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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Chapter.3 Monster(2)
“자, 허락도 얻어 냈으니 당장 남구청으로 안내해라!”
“……하아.”
류드나르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마법사를 내놔라!”
남구청에 도착하자마자 안으로 달려 들어간 사내는 남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은 채 소리 질렀다. 퇴근을 준비하고 있던 공무원들은 서류를 넘기던 자세 그대로 사내를 바라보았지만, 사내는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공무원의 멱살을 붙잡고는 다시 말했다.
“마법사를 내놔!”
“마, 마법사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기사님.”
멱살을 잡힌 공무원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듯이 말하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그 시선을 느끼면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공무원을 압박했다.
“시끄러워! 당장 내놔!”
“저, 저희 구청엔 무허가 마법사 같은 건 없…….”
“에잇, 련화인지 만화인지 하는 놈을 내놓으란 말이다!”
사내는 계속해서 공무원을 흔들어 댔고, 멱살을 잡힌 공무원은 잠시 몸을 떨다 기절해 버렸다.
멱살을 잡힌 공무원을 짤짤 흔들어 대던 사내는 기절한 공무원을 집어 던지고는 다른 공무원의 멱살을 붙잡으며 말했다.
“긴급이다! 당장 내놔!”
사내는 계속해서 공무원들을 들볶았다. 류드나르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를 보고 있을 때, 구청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단설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으으.”
“괜찮아?”
“아우, 머리야.”
오른손을 머리에 댄 채 고개를 흔든 단설은 류드나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놈 어디 갔어?”
“그놈?”
“바인더인가 뭔가 하는 곳에서 온…….”
류드나르는 머리를 붙잡은 채 통증을 호소하는 단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단설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사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때, 사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마법사를 내놔라!”
어느새 사내는 공무원의 절반을 기절시킨 이후였다. 그걸 확인한 단설은 왼손으로 바닥을 짚어 몸을 일으키며 사내를 향해 소리 질렀다.
“그딴 식으로 일 처리하지 마!”
두다다다 소리를 내며 달려간 단설은 두꺼운 서류 뭉치로 사내의 머리를 내리쳤다.
“우윽.”
“부탁하러 온 주제에 그딴 식으로 구는 거냐!”
“이 건방진 마법사 자식이…….”
“홀드 퍼슨(Hold Person)!”
왼손을 쭉 뻗어 사내를 가리킨 단설은 주문을 외웠다. 막 손을 들어 올린 사내는 갑자기 몸이 굳어 버린 것에 당황해 눈을 데굴데굴 굴렸지만, 어째서인지 전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통쾌하다는 표정을 지은 단설은 한 번 더 서류 뭉치로 사내의 머리를 강하게 때리고 나서 입을 열었다.
“어디 마법사한테 덤비고 그래?”
“이, 이놈이! 당장 풀어!”
“베에―.”
혀를 삐죽 내민 단설은 다시 한 번 사내의 머리를 때리고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공무원을 향해 말했다.
“련화 형 어디 있어요? 도시환경과라고 들었는데.”
“려, 련화군? 련화군 자리는…… 아앗!”
손가락을 들어 한 지점을 가리킨 공무원은 입을 쩍 벌렸다.
“벌써 퇴근했잖아!”
몸을 벌떡 일으킨 공무원은 시계를 바라보았다. 저녁 5시 45분. 도시환경과 퇴근 시간이었다.
“분명히 30초 전까진 있었는데!”
“으윽.”
몸이 굳은 사내는 슬쩍 눈을 돌려 비어 있는 자리를 바라보았다. ‘도시환경과 수도관리계 련화’라는 명패가 달린 책상은 비어 있었고, 그 자리엔 사람의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애초에 비어 있던 자리였던 것만 같은 모습. 그 자리에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까, 깔끔하게도 해 놓고 사라졌네.”
단설은 오른손으로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말을 이었다.
“혹시 련화 형 집 주소 알아요?”
“자, 잠깐만.”
그 공무원은 얼떨결에 서류를 뒤적거리며 련화의 주소를 찾았다.
두꺼운 서류책을 뒤적이는 소리가 잠시 이어졌다. 잠시 후, 련화의 주소가 적힌 페이지를 찾은 공무원은 그곳에 적힌 주소를 읽었다.
“에…… 알카서스 주(洲) 아르마냐크 변경백령(邊境伯領) 아빌라 산 129번지……?”
주소를 읽던 공무원은 당황하며 말했다.
“도대체 출퇴근은 어떻게 하는 거야?”
“마법사니까 텔레포트로 해결하면 되겠죠.”
그렇게 말한 단설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몸이 굳은 사내를 보며 말했다.
“어떡할래?”
“으으, 우선 이거나 풀어.”
불편한 자세로 굳어서인지 전혀 힘이 느껴지지 않는 투로 말한 사내를 본 단설은 가볍게 손가락을 퉁겼다. 무게중심을 잃은 사내는 털썩 쓰러졌고, 그 모습에 혀를 차던 단설은 다시 말했다.
“이제 쓸 만한 마법사는 없…… 우악! 무슨 짓이야!”
단설은 갑자기 자신의 멱살을 붙잡는 사내를 보며 소리 질렀다. 그러나 사내는 뻔뻔하게도 단설을 빤히 보며 입을 열었다.
“에잇,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뭐, 뭐가!”
“네놈들이라도 같이 가 줘야겠다. 어쨌든 없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단설은 발끈해 소리쳤다.
“우리 의견은 무시하겠다는 거냐!”
“근위기사님께 허락받았다. 그러니까 네놈들 의견 따윈 무시해도 돼!”
“으윽.”
