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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Chapter.2 Master is Indolent Wizard(3)
“나이델 공 어디 가셨어?”
“뻔하잖아.”
“…….”
련화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련화는 알았다는 식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쉰 단설은 련화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계장님 심부름.”
련화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단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종이를 받아들었고, 련화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 난 분명히 전달했다?”
“응? 어, 그래.”
단설은 짧게 대답했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련화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뭐, 뭐야!”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련화가 있던 자리를 보며 놀란 류드나르는 놀라며 말했다. 그러나 단설은 별것 아니라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텔레포트.”
“텔레포트? 그거 엄청 어려운 거잖아!”
“우리 선배야. 지금은 구청에서 일하고 있지만.”
입을 크게 벌린 류드나르는 멍한 표정으로 련화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고, 단설은 련화가 건네준 종이를 펼쳐 보았다.
“그나저나…….”
다시 팔에서 느껴진 통증에 빵집에서의 일이 떠오른 류드나르는 이를 갈며 단설을 노려보았다. 뒤늦은 응징이나마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류드나르는 막 들어 올린 손을 내렸다. 단설의 표정이 너무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왜 그래?”
“말도 안 돼.”
단설은 표정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어딘가를 향해 달려갔다.
류드나르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정신을 차린 류드나르는 단설의 뒤를 따라 달렸다.
“무슨 일인데?”
“에잇, 이놈의 마스터! 또 어디로 내뺀 거야!”
몇 군데를 뒤지더니 발을 멈춘 단설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굉장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마치 파괴신이 다시 부활이라도 했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을 듯한 표정. 그 얼굴에 긴장한 류드나르는 떨리는 손으로 단설의 등을 살짝 건드렸다.
“무슨 일인데?”
“으으.”
단설은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마스터가 또 신작을 계약했대.”
* * *
“으으.”
왕궁 전체를 뒤졌건만, 나이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설은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그러고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완결 못 내면 가만 안 둘 거야아아!”
“…….”
절규하는 단설을 보던 류드나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얼마나 한이 맺혔는지 몸을 부들부들 떠는 단설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류드나르는 책장에 꽂힌 책들을 바라보았다.
“응?”
류드나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인지 책장에 꽂혀 있는 것들은 모두 2권으로 끝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류드나르는 잘못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을 뿐이었다.
아니, 착각한 것이 있긴 했다. 1권만으로 끝난 책도 있었던 것이다.
조금 더 책장을 살펴보던 류드나르는 책을 한 권 뽑아 들며 말했다.
“단편을 좋아하나?”
“아니야.”
푸욱 한숨을 내쉰 단설이 말했다.
“그거 전부 다 쓰다 말아서 2권까지밖에 없는 거야.”
“에엑?”
단설의 말을 들은 류드나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단설을 바라보았지만, 단설은 뭐가 이상하냐는 표정으로 류드나르의 눈빛을 받으며 다시 말했다.
“마법서는 전부 저 상자 속에 있으니까 알아서 꺼내 봐.”
“으, 응.”
류드나르는 고개를 끄덕였고, 단설은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곤 주변을 살피며 고함을 내질렀다.
“아악! 이놈의 마스터, 어디에 숨은 거야아아!”
벽에 몇 번 머리를 박아 대던 단설은 한 번 더 왕성을 뒤져본다는 말을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나이델을 찾기 전엔 돌아올 생각이 없는 듯했다.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준 류드나르는 단설이 가리킨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너무 오랫동안 처박혀 있던 탓에 곰팡이마저 서려 있었다. 눈살을 찌푸린 류드나르는 창문을 열고는 벽에 걸린 먼지떨이로 책을 몇 번 털어 준 후 숨을 들이켰다. 생각했던 것보다 먼지가 많아 억지로 숨을 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도 몇 번이나 기침을 한 류드나르는 쿨룩거리던 것을 멈추고는 책을 펼쳤다.
“어라?”
몇 개의 문장을 읽은 류드나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법서일 거라 생각했지만, 안에 담긴 내용은 오래된 전설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깐 고개를 젓던 류드나르는 책 안의 내용을 읽어 나갔다.
“아!”
책을 덮은 류드나르는 짤막한 탄성을 흘렸다. 어느새 창밖 하늘에 황혼이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벌써 이렇게 됐나?”
류드나르는 다시 책을 상자 속에 넣고는 방을 나갔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류드나르는 자신이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 전에 본 것은 황혼이 아니라, 새벽안개에 머무른 태양빛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눈치 채자마자 갑자기 피로가 밀려들었다.
‘그런데 어딜 가서 자야 되는 거지?’
그러고 보니 자신의 숙소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저 얼떨결에 끌려와 이리저리 끌려 다닌 게 전부였던 것이다.
