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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Chapter.4 Siege Warfare(5)


단설은 고개를 내저었다. 잠시 그 모습을 보며 실소를 머금었던 류드나르는 어느새 성벽을 반쯤 오른 괴물을 발견하곤 그 괴물을 향해 손에서 이글거리는 번개를 내리꽂았다.
번개에 맞은 괴물은 성벽 틈새에 손을 꽂은 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던 괴물의 몸이 갑자기 폭발해 버렸다. 너무도 강한 전압을 이기지 못한 것이었다.
“으에에에!”
터져 나가는 괴물의 모습을 본 단설은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아직 전류가 남은 괴물의 살점이 다른 괴물들의 몸에 퍼부어졌다. 그것을 뒤집어쓴 괴물들은 갑자기 몸을 떨다 성벽에서 떨어져 갔다. 개중엔 너무 높은 곳에서 떨어진 탓에 추락사한 괴물도 더러 있었다.
류드나르는 주문의 효과에 놀라며 말했다.
“이거 효과 좋은데?”
“우웩. 그, 그거 쓰지 마.”
성벽 반대쪽으로 고개를 내민 채 헛구역질을 하는 단설을 본 류드나르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류드나르는 계속해서 그 주문을 외웠고, 다시 몇 마리의 괴물들이 류드나르가 날린 번개에 맞아 몸을 떨다 터져 나갔다.
덕분에 괴물들이 성벽을 오르는 속도가 늦춰졌다. 그 사이 다시 성벽으로 올라온 기사들은 검 대신 주먹을 휘두르며 성벽을 오르려는 괴물들을 계속해서 떨어뜨렸다. 추락사하는 괴물들의 수는 계속 늘어 갔고, 여느 때와 달리 쉽게 진행되는 전투에 신이 난 수비군들은 기세등등하게 괴물들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러 그들을 떨궈 냈다.
어쩌면 괴물들을 반 이상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로 유리한 전투가 이어졌다. 간간이 괴물이 성벽을 올랐다는 고함이 들려왔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수그러들었다. 엘라인을 따라온 기사들이, 괴물이 올라올 때마다 괴물을 번쩍 들어 성벽 아래로 내동댕이쳤기 때문이었다.
그런 전투가 십여 분간 이어졌다. 그럼에도 괴물들은 성벽을 기어오르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상하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류드나르는 표정을 찌푸리고 있는 엘라인을 볼 수 있었다.
“예?”
“이대로라면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 터. 어째서 이런 무모한 공격을 퍼붓는 거지?”
“에, 괴물들이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머리가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는데요.”
엘라인의 눈이 말을 꺼낸 단설을 향했다. 단설은 움찔했고, 엘라인은 그런 단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성이 없다면 더 이상한 일이다. 이성이 없는 존재를 움직이는 것은 본능일 터. 언데드가 아닌 생물이 죽음을 무릅쓰고 이렇게 공격을 감행한다는 것은…….”
말을 이어가던 엘라인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놀란 단설과 류드나르는 엘라인이 바라본 지점을 향해 눈을 돌렸다. 그러나 둘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갑자기 터진 엄청난 빛이 그들의 시야를 마비시켰기 때문이었다.
“으윽, 뭐야!”
두 손으로 눈을 가렸던 단설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눈을 떴다. 그러고는 당황이 잔뜩 섞인, 의미 없는 소리를 크게 내뱉었다.
“에에에에!”
“당했군.”
엘라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급히 성벽 아래를 향해 달렸다.
“으으…….”
조금 늦게 눈을 뜬 류드나르도 빛이 터져 나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타들어 가는 성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 뭐야, 저거!”
“낸들 알아?”
