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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카이젠 1(13화)
Chapter 4 숨겨진 자들(4)
잠시 카이젠이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그를 깨우는 카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뭐지요?”
카투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카이젠이 손목을 돌리며 대답해 줬다.
“가볍게 쓸 수 있는 창술. 이름 그대로 파이어 스톰. 네가 아까 말한 마샬 아트의 일종이다.”
“그것을 뇌격 기사단에 들어가면 배울 수 있나요?”
카투가 흥미를 가지며 물어보았다.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익혀야 한다.”
카이젠이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카투를 보니 마샬 아트를 정식으로 익힌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초적인 것은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훗. 좋습니다, 좋아요.”
히히덕거리는 카투. 옛 기사의 힘을 보니 눈이 번쩍 뜨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황실의 그림자 기사단이란 말을 믿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단지 창을 잘 던지는 것만으로는 곤란해.”
카이젠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어느새 알론소가 두 개의 봉을 들고 뛰어왔다.
“마음에 드는군. 내가 이걸 가져오라고 할 줄 알고 있었나?”
“당신께서 부하를 고르심에 있어서 단지 창을 던지는 것을 보여 줄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법 괜찮은 부하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이젠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휘익 휙.
카이젠은 봉을 몇 번 휘둘러 보았다. 길이에 비해 가볍고 괜찮았다.
“받아라. 아마 지금은 투창술보다는 이걸 써야 할 것 같으니.”
봉을 받은 카투는 멍하게 카이젠을 쳐다보았다.
“봉술도 배웠겠지? 대충 어느 정도냐?”
그러자 그 질문을 받은 카투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적어도 내 앞을 가로막는 자는 모조리 쓰러뜨릴 정도는 됩니다.”
그것은 적어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엄청난 자신감이었다. 그러자 카이젠은 자신의 봉을 들어 뒤로 쭉 선을 그었다.
“좋아. 어디 한번 나를 이곳 뒤로 물러나게 해 봐라.”
“예?”
“그렇게 하면 정식 기사단원으로 승급시켜 주지. 내 두 다리는 여기서 움직이지 않는다.”
카이젠의 말에 카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밀어낼 뿐이란 말. 그리고 카이젠은 지금 있는 위치에서 가만히 서 있겠다고 했다.
‘뭐 이런 자가 다 있어.’
비록 상대가 파이어 스톰이라는 놀라운 기술을 보여 주었지만 그것은 투창술.
자신은 할아버지에게 다양한 봉술도 배웠다.
나름 열댓 명의 제국 기사들이 덤벼도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강한 근육의 힘과 기술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상대는 그저 자신을 밀어내라고만 하고 있었다. 그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후회하지 마쇼!”
카투가 조금 전에 기가 죽은 것을 만회하고자 하는 듯 크게 소리쳤다.
자신의 힘이라면 제아무리 버티고 있더라도 넘어뜨릴 수 있었다. 오히려 너무 세게 때려 어디 몇 군데 부러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파팍! 팍!
카투의 봉이 날카롭게 카이젠의 가슴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이번에는 조금 전 투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거대한 덩치에서 나오는 몸놀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순식간에 카투의 손에 들린 봉의 끝이 서너 개로 변했다.
카투는 알지 못했지만 이것은 과거 레이드 브릿지라 불리던 유명한 마샬 아트였다. 봉술에 있어서 최상급의 전투기술이었다.
레이드 브릿지를 최고의 마스터 단계까지 익힌 룬차는 카이젠이 거느린 동방원정군의 사령관이었다. 그의 기술이 세월이 흘러 카투에게까지 이어진 것이다.
현재 카투가 익히고 있는 수준은 레이드 브릿지의 초중급 단계. 하지만 초중급 단계라도 카투의 상태라면 그가 자신하는 대로 제국 기사 열댓 명 이상을 단숨에 이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상대가 카이젠이란 사실뿐.
* * *
‘잔상? 저런 봉술을 쓰는 자가 있었어?’
이퀼라스는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이 얼마나 미약한지 알게 되었다.
봉술은 여러 격투술 중 가장 단순하고 약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카투가 보여 주는 봉술은 기사들의 검술과 창술을 능가했다.
저것을 상대할 만한 자는 별로 없을 것 같았다. 그야말로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쉴트와 맞먹을 것 같다.’
놀랍게도 그의 분광검과 카투의 봉술이 부딪친다면 누가 이길지 승부를 내지 못할 것 같았다. 예전에 분광검에서 느끼던 패도적인 기운을 지금 다시 느끼고 있었다.
쉴트에 버금가는 실력자가 바로 황실의 사냥터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자가 이곳 사냥터에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좀 더 주변의 인재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야겠구나. 내 스스로 움직여야겠어.’
지금까지 제국의 인재 등용이 얼마나 폐쇄적이었는지 이퀼라스는 반성하게 되었다. 실제로 인재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 카이젠의 팔이 살짝 움직였다. 지금 카투가 사용하는 봉술을 단숨에 알아본 것이다. 그리고 카이젠은 레이드 브릿지의 마스터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똑같이 레이드 브릿지로 상대해 주는 것은 카투를 죽이는 행위가 될 것이기에 과거 제국군에서 사용하던 일반적인 창술로 상대해 주었다.
