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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공자 1권(20화)
6장 천벌사신(天罰死神)(5)


“자, 그럼 정보를 주세요.”
“예? 아직 사건 두 개가 더 남았습니다, 아가씨.”
“그건 내일 가르쳐 드릴게요. 일단은 정보부터 주세요.”
“끄응,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방 포두는 짙은 풍미의 용정차를 한 모금 더 들이켠 뒤 입을 열었다.
“강석 포두님을 아시지요, 아가씨?”
“물론 알죠. 이 시대에 찾기 힘든, 진정 정의로운 포두시잖아요?”
“크흠!”
“아, 물론 방 포두님도 정의로우시죠.”
배시시 웃는 진몽화의 얼굴에 짐짓 섭섭한 표정을 짓고 있던 방 포두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허허, 저도 강 포두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천벌사신을 쫓기 시작하셨다는군요. 이번에 낙하상방에도 직접 조사를 하셨답니다.”
“강석 포두님이……!”
진몽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시 혼란스러워하던 그녀가 이내 영리하게 눈을 빛냈다.
“그래서, 찾은 건 있으시대요?”
“천장을 만진 손자국을 찾았다는군요. 하여 범인으로 의심되는 자를 찾으면 손을 비교해서 잡을 수 있을 것 같답니다.”
“범인이 아니에요. 천벌사신이에요.”
“허허, 이거 실수했군요.”
진몽화는 사뭇 날카롭게 지적했고, 방 포두는 그저 허허 웃었다.
진몽화가 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방 포두님은 가끔 천벌사신을 안 좋게 보시는 것 같아요.”
“그가 하는 일이 통쾌하냐고 묻는다면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저 높으신 분들께선 하루라도 빨리 천벌사신을 잡으라고 성화니까요.”
“흥, 그분들은 숨기는 게 많으니 그렇죠.”
“허허, 대답하기가 곤란하군요.”
진몽화는 단호한 얼굴로 검지손가락을 세웠다.
“천벌사신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그 고생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협이에요, 협! 만약 그게 죄라면 세상에 있는 모든 무림인들을 잡아가야 할걸요? 그를 잡아가려는 사람은 천벌사신에게 당한 악한들과 똑같은 사람들뿐이에요!”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부정할 수가 없군요.”
방 포두는 씁쓸하게 웃다가 물었다.
“그런데 아가씨, 아가씨도 천벌사신의 뒤를 쫓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 전엔 큰 단서를 잡았다고도 하셨던 것 같은데요?”
“그거야 그렇죠. 그런데 천벌사신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을 직접 뵙고 싶어서예요.”
“허어, 직접 만나고 싶다구요?”
“네. 분명 정의로운 분일 게 틀림없어요. 저는 그분을 꼭 만나 보고 싶어요.”
발그레하게 상기된 볼, 달빛을 받은 호수마냥 반짝이는 두 눈.
지금 진몽화의 얼굴은 영락없이 사랑의 빠진 소녀였다.
“허허…….”
방 포두는 난감하다는 듯이 웃었다.
“이것참. 으음. 아가씨, 상대는 맨손으로 불운을 안겨 준다는 전설이 떠도는 사람입니다. 신(神)이라면 역신(疫神)이란 말입니다. 그런 사람을 왜 만나려고 하십니까?”
“그러니까 특별한 거예요! 게다가 역신이라뇨! 평소에 수투를 끼고 있다는 걸 봐서는 그분은 아무에게나 불행을 주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이 분명해요!”
“그건 그렇지만…… 크흠, 왜, 그래도 껄끄럽지 않습니까? 그런 인간이 존재한다니. 솔직히 전에 아가씨의 말만 아니었다면 저는 그자가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모든 걸 조작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남에게 불행을 주는 능력이란 건 상식적으로 있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방 포두는 진몽화를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이 년 전, 진몽화가 열네 살이던 시절.
그녀는 그 당시에 막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던 천벌사신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전해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분석해 피해자에게 일어난 불운은 인간의 힘으로 조작할 수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방만수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소녀의 능력에 감탄했던 사건이다.
“천벌사신에겐 적이 많습니다. 그와 엮이면 불운해집니다, 아가씨.”
“괜찮아요. 몰래 쫓으면 되죠. 게다가 해검진가는 그리 약하지 않아요.”
“이것참, 아가씨.”
“네?”
“송구스러운 말씀입니다만, 아가씨는 혼약자도 있지 않습니까? 만일 자기 혼약자가 다른 사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 그 도련님도 좋아하지 않을 텐데요?”
“…….”
그 말에 발그레하니 달아올랐던 진몽화의 볼이 순식간에 제색으로 돌아왔다.
꿈꾸는 듯 밝은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제가 원해서 맺어진 혼약도 아니에요. 아버님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다고 말씀하셨구요.”
“낙양건씨세가와 해검진가의 협약입니다. 가주님들의 친분으로 봐서는 쉽게 약속을 어길 수 없을 겁니다, 아가씨.”
“…….”
“크흠, 제가 말이 너무 많았군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드르륵―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방 포두는 밖으로 나서려다가 우뚝 멈춰 섰다.
“하지만 아가씨, 이건 진정으로 아가씨를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이젠 슬슬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보실 나이가 되셨습니다. 열여섯이면…… 이젠 숙녀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습니까?”
“꿈이 아니에요!”
꿈이란 말이 그녀의 심중을 건드린 것일까?
진몽화가 냉정을 잃고 버럭 소리쳤다.
“현실이에요! 이젠 정말 코앞에 있다구요! 사실 오늘로서 확실해졌어요. 천벌사신은 잡을 수 있어요. 단서가 나타났다구요.”
“예?”
방 포두가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진몽화는 분한 듯, 눈시울이 붉어진 채 당당하게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천벌사신을 잡을 수 있다구요?”
“그래요, 잡을 수 있어요.”
진몽화는 허리에 척, 손을 얹은 채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방 포두는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벌사신의 친구, 혹은 큰 조력자는 분명히 관청의 포졸들 중에 있어요.”


