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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Chapter.1 Unlicensed magician(5)


그리고 그 아캄인은 로베르 후작의 아버지인 고(姑) 요제프 후작이었다.
“아버지가 죽으면서 유산을 나눠 주려고 하니까 수작을 부린 거지.”
단설은 말을 맺으며 한숨을 내쉬었고, 류드나르는 그런 단설을 향해 말했다.
“수작?”
“그 빌어먹을 인간이 날 마법사로 만들어 놓고 신고했다고!”
“응?”
류드나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잠시 몸을 떨던 단설이 발광했다.
“우아악! 겨우 사십만 마르크가 그렇게도 아까웠냐!”
“겨……우?”
어마어마한 액수를 말하며 ‘겨우’ 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단설을 향해 입을 쩍 벌린 류드나르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걸 보았는지, 단설은 불만 가득한 소리로 말을 꺼냈다.
“로베르 그놈 재산은 이십억 마르크가 넘어.”
단설은 투덜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뭐, 물론 백육십 명이나 되는 이복형제들한테 유언대로 다 나눠 주면 재산이 반으로 줄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런 데 팔아 버릴 것까지는 없잖아!”
“하아?”
백육십 명이라는 숫자를 들은 류드나르는 입을 쩌억 벌렸다. 자식으로 인정받은 사람만 백육십 명이면 인정받지 못한 사람은 도대체 몇 명이란 말인가.
그 어마어마한 숫자에 질린 류드나르가 멍하니 있을 때, 갑자기 단설이 고함을 내질렀다.
“아악! 잊지 않겠다, 로베르!”
고래고래 고함을 내지른 단설은 씩씩거리다 류드나르를 향해 말했다.
“그런데 넌 어쩌다가 여기에 끌려온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보통은 패밀리어를 동원하거나 던전을 만드는 방법으로 검거를 피하는 게 보통이거든.”
“아.”
류드나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게……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날, 그것도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자마자 검거됐어.”
“응?”
“선생님이 무허가 마법사인 줄 몰랐어.”
털썩 주저앉은 류드나르의 얼굴엔 좌절 비슷한 것이 떠올라 있었다.
왠지 비참해 보이는 모습의 류드나르를 보며 식은땀을 흘린 단설은 고개를 저었다.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법은 얼마나 배웠는데?”
“삼 개월.”
“에?”
단설은 뭔가 잘못 들은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삼 년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던 단설은 류드나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류드나르는 그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잘못 말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삼 개월이라니. 그건 너무 빠르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한 단설은 다시 류드나르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본 류드나르는 단설의 표정을 눈치 채곤 입을 열었다.
“왜 그래?”
“삼 개월? 세 달?”
확인이라기보다는 당황을 토해 내는 듯한 어투였다. 그것을 느끼면서도, 류드나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응.”
“……제길, 천재잖아.”
“응?”
“보통은 그렇게 될 때까지 이 년은 걸려. 뭐, 나야 다섯 달 만에 그렇게 되긴 했지만.”
그렇게 말하던 단설은 류드나르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하늘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제기랄, 신은 불공평해.”
“아니, 잠깐만.”
류드나르는 손을 들어 올렸다. 다섯 달 만에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단설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참을 투덜거리던 단설은 다시 말했다.
“그나저나 오늘쯤이면 올 때가 됐을 텐데.”
단설은 걸음을 멈추곤 남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단설이 기다리는 듯한 사람은 한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단설은 고개를 살짝 젓고는 이상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투덜거렸다.
“쳇. 그냥 가자.”
단설과 류드나르는 다시 걸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조금 전에 들어왔던 Gnorem 아캄 지부였다.
그러나 나이델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대신 그곳엔 조금 전 기절한 채 끌려 나간 편집장과 비슷한 분위기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는 들어오는 단설을 보곤 입을 열었다.
“아, 단설 군.”
“아니, 헤링(Herring) 씨는 왜 온 거예요?”
“편집장이 원고 받으러 오지 뭐 하러 오겠나.”
“으으, 이 망할 인간이!”
단설은 분노를 터뜨렸다. 나이델이 이곳에서 사라진 이유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도망친 모양이지?”
헤링이라는 이름을 가진 편집장은 ‘후―’ 하는 한숨을 토해 내며 말했다.
“커피 한 잔만 주게나.”
“맡겨 놨습니까?”
“그럼 당장 나이델 공을 잡아오든가. 벌써 원고가 삼천 장이나 밀렸어.”
“아아아악!”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쥔 단설은 벽에 마구 머리를 찧었다.
“도대체 이번엔 무슨 원고야!”
“‘War of Dragons’라는 글이네.”
“아악! 또 신작이냐!”
벌써 이렇게 밀린 글만 서른 개가 넘는다는 걸 기억해 낸 단설은 벽에 몸을 기대며 괴상한 신음을 흘렸다. 그 뒤처리가 모두 자신의 몫이었다는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이건 말도 안 돼! 도대체 일 년 동안 몇 개나 되는 글을 날려 먹은 거냐아아!”
신음을 흘리던 단설은 절규하며 무너져 내렸다. 류드나르는 그런 단설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지만, 단설은 계속해서 그런 추태를 이어나갔다.
한참을 그러던 단설은 헤링을 향해 불만을 토해 냈다.
“도대체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넘기는 사람한테 원고를 의뢰하는 이유가 뭡니까아아아!”
“글은 잘 쓰잖나.”
“그럼 다음부턴 완결 낸 원고만 받으란 말입니다!”
단설은 강하게 주장했고, 그 주장을 들은 헤링은 슬쩍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럼 잡으러 오는 재미가 없어지잖나.”
“하아.”
‘그것 때문에 괴로워지는 사람은 저랍니다’라는 표정을 지은 단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류드나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우리가 하는 일 중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에엑?”
류드나르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단설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단설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편집장 상대하기. 이게 필수 스킬이라구.”
단설의 말을 들은 헤링은 허탈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그렇다고 사람 앞에 세워 놓고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
“앉아 있잖습니까.”
“아무튼.”
단설은 손사래를 쳤다.
“아아, 이젠 나도 몰라. 여기서 평생 살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
“쳇, 이러면 재미가 떨어지잖나.”
헤링은 실망했다는 기색으로 말했다. 그러자 단설은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화를 버럭 내었다.
“내가 무슨 광댑니까!”
단설의 말을 들은 헤링은 고개를 끄덕여 단설을 한 번 더 좌절케 했다. 그리고, 그런 단설을 보며 옅은 웃음을 머금고 있던 헤링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하아. 이젠 아르마냐크 백한테나 원고를 독촉해야 하나.”
“그 사람한테도 받을 원고가 있는 건가요?”
헤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헤링을 향해 한숨을 푸욱 내쉰 단설은 말했다.
“포기해요. 포기하면 편해요.”
“아, 그러고 보니까.”
“에?”
“요즘 나이델 공이 좀 바쁜 것 같던데, 무슨 일인지 알고 있나?”
“그야 밀린 원고들 때문이겠죠. 하아. 하루에 한 장씩이라도 쓰고 있는 건지, 아니면 또 어디 처박혀서 궁상떨며 신작 구상중인지 모르겠다니까요.”
단설은 뻔하지 않냐는 표정을 지으며 헤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헤링은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고는 단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아닌 것 같던데.”
“또 무슨 사고를 친 겁니까아아아!”
단설은 입을 크게 벌리며 소리쳤다. 헤링은 단설을 보며 싱긋 웃더니, 담배를 꺼내 물곤 입을 열었다.
“자네 말야, 상관에 대한 불신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헤링 씨도 여기서 석 달만 일해 보세요.”
불신에 가득 찬 표정의 단설을 보던 헤링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튼 조심하게나. 그 나이델 공이 열심히 뛰어다닐 정도의 일이면 분명히 심각한 일일 테니까.”
“‘그’ 나이델이군요.”
한숨을 푸욱 내쉰 단설은 금색 머리카락 사이를 벅벅 긁고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그럼 이만 가네. 다음엔 에스칼데스산(産) 와인이라도 한 병 준비해 놓게나.”
“내가 왜!”
헤링은 단설이 고함을 지르거나 말거나 전혀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허허 웃으며 방을 나갔다. 그런 그를 보고는 ‘우아아악!’이라는 고함을 내지르며 벽에 머리를 몇 번 찧어 댄 단설은 씩씩대다 입을 열었다.
“나가자.”
“에, 에?”
“어차피 여기 있어 봤자 할 일도 없어. 게다가 재수 없으면 왕궁 로비를 청소하라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리나 듣는단 말이야.”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던 류드나르는 조금 전에 단설이 했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명목상으로는 아캄 유일의 특수부대. 그러나 하는 일은 왕궁 잡일.
분명히, 단설은 그런 말을 했었다.
“그, 그래. 왕궁 로비 청소보다야 낫겠지.”
류드나르는 단설의 말에 수긍의 빛을 띠었고, 볼을 살짝 부풀리며 고개를 끄덕인 단설은 벽에 걸린 흰색 코트를 걸치곤 문을 나섰다.



