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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공자 1권(18화)
6장 천벌사신(天罰死神)(3)


***

“똑바로. 천천히 생각해 보고 다시 한 번 말하시오. 정말로 그자가 모청조의 등에 손만 대고 떠났소?”
“그, 그래요.”
뽀얀 피부를 가진 여인의 목소리는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사내는 작고 왜소한 몸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웬만한 맹수보다도 더 사납고 날카로웠던 것이다.
그녀는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손을 떨었다.
그리고 그녀가 대답을 바로하지 못하고 더듬거릴 때마다 사내의 눈빛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또 하나. 모청조의 몸에 손을 댔을 때 그 사내의 눈이 흰자위까지 새카맣게 변했다는 것도 사실이오?”
“그, 그게…….”
“관의 업무요! 한 치의 허술함도 없이 똑바로 대답하시오!”
“히익!”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벌벌 떤다.
두 눈에는 눈물까지 살짝 맺혀 있다.
왜소한 사내는 혀를 차며 뒤쪽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자 곧은 자세로 서 있던 포졸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왔다.
“오칠.”
“예, 강 포두님.”
강 포두.
모청조를 조사하러 온 오칠이 존경심을 담아 허리를 굽히는 사람은 낙양의 명관으로 소문난 강석이었다.
소문만 들어선 키가 칠 척이나 되는 호걸일 것 같지만, 강석은 사실 여인의 어깨까지밖에 안 올 만큼 키가 작고 왜소한 사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무시할 수 있느냐고 한다면 절대로 아니다.
살인마든 반군의 우두머리든 산적 두목이든 간에 강석의 앞에만 서면 그 누구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강석에겐 타고난 위압감 같은 것이 있었다.
강아지가 호랑이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네가 하게.”
“예.”
오칠은 부동자세로 대답한 뒤 여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낙양 관부의 오칠입니다.”
“아, 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모청조지 부인이 아닙니다. 그러니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순간, 주변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지금 그곳엔 그들 세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머리에 비단천을 둘둘 감은 채 정신을 잃고 가사 상태에 빠져있는 모청조가 있었고, 그 주변엔 모청조의 수하들도 남아 있다.
“감히!”
“포졸 따위가 모 대인의 이름을 함부로!”
흥분한 심복들 중에는 허리춤의 칼로 손을 가져가는 사람도 있었다.
일촉즉발의 분위기였지만, 그런 그들의 행동은 앞으로 나선 강 포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멈추고 말았다.
“포졸 따위?”
산전수전 다 겪었을 모청조의 수하들이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지금 대명률을 어기고 몰래 소금을 사고판 대역죄인에게 관인들이 머리라도 조아려야 한다는 말인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그게 아니라! 대역죄인이라니! 모 대인은 한왕 전하께서 하달하신 명령에 따라…….”
“관을 통하지 않는 소금 매매(賣買)는 무조건 대역죄에 해당하는 중죄! 한왕 전하가 아니라 황후께서 명하셨다고 해도 대역죄는 대역죄다!”
강직한 관인의 호통이다.
사실 틀린 말이 없었기에 모청조의 심복들을 입을 꾹 다물고 찌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오칠, 계속하게.”
“예, 강 포두님.”
오칠은 주변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부인,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청조’지, 부인이 아닙니다. 그건 알고 계시겠죠?”
“네? 아, 네.”
모청조의 이름을 부를 때 특히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옆에 있던 수하들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강석 때문에 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부인께선 강 포두님과 제가 왜 여기에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그게…… 음, 모 대인이 저렇게 된 원인을 찾기 위해서 아닌가요? 모 대인을 해친 범인을 잡으려고요.”
“꼭 그런 이유 때문에 온 것은 아닙니다만, 일단 비슷합니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어제 벌어진 일에 대해 소상히 알아야만 하니까 말입니다.”
“으음, 하지만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게 다예요.”
“그럼 제가 순서대로 다시 한 번 말해 볼 테니 틀린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오칠은 손바닥만 한 종이에 적어 놓은 세필들을 읽기 시작했다.
“어제 자정경, 침실에서 취침 중에 삼층의 천장을 통해 누군가가 침투했음. 범인은 검은색 무복에 검은색 복면을 한 사내. 키는 대략 오 척 팔 푼. 평범한 키에 다부진 체구. 대들보를 타고 내려와 모청조의 등에 손을 잠시 대고 있다가 다시 떠났음. 여기까지 맞습니까?”
