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1화
Chapter.2 Master is Indolent Wizard(7)
약 열 페이지 정도를 읽었을 무렵, 바깥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꽤나 먼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들은 류드나르는 책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문을 박차고 들어온 중년 사내는 방 안을 휘휘 둘러보더니 다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 나이델 공 어디 있나!”
“에휴.”
단설은 고개를 내젓고는 입을 열었다.
“이번엔 어느 출판사예요?”
“갑자기 무슨 소리냐!”
“에? 아닌가?”
사내는 이럴 리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 단설의 멱살을 붙잡고는 마구 침을 튀기며 말했다.
“나이델 공 어딨냐고!”
“그, 그 아저씨 나르비크로 도망갔…….”
“아아!”
단설의 멱살을 놓은 사내는 풀썩 주저앉았다. 켁켁거리며 숨을 고른 단설은 움찔한 채 뒤로 물러났고, 막 책을 집어 들려 하던 류드나르는 주저앉은 사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신데요?”
“으으. 그래, 너희들 마법사지?!”
“에에, 일단은…… 우악!”
“너도 마법사냐?”
류드나르의 멱살을 붙잡은 사내는 단설을 향해 말했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 단설은 곧 후회했다. 그것을 본 사내가 단설의 멱살마저 붙잡고 연신 침을 튀겨 댔던 것이다.
“에잇, 너희들이라도 따라와!”
“잠깐!”
힘겹게 멱살을 잡은 손을 떼어 낸 단설은 사내를 노려보았다.
“당신 누구야!”
“지금 급하다고!”
“내가 알 게 뭐야!”
“이런 빌어먹을!”
사내는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바인더 남작령이 공격당하고 있단 말이다!”
Chapter.3 Monster(1)
굳건한 회색 성벽 아래. 젖빛 액체를 뚝뚝 떨어뜨리는 수많은 괴물체(怪物體)가 바글거렸다.
40피트나 되는 성벽도 그다지 안전해 보이진 않았다.
성벽 아래를 가득 메운 괴물들은 기형적인 팔다리를 놀려 성벽을 기어오르려 했다. 성벽 위에서는 끓는 물을 수없이 퍼부었지만, 괴물들은 몸이 익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 끊임없이 성벽을 오르고 미끄러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마법사는 아직인가!”
성벽 위의 병사들을 지휘하던 기사는 이를 악물고는 성벽을 붙잡은 괴물을 향해 창을 찔렀다. 붉은 피가 뿜어졌고, 그 피는 기사의 흉갑(胸甲)을 순식간에 녹여 버렸다.
기사의 얼굴이 멍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기사는 고함을 내지르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활! 활을 쏴!”
별 소용은 없을 것이다. 닿은 순간 갑옷을 녹여 버릴 정도의 피가 흐른다면, 살촉은 괴물의 피부를 파고들자마자 녹아 버릴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어떻게든 막아 내야만 했다.
이곳이 뚫리면 수도까지는 순식간이기 때문이었다.
“제길, 어디서 이런 괴물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중얼거리며, 기사는 성벽을 기어오르는 괴물을 향해 다시 창을 찔러 넣었다.
* * *
“말이 되냐! 바인더 남작령은 수도 코앞이라구!”
버럭 고함을 내지른 단설은 사기꾼을 보는 듯한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부드득 이를 간 사내는 가슴에 박힌 훈장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난 바인더 남작님을 모시는 기사다!”
“그래서?”
“으으.”
무시당한 사내는 몸을 떨었다. 그러나 단설은 콧방귀를 뀌며 그를 향해 말했다.
“이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믿지. 수도 코앞까지 적이 공격해 올 때까지 아무 소식이 없었다는 게 말이 되냐!”
“적이 아니라 괴물이다!”
“응?”
단설과 류드나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괴물?”
“그래, 괴물! 족히 이천은 넘어 보이는 괴물들이 들이닥쳐서 성을 공격하고 있단 말이야!”
“하아―.”
단설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괴물은 무슨 얼어 죽을.”
“내 목을 걸겠다!”
사내는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 질렀다. 그러나 아직도 단설은 미심쩍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류드나르는 그들을 보다 다시 책을 향해 시선을 돌렸지만, 또다시 들려온 누군가의 발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아, 하아―.”
붉은 띠를 맨 병사가 급히 달려왔다. 열린 문에 몸을 기대고 잠시 숨을 고르던 병사는 방 안을 둘러보더니 단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나, 나이델 공은 어디 갔습니까?”
“나르비크로 갔는데?”
“이런…….”
버틸 힘도 없는지 털썩 주저앉은 병사는 붉은 띠가 둘러진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나이델 공에게 빨리 연락을…….”
“응? 이게 뭔데? 원고 독촉장?”
단설은 병사가 내민 두루마리를 받아 들었다.
숨을 몰아쉰 병사는 잠시 더 숨을 고르고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바인더 남작령이 공격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에?”
단설은 얼빠진 표정으로 류드나르를 바라보았고, 당황 가득한 눈빛을 받은 류드나르는 한숨을 내쉬곤 단설을 노려보는 사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 주시죠.”
“에잇! 아까 설명했잖나!”
“그딴 걸로 어떻게 알아듣냐!”
버럭 고함을 내지른 단설을 다시 노려본 사내는 빠르게 말했다.