투덜거린 단설은 성벽을 기어오르려는 괴물을 향해 화염을 날려 떨어뜨린 후 엘라인을 향해 달려갔다. 잠시 멍한 기색으로 서 있던 류드나르는 단설이 달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곤 성벽 아래를 향해 달렸다. 갑자기 달려서인지 숨이 차올랐지만, 류드나르는 고개를 젓고는 다시 성문이 있던 곳을 향해 힘껏 발을 내디뎠다.
“후우―.”
멈춰 서 있는 엘라인과 단설을 발견한 류드나르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발을 멈췄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마법사가 있는 모양이군. 그럼 이 괴물들은 그자가 불러낸 거란 말인가.”
딱히 답을 해 주려는 의도는 아닌 듯했지만, 류드나르는 엘라인이 중얼거린 말을 듣고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빙벽(氷壁)이나 석벽(石壁)을 만들 수 있나?”
엘라인은 단설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그러나 단설은 마치 엘라인이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다는 기분을 느끼며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스, 스펠 북을 못 가지고 왔어요. 그 주문들은 너무 길어서 아직 못 외웠…….”
“곤란하게 됐군.”
박살 난 성문을 향해 달려오는 괴물들을 보며, 엘라인은 이를 악물곤 검을 뽑아 들었다.

“내가 정면을 막아 보겠다. 엄호하도록.”
“자, 잠깐만요!”
말을 마친 엘라인은 단설의 말을 무시한 채 성문이 있던 자리를 향해 달려갔다. 그 모습에 입을 쩍 벌린 단설은 고개를 저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을 떠올리곤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어떡하지?”
“어쩔 수 없잖아.”
그렇게 말한 류드나르는 괴물들을 노려보며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디뎠다. 그런 류드나르의 두 손엔 어느새 화염이 맺혀 이글거렸다. 그 사이 성문이 있던 곳에 도착한 엘라인은, 막 성을 향해 내달리는 괴물 하나를 발견하곤 그대로 검을 휘둘러 괴물의 허리를 베어 버렸다.
괴물을 베어 낸 엘라인은 급히 몸을 돌리며 검을 털어 냈다. 검과 갑옷을 부식시키는 괴물의 피 때문이었다.
급히 검을 털어 내 그곳에 묻은 피를 떨쳐 낸 엘라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했는데도 검의 일부가 녹아내린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지독하군.”
그러는 사이 달려든 괴물이 엘라인을 노렸다. 엘라인은 몸을 뒤로 움직이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날아든 화염이 괴물을 몇 야드 밖으로 밀어내, 엘라인의 검은 허공만을 베었다.
“…….”
엘라인의 시선을 느낀 류드나르는 멈칫했다. 그러나 잘못한 것은 없다는 생각에, 류드나르는 엘라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엘라인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다른 괴물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셋이나 되는 괴물이 반 토막 나 쓰러졌다. 그 바람에 튄 괴물의 피가 엘라인의 갑옷에 튀어, 엘라인이 착용하고 있던 어깨 보호대가 순식간에 녹아 버렸다.
겨우 두어 방울이 튄 것뿐인데도 주먹만 한 구멍이 난 어깨 보호대를 본 엘라인은 눈꼬리를 떨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이미 괴물의 피에 닿아 날이 삭아 버린 검을 들어 가까이 다가온 괴물의 목을 날려 버렸다.
그 모습을 본 류드나르는 감탄하며 단설을 향해 질문했다.
“저 검 말야, 절세의 명검이라도 되는 거야?”
“헥, 헥…… 뭐라구?”
숨을 몰아쉬는 단설을 본 류드나르는 단설에게 쉬라는 손짓을 보낸 뒤 마법을 난사해 가까이 다가오려던 괴물들을 모두 날려 버렸다. 그런 후에야 뒤를 돌아본 류드나르는 단설을 향해 조금 전에 했던 말을 다시 들려주었다.
“엘라인 경이 쓰는 검, 명검이냐구.”
“무슨 소리야. 저거 왕실에서 주는 거야. 쩨쩨한 왕실이 근위기사라고 뭐 특별대우 하는 줄 알아?”
