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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Chapter.3 Monster(3)
류드나르의 주문이 끝나자, 은은한 빛 무리가 마차를 뒤덮었다.
“으윽.”
그 빛에 의지해 밖을 내다본 류드나르는 당황했다.
“이, 이거 뭐야!”
류드나르와 함께 밖을 내다본 단설의 입에서도 경악에 찬 소리가 터져 나왔다.
6피트 정도의 몸길이를 가진 괴물들이 마차를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마흔은 족히 될 듯한 괴물들을 본 류드나르는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벌리곤 단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단설 역시 자신과 똑같은 표정이라는 것을 확인한 류드나르는 마차 밖에서 검을 든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사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 어떻게 된 거죠?”
“무,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성을 둘러싸고 있다면서요.”
“제기랄. 그걸 나한테 물어봐야 대답할 수 있을 리 없잖냐!”
고함을 내지른 사내의 눈에 조금씩 마차를 향해 다가오는 괴물들이 보였다. 그것을 본 사내는 한 걸음 물러났다. 벌벌 떨고 있던 마부는 급히 마부석으로 올라가 고삐를 잡았다. 여차하면 방향을 돌려 도망가려는 생각에서였다.
“에잇, 저리 비켜!”
짤막한 주문을 외운 단설은 사내를 향해 소리 질렀다.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던 사내는 눈이 화등잔만 해져서는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머리통만 한 불덩이가 조금 전까지 사내가 있던 곳을 스쳐 지나갔다. 마차를 향해 다가오던 괴물 하나가 그 불덩이에 맞아 괴성을 내질렀다. 그 바람에, 서서히 다가오던 괴물들이 멈칫하며 조금 뒤로 물러났다.
“됐어!”
“위험하잖아!”
금세 몸을 일으킨 사내가 소리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단설은 입을 삐죽 내민 채 입을 열었다.
“안 죽었으면 됐지, 뭐.”
“야, 이…….”
“저, 저기 말야.”
막 사내가 고함을 내지르려는 순간, 류드나르는 손가락으로 불덩이가 지나간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멀쩡한데?”
“응?”
고개를 갸웃거린 단설은 류드나르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으엑!”
괴상한 비명을 토해 낸 단설은 한 걸음 물러나며 다시 주문을 외웠다. 조금 전의 두 배는 될 듯한 불덩이가 단설의 손에서 피어올랐고, 단설은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피어오른 불덩이를 괴물들을 향해 집어 던졌다.
“저, 저놈들 뭐야!”
잠깐 불길에 휩싸였던 괴물은 곧 멀쩡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단설은 급히 몸을 돌려 마차 안으로 들어가서는 쾅 소리 나게 문을 닫아 버렸다.
“뭐, 뭐 하는 짓이냐!”
“당신 기사잖아! 그냥 싸워!”
“저놈들 숫자를 봐! 그게 말이 되냐!”
“에이잇, 기사면 기사답게 행동해!”
문고리를 붙잡은 단설은 항의하는 사내에게 소리 지르고는 류드나르를 바라보았다. 문고리를 안 잡고 뭘 하고 있느냐는 뜻이었다.
그 순간, 사내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악!”
비명을 들은 단설은 문고리를 잡은 채 창밖을 내다보았다.
사내의 검은 괴물의 주둥이를 반으로 갈라놓았다. 그러나 그 바람에 튄 피가 사내를 덮쳤고, 그 피를 뒤집어쓴 사내의 몸은 누런 연기를 뿜어 대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으윽.”
단설은 신음을 흘리곤 마부를 향해 말했다.
“뭐, 뭐 해! 빨리 마차 돌려!”
“예, 옛!”
역시 사내가 죽는 장면을 본 마부는 급히 채찍을 들었다. 히잉거리는 말 울음소리가 들렸고, 멈춰 있던 마차가 갑작스럽게 앞으로 쏘아지듯 나아갔다.
서서히 마차를 향해 다가오던 괴물 하나가 마부를 향해 달려들었다.
“으악!”
“파이어 볼(Fire Ball)!”
단설이 내쏜 불덩이가 비명을 내지른 마부 옆을 스쳤다. 그 불덩이는 마부를 향해 달려든 괴물을 밀어냈고, 땅바닥으로 떨어진 괴물은 잠시 바닥을 뒹굴며 기괴한 울음을 내뱉더니 곧 멀쩡한 모습으로 몸을 일으켰다.
“하아, 하아.”
가쁜 숨을 토해 낸 마부는 한층 더 다급해진 표정으로 채찍을 마구 휘둘렀다.
“달려! 이놈들아, 제발 좀 빨리 달리라구!”
마구 채찍을 휘두르며 말을 재촉하던 마부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괴물들과의 거리는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마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것을 들은 류드나르는 움츠리고 있던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다, 다행이다.”
류드나르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단설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대체 뭐지?”
“뭐가?”
“아까 그 괴물 말야.”
단설은 빤히 바라보고 있던 손을 내리며 말했다.
“어떻게 생겨 먹은 괴물이기에 파이어 볼을 두 발이나 맞고도 멀쩡한 거지?”
“마법이 약했던 거 아냐?”
“주문 가르쳐 줄 테니까 네가 한번 해 볼래?”
한 차례 투덜거린 단설은 다시 말했다.
“두 번째로 날린 건 나무로 된 성문 정도는 부술 수 있을 정도였다구.”
좌우로 살짝 고개를 흔든 단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류드나르는 조금 전의 모습을 떠올리곤 입을 열었다.
