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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카이젠 1(22화)
Chapter 8 레드 타이거 미나(2)


대공을 막은 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도 들었던 것이다.
“으음. 알려진 바로는 황태자를 지키던 그림자 기사단 때문에 거사가 실패했다고 하던데 과연 진짜 그런 것일까요?”
“그게 무슨?”
“세상에 그림자 기사단이란 것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무슨 수로 황태자를 지키고 있나요. 드러나지도 않은 자들이.”
“그러나 실제로 모습을 드러냈지 않은가?”
“제 생각이긴 하나 혹시 공작가와 화족 가문에서 우리를 이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슨 말이죠?”
사람들이 궁금해 하며 의혹을 제기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지자 그는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게 은밀히 지원을 하던 자들. 그들의 정체를 따라가 보니 꼭 그들의 영역에서 선이 끊어지더군요.”
7인의 기사단의 비밀지원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나도 그 점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네. 하지만 달리 생각해서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병약한 황태자보다는 대공 전하가 훨씬 제국을 잘 이끌어 가실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지원한 것이 아닐까?”
약간은 비현실적인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즉각 가장 현실적인 답변이 튀어나오게 되었다.
“그럴 리가요. 그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오히려 박수를 치고 좋아할 것입니다. 현재 사실상 제국의 모든 권력은 그들이 움켜쥐었으니까요. 실상 대공께서 황위에 오르신다고 하더라도 이 땅의 모든 권력을 차지한 그들과 제대로 대치하긴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대공이 설사 황권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공작가와 화족 가문에 대항하기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자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엄한! 어디서 그런 망발을 쏟아 내는가.”
가장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가 수염을 파르르 떨며 소리쳤다. 그러자 자신의 생각을 아무 생각 없이 말했던 남자가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대공과 연락이 안 되다 보니 제가 너무 심한 망언을 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자신이 실언을 했음을 깨닫고는 즉시 고개를 조아렸다. 괜히 허튼소리를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분위기였다.
“그럼 우리가 구해 온 황태자의 대역은 어떻게 할까요.”
테이블의 가장 말석에 앉아 있던 여자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 여자에게 향했다. 다른 이들을 바라볼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 약간은 끈끈한 시선이었다.
붉은 머리의 매혹적인 자태를 보이는 여자였다. 한 달 전부터 대공의 세력에 들어와 활동하던 여자였다. 그녀가 바로 황태자의 대역을 구해 왔던 것이다.
황태자와 너무나 흡사한 모습에 대공 측은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일이 잘되면 그녀에게 큰 포상을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대공이 리나에게 흑심을 품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에 대해서는 리나라는 이름밖에 알지 못했다. 나비 가면을 쓰고 있었고 자신에 대한 설명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여자의 허리에는 은색의 칼이 매어 있었다. 여러 개의 링이 검 날에 매달려 있는 기묘하고 독특한 칼이었다.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바라보던 남자들은 이내 그녀가 일어나 건너편을 가리키자 조금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으음. 애매하긴 하군.”
“원래는 오늘 옮겼어야 했는데.”
그들의 뒤편에 수정으로 만들어진 관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양팔을 가슴에 포개 놓은 채 잠들어 있는 소년이 있었다. 숨소리가 일정한 것이 약이나 다른 방법으로 쓰러져 잠이 든 것 같았다.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고…….”
“하지만 이것을 이대로 지니고 있다면 우리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간신히 얻은 대역이오. 절대 손실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전갈이 있었소.”
“그런데 도대체 대공께서는 어디에 있단 말이오? 위치라도 알려 주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알려 주셔야 우리가 대응을 할 텐데 말이지요.”
“일단 오후의 교대 시간이 다가옵니다.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본가에서 오신 분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분들은 일단 해산하는 것이 어떨까요?”
“당분간은 봐야 할 눈치가 너무 많으니 이렇게 모이는 것은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본가에서 온 자들은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숨어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황궁에서 일을 하다가 얼마 전에 포섭된 자들은 일단 일상 근무에 복귀하는 것이 나을 터였다. 만약 같이 사라진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당연히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빙글.
리나가 몸을 돌려 테이블의 앞으로 다가갔다.
또각거리는 발걸음 소리에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절로 시선이 그녀에게 쏠린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주위를 둘러싼 남자들의 시선을 개의치 않는 듯했다.
