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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카이젠 1(21화)
Chapter 7 마샬 아트(3)
‘아휴. 확!’
마음 같아서는 한바탕 뒤엎고 싶었지만 삼촌의 체면을 봐서 성실히 일하는 척해야 했다.
삼촌 울파란은 이곳에서 성실히 일을 한 덕분에 선임 십장의 자리까지 올라가 있었다.
사실 감독관이 불만을 쏟아 낸 니키오에게 뭐라 더 말을 못한 것도 그의 삼촌이 이곳의 십장. 그것도 선임 십장으로 활동 중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독관이라도 선임 십장과 문제가 있으면 곤란했던 것이다.
“응? 삼촌, 왜 그래요?”
하지만 그때 니키오는 그의 삼촌 울파란이 멍하게 서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른 모습. 얼이 빠진 모습이었다.
탁!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으려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울파란이 중얼거렸다.
“창월의 츠바하를 위하여.”
처음 들어 보는 단어에 니키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하. 드디어 나의 대에 이르러 오랜 성취가 이뤄졌구나.”
갑자기 울파란이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트리자 주변 사람들 그리고 감독관도 깜짝 놀랐다.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삼촌?”
“자네, 괜찮은가?”
니키오와 감독관이 동시에 물어보았다. 울파란이 갑자기 실성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때 갑자기 울파란이 자신의 오른팔에 매어 있던 끈을 풀었다. 그러자 감독관이 깜짝 놀랐다.
일을 하고 있는 도중에는 그것을 절대 풀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짓이야? 못 본 것으로 할 테니 어서 다시 묶게.”
감독관이 다급하게 말했다.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닌 이상 업무 시간에는 그것을 풀어서는 안 되었다. 실수로 풀린 것이라면 모를까 직접 스스로 푸는 것은 일을 청산하고 그만두겠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감독관님. 참, 니키오 너도 이 일은 오늘까지다.”
“에엣? 전 오늘 첫날인데요.”
니키오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감독관과 주변 사람들은 이미 패닉에 빠진 상태였다. 수십 년간 이 일을 성실히 해 왔던 울파란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다.
어렸을 적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삼촌이 자신을 키워 왔다. 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니키오의 충격은 더 컸다. 절대 이 일을 그만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절대 이런 허튼소리를 할 리가 없는 삼촌이었다.
니키오가 보기에는 삼촌이 날씨가 너무 더워 잠시 실성한 것 같았다.
휘익.
“어엇.”
하지만 어느새 울파란이 허리를 빠르게 숙이더니 바닥에 놓여 있는 두 장의 패를 챙겼다.
‘저건 뭐지?’
조금 전 니키오가 들었던 소음의 정체는 그것이었다. 누군가가 울파란의 발치에 푸른색의 패를 던졌던 것이다.
“그럼 가자. 주군이 일을 시키셨다.”
“엥? 주군?”
무슨 기사도 아니고 무슨 소리냐고 말하려는 순간, 어느새 울파란의 손이 니키오의 팔에 묶여 있던 끈을 풀어 버렸다.
“아악.”
자신도 모르게 니키오가 소리를 질렀다. 허겁지겁 손을 뻗었으나 이미 끈은 풀려 바닥에 떨어진 상태.
“너! 너도.”
감독관이 입에서 거품을 물며 니키오를 향해 소리쳤다.
“이건 내 의지가 아니에요.”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상태.
일을 시작한 첫날에 잘린 것이다. 성실히 일해서 황궁의 땅을 소작하면서 살아가겠다는 꿈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어, 저 그러니까. 에잇, 모르겠다.”
니키오는 결국 삼촌이 이끄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삼촌은 그를 데리고 반대편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곳은 황궁의 중심부. 자신들 같은 잡부들은 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니키오는 삼촌의 팔 힘에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삼촌의 힘이 이렇게 좋았었나?’
제법 힘이라면 알아주는 니키오였지만 삼촌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뭐야, 도대체 무슨 일.”
감독관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어서 입만 벙긋거릴 뿐이었다. 그러다가 화들짝 정신을 차리더니 울파란의 앞을 허겁지겁 가로막았다.
“어딜 가! 지금 가 버리면 일은 어떻게 하고!”
감독관 입장에서는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 중요했다. 갑자기 십장 울파란이 미쳐서 이러는 것이라도 상관없었다. 적어도 오늘 할당된 일은 마무리 지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마음먹으면 아무리 선임 십장이라도 크게 데이는 것 몰라?”