“나도 몰라! 갑자기 나타난 괴물들이 그냥 성을 공격하고 있단 말이다! 그게 다야!”
류드나르는 단설을 바라보았다. 사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 확인된 이상 시간을 끌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시선을 느낀 단설은 한숨을 내쉬며 사내를 향해 말을 건넸다.
“그런데 우리가 가 봐야 별 도움이 안 될 텐데.”
“뭐?”
“내가 아는 주문이라고 해야 몇 개 안 되니까. 저 녀석은 나보다 더하고.”
“으으.”
사내는 두 손으로 땅을 짚었다.
잠시 그 모습을 보던 단설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근처에 마법사가 하나 더 있긴 한데…….”
“어디! 누구냐! 마법 실력은 괜찮은 거냐!”
“떠, 떨어져!”
거의 끌어안듯이 자신을 붙잡은 사내를 밀어낸 단설이 말을 이었다.
“아캄 남구청에 련화라는 마법사가 하나 있어. 작년에 여기서 나갔으니까, 웬만한 영주가 데리고 있는 마법사들보다는 훨씬 나을걸.”
“그런 마법사가 왜 구청에 있지?”
“공무원이 꿈이라서.”
“…….”
사내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도 당황해서인지 말도 잇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단설은 사내를 보며 다시 말했다.
“평생직장 좋잖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내는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찰싹 때리고선 단설을 향해 말했다.
“남구청이 어디냐!”
“그야 여기서 나가서 남쪽 큰길로 쭉 가면 돼. 마차 타고 한 20분 정도?”
“에잇, 그따위로 말해 봐야 이해할 리 없잖나! 안내해라!”
“에휴―.”
귀찮다는 표정을 굳이 감추지 않은 단설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남쪽으로만 쭉 가면 된다니까.”
“이놈이!”
고함을 내지른 사내는 갑자기 주먹을 뻗어 단설을 기절시켰다.
“어, 어라?”
당황한 류드나르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주먹을 들어 올렸고, 류드나르는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무, 무슨 짓이에요!”
“맞고 안내할래, 그냥 안내할래?”
“저, 저기…… 저희는 신고 안 하고 아캄을 빠져나가면 사형이거든요?”
“내 알 바 아니야!”
“으엑!”
막무가내가 된 사내를 본 류드나르는 슬쩍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아저씨도 사형당할 텐데요?”
“……그건 곤란하지.”
움찔한 사내는 옆에서 숨을 고르는 병사를 바라보았다.
“이봐, 너!”
“예, 옛!”
“바인더 남작령에서 이놈들을 데려가겠다! 네놈이 알아서 수속 밟아 놔! 안 그럼 사형이다!”
병사의 멱살을 붙잡고 마구 흔든 사내는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류드나르와 단설을 붙잡고는 끌고 나갔다. 류드나르는 어떻게든 버텨 보려 했지만, 사내의 손아귀 힘은 류드나르가 버티기엔 너무 강했다.
그렇게 둘을 끌고 가던 사내의 발이 멈췄다. 누군가가 그의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뭐, 뭐냐.”
“납치는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류드나르와 단설을 끌고 가던 사내는 움찔하며 멈춰 섰다. 간신히 사내의 손을 떼어 낸 류드나르는 그를 막아선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라?”
자신을 체포했던, 그리고 길을 잃었던 자신에게 식당으로 가는 길을 알려 준 기사였다.
“이번엔 납치당하는 건가?”
“아, 아하하.”
멋쩍은 웃음을 띤 류드나르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을 본 사내는 자신을 막아선 기사를 향해 버럭 소리 질렀다.
“난 바인더 남작령의 기사다! 어서 꺼져!”
“……언제부터 남작령의 기사가 근위기사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된 거지?”
“그, 근위기사?”
기세등등하게 소리 지르던 사내는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것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 근위기사는 다시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엘라인 아르세날레. 이게 내 이름이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사내는 바닥에 넙죽 엎드린 채 싹싹 빌었다.
“모시는 남작님의 영지가 괴물들에게 공격받고 있어서 다급한 마음에 그만…….”
“공격?”
엘라인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심기가 불편해진 거라 생각한 사내는 더욱더 넙죽 엎드리고는 머리를 땅에 처박은 채 다시 말했다.
“갑자기 이상한 괴물들이 나타나서 성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신분을 증명할 물건을 가지고 있나?”
“여, 여기 있습니다.”
사내는 가슴에 달아 놓았던 훈장을 내밀었다. 엘라인은 그것을 잠시 살펴보더니 다시 사내에게 그것을 돌려주고는 말했다.
“근위기사의 권한으로, 단설 폰 안드리치와…….”
자신을 바라보는 엘라인의 시선을 느낀 류드나르는 입을 열었다.
“류드나르예요.”
“……류드나르의 수도 외 이동을 허가한다.”
“감사하옵나이다.”
어느새 몸을 일으킨 사내는 꾸벅 절을 하고는 기절한 채 널브러져 있는 단설을 다시 어깨에 걸쳐 멨고, 엘라인은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적 규모는 얼마나 되나.”
“이, 이천 정도 됩니다.”
“알았다.”
짧게 말한 엘라인은 어딘가를 향해 걸었다. 부동자세로 경례를 하던 사내는 엘라인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다시 류드나르를 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