한동안 머리를 긁적이던 류드나르는 조금 전에 떠난 곳을 향해 걸었다. 어쨌거나 자기가 있을 만한 곳은 지금으로써는 그곳뿐이기 때문이었다.
그곳에 도착한 류드나르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방 안엔 아무도 없었다. 나이델은 여전히 원고를 독촉하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간 상태였고, 단설은 그런 나이델을 잡기 위해 곳곳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으니, 당연히 이곳에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후우―.”
그런 것을 생각한 류드나르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어쩐지 앞날이 캄캄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뭐, 죽는 것보단 낫겠지.”
고개를 저으며 다시 한 번 한숨을 푹 내쉰 류드나르는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러나 막 허기가 느껴져, 류드나르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어제 먹은 거라고는 스티아의 빵집에서 먹은 크로와상 몇 개가 전부였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되는 거야?’
분명히 이곳에도 피고용인들을 위한 식당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류드나르는 난데없이 끌려온 것에 불과한 입장. 당연히 왕성의 구조 같은 걸 알 리 없는 것이다.
그것에 생각이 미친 류드나르는 당황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은 물어보면 된다는 생각을 한 류드나르는 방을 나섰다.
너무도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사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동안 이곳저곳을 배회하던 류드나르는 주린 배를 움켜쥐었다. 그런 그의 머릿속으로 어떤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
“…….”
왕성 으슥한 곳에 쓰러진 소년이 정신을 잃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바닥을 길 힘도 잃어버린 소년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소년이 생을 마감한 곳엔 ‘방문자를 위한 왕실 안내 표지판’이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표지판을 세우게 해 준 소년을 위해 묵념을…….
“누가 여기서 굶어 죽어 준대!”
버럭 고함을 내지른 류드나르는 조금은 굽어 있던 허리를 쭉 폈다.
식당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해 굶어 죽은 마법사로 기록에 남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런 우스운 꼴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류드나르는 이를 악물고는 계속 발을 옮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져 갔다.
그도 그럴 것이, 왕성은 처음 들어온 사람은 길을 찾기도 어려울 만큼 크고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우으으으.”
얼마나 걸었는지 다리마저 풀려 버렸다. 아니, 사실 걸은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단지 수없이 많은 계단을 오르내린 탓에 그냥 걷는 것의 몇 배나 되는 힘을 쏟아 다리가 풀려 버린 것이다.
벽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주무르던 류드나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어느새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냥 가만히 있을걸.’
후회는 언제 해도 늦다. 그러나 그걸 되돌릴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몇 시간을 더 그렇게 있던 류드나르는 이를 악물곤 몸을 일으켰다.
상황은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오히려 그나마 남아 있던 체력이 모두 바닥나 발을 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으으.”
‘텔레포트를 쓸 줄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때늦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사실 어렵긴 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마력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이상, 어떤 마법이건 주문만 알고 있다면 어떻게든 사용할 수는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주문을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며칠만 더 늦게 잡혀 왔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최소한 길을 찾기에 유용한 마법 몇 가지 정도는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을 테니까.
그렇지만 지금 알고 있는 주문은 단 하나, 라이트(Light)뿐이었다. 이런 걸로 이곳을 빠져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하아―.”
류드나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왕성이 넓다는 것은 이곳에 끌려오면서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건 마치 미로 속에 빠져 버린 생쥐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왕성 안을 맴돌던 류드나르는 두 손으로 벽을 짚었다.
“으아아, 미치겠다.”
이젠 배가 고프다 못해 아파 오고 있었다.
통증마저 느낀 류드나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시간쯤이면 누군가가 이곳을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길을 잘못 들었는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당연히 류드나르의 얼굴엔 절망이 감돌았지만, 그것을 보아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거 정말 왕성에서 길을 못 찾아서 굶어 죽은 마법사로 기록되는 거 아냐?’
역사에 길이 남을 얼간이로 기억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류드나르는 다시 이를 악물곤 몸을 일으켰다.
“음?”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류드나르는 지옥에서 구원자를 만났을 때나 보일 법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그러나 그 표정은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날이 잘 선 장검이 순식간에 목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질이 잘 된 검에서 느껴지는 예기(銳氣)가 목을 위협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장검을 바라본 류드나르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금방이라도 자신을 베어 버릴 것만 같은 분위기에 숨을 삼킬 때, 검을 든 사내의 입이 열렸다.
“넌 뭐냐.”
“예, 예?”
류드나르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멍청해 보이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상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사무적인 태도로 다시 말했다.
“이곳은 허가받지 않은 사람은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왕실의 시녀들도 이곳은 지나지 못해.”
그제야 왜 아무도 보이지 않았던 건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 수 있다고 해서 상황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날이 잘 선 장검은 류드나르의 목에 닿아 있었고, 그것을 들고 있는 사내는 말없이 류드나르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대답을 종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