7장 호걸(豪傑) 팽소뢰(1)


방 포두는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해검진가와 인연을 맺은지 이 년째.
진몽화라는 소녀가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 알고, 그녀가 얼마나 허언을 하지 않는 사람인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런 그녀가 천벌사신의 동료가 관청 안에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천벌사신을 쫓아야 할 포두와 포졸들 안에!
“아가씨,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신 겁니까?”
“이유는 간단해요. 천벌사신이 ‘정말로 나쁜 사람’에게만 벌을 주기 때문이에요.”
“예?”
“낙하상방 이전에 벌어진 일들을 기억하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환락가를 관리하던 쌍화기방(雙花妓房)이랑 가난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던 동호마방(東胡馬房)이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 두 곳에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아세요?”
“예?”
“쌍화기방이랑 동호마방은 천벌사신에게 당하기 직전에 관청의 조사를 받았어요. 그리고 포두들은 그곳의 죄를 발견하였지만, 워낙 고위 관료들과 연관된 일이 많아서 유야무야 넘겨 버렸죠.”
“…….”
낙양 관청의 치부나 다름없는 이야기였다.
그런 탓에 방 포두는 입을 꾹 다물고 듣기만 했다.
“처음엔 우연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문득 이상함을 느껴서 지난 모든 사건들을 다시 되짚어 보았죠. 그러다 보니 천벌사신한테 습격당한 사람들은 전부 관청에서 조사하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건…… 죄송합니다만, 아가씨. 별로 특별하게 느껴지지가 않는데요? 그들은 권력이 있으니 관청의 단속을 피해간 것 아닙니까? 천벌사신은 그런 자들을 노리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래요. 고정관념이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바람에 지금껏 알아차리지 못했던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쌍화기방이라든지 동호마방이라든지, 관청이 그들을 조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누구죠? 최소한 포두 급은 되어야 아는 사실 아니던가요?”
“……!”
순간, 방 포두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신음을 흘렸다.
진몽화의 말이 맞다.
그들은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던 것이다.
천벌사신이 워낙 인간 같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하며 넘어갔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면 의심스러운 점이 더러 있었다.
관청이 범죄 집단을 봐주고 그냥 넘어갔다는 것은 절대로 좋은 소식이 아니다.
관청이 욕을 먹을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대부분 쉬쉬하면서 덮으면 덮었지, 주변에 알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비밀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굴까?
아무리 천벌사신이 대단해도 관청 내부에서도 쉬쉬하는 소식을 알아낼 수 있는 걸까?
“이럴 수가! 그럼 정말로……?”
진몽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확신해요. 게다가 생각해 보세요.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아주아주 많아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낙양 관청에서 잡지 못하고 놓친 자들에게만 천벌을 내리는 거죠?”
“허어!”
“방 포두님, 이 일은 당분간 비밀에 붙여 주세요. 천벌사신의 조력자가 있을지, 아니면 천벌사신 본인이 관청 안에 있을지 모르는 거예요. 심지어 포졸들한테도 소문이 나서는 절.대.로 안 돼요.”
방 포두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건 중요한 사실입니다. 천벌사신이 관청 안에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잡아내야 합니다. 이걸 숨기고 있다가 나중에 발각되면, 저도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죠. 저도 방 포두님을 괴롭히고 싶지는 않아요.”
“아가씨!”
“하지만 제가 알아낸 사실이잖아요? 사실은 방 포두님께도 비밀로 할 수도 있었다구요.”
“으음…….”
“저에게 천벌사신을 잡을 만한 계획이 있어요. 최소한 그 계획을 써 볼 때까지는 기회를 주세요.”
방 포두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으나, 해검진가의 금지옥엽인 천재 아가씨를 이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게다가 사내로서 어찌 뽀얀 얼굴로 두 눈을 반짝거리는 소녀를 이길 수 있겠는가!
방 포두는 결국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하셨어요!”
진몽화는 기쁜 듯 환호성을 질렀다.
두 손을 하늘로 쭉 뻗고 만세를 부르는 게, 어지간히 기쁜 듯한 모습이다.
“휴우, 일단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 아가씨. 어떻게 천벌사신을 잡으실 계획입니까?”
“제 계획은요…….”
진몽화가 씩 웃는다.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순수하고 밝은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