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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Chapter.4 Siege Warfare(6)
조금 전에 날아온 불덩이를 생각한 류드나르는 잔뜩 긴장한 채 엘라인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때 불어온 바람이 그가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뒤로 날렸다. 그러자 후드 속에 숨겨져 있던 짙은 피부가 드러났고, 그것을 본 사람들의 입에서 헉 하는 경악이 흘러나왔다.
“저, 저거 설마…….”
“신이시여!”
성벽 위에서 아래를 내다보던 수비군들 일부가 털썩 주저앉으며 비명을 토해 냈다. 개중엔 무기를 내던지곤 무릎을 꿇은 채 눈을 질끈 감은 사람도 있었고, 하늘을 바라보며 신을 찾는 사람도 있었다.
“…….”
사람들의 반응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류드나르는 단설을 바라보았다.
“왜들 저래?”
“몰라서 물어?”
류드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단설은 잠시 멈춰 있다 깊게 숨을 들이켜고 내쉰 후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거 안 보여? 이마 위에 있는 보석?”
류드나르는 단설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응? 어, 보여. 예쁜데?”
“야, 이 멍청아!”
버럭 고함을 내지른 단설은 아직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류드나르를 향해 말했다.
“저건 고위 마족한테나 있는 거야.”
“응?”
“그러니까, 고위 마족이 쳐들어 온 거라구!”
“……농담이지?”
“나도 농담이면 좋겠어.”
단설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 표정이 너무도 진지해, 류드나르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단설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 마족은 성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 모습을 보며 몸을 부르르 떨던 단설은 갑자기 주먹 쥔 손을 들어 올리곤 입을 열었다.
“으아아! 로베르 그놈을 놔두고 죽을 순 없어! 반드시 내 앞에 무릎 꿇리고 말 거란 말이야!”
“…….”
류드나르는 금세 원래대로 돌아온 단설을 보며 입을 벌렸다.
로베르 후작에 대한 분노로 인해 긴장마저 털어 버린 단설은 이를 갈며 성문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마족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아직도 단설의 두 손은 마구 떨리고 있어, 긴장을 전부 지워 내지는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단설을 보던 류드나르도 고개를 돌려 성을 향해 다가오는 마족을 바라보았다. 마족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까닭에 두려움은 일지 않았지만,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침을 꿀꺽 삼킨 류드나르는 엘라인을 바라보았다.
“…….”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한 엘라인은 아무 말 없이 마족을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어느새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알라다이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검을 달라는 뜻이었다.
“예? 아, 예.”
당황하던 알라다이스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풀어 건넸다. 예비분이라고는 해도 손질이 잘 되어 있어 당장 사용해도 무리가 갈 것 같지는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엘라인은 성벽 바로 앞에서 멈춰 선 마족을 바라보았다. 그것을 기다리기라도 했는지, 엘라인과 시선이 마주친 마족은 성을 한 번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꽤 오래 버티더군. 생각 외야.”
“네가 무능한 거란 생각은 안 하나?”
“뭐?”
마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을 본 엘라인은 차갑게 말했다.
“이곳의 병력은 천 명도 되지 않는다. 오천이나 되는 병력으로 무너뜨리지 못했다는 건 분명한 무능의 증거일 텐데.”
“후―.”
엘라인의 말을 들은 마족은 고개를 내젓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너뜨리지 못한 게 아니라 무너뜨리지 않은 거다. 조금 더 감정을 짜낼 필요가 있어서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한 마족은 다시 엘라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오래 버틴다 말한 건 너다. 이 성이 아니야.”
“무슨 뜻이지?”
“몰라서 묻는 건가? 하긴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군.”
이상한 말을 한 마족은 갑자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붉은 화염이 갑자기 일어 엘라인을 덮쳐 갔다. 무방비로 서 있던 엘라인은 입술을 깨물며 검을 휘둘러 화염을 베어 냈고, 그대로 마족을 향해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마족에게 다가간 엘라인의 검이 마족의 허리를 베어 갔다. 그러나 공격은 실패했다. 마족이 단지 팔을 한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공격을 튕겨 냈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6야드(약 5.4m)나 밀려난 엘라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엘라인은 다시 검을 움켜쥔 손을 들어 올렸다. 긴장한 기색은 떠오르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쉽게 달려들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 검으로 날 상대하려 했나? 이 탈라스를?”
“무기는 중요하지 않다.”
“하…….”
엘라인의 말을 들은 탈라스는 실소를 내뱉었다.
“대단한 자신감이군. 하지만 그런 걸로는 상대할 수 없는 상대도 있다는 걸 알아 두는 게 좋을 거다.”
그렇게 말한 탈라스의 몸이 갑자기 사라졌다.
엘라인은 급히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탈라스는 검의 공격 범위를 미묘하게 벗어난 곳에 나타나 엘라인의 가슴을 노리고 팔을 뻗었다.
화염이 맺혀 이글거리는 팔이 엘라인의 가슴을 때렸다. 강철로 된 갑옷이 순식간에 우그러들며, 엘라인의 입에서 짧은 기침이 터져 나왔다.
“흐앗!”
그 모습을 본 알라다이스가 고함을 내지르며 탈라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육중한 몸을 날리듯 땅을 박찬 공격이었음에도 상당히 빨랐고, 그 누가 보더라도 위협적으로 볼 수밖에 없을 모습이었다.
그러나 탈라스는 귀찮다는 기색을 띠며 손을 뻗는 것만으로 그 공격을 막아 냈다.
“이, 이런.”
“건방지다.”
알라다이스의 검을 잡은 손에서 화염이 일었다.