감독관이 경고를 던졌다. 일에 충실한 전형적인 감독관의 모습을 보여 주었으나 지금 그것은 울파란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휘익.
“나는 이제부터 황태자전하의 그림자 기사단 소속이오.”
울파란이 파란색의 패를 감독관의 눈앞에 보여 주었다.
“헉! 뭐야, 이건.”
감독관이 눈을 껌벅거렸다. 눈앞의 패에는 분명히 황실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제국 행정부에서 공식 발행한 문서였던 것이다.
“뭐요, 이건?”
“잔말 말고 따라와. 내가 아까 전에 황태자전하의 그림자 기사단이라 하지 않았느냐.”
“엥. 삼촌이 무슨 기사. 아얏. 가요, 가.”
니키오는 결국 울파란의 손에 귀가 붙잡혀 끌려가게 되었다.
털썩.
울파란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감독관이 어이가 없다는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림자 기사단. 뇌격 기사단. 후악.”
비록 황궁의 직위체계를 본다면 최말단에 속한 감독관이었지만 그는 연줄이 좋아 공작가의 중심 세력과 이어져 있었다. 사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그가 이곳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일거리가 없던 그에게 연줄을 통해 일자리가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연줄 덕분에 황실의 세밀한 이야기도 좀 더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지만 황궁에서 어젯밤 무언가 난리가 벌어졌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때 아침에 일을 시작하기 직전에 뇌격 기사단이란 이름을 귀동냥으로 들은 것을 떠올렸다.
‘일단 알려야겠다. 그냥 모른 채 넘어갈 수는 없잖아.’
감독관 일을 하면서 그냥 시간만 때울 수는 없었다. 간간이 특이한 사항이 있으면 보고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특이한 일이 벌어질 만한 곳이 아니었기에 잠잠히 넘어갔으나 오늘 바로 특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이 너희들, 그냥 적당히 저곳에 밀어 넣고 일 끝내.”
감독관이 자신의 신념을 무너뜨리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일을 제대로 하는지 지켜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부리나케 중앙 기사단 건물을 향해 움직였다.
“허 참. 무슨 일이래.”
“우리야 좋지 뭐. 대충 집어넣고 끝내자고.”
인부들은 갑자기 십장이 일을 그만둔 일에 조금 놀랐지만 맡은 일을 놔두고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조금 전 빼냈던 상자를 아까 전의 위치에 밀어 넣었다.
그러고 나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감독관이나 십장이 없으니 명령을 내릴 사람이 모두 없어진 것이다.
“일단 나가서 문을 걸어 잠그자고.”
“그래.”
일이 끝났다고 그냥 놀 수는 없었다. 돌아가서 다른 일을 부여받아야 했다. 그들이라고 농땡이 피우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으나 괜히 그랬다가 땅을 소작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곤란했기에 알아서 잘들 움직이는 것이다.
우르르.
그들이 빠져나가고 잠시 후 커다란 문이 닫혔다.
덜컥.
밖에서 문이 잠긴 것이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시끌벅적했던 이곳은 금방 조용해졌다.
스륵.
잠시 후 검은 그림자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뇌격 기사단의 마크가 박혀 있는 갑옷. 카이젠이었다.
“흐음. 니키오란 녀석. 분명히 나를 봤어.”
흥미롭다는 음성. 카이젠은 얼굴에 쓰고 있는 가면을 살짝 어루만졌다.
“매직 아이를 익힌 것인가? 꽤 익히기 까다로운 고급의 마샬 아트인데. 나이도 어린데 그것을 익히다니. 아마도 어렸을 적부터 그것이 매직 아이인지도 모른 채 익혔나 보군.”
카이젠은 원래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일꾼 중 하나가 자신의 흔적을 눈치 채고 고개를 돌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잠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는데 문득 알론소가 적어 준 종이에 준비된 자들 중 하나가 저곳에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기운을 조금 뿌려 주자 즉각 반응이 나왔고, 그에게 음성을 날려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패를 던져 주었다.
그것을 받은 울파란은 즉각 알론소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 것이다. 그가 들고 있는 패라면 그의 앞을 가로막을 자는 없을 터였다.
“그럼 어디 찾아볼까.”
이 안에 대공의 비밀 아지트가 있었다. 이미 손아귀에 들어온 자들이었다. 느긋하게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카이젠보다 먼저 그들을 찾아온 자들이 있었다.
