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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공자 1권(16화)
5장 건소길(乾小吉)(4)


***

“도대체…….”
해검진가의 외당 당주 임무택은 사고 현장을 벗어나고 있는 건소길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낙양사가 중 하나의 외당 당주를 맡을 정도면 온갖 일을 경험했고, 강호무림의 경험 또한 풍부해야만 한다.
그런 임무택으로서도 방금 전에 눈앞에서 벌어진 일 같은 건 난생처음 봤다.
“대단하지요?”
낙양청과상의 여주인이 웃으며 물었다.
“대단하다기보다는 뭐랄까…….”
임무택은 잠시 말을 골랐다.
“신기하군요.”
“호호, 맞아요. 신기하죠.”
“이런 일이 자주 있습니까?”
“아니요. 별거 아닌 사건들은 자주 있지만 이렇게 큰 사건은 저도 오랜만이네요. 거의 석 달에 한 번 꼴인 것 같아요.”
임무택의 얼굴이 아연해졌다.
“석 달에 한 번? 목숨이 위태로운 사건이 석 달에 한 번 꼴로 일어난단 말입니까?”
“항상 아무도 다치지 않고 끝나기 때문에 목숨이 위태롭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네요.”
“방금 전 그 일이 목숨이 걸려 있는 게 아니면 뭡니까? 커다란 마차가 달려들었는데. 운이 좋았으니 다행이지, 자칫 잘못했다간……!”
“바로 그거예요, 운. 도련님은 하늘이 지켜 주는 것처럼 운을 타고나셨다니까요?”
임무택은 뭐라고 말을 하려는 듯 뻐끔거리다가 꾹 다물었다.
여주인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길에서 돈을 줍는 것은 기본이고, 사고가 나려고 치면 항상 아슬아슬한 차이로 도련님은 다치지 않아요. 그야말로 신선이 보살펴 주시는 분이죠.”
“사람들이 싫어하진 않습니까?”
“왜요?”
여주인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어찌 됐든 간에 가는 곳마다 사고를 치는 것 아닙니까?”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 중에 낙양건씨세가 도련님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항상 밝고, 인정이 많으시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푸는 인덕도 갖추셨죠. 동네 아이들은 전부 도련님을 형님으로 받들면서 따르고, 특히 가난한 아이들은 모두 도련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 정도입니까?”
“이것도 많이 줄인 거예요. 손님이 왜 도련님에 대해 알아보시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도련님은 동네 사람들에게 모두 사랑받고 있는 좋은 분이라는 것만 알아주세요. 저분은 단 한 번도 우리들한테 피해를 준 적이 없답니다.”
이래서 여인의 직감은 무섭다는 거다.
임무택은 잠시 움찔했다가 애써 냉정을 유지하며 되물었다.
“피해가 없다니요. 사과 두 짝이 박살 났는데도 말입니까? 게다가…….”
넘어진 마차를 세우던 무림인이 동네가 떠나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방방 뛰어다니고 있었다.
마차 바퀴가 부서지면서 발이라도 찧은 모양이었다.
“……마차도 부서진 모양인데.”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나중에 도련님이 배상해 주실 테니까요. 아마 저녁쯤에 세가의 총관님께서 찾아오실걸요? 저분이야 뭐, 대로에서 그 정도 속도로 달렸으니 자업자득이죠.”
“으음, 건씨세가는 주변에 신망을 얻고 있는 모양입니다?”
“물론이죠. 여기 사람들은 관청보다 건씨세가를 더 믿는다구요.”
대단한 이야기였다.
그것만으로도 낙양건씨세가가 인근에서 얼마나 신뢰를 받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 건씨세가의 장남이자 유일한 후계자, 항상 밝고 친절한 분, 도박꾼들 사이에선 재신(財神)이라 불리고, 약초꾼들 사이에선 산신령이 점지한 분이라고 불리는 분. 어떤 사람들은 선계(仙界)에서 내린 소동(小童)이 자라서 도련님이 되었다고 말해요. 그런 소길 도련님을 우리가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뭐라고 부릅니까?”
“행운공자.”
“예?”
낙양청과산의 여인은 또박또박하게 다시 말해 주었다.
“하늘이 내린 운을 타고난 분. 그래서 우린 소길 도련님을 행운공자(幸運公子)라고 불러요.”


6장 천벌사신(天罰死神)(1)


