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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Chapter.2 Master is Indolent Wizard(4)


“그, 그게, 길을 잃어서…….”
그렇게 말하면서도 믿어 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입장이 반대라면 자기 역시 헛소리하지 말라며 밀어붙일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류드나르의 목에 닿아 있던 검은 곧 치워졌다. 놀란 류드나르는 조금 전까지 자신의 목에 검을 대었던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어째서 그가 검을 치웠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
마법사가 된 날, 자신을 체포했던 기사라는 것을 확인한 류드나르는 당황했다. 어째서 이 사람이 이곳에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을 느낀 것은 상대방 역시 마찬가지였던 듯, 그는 류드나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왜 이곳에 있는 거지?”
“기, 길을 잃어서요.”
사내는 잠시 류드나르를 바라보다, 검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이델 공의 집무실은 이쪽이다.”
그 말을 들은 류드나르는 의아함을 숨길 수 없었다. 그래서 류드나르의 얼굴엔 어떻게 자신이 나이델 공의 집무실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런 류드나르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은 사내는 별일 아니라는 태도로 말했다.
“무허가 마법사가 끌려갈 곳이야 뻔하잖나.”
“아.”
류드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사내는 다시 한 번 사무적인 태도로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곳은 출입이 통제된 지역이다. 빨리 돌아가는 게 좋아.”
그렇게 말을 끝낸 사내는 몸을 돌렸다. 그러나 사내는 발을 뗄 수 없었다. 류드나르가 사내의 옷자락을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느낀 사내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뭔가?”
자신을 붙잡은 류드나르를 향해 눈살을 찌푸린 사내는 다시 말했다.
“무슨 용건이라도 있나?”
별일 아니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듯한 표정이 사내의 얼굴에 떠올랐다. 움찔한 류드나르는 잠시 말을 꺼내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그 모습을 본 사내가 다시 발을 떼려 할 때, 우물쭈물하던 류드나르가 입을 열었다.
“저기…… 여기 식당이 어디 있죠?”
“…….”

