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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공자 1권(14화)
5장 건소길(乾小吉)(2)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오늘도 사과가 좋네요.”
싱글싱글 웃는 얼굴엔 구김살이 하나도 없다.
한 번 대화를 나눠 보면 백이면 백, 모두가 호감을 가질 성격이다.
낙양청과점의 안주인이자 장봉명의 아내는 그런 건소길을 반가운 목소리로 맞아 주었다.
“그럼 물론이지요. 우리 청과상이 낙양에서 제일인 건 이 동네 사람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하하, 그렇지요. 우리 어머니도 낙양청과점의 과일이 최고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세요.”
“어머나, 고마우셔라.”
“오늘도 사과 다섯 개만 주세요.”
“매번 고마워요. 오늘은 괜찮은 배가 몇 개 들어왔는데, 하나 넣어 둘 테니 먹어 봐요.”
“배가 벌써 나왔어요? 아직 여름인데?”
“천진 쪽에는 벌써 추워진 지역이 있다네요.”
“이야, 벌써 배를 먹다니. 오늘 입이 호강하네요.”
건소길은 어딘가 느긋하면서도 부드러운 분위기를 가진 청년이었다.
그는 대금을 치르고 황지(黃紙) 보따리에 싸인 사과와 배를 받아 들자마자 사과 하나를 꺼내 하나를 우적 씹었다.
“아, 달다! 역시 여기 사과가 최고예요.”
“호호, 고마워요.”
“그런데 저분은 누구세요? 매번 절 째려보시는 주인 아저씨 말고 다른 사람이 있는 건 처음 보는데요?”
“여보, 또 공자님을 불손하게 쳐다보고 있었어요?”
“아, 아니. 안 그랬어!”
낙양청과점의 주인인 장봉명은 화들짝 놀라며 부인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부모의 원수를 보는 듯한 눈으로 건소길을 노려봤다.
“괜히 손님께 시비 걸 생각이면 안에 들어가 있어요!”
“그, 그런…….”
“어서요!”
아내의 나직한 일갈에 안쪽으로 들어가는 장봉명.
그런 그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저 사람은…….”
낙양청과점의 안주인은 가게 구석에 서 있는 사내를 힐끗 쳐다본 뒤에 설명해 주었다.
“그냥 여행객이래요. 길을 좀 묻고 있었네요.”
“아, 그래요? 저기요, 멀리서 오셨어요?”
손을 흔들며 쾌활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그러자 평범한 회갈색 무복을 입은 장년의 사내가 잠시 당황하다가 대답했다.
“하, 하남에서 왔습니다.”
“하남? 그렇게 말씀하시면 여기가 다 하남이죠. 우리 낙양도 하남인데.”
아삭―
건소길이 사과를 한입 더 깨물어 먹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정주 쪽에서 오셨어요, 아니면 개봉부 쪽?”
“……정주 쪽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어? 얼마 전에 정주에 대해 뭔가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건소길은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결국 그게 뭐였는지는 생각해 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가게 구석에 서 있던 장년의 사내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저는 정주에는 가 본 적이 없어서요. 거기가 소림사에 더 가깝죠? 가 본 적 있으세요?”
“예. 몇 번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이야, 부럽네요. 저는 낙양 땅에 매인 몸이라 함부로 나다니지 못하는데. 부럽습니다, 아저씨.”
건소길은 그렇게 말한 뒤 씩 웃으면서 남아 있는 사과를 마저 깨물어 먹었다.
그러자 장년 사내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웃는 것도 아니고 찡그린 것도 아닌, 기묘한 얼굴이 되었다.
“저는 그만 가 볼게요. 많이 파세요, 아주머니.”
“조심해서 가요, 공자님.”
건소길이 몸을 돌리고, 청과점의 안주인이 손을 흔들며 배웅한다.
이대로 헤어졌다면 모두가 행복한 평범한 시장통의 풍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낙양청과점의 주인인 장봉명이나 그의 인심 좋은 부인은 일이 그렇게 순탄하게 풀리지 않을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두두두두―

“어어!!”
“위험해!”
대로를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바다가 갈라지듯이 양옆으로 흩어졌다.
건소길이 마침 대로변으로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대로의 중심을 미친 듯이 달리던 마차가 갑자기 방향을 꺾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말들이 울부짖었고, 마차는 옆으로 쓰러질 것처럼 크게 기울었다.
히히힝!!
우연일까, 필연일까.
확― 하고 바람이 분다 싶은 순간, 건장한 말 두 마리가 건소길에게 육박했다.
“어라?”
건소길은 제자리에서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커다란 말발굽들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뒤에선 균형을 잃은 마차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끌려오는 중이다.
“피하시오!!”
뒤에서 중후한 경고가 들려왔으나 이미 늦은 일.
말발굽은 코앞으로 다가왔고, 건소길의 눈앞이 새카맣게 물들었다.
쾅!!
육중한 충격이 지면을 흔든다.
동시에 뿌연 흙먼지와 함께 시뻘건 색깔이 하늘을 수놓았다.

***

하북팽가의 둘째 아들, 팽소뢰(彭素雷)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
얼마나 화가 났느냐면 평소에 하늘처럼 모시던 큰형님의 말도 안 듣고 무작정 가문의 마차를 끌고 달려 나왔을 정도다.
이유는 간단했다.

도둑놈!