“잠시 내가 그 서찰을 봐도 될까요?”
대공이 오늘 보냈다는 서찰.
비록 그녀가 이번 일에 협조 중이라고 해도 함부로 보여 줄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찰을 가지고 있던 남자는 무엇에 홀린 듯 서류철에서 그것을 꺼내어 리나에게 넘겨주었다.
“흐음.”
촤르륵.
아직도 선명한 황실의 인장.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리나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건 위조된 것입니다.”
“뭐!”
“그럴 리가!”
사람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속았다는 말이었고 그 뜻은 지금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란 뜻이 되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그것은 지금까지 확실하게 일을 처리했던 전달자가 가져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자가 황태자 측에 붙어서 배신을 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저는 대공이 문서를 작성하실 때 사용하시는 필체와 습관을 알고 있습니다. 매우 교묘하게 만들었지만 짧은 기간에 대공의 스타일을 완전히 복사하기는 어려웠겠지요.”
자신은 대공이 직접 쓴 글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리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쉽게 부정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리나가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면 이미 대공과 쉴트 경은 벌써 죽었을지도 모르겠군요.”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황태자는 지금 대공을 찾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황태자는 용의 선상에서 제외. 그러나 그를 제외하면 누가 대공을 죽였다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리나가 천천히 말했다.
“어쩌면 황태자, 꽤 영리할지도 모르겠군요.”
“그게 무슨 소리?”
“황태자는 이미 대공을 제거해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은 대공을 핑계로 자신의 세력을 넓히고 있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점점 리나의 말투가 변하면서 온몸에서 살기가 흘러나왔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정신이 빠져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공작가나 화족가도 손을 쓴 것이 아니고. 우리는 대공을 죽인 적이 없으니. 결국 황태자가 죽인 것이라 봐야겠지요. 대공이 자살한 것이 아닌 이상.”
스릉.
그녀가 자신의 허리에 매어 있는 칼을 뽑았다. 그녀의 손에 칼이 들리니 검에 매달려 있는 링이 서로 부딪치며 은은한 소리를 냈다. 흡사 새가 조잘거리는 것 같은 소리. 사람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짓이오!”
벌떡.
사람들이 놀라 소리쳤다. 그리고 순식간에 모조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부터 비상사태였다. 긴장의 끈이 팽팽한 상태였는데 순간 일이 터진 것이다.
“진정하세요.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리나 양도 좀 상황을…… 크억!”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평소 리나에게 흑심을 가졌던 한 남자가 분위기를 살피지 못하고 오해를 풀겠다면서 나섰다. 그러나 그때 그의 심장을 파고들며 날카로운 칼날이 튀어나왔다.
리나의 칼에 단숨에 가슴이 뚫린 것이다.
“허억!”
“이런!”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남자와 리나를 바라보며 대공의 수하들은 침을 삼켰다. 그제야 주변을 감싼 진한 살기를 느낀 것이다.
“당신들 모두 제거해야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공으로서는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 생각이 맞았군요.”
리나는 자신의 칼을 허공에 몇 번 휘두르며 그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살려 두지 않겠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무리 리나의 외모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고 해도 목숨이 달린 일에서까지 헬렐레 하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넌 도대체 누구냐.”
“서찰이 위조라고 할 때부터 이상했다.”
채앵 챙!
순식간에 새파란 칼날이 허공에 치솟았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모두 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으음. 그건 내가 한 말이 맞아요. 그 서찰은 위조가 맞습니다. 아마도 당신들을 속인 자들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는 것은 이곳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니 저는 저 아이를 데리고 여길 나갈 거예요.”
리나는 수정관에 담겨 있는 황태자 대역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사람들이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허튼소리! 너를 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할 것 같으냐!”
“허튼소리는 당신들이 하는 거예요. 제가 말했죠. 당신들을 살려 두지 않을 거라고. 이미 당신들은 죽음의 골짜기에 발걸음을 들이밀었어요. 지금부터 움직이는 순간 죽음의 사신이 당신들을 데려갈 것입니다.”
리나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붉고 붉은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은 매혹적인 그 모습에 잠시 정신을 팔았지만 이내 피를 흘리며 쓰러진 동료를 생각하자 다시 소리치기 시작했다.