* * *

“하아, 배부르다.”
포만감에 젖은 표정을 지으며 테이블에 얼굴을 기댄 류드나르는 숨을 토해 냈다. 허기에 쫓겨 너무 많이 먹었는지 살짝 배가 아픈 듯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굶어 죽을 뻔했던 얼마 전까지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런 생각을 하자 느껴질 듯 말 듯하던 통증도 사라졌다.
냅킨을 들어 입을 닦아 낸 류드나르는 숨을 토해 냈다. 그나마 이곳, 왕실의 시종들을 위한 식당이라도 열려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두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 뻔했다.
“후우―.”
길게 숨을 토해 낸 류드나르는 다시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때, 음식이 가득 담긴 접시를 들고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보곤 무의식적으로 소리 질렀다.
“아앗!”
“응? 뭐야. 너냐?”
“당신, 뭐야!”
류드나르를 발견하고 멈춰 섰던 라힐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몰라서 묻는 거냐?”
“재무장관씩이나 되는 사람이 왜 이런 곳에 있는 건데!”
아직도 불만이 가득한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류드나르를 향해 눈살을 찌푸린 라힐렌은 왼쪽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말했다.
“여기 공공장소다. 조용히 해라.”
“윽.”
주변을 둘러본 류드나르는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라힐렌은 어깨를 한 차례 으쓱해 보이더니 의자를 빼고는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런 라힐렌을 노려 본 류드나르는 입술을 깨물곤 화를 삭인 후 입을 열었다.
“당신이 여기 왜 있는 거야?”
“그야 왕성에서 식비를 안 받는 곳은 여기뿐이니까.”
“…….”
너무도 당당하게 말하는 라힐렌의 모습에 식은땀을 흘린 류드나르는 입을 살짝 벌렸다.
그런 류드나르를 잠깐 흘겨본 라힐렌은 다시 음식을 향해 손을 뻗었다.
멍하니 서 있던 류드나르는 라힐렌이 음식을 씹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 그게 다야?”
“그럼 뭘 더 바란 거냐?”
퉁명스럽게 받아친 라힐렌은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을 우걱우걱 먹어 치웠다.
세 번이나 접시를 비운 라힐렌은 포만감에 가득 찬 얼굴로 배를 두드렸다. 그러고는 언제 가져왔는지 모를 홍차를 들이켜고는 꺼억 트림을 내뱉었다. 류드나르의 표정은 일그러졌고, 라힐렌은 쩝쩝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이놈의 식당은 조미료를 너무 아낀단 말야.”
류드나르는 입을 살짝 벌리며 라힐렌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라힐렌은 류드나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입을 벌린 채 자신을 바라보는 류드나르의 모습을 발견하곤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뭐냐?”
“당신 말야, 평소에도 뻔뻔하다는 말 자주 듣지?”
“후, 능력 있는 사람의 자신감이라고 해라.”
그렇게 말한 라힐렌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반말이냐?”
불쾌한 기색을 띤 라힐렌을 본 류드나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자신을 호스트로 팔아넘기려 한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뚜렷이 드러나 있는 표정이었다.
그런 얼굴로 라힐렌을 바라본 류드나르는 헛소리하지 말라는 투로 말했다.
“그럼 당신이 나한테 존댓말 듣기를 바란 거야?”
“뭐, 상관없지. 무능한 존재의 질투로 여기마.”
“…….”
류드나르는 입을 쩌억 벌렸다. 그런 류드나르를 보던 라힐렌은 냅킨으로 입을 한 번 닦아 내고는 갑자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라힐렌은 냅킨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류드나르는 라힐렌의 앞에 놓여 있던 나이프와 포크가 그의 소매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라힐렌은 움찔하며 입을 열었다.
“봤냐?”
“그럼 못 볼 것 같았냐!”
“쳇.”
라힐렌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나이프와 포크는 내놓지 않았다.
그런 라힐렌을 빤히 바라보던 류드나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이, 재무장관씩이나 되는 사람이 뭐 하는 짓이야?”
“시끄럽다.”
라힐렌은 류드나르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입을 살짝 벌리고 있던 류드나르는 몸을 돌려 주방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줌마! 여기…….”
“조용히 못해?”
라힐렌에 의해 입이 막힌 류드나르는 한참을 버둥거렸다. 덕분에 식당에 있는 사람들의 눈이 그들에게 향했다. 라힐렌은 그들을 향해 상당히 애매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그대로 류드나르를 끌고 식당을 빠져나갔다.
라힐렌은 식당에서 나오고도 한참을 더 가서야 류드나르를 놓아주었다.
“무슨 짓이야!”
“후―.”
라힐렌은 옆에 놓인 석제(石製) 의자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 모습을 보며, 류드나르는 다시 조금 전의 상황에 대해 주지시켰다.
“무슨 짓이냐고!”
라힐렌은 뿌연 연기를 뱉어 내고는 입을 열었다.
“네놈은 상급자에 대한 예의도 모르냐.”
“당신이 왜 내 상급자냐!”
“네놈 월급 책정하는 게 누군 줄 알아?”
“그딴 거 상관없어!”
“쳇.”
라힐렌은 또 한 번 뿌연 연기를 내뱉었고, 매캐한 연기에 콜록거리던 류드나르는 라힐렌을 쏘아보았다.
다시 한 번 담배 연기를 내뱉어 류드나르의 표정을 한층 더 찌푸리게 한 라힐렌은 반쯤 타들어 간 담배를 집어 던지며 말했다.
“땅 파면 돈이 나오냐?”
“뭐?”
라힐렌은 소매 속에 숨겨 놓았던 나이프와 포크를 꺼내 들었다.
“이렇게 일 년만 하면 삼백하고도 육십오 마르크를 벌 수 있단 말이다.”
“…….”
류드나르는 한층 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그 모습을 본 라힐렌은 다시 말했다.
“자, 수업료 내놔라.”
“무슨 수업료?”
손을 내밀곤 당당하게 말하는 라힐렌을 바라본 류드나르는 멍한 기색으로, 정확히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라힐렌은 그런 류드나르를 잠시 바라보다 눈살을 찌푸리곤 입을 열었다.
“안 할 거냐?”
“하긴 뭘 해!”
라힐렌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앞뒤가 꽉 막힌 놈 같으니라구.
“넌 출세하긴 글렀다.”
“그딴 출세 필요 없어!”
라힐렌은 또 한 번 고함을 내지른 류드나르를 노려보고는 다시 담배를 꺼내 물며 말했다.
“그럼 너나 그렇게 살아. 난 내 방식대로 살 거니까.”
담배에 불을 붙인 라힐렌은 숨을 크게 들이켜고는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그것을 느낀 류드나르는 다시 콜록거렸고, 꺼냈던 나이프와 포크를 다시 소매 속에 집어넣은 라힐렌은 자신의 집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팔을 내저으며 담배 연기를 몰아낸 류드나르는 또 한 번 기침을 토해 내며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라힐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한마디 쏘아 주려 했던 류드나르는 고개를 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여긴 또 어디야…….”
어쩐지 다시 미아가 되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류드나르를 덮쳤다.

“빨리 못 써요?”
“자, 잠깐만. 담배 하나만 피우고…….”
“빨리 써요!”
물어물어 나이델의 집무실 앞에 도착한 류드나르는 당혹을 감출 수 없었다.
나이델의 두 다리는 의자에 꽁꽁 묶여 있었다. 그리고 단설은 채찍을 든 채 그 뒤에서 눈에 불을 켜고는 나이델을 바라보고 있었다.
“…….”
잠시 멍하니 서 있던 류드나르는 다시 나이델과 단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분명히 나이델이 단설의 상급자임에도, 나이델은 단설에게 붙잡혀 쩔쩔 매고 있었던 것이다.
당황하던 류드나르는 그들을 향해 걸었고, 곧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책상 위엔 족히 만 장은 넘어 보이는 원고지가 쌓여 있었다.
나이델은 그걸 보며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단설은 자비 없는 모습으로 나이델을 닦달했다.
“우선 헤링 씨네 원고부터 쓰는 겁니다! 삼천 장밖에 안 되니까 내일까지 다 해요!”
“이건 상관 모독이야!”
“상관없으니까 쓰기나 해요! 잠깐! 지금 텔레포트 쓰려고 하는 거지!”
단설은 나이델의 입에 채찍을 밀어 넣었다. 몰래 텔레포트 주문을 외우고 있던 나이델은 컥 하는 소리를 내며 두 손을 휘저었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요! 그냥 쓰는 겁니다!”
단설은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류드나르는 나이델이 어째 애처로워 보인다고 생각하며 나이델을 들볶는 단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잡았구나.”
“응? 어, 힘들었어. 이 아저씨가 글쎄 인비저빌리티(투명화)에다가……. 잠깐! 도망칠 생각하지 말라고 했죠!”
“우웁.”
채찍을 뱉어 내고는 다시 뭔가를 중얼거리던 나이델의 입에 재갈을 물린 단설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렇게 말했지만, 분명히 단설은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