“맞아요. 아, 아니, 내려와서…… 저기, 수투를 벗은 것 같기도 한데. 그 수투가 검은색…… 아니, 파란색이었나? 아니, 붉은색 같기도…….”
“수투가 무슨 색인지는 지금 중요치 않습니다. 그래서 수투를 벗었고, 맨손으로 모청조의 등에 손을 댔다. 맞습니까?”
“마, 맞아요.”
“그리고 맨손을 등에 대는 순간 그자의 눈이 새카맣게 변했다고요?”
여인은 그때를 회상하는지 공포에 질린 얼굴이 되었다.
“마, 맞아요, 그랬어요. 눈에서 흰자위가 사라지고 온통 새카만 색으로 변했어요. 생전에 그런 건 처음 봤어요.”
여인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모청조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사실이었단 말인가.”
“정말인가? ‘그’가 나타났다고?”
“말도 안 돼. 거짓말이지?”
“하지만 모 대인을 봐. 그날 밤에 침상에서 굴러 떨어지고, 다음날엔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서 구르셨다고!”
“그뿐인가. 갑자기 장식장이 넘어져서 그 밑에 깔리셨잖은가! 머리를 얻어맞으신 뒤로는 깨어나지 못하고 계시고!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악운도 이런 악운이 있을 수가 없어!”
“젠장, 모 대인께서 무슨 죄를 그리 지었다고!”
수하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마지막에 말한 사내도 자신이 잘못 말한 것은 아는지 입을 꾹 다문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후, 오칠은 여인을 향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부인께선 어떻게 그자가 내려오는 걸 보았습니까?”
“……네?”
“그자가 지붕을 통해 들어와서 대들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봤다고 하셨죠. 그렇다면 그 순간에 소리를 지르든가 모청조에게 알려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아, 그게…….”
여인은 말문이 막힌 듯 더듬거렸다.
“그래. 그러고 보니 왜 그랬지?”
“입 다물어, 멍청아!”
옆에 서 있던 수하들 중 한 명이 멍하니 중얼거리자 그 옆에 서 있던 다른 수하가 그의 등을 후려치며 조용히 시켰다.
한편, 모청조와 함께 있던 여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게, 저기……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고나 할까…….”
“제정신이 아니었다구요?”
“네, 그게…… 좀 몽롱하고, 꿈꾸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잠을 자고 있던 것은 아니었고, 혹시 아편이라도 하고 계셨습니까?”
“아니, 아니에요! 그건 아니고…… 그냥, 그때는 정신이 없었어요.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았을 때는 너무 놀라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그 사람은 도망쳐 버렸구요.”
오칠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작은 눈을 더 가늘게 뜨고 의심스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보다 못했는지 뒤에 서 있던 강 포두가 오칠의 어깨를 짚었다.
“오칠, 남녀가 동침을 했다는 소리다. 그럼 여인 쪽에선 정신이 없었을 수도 있겠지. 대들보 위에 누군가 있었다면 너무 놀라서 일시적으로 말문이 막혔을 수도 있을 거고.”
“아……!”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오칠은 얼굴이 붉어졌다.
나이 열여섯.
어렵게 성장하면서 온갖 꼴을 봐 왔지만, 그래도 아직 성적인 것에 대범해지긴 힘든 나이다.
“크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질문은 여기까지입니다.”
“네.”
여인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뒤 침상에 누워있는 모청조의 옆으로 다가가 조용히 앉았다.
마치 침상 곁에 진열된 장식품처럼.
무표정하게 가라앉은 그녀의 얼굴에선 어떠한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칠과 강 포두는 그런 그녀와 모청조를 잠시 응시하다가 낙하상방을 떠났다.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강 포두님.”
낙양 관청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칠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어째서 모청조 같은 자를 위해 우리가 나서야 하는 겁니까?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들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지, 염상들의 두목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야 물론이다. 우린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움직여야 하지.”
강 포두는 뒷짐을 지고 꼿꼿한 자세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럼 우리가 왜 이곳에 온 것입니까?”
“몰라서 묻나? 한왕 전하의 전서를 받을 때 자네도 함께 있지 않았나.”
“압니다. 그리고 강 포두님께서는 이치에 맞지 않으면 설령 황명이 내려와도 움직이지 않을 분이라는 것도 잘 압니다.”
강포두가 허, 하고 탄식을 토해 냈다.
“자네, 차분하게 봤는데 제법 위험한 말도 하는군. 관의 녹을 먹는 포두가 어찌 황명을 거스를 수 있겠나.”
