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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공자 1권(15화)
5장 건소길(乾小吉)(3)


푸욱!!
히히히힝―!
“허엇……!”
젓가락이 발에 박힌 하북팽가의 준마가 발작하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펄쩍 뛰었다.
팽소뢰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런 우라질!!’
마른하늘의 날벼락도 분수가 있지.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팽소뢰는 황급히 팔을 움직여 고삐를 있는 힘껏 반대편으로 잡아당겼으나 이미 마차는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우와앗―!”
마차가 갑자기 대로변으로 달려들자 놀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미리 마차를 주시하고 있던 사람들은 참새 떼마냥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피하지 못한 것은 단 한 사람.
마침 청과점의 안쪽에서 황지 보따리에 과일을 싸서 들고 나오던 한 명의 청년뿐이다.
그는 죽음이 목전에 다가오는 데도 불구하고 가게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피할 수 없다!’
팽소뢰는 당장 닥쳐올 미래를 예견했다.
한계까지 치달리던 마차가 균형을 잃은 상황이다.
무공을 익힌 팽소뢰가 청년의 입장이라 해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마차는 빨랐다.
죽는다.
저 청년은 분명히 죽는다.
그리고 자신은 마차로 평범한 사람을 죽인 최초의 팽가 사람이 될 것이다.
“으아아앗―!”
결국 팽소뢰는 참고 있던 비명을 질렀다.
고삐를 한계까지 잡아당기고, 온몸을 비틀어 청년이 있는 반대 방향으로 젖혔다.
그에 마차가 허공에 붕 뜨면서 바퀴가 맹렬하게 헛바퀴를 돌았다.
팽소뢰는 청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굳어 버린 모습을 똑똑히 목격했다.
그리고…….
쾅!!
뿌연 흙먼지와 함께 붉은색 색채가 허공에 비산했다.

***

주변은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이 마차에 치였다.
단지 그뿐이었다면 주변에 있던 구경꾼들이 비명을 지르든 허둥대며 마차로 달려가든 뭔가를 했을 것이다.
다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누구나 가져야 할 인지상정(人之常情)의 태도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번엔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왜냐면…… 사고를 당한 당사자가 건소길이었기 때문이다.

“뭐야, 건 공자였어?”
“에이, 그러면 괜찮겠지 뭐.”
“마차 주인은? 괜찮나?”
“그렇지, 그렇지. 마차 주인이 더 큰일이지.”
“어이쿠, 괜찮은가 보구만! 저걸 보게나!”
사람들의 걱정과 달리 마차를 끌고 있던 팽소뢰는 멀쩡했다.
그는 충격을 받는 순간 이미 마차 옆으로 뛰어내린 상태였는데, 몸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채 멀쩡했다.
“아……!”
팽소뢰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황급히 그가 마차로 받은 상대를 향해 달려갔다.
“이, 이보시오! 괜찮소? 이보시오!”
팽소뢰는 건소길이 당연히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거대한 쌍두마차가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받아 버린 상태다.
그러고도 멀쩡하다면 사람이 아니라 금강불괴의 야차일 터.
“으음.”
“이럴 수가? 살아 있소?!”
하지만 건소길은 멀쩡했다.
그것도 도리어 팽소뢰가 화들짝 놀랄 만큼 멀쩡했다.
“큰일이다!!”
“헛?!”
팽소뢰는 몸을 벌떡 일으키는 건소길에게 몸을 비켜 주었다.
그리고 한 번 더 놀랐다.
건소길의 두 눈이 새카맣게 빛나고 있던 것이다.

“으앗!”
건소길은 바닥에 누운 채로 눈을 번쩍 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시커먼 피부의 흑마였다.
불길한 느낌에 고개를 돌려보니 튼튼하고 단단해 보이는 말발굽이 오른쪽 귀 옆에 기둥처럼 박혀 있었다.
한 치만 옆으로 어긋났어도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이번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낙양청과점에서 얻은 배 한 알이 바닥에 깔려 있고, 그 위에서 마차 바퀴가 헛바퀴를 뱅뱅 돌고 있었다.
말발굽과 마차 바퀴의 사이.
건소길은 바로 그곳에 누워 있던 것이다.
“큰일이다! 큰일이야!”
이런 대형 사고에도 불구하고 피해는 기적적으로 적었다.
마차는 부서지지 않았고, 건소길도 멀쩡했다.
오로지 낙양청과상이 앞에 쌓아 두었던 사과 상자 두 개가 박살 났을 뿐이다.
하지만 건소길은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천운으로 목숨을 건졌다?
보통 사람에겐 좋은 소식일지 몰라도 건소길에게는 불행의 전조나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에 집을 찾아온 고승(高僧)은 건소길을 향해 천칭의 좌 아래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했다.
한쪽이 무거우면 다른 한쪽에 무게추를 더해야 균형이 맞는 법이니 항상 중도의 삶을 살아가라고 말이다.
건소길은 벌떡 일어났다.
눈앞에서 누군가 얼쩡거리기에 쳐다보니 몸매가 다부진 청년이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저는 괜찮습니다. 앞으론 조심해 주세요.”
“자, 잠깐만! 이보시오!”
“혹시 더 할 말이 있다면 건씨세가로 와서 건소길을 찾아 주세요. 그럼 저는 급하게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건소길은 마음이 급했다.
한시라도 지체하다가는 원하지 않는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그는 다른 사람과 부딪치지 않도록 주의하며 대로를 내달렸다.

