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레드 카이젠 1(12화)
Chapter 4 숨겨진 자들(3)
“이 녀석아, 어서 머리를 숙여라. 진짜 황태자전하시다.”
알론소가 재빠르게 말했다. 그러자 카투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이퀼라스를 흘깃흘깃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사냥터에 종종 들렀던 황태자의 모습과 많이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창백한 표정으로 자세를 바르게 했다.
“황태자전하를 뵙습니다.”
우렁찬 함성. 그 소리에 이퀼라스는 귀가 울려 왔지만 딱히 내색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은 카이젠의 앞에 놓인 인형일 뿐이었다. 주연은 카이젠이었다. 과연 그가 무슨 짓을 벌일지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하지만 카이젠은 그의 태도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이번에는 앞에 박혀 있는 창에 시선을 가져갔다.
“괜찮은 힘이긴 하군.”
쑤욱.
카이젠은 자신의 앞에 박힌 카투의 창을 끄집어냈다.
“대충 어디까지 던질 수 있지?”
카이젠의 질문에 카투는 잠시 고민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단 상대가 기사단장이든 귀족이든지 간에 할아버지가 공손히 대하는 상대였다. 자신도 조심해야 했다.
“저 나무에 가져다 박을 정도 됩니다.”
하지만 으쓱거리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창에 대한 말이 나오니 누구도 자신보다 더 멀리 창을 던질 수 없다는 자신감이 뿜어져 나왔다.
“저곳?”
건너편에 불을 피워놓은 환한 단이 있었고 그 옆에 커다란 고목이 우뚝 서 있었다. 상당히 먼 거리였다. 아까 조금 전 카투가 뛰어왔던 것보다도 더 먼 거리였다.
“어디 해 봐.”
카이젠은 웃으면서 창을 건넸다.
그 목소리가 흡사 네가 과연 할 수 있겠어라는 비웃음이 담긴 것 같았기에 카투는 사납게 인상을 쓰며 그 창을 받았다.
자신이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은 황태자이지 그의 기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디 실력을 보여 주지.’
카투는 제대로 된 공격을 보여 주기로 마음먹었다.
온몸의 근육을 격동시키며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흐읍, 흡.”
숨을 가다듬던 카투는 이내 왼발을 한 발 앞으로 내밀며 몸을 숙였다.
“으하합!”
쐐앵!
파악.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카투가 던진 창이 빠르게 날아갔다. 그리고 놀랍게도 조금 전 지적한 커다란 고목에 정확하게 박혔다.
파르르.
힘차게 날아간 창은 아직도 힘이 남아 있는지 창끝이 떨렸다. 나무가 갈라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 정도로 엄청난 위력이었다. 도무지 사람이 던진 것이라 믿기 어려웠다.
그야말로 엄청난 장사였다.
“멀어서 잘 안 보이겠지만 지금 창은 정확하게 날아갔습니다. 지금 가셔서 확인해 봐도…….”
카투는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으로 창이 정확하게 잘 날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멀다 보니 카이젠이나 황태자가 확인을 못할까 봐 미리 말을 건넸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카이젠은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건너편의 모든 광경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이야, 대단한데. 저쪽까지 던질 수 있다고 해서 의외로 멀리 못 던지는 거라 생각했는데 꽤 잘 던지는군. 최대로 던질 수 있는 거리란 말이 아니었어.”
카이젠의 말에 카투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저기까지 던질 수 있다는 것은 저 범위 내의 모든 생명체를 창으로 죽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즉, 자신의 사정거리를 말한 것이지 최대 투창 거리를 말한 것이 아니란 말이었다.
엄청난 위력이었다. 제국의 기사 중에도 이런 능력을 지닌 자는 없었다.
“좋아. 저 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너의 창이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군.”
그 말에 이퀼라스는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퀼라스는 왜 저런 자가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았지라는 의문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 의문을 풀어 주려는 듯 알론소가 재빠르게 말했다.
“우리 일족은 오로지 이곳에서 생활할 뿐 다른 일은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예외는 황족이 직접 명을 내리는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잖소, 할아범.”