“황명을 거스르진 않겠지만, 그래도 직접 하진 않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른 포두나 포졸들에게 일을 넘겨주면 그만이니까 말입니다. 그들이라면 즐거워하며 일을 넘겨받았겠죠.”
오칠은 확신하고 있었다.
강 포두는 이렇게 함부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만큼 다른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강 포두님께선 혹시 천벌사신에게 관심을 가지신 게 아닙니까?”
오칠은 마른침을 삼켰다.
잠시 초조한 시간이 지나갔고, 강 포두는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네. 난 천벌사신에게 관심이 있어. 그래서 모청조 사건에 직접 보러 온 것이지.”
“천벌사신을 잡으실 겁니까?”
“잡아야지.”
“잡아들인다구요?”
오칠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 되었다.
“천벌사신은 정의로운 자입니다. 한데 어째서 잡아들이려 하십니까?”
“법을 따르지 않고 남을 상하게 한 자를 어떻게 정의롭다고 할 수 있겠나?”
어느새 강 포두는 제자리에 멈춰 있었다.
뒷짐을 진 채 지그시 응시하는 강 포두의 눈빛은 똑바로 쳐다보기가 힘들 만큼 강렬하다.
하지만 오칠은 식은 땀을 흘리면서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천벌사신은 악인을 처벌했을 뿐입니다.”
“자칭 협(俠)을 숭상한다는 무림인들도 그렇지. 하지만 나는 그들을 인정하지 않아.”
“알고 있습니다. 강 포두님께선 누구든 법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하는 분이시죠. 하지만 천벌사신은 그런 무림인들과는 다릅니다.”
“어째서 다르지?”
“그는…… 무공을 써서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모르는 거지. 어쨌거나 그가 손을 대고 간 사람들은 그 이후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큰 변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거나 그에 준하는 상처를 입었네. 대체 어떤 수를 쓴 건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무공을 사용해서 사람을 상하게 한 것과 별다를 게 없어.”
“다들 그런 일을 당해도 마땅한 자들이었습니다!”
“법이 왜 법인가?”
강 포두의 목소리가 준엄해졌다.
오칠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경청하였다.
“누구나 지켜야 하는 규칙이기에 우리는 법이라고 부른다. 그건 무림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며, 천벌사신이라는 자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법을 따르지 않고 사람들을 상하게 하는 이상, 그들은 나에게 있어 범죄자에 불과한 거다.”
“하지만…… 법은 정의를 지키기 위해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니. 법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있는 거다.”
오칠은 순간 멍해져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질서가 정의보다 중요한 것입니까?”
“둘이 조화를 이뤄야만 하는 것이지. 그리고 질서가 생기면 범죄가 줄어든다. 무림인들은 정의를 실현하고 있는 게 아니야. 무림인들이 날뛰니 관에서 정의를 실현하기가 힘든 거다.”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강 포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오칠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 주기까지 했다.
“백성들은 법을 잘 믿지 않는다. 어째서 안 믿는가? 그건 지금까지 법에 의해 제대로 보호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야. 그런데 그걸로도 부족해서 자칭 협사라는 자들이 자기가 알아서 정의로운 일을 한답시고 부패한 관료들을 처벌하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오칠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관보다는 무림인들이 더 믿음직해 보일 테니, 사람들이 더더욱 관과 법을 믿지 않게 되겠군요.”
“그래. 모범을 보여야 하는 관리들이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무림강호의 자칭 ‘협사(俠士)’들이 자기 손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것을 보며 백성들은 통쾌하게 느끼기 시작할 거다.”
강 포두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관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모습을 좋게 볼 수만은 없지. 벌은 관에서 내려야만 한다. 부패한 관료들을 척결하는 것도 관의 일이고, 제도를 정비해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도 관의 일이다. 만약 무림인들이나 천벌사신이 나선다면, 나는 민심을 혼란케 하고 폭력을 저지른 죄로 잡아 넣을 수밖에 없지.”
“그건…… 너무 가혹합니다.”
오칠은 식은땀을 흘렸다.
긴장해서가 아니다.
강 포두의 말이 그에게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자네가 천벌사신을 좋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네. 하지만 자네가 관인이라는 것도 잊지 말게나.”
“…….”
“알겠나?”
“알…… 겠습니다.”
강 포두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왜소한 몸이지만,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거인처럼 커다랗게 보였다.
“휴, 힘들구나.”
오칠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그는 점점 멀어져가는 강 포두의 뒤를 황급히 뒤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