Chapter 8 레드 타이거 미나(1)
카이젠이 외성에 도착하기 한 시간 전.
감독관이 소리를 치고 있었고 인부들은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람의 키 높이를 훌쩍 뛰어넘는 여러 가지 물자들이 상자에 차곡차곡 담겨 안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쿵. 쿠쿵.
이제는 때를 많이 탄 대리석 바닥. 예전에는 밤을 새우는 연회장의 바닥으로 사용된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수북한 먼지를 머금은 창고 바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어느새 차곡차곡 쌓인 상자들이 벽을 만들고 있었고 각 구역을 나누기 시작했다.
수시로 꺼내야 하는 물건은 문과 가까운 곳에 쌓아 두고 오랫동안 적치할 물건은 깊숙한 곳에 쌓아 두는 것이다.
백여 년간 창고로 쓰다 보니 어느새 자연스레 그런 관리기법이 만들어진 것.
장기간 보관되는 물품이 쌓여 있는 구역은 외부의 소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적막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곳에 쌓인 물건들은 벌써 수개월째 이곳에 놓여 있었는지 천장에는 거미줄까지 있었다.
누구도 찾아올 것 같지 않은 이곳에 대공의 동조자들이 숨어 있는 비밀 아지트가 있었다. 별궁의 비밀통로로 사용되던 곳을 대공의 세력이 우연히 발견하여 개조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비밀 아지트에서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빨리 결정해야 합니다.”
“어째서 쉴트 경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지요?”
“황태자는 긴급 어전회의를 소집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마 우리같이 신원이 확실히 드러난 자들은 벌써 체포령이 발동되었을 것입니다.”
“자자. 진정하세요. 대공께서는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야말로 대공의 가장 큰 지지 세력. 황궁을 접수하려면 우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미 한발 늦은 것 같습니다. 황태자가 벌써 각 공작가와 화족가들을 구워삶은 것 같아요. 원래는 대공께서 긴급 어전회의를 오늘 아침에 소집했어야 했는데…….”
“그럼 지금 빠지겠다는 건가요? 이미 늦었습니다.”
“누가 그걸 몰라서 하는 소리요?”
“자자. 진정하세요. 우리가 지금 싸우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잖아요.”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중재자들이 나서 그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지금 모여 있는 자들은 황궁의 거사를 위해 이곳에서 착실히 준비해 왔던 일당들이었다.
대부분은 대공이 자신의 영지에서 데려온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 외 황궁에서 포섭한 자들, 따로 외부에서 영입한 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각양각색의 인물들이었다. 황궁의 여러 직종에서 포섭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합류한 자들도 꽤 되었다. 막판에 대공이 막대한 거금을 쓴 효과였다.
원래는 그들 모두 대공이 오늘 아침 거사를 선포하고 빠르게 공작가와 화족가를 회유하기 위해 움직인다면 같이 움직이면서 대공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부를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런 대공의 행방불명으로 인하여 지금 그들은 구심점을 잃고 당황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원래는 실패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증거를 인멸하고 황궁을 모두 떠날 생각이었으나 알론소를 통해 대공의 거짓 서신이 전달되자 지휘체계에 혼란이 생겨 일단 몇 시간 더 대기하는 것으로 결정 난 것이다.
“황궁을 벗어나는 비밀통로가 준비되었다는 것이 사실이겠지요?”
“오늘 받은 비밀서신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으음. 일단 그렇다면 안심이긴 한데…… 이제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모두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물러난다면 그들은 반역자라는 오명을 쓴 채 황태자와 싸울 수밖에 없었다.
이미 칼을 뽑았으니 물러설 길이 없었던 것이다.
“어차피 허울뿐인 황태자입니다. 제거해 버리고 공작들과 화족들의 지지 그리고 황실 행정관들의 지지를 받는다면 대공께서 황위에 오르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한 남자가 거침없이 소리쳤다. 이대로 물러서지는 않겠다는 결의가 얼굴에 쓰여 있었다.
그러자 다른 자가 지금 그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을 지적했다.
“문제는 지금 대공과 연락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이요.”
지도자가 없다면 일을 이끌어 나갈 수 없었다. 구심점이 없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착실히 준비해 왔던 일인데 마지막 마무리를 앞두고 진행을 못 시키고 있었다.
침묵이 감돌았고 잠시 후 화제가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