곧바로 낙양 동문 쪽에 있는 다리 밑으로 달려간 건소길은 옹기종기 모여서 타령 연습을 하고 있던 거지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건소길을 보자마자 반색을 하면서 그를 반겼다.
“형!”
“형님!”
열 살 이전의 어린아이들은 형이라 부르고, 그 이상 나이를 먹은 애들은 깍듯하게 고개까지 숙이며 형님이라고 불렀다.
“오셨습니까!”
“별일은 없으십니까?”
가느다란 목소로 어른의 말투를 따라 하는 아이들은 참으로 귀여웠다.
거지 아이들은 대부분 적룡보의 호걸이 되길 꿈꾼다.
그래서 그런 적룡보의 인사법이라든가, 그들의 깎듯한 문화를 따라 하길 원하는 것이다.
게다가 건소길은 그들의 존경하는 첫 번째 형님이었다.
“그래, 별일 없어? 종팔 왕초랑…… 오칠이 여기 있지?”
“오칠 형님도 여기 계시지 말입니다!”
아이들 중에 제법 똘똘하게 생긴 아이가 그를 왕초의 거처로 그를 안내해 주었다.
다리 밑에서 가장 햇볕이 잘드는 곳.
어디서 주워 온 듯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는 대나무 발 너머로 왕초와 포졸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칠아!”
“소길이?”
깨끗하게 빨아 놓은 포졸복에 허리엔 육모방망이를 차고 있던 청년이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이마의 한가운데에 엄지손톱만 한 점이 있는 청년이었는데, 눈이 작고 가느다란데다 고집스러운 입매를 지니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오칠뿐만 아니라 꼬질꼬질한 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린 거지 왕초 종팔도 건소길을 보며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왕초, 오랜만이네요.”
“아이구, 도련님. 오셨습니까요?”
“그렇게 예의 차릴 것 없다니까요.”
“그런 말씀 마십시오, 도련님. 낙양건씨세가의 장손께 함부로 대했다간 제가 강 대인께 혼날 겁니다요.”
“할아버지는 그런 작은 일로 혼내지 않아요.”
낙양의 거지 왕초 종팔은 그저 웃기만 했다.
건소길의 말은 맞지만 납득할 수는 없다는 분위기다.
건소길은 그저 웃은 뒤 품속의 전낭을 통째로 건네주었다.
“여기, 오늘은 급하게 오느라 음식을 준비하지 못했어요. 이걸로 애들 만두라도 좀 사 주세요.”
“어이쿠, 감사합니다. 그런데 도련님 용돈을 이렇게 매번 축내도 괜찮은 겁니까? 감사는 하지만 매번 죄송해서…….”
“괜찮아요. 저는 용돈이 없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잖아요?”
“그야 그렇습니다만, 쩝.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요. 오 포졸, 나중에 이야기하세.”
종팔은 건소길이 준 은자 하나를 들고 희희낙락하며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종탁은 세속적이고 경박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거지 아이들을 아낀다. 저 돈은 전부 먹을 것을 사는 데 쓰일 것이 분명했다.
“소길아!”
“하하, 여기에 있을 줄 알았지. 잠깐만!”
건소길은 반가워서 끌어안으려는 오칠을 피했다.
지금 그는 누군가와 몸을 접촉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어?”
오칠은 건소길의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건소길이 자신을 피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두 눈이 동그래졌다.
“너, 혹시……!”
“아아, 그렇게 됐어.”
건소길은 난감한 듯이 웃었다.
오칠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뭐야? 오늘은 또 어쩌다가!”
“그냥. 길에서 마차에 치였어.”
“뭣!”
오칠은 건소길이 멀쩡한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세히 살펴본 뒤 한숨을 내쉬었다.
“넌 정말…… 사건사고를 달고 사는구나.”
“하하. 이래서 잘 안 나오려고 한다니까.”
“난 가끔 소길이 네가 타고난 게 정말로 행운인지 헷갈린다.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이러면…… 오히려 행운이 아니라 불행인 것 아닐까?”
건소길은 조금 슬픈 듯이 웃었다.
오칠이 신음을 흘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미안. 실언이었다.”
“아냐. 나도 가끔 그렇게 생각하는데 뭐.”
“어쨌든 좀 더 조심해. 난 네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오칠의 두 눈엔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했다.
건소길은 슬픈 미소를 지운 채 밝게 웃었다.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 주는 친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게다가 오칠은 원래 거지패의 일원이었는데,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고 무공을 수련해서 관청의 포졸이 된 자랑스러운 친구였다.
뭘 모르는 사람들은 포졸이 된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거지패에서 포졸이 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디서 감히 거지가 꿈을 갖느냐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의 공동체인 거지패의 일도 매일 꼬박꼬박 하면서 그사이에 틈틈이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자!

건소길은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정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오칠을 진정한 친우로 삼았고, 자신의 가장 큰 비밀도 털어놓은 것이다.
“고마워. 조심할게.”
“그래. 그럼 오늘도…… 필요한 거지?”
“응. 필요해.”
오칠은 무거운 표정으로 품속에서 말아 놓은 종이를 한 장 꺼냈다.
“너 때문에 내가 항상 이걸 가지고 다니게 됐어. 만약 강 포두님이 이걸 보기라도 하면 큰일 날 거야.”
“괜찮아. 명포두로 이름 높은 분께서 설마 네 품을 뒤지기라도 하겠어?”
“그러려나? 후우,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이거, 잘하는 건지 모르겠다.”
건소길은 진지한 표정으로 오칠을 바라봤다.
“이게 가장 좋은 선택이야. 난 확신해.”
“이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대명률(大明律:명 제국 법률)에 의해 처벌받아야 할 텐데.”
“그게 안 되니까 이러는 거잖아.”
“그것도 그렇지.”
오칠은 씁쓸하게 웃으며 종이를 건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