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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Chapter.3 Monster(5)
넘어진 채 막 주먹을 내지르려던 기사는 괴물이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곤 급히 몸을 일으키며 성문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내달렸다. 말을 잃은 그를 향해 괴물들이 달려들었지만, 주변에 있던 다른 기사들이 그곳을 향해 말을 박차며 창을 찔러 괴물들을 막아 냈다.
그러는 사이 류드나르가 탄 마차는 성문을 통과했다.
“헉, 헉, 헉, 헉.”
급히 성벽을 돌아 마차를 세운 마부의 숨소리가 들렸다. 마차가 멈췄다는 걸 느낀 류드나르는 문을 완전히 열고는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어, 어디 가!”
“도와야 될 거 아냐.”
“에라, 모르겠다.”
류드나르를 따라 마차에서 뛰어내린 단설은 류드나르를 따라 성문을 향해 내달렸다.
성문 밖은 완전한 난장판이었다. 피를 뒤집어쓰고 타 죽은 말들이 곳곳에서 보였고, 말을 잃은 기사들은 제각기 검이나 잘린 목창을 휘둘러 괴물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검을 쓰던 기사들은 곧 욕설을 내뱉으며 검을 집어 던지곤 성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내달렸다. 강한 산성을 띤 괴물들의 피가 검을 거의 녹여 버렸기 때문이다.
약 십여 분의 전투는 기사들의 패퇴로 끝났다. 말을 잃은 기사나 잃지 않은 기사나 모두 성벽 안으로 급히 내달렸고, 성을 지키던 병사들은 마지막 기사가 들어오자마자 온 힘을 다해 성문을 밀었다.
육중한 소리를 내며 성문이 닫혔다.
성벽을 밀어낸 병사들은 지친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말에서 내린 엘라인은 바닥에 누워 호흡을 고르는 기사들을 잠시 보더니 입술을 깨물곤 성문을 노려보았다.
“부상자가 많군.”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사라 한들 갑작스럽게 뿜어지는 피까지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엘라인의 갑옷 역시 어깨 부분이 녹아 있었다.
성벽 위에서 병사들을 독려하던 중년인은 옆의 병사를 향해 뭔가 지시를 내리고는 급히 성벽을 내려왔다. 그러고는 엘라인을 향해 다가가 입을 열었다.
“나는 바인더 남작령의 기사 알라다이스라 한다. 귀관은?”
“근위기사 엘라인 아르세날레다.”
순간 몸이 굳은 알라다이스는 엘라인을 향해 거수경례를 한 후 입을 열었다.
“실례했습니다.”
“아니다. 그보다, 현재 상황은 어떻지?”
“옛! 적의 수는 약 오천. 현재 서쪽과 남쪽 성벽에 거의 집중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오천?”
엘라인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다시 말했다.
“전에 왔던 기사는 이천 정도라 했다. 어찌 된 거지?”
엘라인의 반문을 들은 알라다이스는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대답을 미룰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알라다이스는 눈을 질끈 감고는 체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게…… 어제 저녁부터 갑자기 수가 늘었습니다.”
“알았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는 알라다이스를 본 엘라인은 짧게 말했다.
“그 기사는 오는 길에 습격을 받아 사망했다 들었다.”
그렇게 말한 엘라인은 류드나르와 단설을 바라보았다. 자세한 것은 그들에게 물으라는 뜻이었다.
알라다이스는 그것을 눈치 채곤 다시 손을 들어 경례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난 좀 쉬며 상황을 살피겠다. 수고하도록.”
“옛!”
엘라인은 숨을 고른 기사들을 향해 뭔가 명령을 내렸다. 호흡을 가다듬던 기사들은 엘라인을 따라 어딘가로 이동했고, 그것을 보던 알라다이스는 류드나르와 단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 마법사인가?”
Chapter.4 Siege Warfare(1)
알라다이스에게 그간의 상황을 설명한 류드나르와 단설은 축 늘어진 표정을 지으며 경비 초소를 빠져나왔다.
“으으, 지친다.”
털썩 주저앉은 단설은 연신 투덜거렸다. 그런 단설 옆에 서 있던 류드나르는 지친 기색으로 한숨을 내쉬곤 성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전투는 멎은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왜 그래?”
단설은 류드나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소리에, 류드나르는 단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 그냥.”
“그냥 뭐?”
“너무 조용해서. 좀 이상하지 않아?”
“응?”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던 류드나르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곤 입을 열었다.
“오천이나 되는데 공격을 안 하고 있는 게 이상해서.”
단설은 멀뚱히 류드나르를 바라보다 말했다.
“그게 뭐가 이상한데?”
“여기 병사들, 천 명도 안 되지?”
단설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 입을 열었다.
“백 명도 안 될걸? 남작령이니까 많아 봤자 서른 명 정도겠지. 뭐, 그래도 수도 근처에 영지를 가진 남작이니까 오십 명까지는 어떻게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야.”
류드나르는, 그렇게 말하곤 그게 뭐 어떠냐는 듯이 자신을 보는 단설을 향해 말했다.
“오천이나 되는 괴물들이 왜 수비병이 오십 명 정도밖에 없는 성을 둘러싸고만 있는 거지?”
“응?”
“그냥 성을 타 넘으려고만 해도 못 막을 거 아냐.”
