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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Chapter.4 Siege Warfare(7)
단설은 흠칫하며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그때 엘라인의 모습이 갑작스레 사라졌다. 당황한 류드나르와 단설이 탈라스가 처박힌 곳을 바라보았을 때, 폐허를 부수고 걸어 나온 탈라스의 왼팔에서 핏물이 튀어 올랐다.
“으윽. 이놈!”
오른손에 화염을 맺어 내며 사방을 훑어 낸 탈라스의 주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자 사라졌던 엘라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던 엘라인의 발이 흙무더기에 가로막혔기 때문이었다.
엘라인을 발견한 탈라스는 엘라인을 향해 화염을 날렸다. 몸을 뒤로 굴리는 듯한 동작으로 화염을 피한 엘라인은 검을 강하게 움켜쥐며 탈라스를 바라보았다.
엘라인에게 기습을 당했을 때 큰 타격을 입었는지, 탈라스의 모습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크으…….”
반쯤 잘린 왼팔을 감싸 쥔 탈라스는 엘라인과 단설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잔뜩 드러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역시, 편한 방법을 써야겠어.”
그렇게 말한 탈라스는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잔뜩 긴장한 채 상황을 지켜보던 류드나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에 당황했다. 그러나 엘라인의 표정은 조금 전보다 더 긴장한 듯 보였다. 그 모습에 더 당황한 류드나르는 천천히 사방을 둘러보았고, 곧 성벽 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급히 성벽 아래로 뛰어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성벽에서 급히 내려온 사람들은 연신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나 제각기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통에 아무도 그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류드나르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류드나르는 무너진 성문을 향해 눈을 돌려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그곳을 바라본 류드나르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괴물이다!”
류드나르를 스쳐 지나간 사내가 고함을 내질렀다. 그것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들은 모두 성문 밖을 바라보았고, 물러갔던 괴물들이 다시 성을 향해 몰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색이 된 사람들을 바라본 탈라스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자, 다시 시작해 볼까?”
그렇게 말한 탈라스의 두 손엔, 또다시 검푸른 화염이 맺혀 있었다.
Chapter.5 Corrupted Flame Lord(1)
“으아아악!”
고래고래 고함을 내지르며 바동거리던 단설의 손에서 백색 뇌광(雷光)이 일렁였다.
성문을 넘어 달려오던 괴물 서넛이 순식간에 감전되어 쓰러져 갔다. 단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쓰러진 괴물들을 넘어 달려오는 다른 괴물들을 보고는 경악 어린 소리를 내지르며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나서는 다시 한 번 번개를 일으켰다.
그 옆에서 차분히 주문을 외우던 류드나르의 눈이 성문 바로 위로 향했다.
“파이어 볼!”
“야, 그거 써 봤자 아무 소용도 없…….”
막 단설이 입을 연 순간, 류드나르의 손에 맺혔던 화염이 성문 위를 때렸다. 그러자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성문 위쪽이 무너졌다. 류드나르가 날린 파이어 볼이 성벽 일부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돌덩이에 맞은 괴물 몇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기세 좋게 내달리던 괴물들도 갑작스레 움찔하며 전진을 멈췄다. 그것을 본 단설은 두 손으로 손바닥을 마주 치고는 자신의 손에 거대한 화구를 만들어 냈다.
성문이 있던 자리의 성벽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미 성안에 들어온 괴물들도 적지는 않았지만, 성안으로 들어오는 입구가 막힌 탓에 숫자가 늘어나지는 않았다.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류드나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괴물들은 성벽 밖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었고, 성안으로 들어온 괴물들은 엘라인을 따라온 기사들에 의해 하나 둘 쓰러지고 있었다. 성 밖의 괴물들 중 일부가 성벽을 빙 돌아 성안으로 들어오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다른 쪽 성문들은 아직 굳건히 남아 있어 그것마저도 불가능해 보였다.
남은 건 탈라스뿐이라고 생각한 류드나르는 탈라스와 엘라인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엘라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에 검푸른 화염을 몸 주변에 잔뜩 띄워 놓은 채 사방을 경계하고 있는 탈라스의 모습에, 엘라인이 이 주변에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탈라스가 띄워 놓았던 화염 하나가 사라졌다. 그것을 느낀 탈라스는 급히 몸을 조금 더 띄우며 주변에 띄워 놓았던 화염을 한꺼번에 퍼부었다. 순식간에 성벽 한쪽이 무너져 버렸고, 높이가 반으로 줄어 버린 성벽을 타고 넘어온 괴물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망할!”
갑작스레 피가 뿜어져 나온 자신의 다리를 감싼 탈라스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계속해서 기회를 노리고 있는 엘라인을 의식한 탈라스는 계속해서 화염을 일으키며 주변을 경계했다. 그마저도 불안했는지, 탈라스는 불러일으킨 화염을 한층 더 거세게 키우며 하늘 높이 몸을 띄웠다.
“저기 말야.”
“뭔데?”