“웃기지 마!”
“네 이년! 사지를 찢어 주마.”
“이 숫자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제아무리 실력자라도 이 많은 사람과 싸워 이길 수는 없었다.
수적 우위를 지닌 자신감을 바탕으로 리나와 가장 가까이 있던 남자가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넌 누구냐? 어디서 왔지? 네가 바로 황태자의 간세냐?”
“하하. 웃기네요. 조금 전 제가 말했잖아요? 우리가 대공을 죽인 적이 없으니 결국 황태자가 대공을 죽인 것이라고요.”
“우리?”
잠시 고민하던 그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는 대공의 소속에서 정보를 관리하던 책임자였다.
“설마 7인의 기사단? 진짜로 그 무시무시한 귀족 파벌들이 서로 손을 잡았단 말이야?”
그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번 일을 하면서 그들도 정보를 캐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제국의 각 세력가들이 은밀히 모임을 만들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나 애매모호했기에 그냥 소문으로만 새겨듣고 있었는데 리나의 등장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씨익.
그 말에 리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참고로 마지막 가는 길이니 말해 주지만 7인의 기사단이란 것들도 결국은 우리의 방패막이일 뿐입니다.”
“뭐어?”
7인의 기사단 따위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투에 사람들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도무지 정체를 추측할 수 없었다.
“말이 길었군요. 당신들의 목숨은 이제 받아 가겠습니다. 저도 여기서 시간을 오래 끌 수 없어요.”
“허튼소리. 죽는 것은 네년이다!”
“죽여 버려!”
서걱.
촤르르!
데구르르.
그때 몇몇 남자들이 치켜들었던 칼날이 흡사 무가 갈린 듯 조각조각 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확하게 단면이 잘린 것이다.
“뭐야, 저거 왜 저래?”
기묘한 광경에 한 남자가 자신이 잘못 보았나 싶어 손을 들어 눈을 만지려 했다.
따끔.
그러나 무언가 자신의 팔을 가로질러 가는 느낌이 들었다.
털썩.
그리고 몇 초 후에는 자신의 팔이 무거워지며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불에 데인 듯 뜨거워졌다.
“으아악! 내 팔이!”
비명이 튀어나왔다.
사람들이 그곳을 바라보자 그의 팔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가 아직도 자신의 팔이 잘려 나간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누군가가 소리쳤다.
“무언가 주변에 깔려 있다.”
눈치 빠른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칼을 왔다 갔다 했고 그러자 아무것도 안 보이는 허공에서 자신의 칼날이 잘려 나가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아무것도 없다면 절대 잘려 나갈 리가 없을 터. 칼날이 잘려 나간 곳에는 무언가가 설치되어 있다는 말이었다.
“이년!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리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이 들은 이 세상의 마지막 소리였다.
촤락.
무언가 한 번에 잡아당겨졌다. 그러자 왁자지껄하던 방 안에는 순간 적막이 감돌았다.
철퍽!
잠시 후 고기가 차곡차곡 썰리듯 사람들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머리가 서너 조각으로 잘려 나갔고 가슴의 뼈도 잘려 나갔다. 도축장에서 소를 도축하는 것 같았다. 온몸이 순식간에 해체되어 버린 것이다.
푸르륵.
피가 강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온 바닥에 사람의 살과 뼈, 피가 쌓였다.
또옥 똑.
붉은 피를 머금게 되자 드디어 살인무기가 드러났다.
그것은 리나의 칼에 달린 링과 연결된 은색의 실이었다. 허공에 떠 있는 실을 따라 핏방울이 모여 떨어졌다.
“실버 테일의 손에 죽게 된 것을 영광으로 아세요.”
리나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수많은 사람들을 단숨에 죽여 놓고도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
촤르륵.
도르레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며 실버 테일이 회수되었다.
이곳의 사람들을 단숨에 몰살시킨 것은 닿기만 하면 그것에 걸리는 모든 것을 베어 내는 매우 미세하고 날카로운 실버 테일이었다.
리나가 실버 테일을 일순간에 잡아당기자 은밀하게 풀려 있던 실들이 동그란 트랩처럼 좌우에서 빠르게 움직였고 순식간에 그들을 베어 낸 것이다.
도축이라면 너무나 효율적인 도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