“그럴 머리가 없나 보지. 그 괴물들, 별로 머리가 좋아 보이진 않던데.”
“그런가?”
단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머리가 좋으면 맨몸으로 달려들 리가 없잖아. 저기 알카서스 너머 필멸의 대지에 사는 괴물들은 제대로 된 무기를 갖추고 공격한다는데, 여기 있는 놈들은 제대로 된 무기는커녕 몽둥이 하나 들고 있지 않잖아.”
“그럼 왜 저렇게 많은 괴물들이 여기로 몰려든 거야? 무슨 목적이 없으면 이럴 리가 없잖아.”
“심심했나 보지.”
뭘 그런 걸 따지느냐는 듯이 말한 단설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아, 배고프다.”
단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전투 중이어서인지 눈에 보이는 식당은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그것에 투덜거린 단설은 조금 더 곳곳을 둘러보았고, 역시 문을 연 곳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선 볼을 뾰로통하게 부풀리고선 입을 열었다.
“사람을 여기로 불렀으면 식사 정도는 대접해야 될 거 아냐.”
“…….”
“뭐, 병사 숙소 근처에 식당이 있겠지. 가자.”
그렇게 말한 단설은 슬슬 주변을 둘러보며 발을 떼었다. 그렇게 걷던 단설은 곧 병사 숙소를 발견하고는 뒤에서 자신을 따라오는 류드나르를 향해 손짓하며 숙소를 향해 내달렸다.
단설의 말대로, 병사 숙소 옆엔 허름한 식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발로 문을 박차고 들어간 단설은 주방에서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털썩 주저앉았다. 졸린 눈으로 테이블에 몸을 기대고 있던 병사는 그 소리에 놀라 눈을 떴고, 단설은 그를 향해 당당히 말했다.
“밥 내놔.”
“…….”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던 병사는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듯한 눈으로 단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단설은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밥 달라니까!”
“꼬마야, 여긴 말이다…….”
“병사 식당이잖아. 누가 모르고 온 줄 알아?”
너무도 당당하게 말하는 단설을 본 병사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하며 말했다.
“너 누구냐?”
“아캄 국왕령 소속 마법사 단설 폰 안드리치다. 닥치고 밥 내놔!”
그 기세에 눌린 병사는 윽 하는 소리를 내며 급히 주방으로 달려갔다. 그때 류드나르가 문을 열고 들어왔고, 단설은 그 병사를 향해 다시 말했다.
“2인분, 아니 3인분이야. 빨리 가져와!”
“예, 옛!”
급히 화로에 불을 붙인 병사는 정체불명의 가루들을 냄비에 풀어 넣었다.
허둥거리는 병사를 본 류드나르는 입을 살짝 벌리곤 의자에 앉았다.
오 분 정도가 지나자 화로를 살피던 병사가 수프가 든 냄비를 가져왔고, 단설은 그것이 테이블에 올려지자마자 국자로 수프를 한가득 떠 올려 그릇에 부었다.
스푼을 들어 수프를 한 입 떠먹은 단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수프에서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던 단설은 다시 한 번 스푼을 들었다. 그러고는 주의 깊게 수프를 바라보다, 수프 그릇에 스푼을 넣고는 휘휘 저었다. 어쩌면 소금이 한곳에 뭉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한동안 스푼을 돌리던 단설은 다시 수프를 입에 넣었고, 단설의 표정은 조금 전과 똑같이 변했다.
“으엑. 이거 뭐야.”
“왜?”
“애초에 간이 하나도 안 돼 있잖아.”
그렇게 말한 단설은 병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움찔한 병사는 고개를 휙 돌려 버렸고, 단설은 그 모습을 보며 한참을 투덜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투덜거리던 단설은 직접 조리대로 걸어가 소금 통을 집어 들었다.
“아아, 케이크 먹고 싶다.”
수프에 소금을 친 단설은 후루룩 소리를 내며 수프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고는 몇 번 더 국자를 놀려 냄비를 깨끗이 비우곤 몸을 일으켰다.
막 한 그릇을 비운 류드나르는 남비를 바라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수프가 다시 차는 것도 아니기에, 류드나르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류드나르는 그릇을 조리대 위에 갖다 놓고는 식당을 빠져나갔다.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단설은 갑자기 투덜거렸다.
“더럽게 맛없었어. 그치?”
“…….”
그런 것치고는 많이 먹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류드나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렸다. 단설은 그런 류드나르를 빤히 보더니 슬쩍 성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어, 어쨌든 엘라인 경이나 찾아보자.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수는 없는 거잖아.”
“그거야…….”
류드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엘라인이 어디 있는지는 당연히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단설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주변을 둘러보며 머리를 긁던 단설은 성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일단 성벽 위에 올라가 있는 게 어때? 어차피 엘라인 경도 저기로 갈 텐데 말이야.”
그렇게 말한 단설은 대답도 기다리지 않은 채 성벽을 올랐다. 류드나르도 그의 뒤를 따라 성벽을 올랐다. 꽤 높은 계단을 올라서인지, 성벽 위에 올라선 류드나르와 단설은 헥헥거리며 성벽 위 통로에 주저앉았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사방을 둘러본 류드나르는 생각했던 것보다 성이 작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벽을 빙 둘러 달린다면 약 10분 정도면 다 돌 수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