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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Chapter.1 Unlicensed magician(3)
당황에 겨운 분노에 고함을 내지르는 류드나르를 향해, 사내는 한껏 비웃음을 지어 보였다.
“신고할 테면 얼마든지 해 보시지.”
“뭐?”
“감히 경찰 나부랭이가 아캄의 재무장관인 이 라힐렌 님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뭔가 비뚤어진 자신감이건만, 그 엄청난 자신감에 압도당한 류드나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캄의 재무장관 라힐렌은 그런 류드나르를 보며 득의에 찬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잠깐.’
멍한 눈으로 그를 보던 류드나르의 머릿속에 짧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왜 재무장관이 범죄자 심문을 하는 거야!”
“시, 시끄럽다!”
“게다가 인신매매라니! 그러고도 당신이 고위 관료냐!”
“훗.”
당황하던 라힐렌은 거만한 포즈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고위 관료가 아니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그게 자랑이냐고!”
“당연히 자랑거리지! 이 나이에 여기까지 오르기가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냐!”
“으윽.”
류드나르는 당혹감이 가득한 소리를 토해 냈고, 다시 탁자로 걸어간 라힐렌은 탁자 위의 서류 더미에서 무언가를 찾아내 류드나르에게 내밀었다.
서류를 바라본 류드나르의 눈에 크고 아름다운 여섯 글자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신체 포기 각서
“…….”
마치 범죄 집단의 아지트에 끌려온 것 같다는 생각에 식은땀을 흘린 류드나르의 귀에, 가볍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서명만 하면 돼.”
“으으.”
“어차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서 화형당하는 것보다는 낫잖…… 우악!”
“유혹하지 마!”
묶여 있는 상태에서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나 머리로 라힐렌의 턱을 받아 버린 류드나르는 턱을 붙잡고 데굴거리는 라힐렌을 보며 이를 갈았다.
“T팬티만 입고 아줌마들 앞에서 재롱떠는 짓을 하느니 죽어 버리겠어!”
“으으.”
두 눈 가득 음험한 기운을 띤 라힐렌은 다시 입을 열었다.
“서명 따위 상관없어! 위조를 해서라도 반드시 팔아 주마!”
“아아악!”
류드나르는 비명을 질렀다. 라힐렌은 그런 류드나르의 묶인 손을 잡고는 책상으로 질질 끌고 갔다. 그러고는 잉크를 책상 아래로 내려 류드나르의 손에 들이부었다. 그대로 도장처럼 찍으려는 생각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류드나르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러나 라힐렌의 힘은 가냘픈 류드나르가 버티기엔 너무 강했다.
어차피 멈추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류드나르는 이렇게 소리 지를 수밖에 없었다.
“머, 멈춰!”
그러자 놀랍게도 라힐렌의 동작이 멈췄다. 그러나 류드나르의 고함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좀 더 원초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라힐렌의 머리를 강하게 때린 것이다.
쿵―
잠시 뒷머리를 붙잡고 고개를 돌리려 하던 라힐렌의 몸이 그대로 쓰러졌다.
“하아, 하아―.”
급히 손을 뒤로 물린 류드나르는 바닥에 떨어진 괴문서를 발로 무참하게 짓밟았다. 그때 처음 듣는 목소리가 류드나르의 귀에 들려왔다.
“이 아저씨가 또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거야?”
“응?”
그제야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류드나르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짧은 금발 머리를 한 소년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런 류드나르의 얼굴을 잠시 바라본 소년은 류드나르가 마구 짓밟고 있던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한심하다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너, 이번에 잡혀 온 마법사지?”
류드나르는 반쯤 멍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는 조금 전에 집어 든 서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황당하다는 기색을 띠며 말했다.
“신체 포기 각서? 또 우리 인원 빼돌리려고 했구만?”
그 말을 들은 류드나르는 얼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또, 또?”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라힐렌의 옆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이 망할 놈의 부패 정치인. 잘리지도 않아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소년은 쓰러진 라힐렌을 강하게 걷어찼다. ‘꾸어억’이라는 볼품없는 비명을 내지른 라힐렌은 정신을 차리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년은 그런 라힐렌을 향해 말했다.
“아저씨, 지금 뭐 하는 거야?”
“아앗! 이 자식, 내 집무실에 오지 말랬지!”
라힐렌은 소년을 윽박질렀다. 그러나 소년은 라힐렌을 똑바로 바라보고는, 손가락으로 류드나르를 가리키며 라힐렌을 향해 소리 질렀다.
“또 우리 인원 빼돌리려고 그랬냐!”
“윽.”
라힐렌은 움찔했다. 그런 라힐렌을 보던 소년은 류드나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한숨을 푸욱 내쉰 후 다시 말을 꺼냈다.
“안 그래도 사람 부족해서 곤란한데 이 망할 부패 정치인이…….”
“시, 시끄러워! 자꾸 이러면 공무집행방해로 처넣어 버릴 테다!”
라힐렌은 고함을 버럭 질렀다. 그런 모습에, 소년은 고개를 젓고는 입을 열었다.
“당신 그저께 뭐 했는지 부인한테 말 안 했지?”
라힐렌의 얼굴에 낭패감이 떠올랐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모습이 어쩐지 애처로워 보였다.
소년은 팔짱을 낀 채 라힐렌을 빤히 바라보았다. 라힐렌은 조금씩 고개를 돌려 가며 시선을 피했지만, 소년은 계속해서 라힐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 시선을 피하던 라힐렌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비, 비열한 놈.”
“……그러니까 내가 입 안 열게 하면 되잖아.”