“그런데 기사 아저씨 말야.”
“……명복을 빌어 주자.”
자기는 아무 책임이 없다는 듯이 말하는 단설을 보며 얼굴을 찌푸린 류드나르는 손사래를 치며 다시 말했다.
“그게 아니라, 어떻게 죽은 거야?”
“응?”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단설은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리고는 메스꺼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강한 산(酸)을 뒤집어썼나 보지.”
“그럼 그 괴물 피가 산성이라는 거야?”
“그야 그렇겠…….”
태연하게 말하던 단설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뭐야, 그럼. 마법도 안 통하는 데다가, 그놈을 베면 칼도 못 쓰게 된다는 소리잖아.”
“그렇겠지?
류드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사람 몸을 순식간에 녹여 버릴 정도라면 잘 제련된 강철검도 쉽게 부식시킬 게 뻔했던 것이다.
“말도 안 돼.”
어이가 없어진 단설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류드나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숨에 사람의 살을 녹여 버릴 수 있을 만한 산은 매우 드물었다. 하물며 그런 피가 흐르는 생물이라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괴물을 상대할 방법은 별로 없어 보였다. 화살을 쏘는 것도 별 피해는 입히지 못할 것이며, 칼로 벨 수 있다 해도 몇 마리를 베면 칼은 더 이상 쓸 수 없게 될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창으로 찌르거나 몽둥이로 두들기는 방법뿐인데, 그것도 그다지 효과적인 방법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럼 죽창(竹槍)으로 찌르는 게 제일 좋겠네.”
마치 큰 발견을 했다는 듯이 말한 단설을 본 류드나르는 질문을 던졌다.
“이 근방에 대나무가 자라는 곳이 있어?”
“……없지.”
푹 하고 한숨을 내쉰 단설은 연이어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안됐지만 이대로 성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겠는데.”
“그럼 바인더 남작령은?”
“성안에 있으면 한 달은 버틸 테니까, 마스터 오면 어떻게 되겠지. 그게 아니라도 왕성엔 기사단이 있으니까 어떻게 해 줄걸?”
그렇게 말한 단설은 다시 도망간 나이델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는 걸 느끼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기사단이라는 말을 곰곰이 되뇌이던 류드나르가 입을 열었다.
“아, 맞다!”
류드나르는 갑자기 짝 하고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근위기사님이…….”
“엘라인 경이 뭐?”
“그래, 엘라인 경이 원병을 끌고 온다고 했었잖아.”
“그래서?”
류드나르는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단설을 보며 말을 이었다.
“몇 번 베면 칼이 망가진다는 걸 알려 줘야 될 거 아냐.”
“에잇, 귀찮게.”
단설이 한창 투덜거릴 때, 밖에서 마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마법사님들.”
“응? 뭐야?”
“말이 지쳤습니다요. 좀 쉬어야 될 것 같은데…….”
단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안 단설은 갑자기 죽어 가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는 류드나르를 향해 말했다.
“마차 세울 곳 찾으려는 것 같으니까, 라이팅이라도 좀 써 줘.”
갑자기 지친 척하는 단설을 본 류드나르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차피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기에 마차 밖을 향해 큼지막한 광구(光球)를 띄워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멈췄다.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단설은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모으고는 불을 붙였다. 마차 뒤에서 무언가를 꺼내 온 마부는 수통의 물을 통에 붓고는 그곳에 육포를 잘게 찢어 집어넣었다.
단설은 기대 어린 표정으로 육포가 들어 있는 통을 바라보았다. 그때, 막 통을 들어 올린 마부가 단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저기, 마법사님.”
“왜?”
“아까 그 괴물은 뭐였습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퉁명스러운 태도로 말한 단설은 육포와 물을 넣은 통을 불 위로 올리는 마부를 잠시 보더니 류드나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너, 공격 주문 쓸 줄 모르지?”
“어차피 마법도 안 통한다며.”
“밀어낼 수는 있었잖아.”
류드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마부를 노리고 덤벼들었던 괴물은 파이어 볼에 밀려났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몇 시간 정도는 때워야 될 것 같으니까, 그 시간에 파이어 볼 정도는 완전히 익혀 놔.”
그렇게 말한 단설은 열 마디 정도를 내뱉었다. 그러고는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는 류드나르를 보곤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말했다.
“뭐야, 외우라니까.”
“응? 어. 다 외웠어.”
“뭐?”
“외웠다구.”
“…….”
멍청해 보이는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벌리고 있던 단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말했다.
“아니, 아무리 쉬운 주문이라고 해도 그렇지, 그렇게 쉽게 외울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야.”
류드나르는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단설의 모습에 손을 앞으로 내밀곤 입을 열었다.
짧은 주문이 흘러나왔다. 조금 전에 단설이 말했던 그 주문이었다.
그러자 류드나르의 손에서 화염이 일렁였다. 아직 서툴러서인지 구(毬)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위력만큼은 단설이 썼던 것에 비해도 크게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에엑!”
단설은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류드나르는 자신의 손 위에 피어오른 화염을 바라보며 멍한 눈으로 뭔가를 외워 갔다. 그것을 본 단설은 금방이라도 화염이 폭발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떨며 소리 질렀다.
“돼, 됐으니까 빨리 없애! 위험하잖아!”
순식간에 일렁이던 화염이 사라졌다.
뒤로 네 걸음이나 물러났던 단설은 그제야 제자리로 돌아와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다.
“제길, 신은 불공평해.”
“마법사님들, 다 됐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