찌르고 후려치는 것.
가장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카이젠이 사용하면 그것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레이드 브릿지의 초중급자가 상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휘익!
카투가 만드는 봉술의 잔상 속으로 카이젠의 봉이 깊게 찔러 들어갔다. 주변을 휘감은 잔상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 카이젠의 공격은 일직선으로 쭉 뻗어 들어갔다. 그것을 막기 위해 카투가 만들어 낸 잔상들이 덤벼들었으나 카이젠의 공격은 정중동이었다. 태산처럼 자리를 지키며 그대로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향해 들어갔다.
그렇게 되자 카투의 공격이 잠시 머뭇거리게 되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자신이 먼저 당하게 되는 것이다.
찰나의 순간 이미 카이젠의 공격은 카투의 머리에 도달해 있었다. 카투와 비슷한 속도로 들어오던 카이젠의 공격이 봉이 서로 엇갈리기가 무섭게 수십 배 빨라진 것이다.
기겁을 하며 카투의 몸이 뒤로 껑충 물러났다.
쏴악.
그 순간 카투의 머리카락 몇 올이 잘려 나갔다. 단지 뭉툭한 봉이 지나갔을 뿐인데 머리카락이 잘려 나간 것이다. 흡사 칼날이 지나간 것 같은 효과.
카투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공격이 이래!’
혹시라도 봉 사이에 칼날을 숨겨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카이젠이 들고 있는 봉은 얼마 전 자신이 단단한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었다.
까닥까닥.
카이젠이 손을 흔들었다. 어서 덤비란 이야기.
카투는 자신이 정신을 못 차린 채 뒤로 허겁지겁 물러났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내 화를 내며 다시 뛰어들었다.
“이야압!”
처음에는 다소 방심해서 당한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나 빈틈을 많이 보이고 들어갔었다고 생각하며 이번에는 완벽하게 방어를 하며 다시 쳐들어갔다. 아까보다는 뭉툭하고 선이 단조로운 공격이 이어졌지만 대신 상단 방어는 철저했다.
‘밀어내기만 하면 되니까!’
막아 내면 힘으로 그대로 밀고 갈 생각이었다. 어떤 사술을 쓰든지 간에 밀어 붙이는 것에는 당해 낼 재간이 없을 터였다. 그것이 카투의 생각.
쿵쾅쿵쾅.
카투가 뛰어가자 먼지가 솟아올랐다. 그의 몸에 잠재되어 있던 기운이 레이드 브릿지를 통해 활성화되고 있었다. 마샬 아트의 진면목이 여기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우와.”
이퀼라스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질렀다. 거대한 곰이 달려가는 것 같은 위용. 만약 자신이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위압감이 대단했다. 하지만 카이젠은 그저 무심하게 우뚝 서서 봉을 들어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타하압!”
다시 한 번 기합을 내지르며 카투의 봉이 카이젠의 가슴을 향해 쏟아졌다. 레이드 브릿지의 제일식. 피스트 드래곤이 발동했다.
평상시와 달리 자신의 모든 힘을 담은 공격이었다. 만약 정통으로 카이젠이 이것을 맞게 된다면 늑골이 부서질 터였다. 평상시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공격을 가하지 않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까 전에 당한 것을 복수하는 것이었고 이 정도의 공격이 아니라면 카이젠을 밀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든 것이었다.
“위…… 위험.”
이퀼라스는 카투의 봉 끝에서 은은한 기운이 뿜어 나오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랐다. 아까 전 카이젠이 보여 주었던 파이어 스톰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금 보이는 것은 최상급의 기사들이 보여 주었던 블레이드 같았기 때문이었다.
검에 기운을 씌우는 블레이드.
이것을 사용할 수 있다면 바로 제국의 상급 기사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황실 사냥터의 관리인이 봉에 그것을 담아 보여 주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퀼라스로서는 평소 카투가 이 기술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러했기에 제국의 인재 등용 절차가 너무나 폐쇄적이란 것을 다시 한 번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훗. 제법이군.”
카투의 공격에 카이젠은 살짝 숙였다. 그대로 맞아 주기에는 조금 곤란한 공격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대로 맞아 준다고 하여 밀릴 카이젠은 아니었지만 그럴 경우 카투는 자신의 손에 죽게 될 터였다.
그를 죽이기 싫었기에 카이젠은 봉을 살짝 들어 그의 공격을 막았다.
휘익.
아까와 같이 다시 한 번 카투의 봉과 카이젠의 봉이 격돌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 순간 카이젠의 봉이 순간 빨라졌다. 그리고 그것은 좌우로 회전하며 카투의 봉을 가격했다.
따닥 따다닥.
디잉.
“으흑.”
