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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Chapter.1 Unlicensed magician(4)
“오, 단설 군!”
움찔했던 소년, 단설이 말했다.
“아니, 왜 또 이곳에 있는 겁니까.”
“나이델 공 못 봤나?”
“그 아저씨야 당연히…… 얼레? 없잖아?”
단설은 고개를 휘휘 돌려 누군가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돌아보아도 찾는 사람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 단설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사내를 바라보았고, 의자에 앉은 사내는 투덜거리며 단설을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여기 오는 걸 눈치 챈 것 같아.”
의자에 앉아 있던 사내는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러고는 성냥을 꺼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무래도 독한 시가(Cigar)인 듯, 매캐한 연기가 류드나르를 향해 뿜어졌다.
독한 연기를 쐰 류드나르는 콜록거렸다. 그러나 그걸 보면서도 다시 한 번 연기를 내뿜은 사내는 갑자기 시가를 우그러뜨리며 말했다.
“으으, 이 망할 놈의 인간! 원고 넘겨주기로 한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거야!”
투덜대는 사내를 본 단설은 말했다.
“그래도 편집장님은 좀 나을걸요.”
“응?”
“체스트(Chest) 씨는 벌써 삼 년째 원고만 기다리고 있어요.”
“또 메롱이냐!”
편집장이라 불린 사내는 분개해 소리쳤다. 그러나 단설은 그게 뭐 대수냐는 듯이 말했다.
“하루 이틀입니까. 그러니까 편집장님도 그냥 포기하세요.”
“그렇겐 못해! 벌써 인세까지 다 지급했단 말이다!”
“…….”
둘의 모습을 보며 식은땀을 흘리던 류드나르는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눈에 책상 옆의 늘어진 커튼 뒤에 몸을 숨긴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당황한 류드나르는 단설을 향해 말을 걸려 했지만, 그것을 눈치 챈 사내는 류드나르를 향해 입을 뻐끔거렸다. 물론 소리는 나지 않았으나, 류드나르는 그가 하려는 말이 ‘말하면 죽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멍한 표정으로 그 사내를 바라보던 류드나르는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 걸 느꼈다.
‘서, 설마 나이델 공?’
류드나르는 당황했다. 설마 저 사람이 이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대마법사 나이델 공이란 말인가.
황당함을 금할 수 없었던 류드나르는 계속해서 사내를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비분강개한 편집장은 주먹을 꽉 쥐며 강하게 말했다.
“이번에 잡히면 원고 넘겨줄 때까지 골방에 가둬 놓고 만두만 먹일 테다!”
편집장의 말을 들은 커튼 뒤의 사내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모습에, 류드나르는 그가 나이델 공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점에 확신을 가지게 된 류드나르는 떨떠름한 시선으로 나이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나이델은 주먹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빨리 시선을 돌리라는 뜻이었다.
“……하아―.”
살짝 한숨을 내쉰 류드나르의 귀에 단설의 말이 들려왔다.
“그랬다간 15년으로도 모자랄걸요.”
“아무튼!”
분개한 편집장은 몸을 일으키며 발로 의자를 내리찍었다. 그러자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가 무너졌다.
류드나르는 편집장의 모습에서 엄청난 포스를 느끼며 몸을 떨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원고를 받아 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강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류드나르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편집장은 혀를 찼다. 그제야 자신이 의자를 부숴 버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미안한 마음이 든 편집장은 단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아, 미안하네.”
단설은 손사래를 치고는 입을 열었다.
“뭐, 괜찮아요. 어차피 이렇게 박살날 거 아니까 싸구려로 준비하거든요.”
어쩐지 반쯤 포기했다는 기색이 서린 대답이었다. 그것을 느낀 편집장은 왠지 모를 공감을 느끼며, 계속해서 단설과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거참. 그런데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군가?”
“아, 신참이에요.”
“신참?”
편집장은 류드나르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애처로운 눈으로 류드나르를 향해 성호를 그었다.
“명복을 비네. 부디 편안한 곳으로…… 우어억!”
“사람 마음대로 죽이지 마!”
깔끔한 이단 옆차기로 편집장을 날려 버린 류드나르는 씩씩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편집장의 눈은 풀려 있었고, 그것은 그가 기절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 주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커튼 뒤에 숨어 있던 나이델은 급히 몸을 일으켜 쓰러진 편집장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고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더니 검지로 편집장을 가리키며 아주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죽었나?”
갑자기 나타난 나이델을 본 단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어디 있었던 겁니까?”
단설은 어이없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나이델은 잠시 움찔했지만, 단설에게서 고개를 돌려 버리고는 편집장을 향해 걸었다.
편집장 바로 앞까지 다가간 나이델은 슬쩍 손을 들어 기절한 편집장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그러나 그에게선 아무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나이델은 확인이라도 하듯 손가락으로 그를 쿡쿡 찔렀다.
이번에도 편집장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안도한 나이델은 단설을 향해 말했다.
“빨리 갖다 버려.”
“저기, 마스터?”
“응?”
“그냥 원고 넘기시죠.”
“…….”
나이델의 얼굴에 배신감이 떠올랐다.
“다, 단설, 너마저…….”
“되도 않는 비극 흉내 내지 말고 일 좀 하시죠.”
단설은 팔짱을 끼곤 나이델을 바라보았다. 그때, 쓰러져 있던 편집장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으으…….”
퍼억.
막 정신을 차리려던 편집장의 머리를 후려갈긴 나이델은 다시 단설을 바라보며 말했다.
“빨리 안 갖다 버리면 연봉을 깎아 버리겠다!”
“으윽.”
단설은 낭패감을 떠올렸다.
“아니, 이봐요, 일 년에 이천 마르크면 최저 임금의 반도 안 된다고요.”
