을 부릅떴다.
“어린애가 왜 여기에 있어!”
“그 아이가 돌무덤을 쌓아 준 것 아닐까요?”
“응?”
“이런 곳에 올 만한 사람이 또 있겠어요? 게다가 이걸 보면…… 분명 이 아이는 석 동생의 몸에 손을 댔어요. 그때 뇌기가 흘러들어가는 바람에 이런 흔적을 남긴 거죠.”
“하긴 의제의 몸은 내공으로 넘쳐서 터지기 직전이었을 테니까. 누가 손을 대면 그쪽으로 내공이 홀라당 넘어갔겠지.”
“죽었을 수도 있겠네요.”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의 몸에 내공이 들어가면 쉽게 분출되어 버리니까 살았을 수도 있지. 운이 좋으면 뭐, 반 갑자 정도는 건졌을 테고.”
봉일래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었으면 어쩔 수 없고, 살았으면 내공을 얻었으니 기연. 돌무덤을 쌓아 준 보답을 하려고 했는데, 그 정도면 은원이 상쇄되었네요.”
“아니, 아니지. 우리 삼괴, 아니, 이괴가 은원은 확실히 해야지! 동생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으니 나한텐 은인이다. 다음에 살아서 만나게 되면 소원을 하나 들어줘야겠어.”
“그럼 저도 그러겠어요. 석 동생에 대한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죠.”
“흐흐, 우린 정말 일처리가 깔끔하다니까.”
최만궁은 박수를 치면서 좋아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 그런데 살아 있으면 어떻게 알아보지?”
“천하에 하나뿐인 뇌기(雷氣)를 지니고 있을 텐데 왜 못 알아보겠어요. 살아 있다면 분명히 무림에 나오게 될 거고, 또 소문이 나게 될 거예요.”
“흐흐흐, 역시 의매야. 머리가 좋다니까. 좋아, 그럼 이 일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지. 나중에 소문이 들리면 뭐, 한 번쯤 도와주기로 하고.”
“네, 그래요.”
최만궁이 양손을 허공에다 대고 휘휘 내저으니 바닥에 있던 돌멩이들이 떠올라 석숭의 몸 위에 가지런히 쌓였다.
손을 대지 않고 상대를 타격하는 벽공장에 허공섭물까지 섞인 극상승의 수법이었다.
“저도 한 손을 보태죠.”
이번엔 봉일래가 손을 내뻗었다.
하얗게 빛나는 손.
천하제일수공(天下第一手功)인 소수마공이 빛을 발하니 허공의 음기(陰氣)가 모여서 돌무덤이 축축하게 젖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쩡! 하고 딱딱하게 얼어붙으면서 돌무덤을 단단하게 고정시켜 버렸다.
“이러면 일 년은 갈 거예요. 누가 작정하고 부수지 않는 한 그 이상도 가겠죠.”
“이런 뒷산의 정상에 와서 돌무덤을 부술 놈이 누가 있겠어.”
“그렇죠. 우리 동생에 대한 애도는 이쯤해요.”
“흐흐, 그러지. 나중에 술이나 가져와서 한잔 뿌려주자고.”
“그래요.”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새처럼 가벼운 몸놀림으로 산을 내려온 두 사람의 앞에 수백 명의 수하들이 몸을 숙였다.
“사부!”
“태사부님!”
팔꿈치 부근에서 옷이 찢어진 일백 명의 사내들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포권을 취한다.
그러자 붉은색 경장을 입은 일백 명의 여인들이 소매를 모으고 깊이 허리를 굽혔다.
“흐흐. 괴랑대(怪狼隊) 녀석들아, 왔느냐?”
“예, 사부!”
파문장괴 최만궁이 받아들인 일백 명의 제자들이 극도의 공경을 담아 외친다.
“홍화(紅花), 여기까지 올 필요는 없었는데.”
“당연히 와야 할 일이죠, 사부님.”
삼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다.
그녀가 바로 홍화궁의 궁주였던 홍화이며, 지금은 단수괴녀 봉일래를 사부로 모신 여인이었다.
그리고 본래 홍화궁에 속해 있던 궁녀들은 홍화를 사부로, 그리고 봉일래를 태사부로 모시게 되었다.
“흐흐, 계획을 좀 미루기로 했다.”
“예? 어째서……?”
“하늘이 돕지 않아서 말이지.”
“예?”
괴랑대의 사내들이 어리둥절해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봉일래가 그들이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홍화에게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낙양사가가 생각보다 더 강한 모양이다. 지금 싸우면 너희들이 피해를 입겠어.”
“저희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사부님. 얘들아, 그렇지 않니?”
홍화궁도 일백 명이 즉시 소리쳤다.
“낙원을 위해서라면 저희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태사부님!”
“장하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 애초에 그리 급박한 일은 아니었다. 삼 년.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야.”
“삼 년이나……!”
“삼 년‘밖’에지. 너희들의 무공을 한 단계 끌어 올리려면 그것도 빠듯해.”
봉일래의 말에 동의하듯 최만궁이 고개를 끄덕인다.
