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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Chapter.3 Monster(4)


어느새 걸쭉한 죽을 만들어 그릇에 덜어 낸 마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쪽을 바라본 단설은 급히 그곳으로 달려가 그릇을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뜨거운 죽을 호호 불어 가며 입에 떠 넣었다. 너무도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본 류드나르도 죽이 담긴 그릇을 받아 들었다.
죽 그릇을 반쯤 비우자 꽤 많은 인원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스푼에서 손을 뗀 류드나르는 눈살을 찌푸린 채 손을 들어 올리곤 주문을 외웠다.
머리통만 한 광구(光球) 세 개가 떠올랐다. 희미한 빛을 발하던 빛 덩이들은 류드나르가 한 번 더 주문을 외우자 허공을 빙빙 돌며 조금 더 밝은 빛을 뿜어내었다.
“어라?”
멀리서 말을 탄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 류드나르는 단설을 바라보았다. 멀뚱한 표정으로 그 방향을 보던 단설은 식은 죽을 쭉 들이켜고는 몸을 일으켰다.
“엘라인 경이잖아?”
“응?”
단설의 말을 들은 류드나르는 다시 그 방향을 바라보았다.
허공을 맴도는 광구를 발견했는지 다가오는 속도가 줄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약 5분이 지나서야 류드나르가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단설의 말대로, 그들을 이끌고 있는 것은 근위기사 엘라인이었다.
그들이 멈춰서길 기다리던 류드나르는 잠시 엘라인이 데려온 사람들의 수를 세어 보았다.
중장갑을 갖춘 사람으로만 삼백 명 정도. 일반적인 전투였다면 엄청난 전력이 될 수 있었겠지만, 조금 전에 본 괴물들을 상대하기엔 그다지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말을 세운 엘라인은 잠시 류드나르가 서 있는 곳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찾는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해, 그는 단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바인더의 기사는 어디에 있지?”

약 오 분간 이어진 단설의 설명을 들은 엘라인은 짧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 기사를 버려 놓고 도주했다는 말이군.”
“어, 어쩔 수 없었다구요. 어떻게 손을 쓰기도 전에 죽어서……. 게다가 그 괴물들한텐 마법도 안 통했어요!”
“알았다.”
항변하는 단설에게서 시선을 돌린 엘라인은 류드나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인가?”
“에…….”
류드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라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부를 바라보았다. 엘라인의 시선을 받은 마부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고, 엘라인은 입술을 깨물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다른 기사들의 얼굴에도 난색이 서렸다. 검을 쓰지 못하게 만드는 괴물을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잠시 입술을 깨문 채 침묵을 지키던 엘라인이 입을 열었다.
“해가 뜰 때까지 여기서 쉰다. 휴식을 취하는 동안 각자 목창(木槍)을 두 개씩 준비하도록.”
“옛!”
짧게 대답한 기사들은 모두 말에서 내렸다. 그러나 삼백 마리나 되는 말을 묶어 둘 만한 공터는 보이지 않았다. 도로를 점유한다 해도 그 길이가 너무 길어져 곤란하다는 것을 깨달은 기사들은 엘라인을 바라보았고, 엘라인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단설을 향해 말했다.
“공터를 만들어라.”
“예?”
단설은 당황한 표정으로 엘라인을 바라보았다. 엘라인은 그런 단설을 잠시 보다, 짜증 섞인 투의 말을 꺼내 던졌다.
“두 번 말해야 하나?”
“하, 하지만 어떻게요?”
반문하는 단설을 바라본 엘라인은 손을 들어 양쪽 옆에 늘어선 숲을 가리켰다.
“베어라.”
“…….”
그곳을 바라본 단설은 입을 쩍 벌렸다.
길가에 늘어선 나무들은 성인 둘이 팔을 펼쳐 잡아야 할 정도로 굵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나무들을 베라는 말이 너무도 간단하게 나온 것 같다는 표정을 지은 단설은 고개를 들어 엘라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엘라인은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고, 단설은 잠시 고민하다 그냥 숲을 태워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마저 해 보았다.
그러나 그랬다가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 태우려는 꼴이 될 것이 뻔했다. 만약 불이 이곳으로 번진다면 골치 아파지는 것은 자신일게 뻔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단설은 당황한 표정으로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자신을 도와줄 만한 사람이 있을지 살피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 도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긴, 도끼를 가지고 왔다면 나한테 시키진 않겠지.”
한숨을 내쉰 단설은 류드나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법 하나 더 가르쳐 줄게.”