카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귀족도 아닌 제가 무슨 수로 기사단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오로지 귀족 분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데 우리와 같은 특별 계급이 무슨 수로 가나요. 저는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이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기사 계급은 귀족들이 모두 장악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맡은 자들은 평생 자신이 맡은 일만 전승해야 했던 것이다.
“흐음. 그래?”
그러더니 카이젠은 이퀼라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침 뇌격 기사단에 결원을 보충해야 하는데 이자를 신규 단원 후보로 넣는 것이 어떨까요? 전하.”
결원이라기보다는 아직 단원이 아무도 없었다.
카이젠의 제안에 이퀼라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 으응. 뭐, 좋아.”
사실 카투의 놀라운 투창 솜씨에 감탄해 있는 상태였다. 이퀼라스는 정신 차릴 겨를도 없이 그의 말을 허락한 것이다.
“뇌격 기사단? 후보?”
카투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영광입니다. 영광입니다.”
알론소가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아니, 정식단원도 아니고 후보에 들어가는데 뭘 그리 좋아하시오, 할아범.’
카투가 속으로 투덜거리는 사이 카이젠이 알론소에게 말을 걸었다.
“아마 그대는 나에게 해 줄 이야기가 좀 더 있을 것 같군. 나중에 좀 더 이야기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할아범, 정말 이상하오. 오늘따라 왜 그러오?”
평소 사냥터를 찾아오는 귀족들에게도 깐깐한 모습을 보여 주던 할아범이었다. 오죽했으면 몇몇 분노한 귀족들이 은밀히 청부한 암살단까지 온 적이 있었다.
물론 그렇게 오게 된 암살단은 모조리 죽었다. 카투가 직접 나선 것도 있지만 알론소가 직접 처리한 것도 있었다.
사실 카투로서도 할아버지와 싸우면 과연 자신이 이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 정도로 그는 숨겨진 실력자였다. 그런데 그런 할아버지가 자신이 뇌격 기사단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곳에 가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는 것이다.
더구나 정식 가입도 아니고 후보였다. 아마도 자신 같은 자는 허드렛일이나 하다가 끝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결코 기사단에 갈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기뻐할 사람이 아니었기에 카투는 의아해진 것이다.
“뇌격 기사단은 황태자전하의 그림자 기사단. 그리고 제국의 최강 기사단이다. 영광으로 알아라.”
카이젠이 목을 살짝 돌리며 말했다.
“그리고 들어오고 싶다고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나 마침 네 녀석이 필요하기도 한 일이 생겨서 뽑은 것이니 그리 알아라.”
“으윽.”
카투는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데없이 야밤에 기사단 후보생이 된 것이다.
“그리고 창을 좀 쓴다고 까부는 것 같은데.”
카이젠의 말에 카투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것이 투창이고 창술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기사는 자신의 자부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정말 옆에 있는 할아버지가 눈짓으로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 않았다면 한바탕 난리를 피웠을 것이다.
이곳은 황족의 금지.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자신들이 관할하였다. 막말로 귀족이 이곳에 무단 침입했다면 자신들이 흠칫 두들겨 패서 쫓아내도 상관없었던 것이다.
“뇌격 기사단에 들어와서 한몫하려면 이 정도로는 부족하지.”
‘부족? 훗.’
카투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마음만 먹으면 기사단의 상급 기사도 쓰러뜨릴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카이젠은 자신을 하염없이 낮게 보고 있는 것이다.
그때 카이젠이 박혀 있던 다른 창 하나를 뽑아 들었다.
“앞으로 창술도 좀 가르쳐 주지. 그걸 익힌다면 좀 더 쓸 만한 부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쓸 만한 부하라고.’
쐐액!
어이없어진 카투가 뭐라 하기 전에 카이젠의 몸이 움직였다. 몸의 중심이 이동하며 조금 전 카투가 보였던 것과 비슷한 동작이 카이젠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더욱 정교하고 자연스러웠다.
“파이어 스톰!”
카이젠의 외침과 함께 창이 파공성을 내며 날아갔다.
파각! 팍!
우르릉 쾅!
“헉! 저럴 수가.”
카투가 입을 딱 벌렸다.