“앞으로 우리의 무공을 익히려면 혹독하게 수련해야 할 것이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고 느껴질 거야.”
“견딜 수 있습니다!”
괴랑대원들의 얼굴에 기대와 불안의 기색이 반반씩 떠올랐다.
“흐흐, 그리고 오면서 의매랑 이야기했는데 말이지, 우린 운남으로 가는 게 좋겠다.”
“운남이라면…….”
“사혈성이 비운 곳 말이다. 거기서 제대로 한 번 놀아 보자고.”
최만궁이 손을 흔들자 괴랑대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싸움을 즐기는 자.

그게 괴랑대에 들어가는 조건이다.
“가자.”
봉일래가 명령을 내리자 홍화궁도들이 조용히 그 지시를 따라 움직였다.
최만궁과 봉일래.
괴랑대와 홍화궁도들.
그들은 구산을 한 번 올려다본 뒤 몸을 뒤로했다.
“삼 년 뒤에 보자고.”
손을 흔드는 최만궁의 뒤로 낙양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5장 건소길(乾小吉)(1)


“그 인간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틀림없어!”
낙양청과점(落陽靑果店)의 주인인 장봉명은 씹던 사과를 튕겨 가며 열변을 토했다.
하남(河南) 해검진가(解劍秦家)의 외당 당주인 임무택은 얼굴에 튄 건더기들을 손으로 털어내며 온화한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무던히 애써야만 했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거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허어, 이 사람. 말귀를 잘 못 알아들으시는구만. 뭐긴 뭐겠소, 운이 지독히 좋다는 거지.”
“운(運)이라니……?”
임무택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 혹시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겁니까?”
“에잉, 고작 그 정도면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소! 그 인간은…… 뭐랄까, 보는 사람이 약이 오를 만큼 운이 좋단 말이오!”
“예?”
“에이, 답답한 사람 같으니.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니까, 나라를!”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걸 자기 눈으로 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임무택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장봉명을 앞에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운이 좋다니!
누군가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보통은 성품이라든가, 학식이라든가, 지위 혹은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오는 법이다.
‘저 사람은 운이 좋아!’라는 말이 나오는 일은 극히 드문 것이다.
이 세상에 ‘운’이 개성이 되는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 혹시 공부도 안 했으면서 운 좋게 과거시험에라도 붙은 겁니까? 아니면 어디서 우연히 보물을 주웠다든지?”
“이 사람 참! 말이 안 통하는구만, 말이!”
장봉명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더니 분노를 담아 들고 있던 사과를 우적우적 씹었다.
임무택의 눈썹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그럼 대체 운 좋은 사람의 뜻이 뭐란 말인가.
“그 공자님은 전생에 대단한 덕을 쌓은 게 분명하우.”
“예?”
“이런저런 말 들을 것 없어요. 안 그래도 곧 올 시간이 됐으니까.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고 하지 않수.”
장봉명의 아내로 보이는 중년 여인이었다.
푸근한 인상을 지닌, 전형적인 동네의 인심 좋은 아낙의 모습이다.
임무택이 이 여인에게 다시 한 번 물어볼까 고민하는 사이, 장봉명이 박수를 치면서 과장되게 말했다.
“우리 안사람 유식하기도 하지! 문자 쓰는 것 좀 보시게! 내가 전생에 무슨 복이 있어서 이렇게 장가를 잘 갔을까! 아름답고, 현명하고, 현숙한 우리…….”
“당신.”
장봉명의 부인은 임무택을 대할 때와는 정반대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이며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녁에는 못 나가요.”
“……어떻게든 안 됩니까. 부인?”
“꿈도 꾸지 말아요.”
“죄송합니다.”
날카로운 눈빛 한 번에 정중한 사죄가 나온다.
‘쯧쯧, 평소에 얼마나 죄를 지었으면.’
임무택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 정도로 비굴한 모습이 되었다면 바람을 피운 것이든, 도박을 해서 가산을 탕진했든 분명 남편 쪽에서 뭔가 죄를 지었을 것이다.
“왔네요.”
“왔습니까?”
임무택은 마침 잘되었다는 심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름은 많이 들었다.
같은 하남 지역 세도가의 핏줄 중 하나로서.
그리고 낙양 바닥에서 모르는 이가 단 한 사람도 없는 유명인으로서.
과연 웅성거리는 소음과 함께 길바닥이 시끌벅적해지고 있었다.
임무택은 청과점의 구석으로 몸을 숨기며 상황을 지켜봤다.
길목을 오가는 사람들만 해도 수십 명이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밝게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며 걸어오는 청년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깨끗하고 정갈한 청색 화복을 입고 머리엔 상투를 틀어 올려 관모를 썼다.
나이는 올해로 열여섯.
고생 한 번 안 해 보고 자란 것 같은 새하얀 피부에 태산준령처럼 우뚝 선 콧날, 밝고 순해 보이는 눈빛을 지닌 호감이 가는 미남이었다.
“저 사람이…….”
옆에서 장봉명의 아내가 고개를 끄덕여 확인을 해 주었다.
저 사람이 바로 낙양건씨세가의 장남.
건소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