약 십여 분에 걸친 마법 난사로 인해 넓은 공터가 만들어졌다. 류드나르와 단설은 정신력 고갈을 느끼며 축 늘어져 있었고, 그들을 마차 근처로 치워 낸 기사들은 류드나르와 단설이 베어 낸 나무들을 다듬어 제법 근사한 목창을 수십여 개 만들어 냈다.
마차에 등을 기댄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류드나르는 슬슬 눈이 감기는 것을 느꼈다. 단설 역시 마찬가지인 듯, 어느새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가볍게 코를 골고 있었다.
어느새 잠이 들었던 걸까. 몸이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낀 류드나르는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마차 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류드나르는 고개를 휘휘 돌려 보았다. 반대쪽엔 아직도 자고 있는 단설이 늘어져 있었다. 류드나르는 창밖을 바라보았고, 어느덧 해가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떠오르는 해를 보던 류드나르는 기지개를 켰다. 바로 그때, 갑자기 뭔가에 억눌린 듯한 단설의 목소리가 들렸다.
“으음…… 갚을게. 갚으면 되잖아…….”
“…….”
잠꼬대를 하는 단설을 본 류드나르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류드나르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마차의 속도에 맞춰 움직이는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근사한 랜스(Lance) 대신 목창을 고리에 끼운 기사들의 얼굴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개중엔 마갑에 끼워 놓았던 검을 뽑아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기사도 있었다. 물론 그 검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그렇다 해도 손질을 해 놓아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본 류드나르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때, 계속 잠꼬대를 하던 단설이 갑자기 움찔거렸다.
“겨우 백오십 마르크 가지고 구박하지 마!”
버럭 소리를 지르며 눈을 뜬 단설은 곧 멍한 눈으로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하아―. 꿈이었구나.”
오른손을 들어 이마의 땀을 닦아 낸 단설은 다시 말했다.
“망할 놈의 두목, 이젠 꿈속에서까지 빚 독촉이냐.”
“그러게 좀 갚지 그래.”
“에잇. 이건 두목이 인정이 없는 거라구. 연봉 이천 마르크라는 박봉에 시달리는 가련한 마법사를 이렇게 닦달해 대는 건 사나이답지 못해!”
“저기, 스티아 씬 여자 아니었어?”
“……아무튼!”
그런 사소한 일엔 신경 쓰지 말라는 투의 말을 한 단설은 마차의 창을 열었다. 꽤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어서인지 제법 시원한 바람이 마차 안을 휘감았고, 그 덕에 조금 정신을 차린 단설은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말했다.
“그런데 지금 어딜 가는 거였더라?”
“……바인더 남작님 성이 공격당하고 있다고 했잖아.”
“아, 그랬지.”
단설은 뒷머리를 벅벅 긁고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열린 창을 통해, 마차 밖의 모습이 단설의 눈을 파고들었다.
떠오르던 아침 해는 어느새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덕분에 주변의 모습을 잘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 단설은 창 가까이 몸을 움직였다.
아직 아침이어서인지 차가운 공기가 열린 창을 통해 마차 안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그것을 느낀 단설은 부르르 몸을 떨고는 마차 안의 담요를 몸에 둘둘 감으며 창문을 닫아 버렸다.
잠시 더 바깥을 내다본 단설은 마차 바로 옆의 기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얼마나 남았어요?”
대답은 그 기사가 아닌 엘라인의 입에서 나왔다.
“4마일(6.4km) 정도 남았다.”
“에엑.”
몸을 슬쩍 물린 단설은 급히 마차 문을 닫고는 류드나르를 바라보았다. 류드나르는 그 시선을 느끼고 단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단설은 푹 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투덜거렸다.
“아아, 이제 도망도 못 가겠구나.”
“도망갈 생각이었냐.”
“마법도 안 통하는 놈들을 나보고 어쩌라는 건데.”
단설은 연신 투덜거렸다. 류드나르는 그런 단설을 보며 고개를 젓고는 말을 꺼냈다.
“도망갔다간 엘라인 경이 가만 안 둘 것 같은데?”
“에휴―.”
고개를 내저은 단설은 머리를 푹 숙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작은 소리로 연신 로베르 후작에 대한 악담을 마구 퍼부어 댔다.
류드나르는 거의 한 시간째 그러고 있던 단설을 보며 고개를 젓다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째 속도가 좀 빨라진 것 같지 않아?”
단설은 고개를 갸웃거리곤 밖을 내다보았다. 길가의 나무들이 마차 뒤로 사라지는 속도가 조금 전보다 빨라져 있었다. 마차의 속도가 올라갔다는 뜻이었다.
“그러네.”
“갑자기 왜 이렇게 빨리 달리는 거지?”
“글쎄…….”
막 단설이 입을 연 순간, 갑자기 마차가 덜그럭거렸다.
의자에서 떨어질 뻔한 단설은 문고리를 붙잡고는 투덜거리며 밖을 내다보았다. 류드나르가 그런 단설을 바라보았을 때, 단설은 얼굴에서 핏기가 빠진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망했다.”
“왜?”
“밖을 좀 봐.”
그렇게 말하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단설을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류드나르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언덕 위에 늘어선 회색 성벽이 보였다. 그리고 그 성벽을 둘러싸고 있는 괴물들의 모습과, 목창을 치켜든 채 괴물들을 향해 돌격하는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에엑!”
자신이 탄 마차도 그 기사들의 뒤를 따라 마구 달리고 있다는 걸 확인한 류드나르는 당황했다. 그러나 어찌할 방법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류드나르는 단설과 마찬가지로 문고리를 붙잡은 채 눈을 감았다.
강렬한 충돌음이 들렸다. 류드나르는 움찔했지만, 곧 마차의 속도가 전혀 줄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류드나르는 살짝 눈을 뜨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곳곳에서 괴물들을 향해 돌격하는 기사들이 보였다. 목창을 들어 괴물들을 꿰뚫어 버린 기사들은 괴물을 찌르자마자 창을 들지 않은 손으로 검을 빼 들어 목창의 앞을 잘라 냈다. 그러고는 다시 그 창을 몽둥이처럼 휘둘러 주변의 괴물들을 마구 찍어 댔다.
몽둥이에 얻어맞은 괴물의 몸에서 피가 튀었다. 그 핏줄기는 한 기사가 탄 말을 덮쳤다. 피를 뒤집어쓴 말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그 말에 탄 기사는 엇 하는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졌다.
기회를 노리던 괴물 하나가 쓰러진 기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파이어 볼(Fire Ball)!”
급히 마차 문을 연 류드나르는 어제 단설에게 배운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대충 모양을 이룬 화구(火球)가 기사를 향해 몸을 날린 괴물을 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