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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공자 1권(19화)
6장 천벌사신(天罰死神)(4)
***
“또 나타났다구요?!”
영롱하면서 맑은 목소리다.
앵두처럼 붉은 입술이 즐거운 듯 벌어졌고, 열정으로 가득한 눈동자가 별빛처럼 반짝였다.
건강하게 윤기가 흐르는 피부위로 예쁘장한 소녀의 얼굴이 환한 미소를 머금는다.
“자세히 말해 봐요. 이번엔 누구예요? 어떤 식으로 접근했죠? 그 사람은 어떤 일을 당했대요?”
진몽화는 붉은색 비단 경장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소녀였다.
그녀는 쾌활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고, 낙양 관부의 포두인 방만수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그녀의 질문 공세에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가씨, 하나씩 차근차근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목부터 좀 축일 수 없겠습니까?”
“아, 미안해요. 제가 예의 없게 굴었네요. 찬모, 여기 마실 것 좀 줘!”
그녀가 말을 끝내자마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중년의 아낙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주전자를 들고 들어왔다.
“어? 유모가 왔네?”
“네. 아가씨. 방 포두님이 오시면 항상 좋은 차를 대접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잖아요.”
“그래도 유모는 원래 이 시간에 다른 찬모들 때문에 바쁘잖아?”
“아가씨 일인데 바쁜 게 대수인가요.”
진몽화로부터 유모라 불린 여인은 하얀 무명옷에 단정한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방만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뒤 찻물을 한 모금 머금으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이 짙은 풍미! 용정이군요! 그것도 최상급! 이렇게 귀한 것을!”
“마음에 드세요?”
“물론입니다. 제가 차를 좀 좋아하지 않습니까?”
방만수는 굵은 목소리로 털털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육 척 장신에 산적 같은 외모를 지닌 방만수지만, 그는 낙양 관부에서 술보다 차를 더 좋아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좀이 아니죠. 아주 많이 좋아하시잖아요. 다루(茶樓)에 어떤 차가 언제 들어오는지까지 아시면서.”
“하하, 그렇습니다. 제가 차를 아주 많이 좋아합니다. 아가씨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군요.”
“피이, 그걸 알면 빨리 천벌사신에 대해 말해 주세요.”
방만수는 껄껄 웃었고, 진몽화는 입을 삐쭉거리면서도 더 이상은 재촉하지 않았다.
사람은 오래 사귈수록 서로를 아는 법.
그녀는 차맛을 음미하는 방만수를 아무리 재촉해 봤자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다년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반 각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최상급 용정차의 풍미를 충분히 음미한 방만수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이번엔 낙하상방의 모청조가 당했습니다, 아가씨.”
“낙하상방……? 아! 염상의 두목!”
“맞습니다. 그걸 기억하시다니 역시 영명하십니다, 아가씨.”
“칭찬은 됐어요. 그보단 자세히 말해 주세요, 방 포두님.”
“하하, 그럼 말씀드리지요. 크흠, 이건 방금 들은 소식인데 말입니다, 어젯밤에…….”
진몽화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방 포두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철저했던 낙하상방의 경계를 뚫고 지나간 것부터 지붕을 뜯고 침실에 내려가 모청조의 등에 맨손을 댄 것까지.
게다가 그 뒤에 벌어진 모청조의 온갖 불운들을 들은 진몽화는 환한 미소와 함께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역시 천벌사신은 굉장하네요, 방 포두님!”
“그렇지요, 대단합니다. 제가 주변에 물어보니 낙하상방의 경계를 단 한 번도 걸리지 않고 통과한 사람은 천벌사신이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낙하상방은 돈이 많죠?”
“예. 소금 장사로 축적한 돈의 액수가 어마어마합니다. 모청조는 그 돈으로 최상급의 낭인 두 사람을 고용해서 호위로 썼는데, 웬만한 무림고수 열 명이 달려들어도 막아 낼 수 있다고 자랑했다더군요.”
“그런데 천벌사신 한 사람을 막지 못했네요.”
“그렇습니다.”
진몽화는 자신의 업적인 양 뿌듯하게 웃었다.
“모청조는 어떤 나쁜 일들을 했나요?”
“모청조가 직접 한 일은 아직 입증된 게 없습니다만, 그가 가지고 있는 낙하상방에는 상당히 질이 안 좋은 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소금 장사를 독점하기 위해 낙양의 상방들을 힘으로 위압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많이 갈취했지요.”
“그런데도 관에서 왜 가만히 놔두나요!”
진몽화가 분개하여 외쳤다.
그 모습에 방 포두는 씁쓸하게 웃을 뿐이다.
“한왕 전하가 모청조를 아끼십니다. 그러니 관에서는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었지요.”
“……그건 잘못된 거예요.”
“허허. 관의 녹을 먹는 포두로선 함부로 대답할 수가 없군요, 아가씨.”
방 포두의 입장에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사안이다.
진몽화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두 볼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러니 천벌사신이 필요한 거예요. 관에서 손을 댈 수 없는 자들에게 벌을 주잖아요?”
“허허.”
방 포두는 그저 웃었다.
방 포두가 잠시 찻물을 음미하는 사이 진몽화는 혹시 천벌사신에 대해 새로운 소식은 없느냐고 물었고, 방만수는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품 안에서 끈으로 묶은 서책을 하나 꺼내 들었다.
“크흠, 이게 이번 달에 해결을 못하고 막힌 사건들입니다. 아가씨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흐응.”
진몽화가 눈을 가늘게 뜨고 서책을 바라보다가 배시시 웃었다.
“대신 천벌사신에 대한 정보는 확실히 주실 거죠?”