알라다이스는 미처 소리도 내지르지 못한 채 화염에 삼켜졌다. 그리고 그 화염이 사라졌을 때, 알라다이스는 물론 그가 입던 갑옷마저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으아아아…….”
사방에서 소리 죽인 비명이 새어 나왔다.
류드나르와 단설의 입에서도 헛바람이 흘러나왔다.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화력이었기 때문이다.
“뭐,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마족이니까. 그것도 고위 마족이니 저 정도는 쉽겠지.”
그렇게 말한 단설은 몸을 떨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고는 주문의 마지막 소절만을 남겨 놓은 채 엘라인과 대치하고 있는 탈라스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엘라인은 탈라스를 본 채 왼손을 들어 우그러진 갑옷 끈을 풀어 갑옷을 벗어 던졌다.
그걸 보며 실소를 머금은 탈라스는 입을 열었다.
“목숨을 지키고 싶다면 그 알량한 갑옷이라도 입고 있는 게 좋을 텐데.”
“네가 걱정해야 할 건 네 목숨이다.”
말을 끝낸 엘라인의 몸이 갑자기 사라졌다. 마치 마법이라도 쓴 것 같은 모습에 눈이 휘둥그래진 류드나르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엘라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놀란 류드나르가 단설을 바라보았을 때, 갑자기 멈춰 서 있던 탈라스가 성벽 위로 뛰어올랐다.
탈라스가 있던 자리에 나타난 엘라인의 눈이 성벽 위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며, 탈라스는 의아함을 감추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내가 착각하고 있었군. 모르고 있던 게 아니었어.”
“…….”
엘라인은 탈라스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엘라인을 향해, 탈라스는 비웃음을 숨기지 않은 채 말했다.
“왜 그러고 있지?”
엘라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탈라스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탈라스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성을 둘러보더니 다시 엘라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뭐가 그렇게 걸리는 건가.”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충분히 신기한 일이긴 하지.”
그렇게 말한 탈라스는 손을 들어 엘라인을 가리켰다. 그것을 본 엘라인은 검을 조금 들어 올려 수비 자세를 취했고, 탈라스는 입을 살짝 벌려 웃고는 다시 말했다.
“하긴 어차피 죽여 버려야 할 놈이니, 굳이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겠지.”
그렇게 말한 탈라스의 손에서 검푸른 화염이 피어올랐다. 그러자 탈라스가 서 있는 곳 주변의 성벽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류드나르는 침을 꿀꺽 삼키며 손을 들어 이마에 차오른 땀을 닦았다. 그러나 갑자기 더워진 공기는 계속해서 수분을 짜냈고, 땀을 닦자마자 다시 차오른 땀이 류드나르의 콧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자, 받아 보라구.”
탈라스는 엘라인을 향해 화염을 날렸다. 그것을 잘라 낼 듯이 검을 움직이던 엘라인은 흠칫하며 뒤를 향해 몸을 날렸다.
조금 전까지 엘라인이 있던 곳에 충돌한 화염은 폭발하는 대신 땅을 삼켰다. 순식간에 20피트 깊이의 구덩이가 파였고, 그것을 본 류드나르는 눈을 크게 떠올리며 탈라스를 바라보았다.
탈라스의 두 손엔 조금 전에 날린 것과 같은 화염이 맺혀 있었다. 탈라스는 연신 웃음을 띠며 엘라인을 향해 그 화염들을 집어 던졌다. 엘라인은 그것을 피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성벽 위에 올라가 있는 탈라스를 공격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긴장한 류드나르는 단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평소였다면 계속해서 떠들었을 단설은 입을 굳게 다문 채 탈라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에 의아함을 느낀 류드나르는 단설을 바라보았지만, 단설은 그 시선을 느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계속해서 화염을 피하던 엘라인이 탈라스를 향해 검을 집어 던졌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였으나, 탈라스는 당황한 기색을 띠면서도 어렵지 않게 그것을 피했다.
“홀드 퍼슨!”
가만히 탈라스를 바라보던 단설이 남겨 놓았던 주문의 마지막 단어를 내뱉었다. 그러자 엘라인의 검을 피하느라 무게중심을 잃었던 탈라스의 몸이 잠시 굳었고, 그 바람에 완전히 무게중심을 잃어버린 탈라스는 그대로 성벽 위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좋아! 이대로 그냥 죽어 버……릴 리가 없지.”
단설은 움찔하며 류드나르의 뒤로 몸을 숨겼다. 떨어지던 탈라스의 몸이 갑자기 공중에서 멈췄기 때문이다.
“……제법 용기 있는 놈이군.”
류드나르의 뒤에 숨은 단설을 본 탈라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다시 두 손에 검푸른 화염을 맺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쥐새끼가 호랑이에게 발톱을 들이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 할 거야.”
“그 말은 내가 하고 싶군.”
“뭣!”
단설을 노려보던 탈라스의 표정이 굳었다. 탈라스는 급히 몸을 돌렸지만, 그보다 먼저 어느새 탈라스의 뒤로 돌아 들어온 엘라인의 주먹이 탈라스의 복부를 강하게 때렸다.
엄청난 힘이 실린 주먹에 맞은 탈라스는 수십 야드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땅에 내려선 엘라인은 숨을 토해 내고는 바닥에 떨어진 검을 다시 주워 들었다.
“사, 살았다.”
단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엘라인은 긴장을 지우지 않은 채 탈라스가 처박힌 곳을 노려보며 검을 치켜들었다.
“아직 살아 있다. 주의하도록.”
“에엑! 그걸 맞고서도 살아 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