조금 전에 류드나르에게서 그 내용을 들은 단설은 움찔하며 물러났다. 사내는 그런 단설을 잠시 보더니 억지로 팔을 붙잡고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공무원들을 향해 말했다.
“마차 준비시켜!”
* * *
어찌어찌 마차에 탄 채 바인더 남작령으로 향한 지 세 시간 후. 류드나르와 단설은 바인더 남작령으로 들어선 것을 알 수 있었다.
“괴물 같은 건 안 보이는데.”
“당연하지! 괴물 놈들은 영주님의 성을 둘러싸고 있다!”
“……이보쇼, 그럼 어떻게 성으로 들어갈 건데?”
“윽.”
단설의 지적을 받은 사내는 움찔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런 사내를 본 류드나르는 푸욱 한숨을 내쉬곤 단설을 향해 말했다.
“플라이(Fly) 주문 알아?”
“몰라. 내가 아는 건 대부분 공격 주문이라구.”
단설의 대답을 들은 류드나르는 고개를 젓고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나왔어요?”
“무슨 소리냐.”
류드나르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사내는 류드나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류드나르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말했다.
“괴물들한테 둘러싸인 성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냐구요.”
그제야 질문을 이해한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나올 땐 북문은 열려 있었다.”
“아, 네.”
어이없다는 기색을 굳이 숨기지 않은 류드나르는 잔뜩 비꼬아 말했다.
“그럼 우리 셋이서 이천이 넘는 괴물들을 뚫고 성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군요?”
“으윽.”
상체를 뒤로 움직였던 사내는 갑자기 단설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게 다 네놈 때문이다!”
“무슨 헛소리야!”
“네놈이 플라이 주문만 알고 있었으면 되는 거였잖아!”
“에잇, 헛소리하지 말고 좀 닥쳐!”
그렇게 말한 단설은 짧은 주문을 외웠다. 막 고함을 내지르려던 사내의 몸은 딱딱하게 굳어 버렸고, 그를 본 단설은 마차의 커튼을 떼어 사내의 입을 막았다.
“웁, 웁웁!”
“이제 좀 조용하네.”
팔짱을 낀 단설은 류드나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성으로 돌아갈까?”
“웁웁!”
“아저씬 좀 닥치고 있어!”
“우웁웁!”
뭔지 모를 소리를 웅얼거리는 사내의 목을 졸라 기절시킨 단설은 류드나르를 향해 다시 말했다.
“그냥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말야.”
“근위기사님한테 걸렸다니까.”
“아니, 엘라인 경이라면 사정을 봐줄지도…… 일 리가 없지.”
단설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물론 돌아간다고 해서 사형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말도 안 될 만큼 어마어마한 벌금이 붙을 건 뻔했다. 고작 연봉 이천 마르크를 받으며 부려지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벌금일 게 너무도 당연했기에, 단설은 푹푹 한숨을 몰아쉬며 다시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들어가지?”
“땅이라도 파서 들어가는 수밖에 없지, 뭐.”
“그럴까?”
“응?”
“땅굴 정도는 충분히 팔 수 있어.”
단설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나?”
“한 10야드(9.144m) 정도?”
“……그냥 근위기사님이 원군 끌고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류드나르의 말을 들은 단설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그런 방법이 있었지!”
“…….”
마치 획기적인 이론이라도 발견한 듯한 표정을 지은 단설을 보며 류드나르는 고개를 내젓고는, ‘난 천재가 아닐까’ 따위의 표정을 짓고 있는 단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럴 거면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련화라는 분이 출근하면 텔레포트로 성안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잖아.”
“그런 건 좀 빨리빨리 말하란 말이야!”
고함을 내지른 단설은 마부를 향해 말했다.
“정지! 정지!”
마차는 곧 멈췄고, 그 바람에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사내는 기절에서 깨어났다.
“웁, 웁웁웁웁!”
“에잇, 더 시끄럽잖아.”
단설은 사내의 입을 틀어막았던 커튼을 빼냈다.
“뭐, 뭐 하려는 거냐!”
“움직이게 해 줄 테니까 가만히 있어. 안 그러면 이번엔 그냥 확 불태워 버린다.”
“감히 기사를 협박하는 거냐!”
사내는 비분강개하며 소리 질렀다. 그러나 단설은 콧방귀를 뀌며 화염을 불러내고는 입을 열었다.
“그냥 지금 태워 버릴까…….”
“아, 알았다.”
막무가내인 단설에게 겁먹은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단설은 그를 잠깐 흘겨보더니 마법을 해제했다.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굴러다니던 사내는 그제야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류드나르는 잠시 사내를 바라본 후, 다시 단설을 향해 말했다.
“그나저나, 정말 어떻게 들어가지?”
“성으로 돌아가서 련화 형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제일 나을 것 같은데.”
“그럴까?”
단설의 말을 들은 류드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방법이 가장 나은 선택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내의 생각은 달랐다.
“그건 곤란하다! 언제 성이 점령당할지 모르는데 어째서…….”
“그럼 이천이 넘는 괴물들 뚫고 성으로 들어갈 자신 있어요?”
“으, 으윽.”
류드나르는 쩔쩔매는 사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마차를 몰던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기, 기사님.”
“뭐냐!”
“자, 잠깐 나, 나와 보셔야겠습니다.”
“에잇, 별일 아니면 가만두지 않겠다!”
기세등등하게 걸어 나간 기사는 의외로 오랫동안 침묵했다.
이상한 느낌을 받은 류드나르는 슬쩍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이미 해가 떨어진 지 오래라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류드나르는 고개를 갸웃거리곤 오른손을 들어 창밖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라이팅(Ligh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