“그러니까 빨리 이 사람 성 밖으로 내다 버려. 경비 시켜서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거, 치졸하다고 생각지 않으쇼?”
한참을 투덜거린 단설은 기절한 편집장의 두 팔을 잡고는 류드나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류드나르는 멍한 표정으로 멀뚱히 서 있었다.
조금 더 류드나르를 바라보던 단설은 류드나르를 보며 말했다.
“왜 그러고 있어?”
“예, 예?”
“나 혼자 어떻게 들어?”
“아.”
류드나르는 당황한 얼굴로 나이델과 단설, 편집장을 바라보고는 얼떨떨한 표정이 되어 편집장 쪽으로 다가가 그의 발을 붙잡았다.
편집장은 호리호리한 몸과는 달리 꽤 무거웠다. 낑낑대며 편집장을 성 밖 공터에 내다 버린 단설과 류드나르는 땀을 닦아 내곤 숨을 토해 냈다. 고작해야 스물도 안 된 둘에게는 너무도 힘든 작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으으, 이 악덕 고용주.”
손을 털어 내며 불만을 토해 낸 단설은 보브 컷을 한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역시 이번에도 자신을 팔아넘긴 로베르 후작에 대한 분노가 흘러나왔다.
“제기랄! 두고 보자, 로베르!”
단설의 고함 소리에 정신을 차린 편집장은 끄응 하는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슬쩍 몸을 숙여 굵은 나뭇가지를 집어 든 단설이 그대로 편집장의 머리를 내리친 것이다.
털썩 하는 소리를 내며 다시 쓰러진 편집장을 본 류드나르는 당황하며 말했다.
“저기, 이래도 돼요?”
“돼.”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집어 던진 단설은 류드나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몇 살이야?”
“예? 아, 열일곱인데요.”
“동갑이네. 말 놔.”
말을 마친 단설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 내며 투덜거렸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알카서스 국경 수비대로 간다고 하는 건데.”
“국경 수비대? 설마 그 70%가 게이라는…….”
“그걸 믿냐.”
단설은 그대로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뭐, 정말로 그런 부대가 있기는 있어. 아데마르의 신성대(神聖隊)라고, 삼백 명으로 이루어진 부대인데…….”
말을 잇던 단설의 얼굴이 파랗게 변했다.
“백오십 쌍의 연인으로 이루어져 있대. 물론 모두 다 남자고.”
“…….”
류드나르의 얼굴도 파랗게 변했다.
신성대라면 아데마르 최고의 특수부대로, 불패의 신화를 가지고 있는 군대였다. 무려 부대가 처음 생긴 이백이십 년 전부터 단 한 차례의 패배도 기록하지 않은 그들은 칠십사 년 전엔 악룡 제헤드마를 살해했고, 그 이후 대륙 최강의 특수부대로 인정받고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 부대가 사실은 ‘남자들로 이루어진’ 연인 집단이라는 것은 분명한 충격이었다.
류드나르는 절대 아데마르 제국과의 전쟁은 일어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떨었다. 재수 없으면 그 부대에 붙잡혀 강제로 편입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에 덜덜 떨고 있던 류드나르의 귀에 단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여기서 노닥거릴 때가 아니지.”
단설은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류드나르를 향해 말을 걸었다.
“뭐 궁금한 거 없어?”
“응?”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류드나르는 단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단설은 멀뚱한 표정으로 류드나르를 보다 입을 열었다.
“보통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정도는 궁금해 할 텐데.”
“아, 맞다.”
류드나르는 머리를 흔들어 아데마르 제국의 신성대에 대한 생각을 전부 지워 내고선 입을 열었다.
“도대체 마법사들을 잡아다 어디다 쓰는 거야?”
단설은 류드나르를 쳐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곤 입을 열었다.
“잡일.”
“자, 잡일?”
“명목상으로야 불법을 자행한 마도사들에게 갱생의 길을 줌과 동시에 마족들에 의한 인간의 위기를 타파하고자 하는 신성한 목적을 가진 아캄 유일의 특수부대……라고는 하지만, 그게 말이 되냐고.”
“응?”
“도대체 마족들에 의한 인간의 위기를 타파하는 일에 왕궁 청소가 들어가는 이유가 뭔데!”
류드나르는 단설의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에 떠오른 것은 뭔지 모를 한이 맺힌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쌓인 것이 많은 듯, 단설은 갑자기 폭포처럼 말을 쏟아 냈다.
“이왕 마법사들 징집했으면 좀 제대로 된 연구를 시키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길거리를 배회하는 가련한 코볼트들을 극락으로 보낸다거나, 최소한 드래곤과 한번 피 터지게 싸운다거나……. 아, 이건 아니지.”
“…….”
류드나르는 횡설수설하기 시작한 단설의 모습에 당황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단설은 연신 투덜거렸다.
“게다가 부대원이라고 있는 것들이 하나같이 시원찮으니 제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 이게 잡일이나 하는 시종이지 어딜 봐서 특수부대냔 말야!”
버럭 고함을 내지른 단설은 푸른 눈동자를 빛냈다.
“이게 다 로베르, 그놈 때문이야!”
“도대체 아까부터 무슨 소리야? 로베르 후작이 도대체 무슨 짓을…….”
“아아아악!”
마구 머리를 헝클어뜨린 단설은 입을 열었다.
단설이라는 이름은 아캄 식이 아니었다. 그 이름은 이 일대에 살고 있는 원주민인 라마르인의 이름이었고, 따라서 순수한 아캄인인 로베르 후작과 단설은 아무 상관도 없어야 했다.
그러나 상황은 복잡했다. 단설은 아캄인과 라마르인의 혼혈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