“뭐지? 내가 헛것을 보았나?”
팽소뢰는 빠른 속도로 사라져 버리는 건소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눈동자는 물론이고, 흰자 부분까지 새카맣게 보이던 그 기괴한 눈이라니!
무림에 이름난 안공(眼功) 중에 그런 게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그 어떤 것도 눈이 까맣게 변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기묘한 기분이다.
소름이 오싹 돋고, 등골이 자르르 떨린다.
그는 옆에서 관 노(老)가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킬 때까지 멍하니 서 있었다.
“어이구, 어이구!”
“아! 관 노, 괜찮습니까? 다친 데는 없어요?”
“도련님께서 받아 주셨으니 괜찮습니다. 도련님은 괜찮으세요?”
“예. 저야 멀쩡하죠.”
팽소뢰는 바지 밑단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하북팽가의 자손들은 대대로 호골(虎骨)이다.
용맹하고 강인하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생 뼈 한 번 부러지지 않는 강골이다.
거기다가 무림오대세가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절정의 무공까지 지녔으니, 마차 전복 따위로는 그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게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대로에서 그런 속도로 달리다간 마차를 다룰 수 없을 거라구요!”
“그래. 내 잘못이야, 관 노. 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에요.”
“둘째 도련님!”
“그만. 나중에 이야기하죠.”
관 노의 말에 정신이 든 듯 팽소뢰의 눈빛이 강인해졌다.
그는 세상에 둘도 없는 가문의 신물을 쫓는 중이다.
다른 것에 정신을 빼앗길 틈이 없었다.
‘낙양건씨세가라…… 나중에 한 번 찾아가 봐야겠어. 사과도 하고, 아까 그게 뭐였는지도 알아보고.’
팽소뢰는 전복된 마차를 향해 다가갔다.
다리가 부러져 낑낑대는 말의 고삐를 풀어주고, 마차의 지붕 쪽을 양손으로 단단히 붙잡았다.
“흐읍!”

철혈패왕공(鐵血覇王功)!

하북팽가가 가진 강한 무공들 중에서도 가장 위력적이라서 가문의 직계들만 익힐 수 있다는 신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팽소뢰의 양팔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고 잿빛의 내공이 눈에 보이도록 유형화되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일천 근은 될 법한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팽소뢰는 전설에 나오는 천부의 역사마냥 마차를 혼자서 들어 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오오오―!”
“우와!”
주변으로 몰려든 구경꾼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무림인’이라느니, ‘내공’이라느니 하는 말들이 들려온다.
중간에 식견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잿빛의 내공이면 철혈적성도의 하북팽가가 아니냐는 말도 들려왔다.
파삭!
‘어?’
뭔가가 잘못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팽소뢰가 마차를 제대로 세우는 순간, 미리 충격이라도 받았던 것인지 마차의 바퀴가 박살 나면서 한쪽이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팽소뢰가 반대쪽으로 기울어지려는 마차를 황급히 붙잡는 순간, 갑자기 제자리에 앉아 있던 말이 버둥거리며 뒷발질을 했고, 튕겨진 흙덩어리들이 팽소뢰의 얼굴을 강타했다.
“퉤! 퉤! 뭐야, 이게?!”
양손으로 마차를 붙잡아야 했던 팽소뢰는 당연히 피할 수 없었다.
만약 이게 누군가의 암살 시도였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다.
졸지에 흙을 뒤집어쓴 팽소뢰가 인상을 쓰며 머리를 흔드는 순간, 멀쩡했던 다른 쪽 바퀴까지 박살 나면서 마차가 주저앉았다.
빡!
“컥!”
극렬한 고통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사람은 갑자기 큰 고통을 느끼면 숨도 못 쉬고 꺽꺽거리기 마련이다.
주저앉은 마차에 발가락 열 개를 한꺼번에 찧은 팽소뢰가 바로 그랬다.
발톱과 관절 사이.
사람에게 가장 고통을 주는 부분.
그는 입을 쩍 벌리고 굳어 있다가 자신이 대하북팽가의 이공자라는 사실도 잊고 발가락을 붙잡고 방방 뛰어다녔다.
“끄아아아―!!”
연이어 찾아온 믿을 수 없는 불행.
팽소뢰의 비명은 한참 동안이나 낙양대로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