“그런데 저렇게 날이 무뎌졌는데도 괴물을 반 토막 낼 수 있는 거야?”
“그야…… 으악! 체인 라이트닝!”
대답을 하려던 단설은 흠칫 놀라며 번개를 날렸다. 다가오던 괴물들은 그대로 감전사했고, 그것을 보며 숨을 헐떡이던 단설은 지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후우―. 그거야 엘라인 경이 대단한 실력자니까 그렇지. 소문엔 목검으로 철갑옷을 뚫어 버린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뭐.”
“헤에.”
류드나르는 새삼 감탄했다는 눈으로 엘라인을 바라보았다. 그때 막 검을 집어 던지곤 건틀렛을 낀 손으로 괴물의 목을 졸라 쓰러뜨린 엘라인의 모습이 류드나르의 눈에 들어왔고, 왠지 막싸움처럼 보이는 그 모습에 당황한 류드나르는 고개를 휘휘 젓고는 다시 상황을 살펴보았다.
성문이 부서졌다는 것에 당황하던 수비군들은 어느새 평정심을 되찾고는 괴물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만약 성문을 통해 몰려오는 괴물들이 많았다면 버티지 못했겠지만, 엉망이 된 상태라고는 해도 성문의 절반은 아직 남아 통로를 틀어막고 있는 상태였기에 엘라인 혼자서도 성안으로 들어오려는 괴물들을 모두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엘라인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아직 지친 기색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는 계속해서 성 밖을 힐끔거리며 싸움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왜지?’
류드나르는 엘라인을 따라 성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괴물들 외엔 별반 특이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류드나르는 다시 고개를 젓고는 성안으로 들어오려는 괴물들을 향해 마법을 날렸다.
엘라인은 그 사이 괴물들의 시체로 언덕을 쌓고 있었다. 덕분에 무너진 성문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쉽지 않게 되어, 성안으로 들어오려는 괴물들의 수도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류드나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때, 갑자기 들려온 단설의 고함이 류드나르의 귀를 울렸다.
“으에에엑!”
류드나르는 급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거의 사람 키만 한 크기의 화구(火球)가 무너진 성문을 가로막고 있는 엘라인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그것을 본 류드나르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지만,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던 류드나르는 당황 서린 소리를 토해 내며 몸을 날렸다.
반쯤 무너진 성문 뒤에 쌓인 시체 더미에 부딪친 화구는 엄청난 폭음을 토해 내며 폭발했다. 그 바람에 산산 조각난 괴물의 시체가 사방으로 날렸다. 그러나 화염에 타들어서인지, 그 수많은 시체 조각 중 주변 사물들을 부식시키는 것은 없었다.
“뭐, 뭐야!”
황급히 몸을 날렸던 류드나르는 고개를 들었다.
반쯤은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성문이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그마저도 부족했는지, 성문에 붙어 있었던 성벽 일부도 성문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놀란 류드나르의 눈이 엘라인이 서 있던 곳을 향했다.
“후우―.”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엘라인을 본 류드나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앞에 쌓인 괴물들의 시체 더미 덕분에 별 피해를 입지 않은 모양이었다.
성벽 위에서 방어에만 전념하던 수비군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러나 꿋꿋이 서 있는 엘라인을 본 그들은 다시 목까지 치밀어 오른 비명을 집어삼키며 방어에만 전념했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 가지 못했다. 공격해 오던 괴물들이 갑자기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져 갔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된 거야?”
“글쎄.”
류드나르의 질문을 받은 단설은 자기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엘라인을 바라보았다.
숨을 고르던 엘라인은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혼잣말처럼 입을 열었다.
“직접 나설 생각인가.”
“에?”
엘라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류드나르는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누군가를 보고서야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바로 괴물들을 움직이던 사람이 괴물들에 대한 통제를 포기한 채 직접 나설 생각일 거라는 뜻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