“물론입니다, 아가씨. 제가 언제 약속을 안 지킨 적이 있던가요?”
“없죠. 그래서 제가 방 포두님을 믿는 거예요.”
진몽화는 방 포두가 내민 서책을 덥석 붙잡았다.
“보자, 춘분 삼일에…… 춘분? 지금 춘추절이 다되어 가는데 춘분 때 벌어진 사건이 아직도 남아 있었어요?”
“허허, 장 포두라고 새로 들어온 신입이 하나 있는데, 그 사건을 끈질기게 붙잡고 있더군요. 자기가 처음으로 맡은 사건이라 계속 찝찝했던 모양입니다.”
“네. 그 마음 잘 알죠.”
진몽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한 뒤 서책을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서책에는 사건이 벌어졌던 날짜와 그때의 상황, 그리고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모두 적혀 있었다.
열여섯짜리 소녀가 관청의 포두도 풀지 못한 사건을 해결한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서책을 들여다보는 진몽화나 그런 그녀를 주시하고 있는 방 포두는 표정이 매우 진지했다.
반 각 후.
진몽화는 서책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범인은 푸줏간의 백정과 하인이네요.”
“허어.”
방 포두가 탄식을 토해 냈다.
“어째서입니까?”
“죽은 곡물상의 주인 말이에요, 집안에 왕삼이라는 하인이 있죠? 그 하인과 푸줏간의 백정이 친하다고 나와 있네요.”
“하지만 하인과 백정이 친하다는 게 범인이라는 증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보아하니 죽은 사람은 하인들에게 자유 시간을 많이 주는 모양이에요. 하인들은 저녁 식사 후에 할 일이 끝나면 외출도 가능했구요. 그리고 이 왕삼이라는 하인은 평소에 돈이 생기면 투계장에 달려가서 도박을 하는데 빠져 있었다네요.”
“예, 그건 그렇습니다만.”
방 포두도 서찰을 낱낱이 읽은 사람이다.
하여 비록 범인은 알아내지 못했지만, 그 안의 인물들의 특색 정도는 외우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날은 그 하인이 집에 있었죠?”
“아, 그건 특별한 게 아니라 그전에도 항상 닷새에 한 번씩은 외출하지 않고 집 안에 머물렀다더군요. 장 포두도 처음엔 그걸 의심했지만, 오 일마다 집 안에 꼭 남아 있었다는 다른 하인들의 증언을 듣고 의심을 풀었답니다.”
“그러니까요, 그게 이상한 거예요.”
“예? 돈이 없다거나 오 일에 한 번은 쉰다든가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에요. 이런 사람들은 돈이 없어도 도박장에 머무르면서 구경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려요. 도박 중독은 병이거든요.”
“아!”
순간, 방 포두는 탄성을 토해 냈다.
진몽화의 말을 들으니 모든 게 아귀가 맞는 것이었다.
왜 자신이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하고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그 말씀은…….”
방 포두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고, 이내 왕삼과 친하게 지낸다던 푸줏간의 백정도 도박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혹시, 오 일에 한 번씩, 집 안에서 도박을 했다는 이야기입니까?”
“도박에 빠진 사람이 정기적으로 집 안에 머물러야 한다면 그 이유밖에 없죠. 도박 중에 사람들 몇 명만 모이면 가능한 게 있다면서요? 검패(劍牌)나 골패(骨牌) 같은 거요.”
“아……!”
검패와 골패는 유명한 도박 중 하나다.
패를 섞어서 뽑고, 그걸로 서로 높낮이를 비교해 돈을 따먹는 놀이다.
방 포두는 머릿속을 뿌옇게 가리고 있던 안개가 환하게 걷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되면 범행의 동기가 생기는군요. 곡물상의 주인은 성실한 성격으로, 도박을 싫어하는 사람이었죠. 만약 그가 오 일에 한 번씩 자기 집에서 도박집회가 열린 것을 알았다면……!”
“당장 벌을 내리고 그 하인을 쫓아내려고 했겠죠. 왕삼은 그걸 막고 싶어 했고, 그래서 함께 도박을 하던 푸줏감의 백정이 나선 거예요.”
“왕삼이 손을 쓴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여기 기록을 보면 상처의 깊이가 일정하고 일격에 급소를 가른 것으로 보아 범인이 전문적으로 칼을 쓰는 자라고 했어요.”
“아, 맞습니다. 그래서 우린 살수의 범행을 의심했습니다만.”
“한데 마구간을 관리하던 왕삼이 칼을 잘 쓸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러니 아마 백정이 나서서 칼을 썼을 거예요. 사람의 피를 구분할 수 있는 개를 데리고 왕삼이 관리하는 마구간에 가 보세요. 아마 핏자국 같은 범행 장소의 증거가 남아 있을 테니까요.”
“세상에,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포졸들의 눈을 피해서 피를 숨기는 데는 마구간만한 곳이 없죠. 항상 짚을 깔아 두는데다, 말이 살다 보면 흔적은 금방 덮여 버리잖아요? 그런데 이번엔 그게 독이 되겠네요. 짚으로 덮여 있는 핏물은 냄새가 쉬이 안 없어지니까요.”
“그렇군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방 포두는 진심으로 존경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비록 열여섯짜리 귀여운 소녀라고는 하나, 그녀의 머릿속 지식은 붕새가 날아다니는 구만 리 창천마냥 넓고 광활하였다.
포졸과 포두들이 석 달이 넘게 머리를 싸매도 못 풀던 문제를 그녀는 단 반 각 만에 완벽하게 풀어 버리지 않는가!
만약 그녀의 재능이 밖으로 알려진다면 지다성(智多星)이니 낙양일지(洛陽一智)니 하는 이름은 그녀의 것이 될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