“으윽.”
소년의 말을 들은 라힐렌은 움찔했다. 그러고 나서 류드나르를 바라보았다. 류드나르는 라힐렌의 시선을 느끼고는 이를 갈았고, 라힐렌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고개를 돌렸다.
류드나르에게서 눈을 뗀 라힐렌은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그러고는 반대편 손을 들어 내저었다. 됐으니 빨리 나가라는 뜻이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으으.”
라힐렌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약점만 잡히지 않았다면 절대 이런 일은 없었겠지만, 이미 약점을 잡혀 버린 이상 어찌 할 방법이 없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럼 간다.”
부르르 떠는 라힐렌을 남겨 둔 채, 소년은 류드나르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얼떨결에 끌려 나간 류드나르가 소년을 바라보자, 그 시선을 느낀 소년이 입을 열었다.
“너, 이름이 뭐야?”
“류, 류드나르라고 하는데요.”
소년은 류드나르를 빤히 보다 말했다.
“어쩌다 잡힌 거야?”
“예?”
“아니, 보통 마법사들은 웬만해선 잘 안 잡히거든. 패밀리어를 몇 마리 깔아 둔다거나, 아니면 최소한 허름한 던전이라도 만들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게 보통이라서 말야.”
‘……그런 거야?’
전혀 몰랐다는 기색이 떠오른 류드나르의 얼굴을 보며, 소년은 머리를 긁적이곤 다시 말했다.
“뭐, 사실 나도 그런 거 몰랐으니까 여기 잡혀 있는 거지.”
소년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얼떨떨한 상태로 소년을 따라가던 류드나르는 아직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기색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그것을 느낀 소년은 조금 전 자신이 내뱉은 말은 신경 쓸 것 없다고 말하고는, 류드나르가 처한 상황을 간단히 정리해 주었다. 요약하자면, 류드나르는 허가받지 않은 상태로 마법사가 되었기에 범죄자로 낙인찍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한 소년은 다시 입을 열었다.
“원칙대로라면 사형인데, 딱히 악행을 끼친 게 아니면 국가 기관에 소속시켜서 죽을 때까지 부려 먹는 게 보통이야. 뭐, 요즘은 한 오 년 정도 복무시키고 풀어 주지만 말야. 아, 물론 월급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아.”
“그런데 아까 한 말은…….”
“아까?”
소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류드나르는 조금 전 소년이 소년 자신에 대해 했던 말을 다시 언급했다. 그러자 소년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크으. 우드빌 최고의 마법사가 될 내가 이런 곳에서 고작 일 년에 이천 마르크나 받으며 근무하고 있다니. 이건 전 인류의 손해라구우우우!”
“저, 저기…….”
“아아악! 이 망할 놈의 로베르!”
‘로베르?’
어디선가 들어 본 이름이었다. 류드나르는 어쩐지 익숙하게 들리는 그 이름에 대해 생각했다.
잠시 기억을 더듬던 류드나르는 당황했다. 이 나라에 로베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극히 소수였고, 그중 제일 유명한 사람은 왕국 유일의 후작이기 때문이었다.
“설마, 로베르 후작?”
“그놈하고 한편이냐!”
소년은 류드나르의 멱살을 붙잡고는 마구 흔들었다.
“마법서 던져 줘서 호기심 갖게 한 다음에 팔아 치우다니! 그러고도 무사할 것 같냐아아!”
소년은 호리호리한 몸과는 달리 상당히 힘이 강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마구 흔들리고 있던 류드나르는 완전히 질린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잠깐!”
“……아, 미안.”
그제야 정신을 차린 소년은 류드나르의 멱살을 잡은 손을 풀며 말했다.
“하긴 그놈하고 한패라면 이곳에 끌려올 리가 없지.”
한숨을 푹푹 내쉰 소년은 몸을 돌려 걸었다. 그를 본 류드나르는 조금 전에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분명히 소년은 팔아 치웠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가 말한 내용으로 볼 때, 아마도 그 상품은 소년 자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후작씩이나 되는 사람이 인신매매를 한단 말인가.
‘하긴 뭐, 재무장관이라는 사람도 그랬으니까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이건 너무 황당하잖아.’
이 나라의 고위직들은 전부 인신매매를 부업으로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어이없는 생각을 떠올렸던 류드나르는 고개를 젓고는 그대로 소년을 따라 걸었다.
재무장관의 집무실을 완전히 빠져나온 소년은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 너무도 거대한 왕성 내부의 모습에 압도당한 류드나르는 그저 고개를 돌리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다 소년을 놓쳐 버릴 뻔하기도 했지만, 어찌어찌 길을 잃지 않고 소년을 따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걷던 소년은 모퉁이를 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을 멈췄다. 거대한 문이 보였고, 그 위엔 ‘Gnorem 아캄 지부’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단어를 빤히 바라본 류드나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익숙한 단어였기 때문이었다.
“아앗!”
잠시 기억을 더듬던 류드나르는 고함을 질렀다. Gnorem이라는 단어는, 분명히 마법사들에게는 상당히 높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라는 것을 기억해 낸 것이다.
“뭐야?”
“Gnorem이면, 나이델 공작님이 마스터로 있는…….”
“속지 마, 속지 마.”
소년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리며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 안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류드나르는 그의 모습을 보며 긴장에 젖었다. Gnorem에 소속된 마법사라면 분명히 대단한 능력자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던 류드나르는 곧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안내한 소년이 움찔했던 것이다.
도대체 누구기에?
그 순간 떠오른 의문을 풀어 주기라도 하듯, 방 안에서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