정기적인 행사 때문에 하남 소림사에 왔다가 순간의 실수로 가문의 신물인 오호신패(五虎神牌)를 도둑 맞은 것이다.
“귀영신도(鬼影神盜)인지 귀영신마(鬼影神魔)인지, 잡히기만 해 봐라. 가만히 안 둘 테다!”
팽소뢰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어쩌다 재수가 없던 거라면 또 모를까, 돌이켜 생각하면 할수록 팽소뢰는 가문의 신물을 잃어버린 것이 자신의 탓만 같았다.
멍청하게도 귀영신도라 불리는 도적놈을 자기가 직접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소개시켜 주었던 것이다.
신기에 다다른 손놀림과 경공술로 전국에 명성이 자자한 자를 스스로 가문의 품 안으로 불러들였으니, 그야말로 신물을 ‘제발 가져가 주십시오’ 하며 양손으로 갖다 바친 셈이다.
“그 쳐 죽일 놈. 나한텐 석가장의 아들이라 해놓고는!! 이 가증스러운 자식!”
설마 소림사가 주최하는 자리에서 신분을 속일 만큼 간 큰 놈이 있겠나 하고 마음을 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게다가 이야기를 나눠 보니 어찌나 마음이 잘 맞는지!
은자 서른 냥짜리 술상을 팍팍 사면서 무림 영웅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풀어내며 찬사를 늘어놓는데, 날이 밝을 때까지 즐겁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형동생 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나 마음이 잘 맞았던 것도 그쪽에서 작정을 하고 달려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분이 치밀어 올랐다.
“에이잇, 속은 놈이 병신이지! 내 탓이다, 다 내 탓이야! 누구를 탓할까!”
쿵! 쿵!
팽소뢰는 답답한 가슴을 주먹으로 몇 번이나 후려친 뒤 벌떡 일어나 앞쪽을 향해 외쳤다.
“관 노(老)! 더 빨리 달려요! 굼벵이도 이것보단 빠르겠네!”
그러자 마부석에 있던 노인이 죽는 소리를 냈다.
“아이구―! 안 됩니다, 도련님. 관도에서 이 이상 속력을 내면 큰일 나요.”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니까!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말씀드렸잖아요!”
“사람이 많습니다, 도련님. 이 이상 채찍질을 하다가는 저도 말들을 다룰 수가…….”
“됐어요! 그럼 내가 할 테니까 관 노는 좌석에 앉아요!”
아무리 숙련된 마부라도 무공을 익힌 무인의 반응속도와는 차원이 다른 법이다.
답답해진 팽소뢰는 마차의 옆면을 붙잡고 마부석으로 휙― 뛰어들었다.
“도, 도련님, 그냥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귀한 분이 어찌 이런 걸 직접 하려고 하십니까.”
“이런 게 뭐 어때서! 별일 아닌데다,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니 그냥 나에게 맡겨 둬요!”
팽소뢰가 한 번 고집을 피우면 절대로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는 관 노는 어쩔 수 없이 마부석의 옆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팽소뢰는 품 안에 있던 자그마한 자기병의 마개를 열고 코로 냄새를 들이마신 뒤 다시 마개를 닫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오호신패에는 천리추종향(千里追從香)이 묻어 있었다.
일정한 시간마다 짝이 되는 냄새를 맡으면 그 냄새의 방향이 어느 쪽인지 알 수 있는 도구다.
허공에다 대고 코를 몇 번 킁킁댄 팽소뢰는 오호신패가 서북 방향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친히 느낄 수가 있었다.
냄새의 농도로 보면 남은 거리는 일 리(里) 정도?
처음 추적을 시작할 때의 거리가 삼십 리도 넘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젠 지척이나 다름없었다.
‘좋아! 얼마 안 남았다!’
귀영신도가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더더욱 급해졌다.
팽소뢰는 대로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비키라고 소리치며 말들에게 한층 더 박차를 가했다.
“비키시오! 급한 일이오! 미안하오! 비키시오!”
거센 말발굽 소리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난다.
“뭐야, 이거!”
“젠장, 낙양대로가 다 자기 건 줄 아나!”
몇몇이 들으라는 듯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팽소뢰는 개의치 않았다.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북 땅에서 어딜 가도 이름이 통하는 명가에서 태어난 팽소뢰다.
하지만 그는 정도(正道)의 명문무가(名門武家)라는 팽가 특유의 엄한 가풍 때문에 지금껏 단 한 번도 제멋대로 굴어 본 적이 없었다.
가문의 신물이 걸려 있지만 않았다면 이번에도 이런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팽소뢰는 최대한 속력을 내되, 사람들을 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말을 몰았다.
그 생각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길가의 노점에서 음식을 먹고 있던 사내가 실수로 국수를 엎지르면서부터였다.
“어엇!”
팅―
무공을 익힌 팽소뢰의 눈에는 국수 그릇이 엎어지고, 그 바람에 튕겨 나온 젓가락 하나가 바닥에 부딪친 후 대로의 중심으로 튀어오르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젓가락은 대나무 재질로 만들어진다.
옆에서 오는 충격에는 약하지만 수직으로 오는 충격에는 매우 강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시점이 절묘했다.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던 젓가락은 하필!
하필!
하필……!
마차를 끌고 가던 말의 발굽이 닿는 순간에 땅과 수직의 각도를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