카투의 몸이 흔들렸다. 카이젠이 살짝 봉을 들어 자신의 공격을 막았을 뿐인데 그의 몸이 파도 위에 뜬 조각배처럼 흔들렸다.
몸의 중심이 흩어진 이상 제대로 공격이 먹힐 수가 없었다. 그의 공격은 카이젠의 몸에 닿기도 전에 모두 와해되었다.
“엇?”
이퀼라스는 카투의 엄청난 공격이 순식간에 소멸되어 버리자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시작은 엄청났으나 카이젠에게 도달하지도 못하고 너무나 쉽게 그의 공격이 중단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카투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공격이 하나도 먹히지 않자 카투의 눈이 동그래졌다.
“약하다. 기교는 있으나 힘이 담겨 있지 못하다.”
카이젠이 짤막하게 말했다. 그리고 알론소를 바라보았다.
“현 제국 기사들은 더욱 심각하겠지? 아까 손을 섞어 봤던 제국 기사들은 너무나 약했다.”
쉴트가 들었다면 너무나 억울했을 말이었다. 나름대로 최상급의 제국 기사였다고 자부했는데 카이젠의 기준에서는 너무나 약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미 몸 안에 기운을 담아 적을 쓰러뜨리는 마샬 아트의 비법은 상당수 실전되어 버린 상태입니다. 그나마 가장 많은 마샬 아트를 보유한 각 공작 가문들의 경우도 그것을 밖으로 꺼내 놓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작가 내부에서도 실전되어 버리는 마샬 아트가 비일비재합니다. 힘들게 그것을 익힐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카이젠과 알론소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이퀼라스와 카투는 그저 눈을 껌벅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카이젠이 중얼거렸다.
“으음,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군. 너무나 많은 퇴보가 있었다. 오랜 평화가 너희를 너무 나태하게 만들었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카이젠이 말했다.
이제 곧 피와 철의 전투가 시작될 터였다. 이들은 너무나 약하고 나태했다. 과거 통일전쟁 시기의 사람들에 비하면 이들은 아이에 불과했다.
‘하긴 수십 년간의 전란시대를 겪은 사람들과 이들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인가?’
죽지 않기 위해 싸우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오랜 평화가 지속되고 있었다. 그때와 똑같은 정신 자세를 요구하긴 어려웠다.
“후웃. 재밌네.”
카이젠이 웃음을 터트렸다.
“오랜 평화에 찌든 자들을 정신 번쩍 차리게 해 줘야지.”
똑같은 정신 상태를 요구하기 어렵다고 해서 요구하지 않을 카이젠이 아니었다. 필요하면 되게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은 충분히 그렇게 할 힘이 있었다.
“뭐 해. 어서 덤벼 봐.”
슬슬 약을 올리며 카이젠이 카투를 도발했다.
카투는 왜 자신의 공격이 이렇게 어이없이 막혔는지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번에는 방법을 조금 변화시켰다.
“오호?”
제법 마음에 든다는 목소리로 카이젠이 말했다. 그는 흡사 곰이 땅에 바싹 붙어서 다가오는 것처럼 카이젠을 향해 접근했던 것이다.
먼 거리에서 공격하는 것은 초반에 카이젠에게 막혀 버렸다. 그렇게 되자 이번에는 가까이 접근해서 공격하려 마음먹은 것 같았다.
‘이렇게 하면 확실히 밀어낼 수는 있다.’
카투의 작전이었다. 우직하게 바로 앞까지 다가가 밀어 버릴 생각이었다. 어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밀어내면 되는 것이니 봉을 카이젠의 가슴에 일단 댄 다음에 밀어붙이면 그가 뒤로 넘어갈 것이라 생각한 것.
나름 머리를 쓴 것이나 문제는 아까도 밀어내기만 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은 먹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훗. 그런 걸로는 안 통한다.”
카이젠은 카투의 얄팍한 생각을 알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봉을 슬쩍 움직였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와 그제야 봉을 치켜들어 카이젠의 가슴에 댄 카투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휘익!
빡 빠각 빡!
이번에는 제대로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으악!”
그 순간 카투는 머리를 감싸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카이젠의 봉이 슬며시 다가오는 것이 보였기에 아까 전에 카이젠이 자신의 공격을 막은 것처럼 이번에는 자신이 그의 봉의 끝을 쳐 흘려보내려 했다.
하지만 카이젠의 봉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며 카투의 머리를 가격한 것이다.
카이젠의 봉은 분명 천천히 다가왔었는데 막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었다.
‘엇. 내가 왜 쓰러져 있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있었다.
“으윽. 일어나야…….”
있는 힘껏 일어나려 했으나 점차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얻어맞은 것에 대한 효과가 슬슬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끄으윽.”
쿵.
결국 일어나려 용솟음치던 카투는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머리에 충격을 받게 되자 그것이 다리에까지 영향을 주어 몸을 가눌 수 없게 된 것이다.
“어어어…….”
쿠당탕!
그리고 잠시 후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더니 아예 양팔 양다리를 쭉 뻗은 채 혼절해 버렸다. 뇌진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