Chapter.2 Master is Indolent Wizard(1)


왕성을 나선 단설과 류드나르가 도착한 곳은 시내의 작은 빵집이었다.
빵집이라고는 해도, 커다란 야외 테이블이 늘어서 있어 빵집이라기보다는 카페테리아(Cafeteria)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곳에 도착한 단설은 비어 있는 테이블에 털썩 앉으며 입을 열었다.
“뭐 먹을래? 아, 물론 돈은 각자 부담해야 돼.”
“…….”
그럴 거면 뭐 먹을 거냐고 물어보지 말라는 식의 표정을 지은 류드나르의 얼굴에, 단설은 귀를 후비곤 입을 열었다.
“그냥 예의상 물어본 거야.”
그렇게 말한 단설은 테이블에 놓인 작은 종을 울렸다.
“어서……. 뭐야. 너야?”
종이 울리자마자 가게 밖으로 나온 여성은 단설을 보곤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우리 가게엔 왜 너 같은 꼬맹이들만 오는 건지 모르겠다.”
“누가 꼬맹이야?”
“그럼 어른이니?”
“이봐요, 두목.”
“누가 두목이얏!”
들고 있던 바게트로 단설의 머리를 후려갈긴 그녀는 류드나르를 발견하곤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미 볼 건 다 본 상태. 당연히 류드나르는 식은땀을 흘리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 상당히 과격하시네요.”
삐질삐질 땀을 흘리는 류드나르를 본 여성은 무언가 말을 하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단설이 말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