카이젠의 창은 흡사 불길에 휩싸인 것 같았다. 그것이 빠르게 날아가더니 조금 전 카투가 찍어 놨던 창을 두 조각을 내며 꿰뚫은 다음 나무를 부숴 버렸다.
“창을 던지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지금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카투가 눈을 계속 깜박거렸다. 하지만 분명 자신이 잘못 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일례로 지금 황태자전하라 주장하는 소년도 입을 딱 벌린 채 자신이 지금 헛것을 본 것이 아닌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허허. 정말로 대단하군요. 마샬 아트. 옛 기사들의 힘. 지금은 단절된 그 힘을 다시 보았습니다.”
“옛 기사들의 힘? 거 뭐냐.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하나 둘 명맥이 끊어졌다는 것? 할아범이 그 이야기를 했잖소.”
알론소와 카투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카이젠은 살짝 인상을 썼다.
‘흐음. 마샬 아트가 상당수 실전되었구나. 통일제국의 기사들이 후예를 많이 남기지 않은 것인가? 하긴 평화시대가 되었으니 마샬 아트를 오랜 기간 익히려는 자들은 없어졌겠지. 아니, 다이제스와 그의 동료들이 벌인 일인가? 하긴 그것은 양날의 칼이니까. 마샬 아트를 익힌 군사 세력이 존재한다면 제국은 평생 안정될 수 없겠지.’
마샬 아트는 카이젠이 활동하던 시기에 일단의 기사들이 사용하던 기술이었다. 몸 안에 쌓인 기운을 하나로 모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카이젠은 잘 몰랐지만 다이제스와 그의 동료들은 각자의 제국을 건국한 후 마샬 아트를 상당히 통제하였다.
천족과 대항해 싸우기 위해 마샬 아트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어차피 천족들의 침입 당시 마샬 아트로는 그들에게 대항할 수 없었다.
인간을 뛰어넘는 대군주 카이젠만이 그들을 막을 수 있었다.
대군주 카이젠이라면 제국 내에 마샬 아트가 퍼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제어할 수 있었지만 다이제스와 그의 동료들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굳이 신생 제국에 위험이 되는 마샬 아트를 내버려 둘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은밀히 마샬 아트의 정수가 담긴 서적을 비밀리에 모아 금서로 만들었고 소수의 제국 기사를 제외하고는 수련을 금지시켰다.
아예 마샬 아트라는 이름을 지워 버렸다.
그렇게 되자 반발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부 기사들이 익혔던 마샬 아트야 이름과 명칭을 바꿔 그들의 가전절기라는 명목으로 수련케 하였으나 기사단에 속하지 않은 자들은 반란 분자라 하여 척살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마샬 아트의 비급을 내놓고 마샬 아트 수련에서 손을 뗀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으나 그것을 거부하는 자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반발이 심했으나 결국 거대한 제국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수집된 다양한 마샬 아트는 각 제국의 공작가에 보은 형식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자신들만이 독점하는 권력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철저히 그것의 뿌리를 숨겼다.
시간이 흐르게 되면 사람들은 마샬 아트란 것이 원래는 대부분의 사람이 익힐 수 있었던 것이란 것을 잊어버린 채 고위 귀족들만의 전유물이라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그들의 권력을 상징하는 수단이 될 터였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대로 마샬 아트란 이름이 사라지게 되자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이름을 기억하는 자들은 없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마샬 아트 또한 카이젠과 더불어 역사에서 사라졌다.
또한 각 귀족가의 비전절기로 변한 마샬 아트의 경우도 평화시대가 오랫동안 계속되다 보니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없어지게 되었다. 가문의 비밀이니 가문 내에서만 익히고 그것을 가문의 비밀 무기로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명 그림자 무술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 제국이 요동치며 분리될 때마다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상당수의 마샬 아트가 소실되었다. 패배한 가문이 몰살되면서 그 비전절기도 같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오백 년 동안 반복되다 보니 예전에 비해 마샬 아트의 수준이 많이 떨어지게 되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문을 통해서 익힌 마샬 아트를 사용하기는 했으나 체계적인 교육이 사라졌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 공작 가문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과거에 비해 현격하게 수준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한 연유로 카이젠이 봤을 때에는 기사들의 실력이 형편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