류드나르의 말을 들은 단설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무너진 성벽을 타 넘고 들어온 괴물들을 향해 마법을 퍼붓기에도 바쁘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보며 두 손 가득 뇌광을 일으킨 류드나르는 넘어온 괴물에게 그것을 퍼붓고는 다시 단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고위 마족이라고 해도 별거 없는 것 같은데?”
“뭐?”
어이없다는 기색을 잔뜩 띤 단설은 류드나르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류드나르는 손을 들어 탈라스를 가리켰다. 그곳을 향해 눈을 돌린 단설은 엉망이 된 탈라스의 모습과, 다시 모습을 드러낸 채 검을 들고 있는 엘라인의 멀쩡한 모습에 입을 쩍 벌리며 당황 서린 말을 뱉었다.
“짜, 짝퉁인가?”
“…….”
류드나르는 멍한 표정으로 단설을 보았다.
“왜 그렇게 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고개를 저은 류드나르는 다시 엘라인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상황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검이 닿지 않는 높이로 날아오른 탈라스는 그간의 굴욕을 갚기라도 하려는 듯이 끊임없이 검푸른 화염을 토해 내고 있었다. 엘라인은 계속해서 그 화염을 피하며 기회를 노렸지만, 탈라스는 쉽사리 틈을 내어 주지 않았다.
그러던 탈라스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놀란 류드나르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주변을 휘휘 돌아보았다.
그때, 갑자기 엘라인의 신음이 들렸다.
“으윽.”
“역시,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군.”
순식간에 엘라인의 뒤로 돌아간 탈라스의 손이 엘라인의 등에 박혀 있었다. 류드나르는 헉 하는 소리를 토해 내며 눈을 부릅떴다. 금방이라도 엘라인의 숨이 끊어질 것이 뻔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류드나르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대로 오른손을 들어 올린 엘라인의 검이 탈라스의 어깨를 뚫어 버린 것이다.
“아악!”
“빗나갔나…….”
또 한 번 신음을 흘린 엘라인의 몸이 쓰러졌다.
그럼에도 탈라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검에 찔린 어깨에서 끊임없이 안개 같은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본 그는 이를 악물며 반대쪽 손으로 상처를 감쌌다. 그러고는 눈을 돌려 엘라인을 바라보며, 거대한 불덩이를 눈앞에 띄웠다.
그 모습을 본 류드나르는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그 순간, 탈라스가 띄워 놓았던 화염이 쓰러진 엘라인을 향해 날아갔다.
막 엘라인을 향해 날아가던 화염이 뒤쪽에서 날아온 번개에 맞아 폭발했다. 막 주문을 완성한 류드나르의 마법이었다.
“……감히!”
당황한 기색을 띠고 있던 탈라스는 눈을 크게 뜨며 뒤를 돌아보았다. 살기가 가득 담긴 시선을 받은 류드나르는 움찔하며 반걸음 뒤로 물러났지만, 이를 악물고는 빠른 속도로 주문을 외웠다.
불과 1초 만에 주문을 완성한 류드나르는 두 손에 번개를 맺어 놓고는 탈라스를 바라보았다.
“허?”
탈라스는 어이가 없다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류드나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류드나르는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에 분노와 어이없음을 동시에 느낀 탈라스의 몸이 순식간에 흐릿해졌다.
탈라스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류드나르의 머릿속에 조금 전 엘라인이 쓰러졌을 때의 상황이 떠올랐다.
류드나르의 손에 머물러 있던 번개가 사방으로 퍼졌다. 마치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류드나르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 하얀 번개가 반구(半球)를 그렸다. 막 류드나르의 뒤로 돌아간 탈라스는 그 번개를 피할 수 없었고, 사방으로 뻗어 나간 번개에 직격당한 탈라스는 신음을 내뱉으며 몇 야드 밖으로 몸을 날렸다.
“이놈,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다시 주문을 완성한 류드나르를 바라본 탈라스의 눈이 길게 찢어졌다. 마법이 사라진 틈을 타 공격하려 했지만, 류드나르가 너무도 빨리 마법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며 이를 갈던 탈라스의 눈이 자신의 팔을, 정확히는 조금 전 류드나르가 불러일으킨 번개에 닿은 지점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긴장감을 지우지 못한 채 자신을 바라보는 류드나르를 향해, 탈라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너, 정말 인간이냐?”
“무, 무슨 소리야?”
탈라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고개를 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간혹 변종이 나온다고 하더니, 그런 놈인가 보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웬만한 마법으론 내게 상처를 입힐 수 없다. 그런데…….”
말을 흐린 탈라스는 자신의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류드나르는 반쯤 그을려 있는 팔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부상은 가볍지 않았다. 팔의 표면은 마치 두꺼비 등처럼 우둘투둘했고, 피부 곳곳엔 하얀 물집이 하나 둘씩 잡혀 가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붉어진 피부는 조금씩 하얗게 변해 가며 부풀어 올랐다.
통증이 느껴진 듯, 눈살을 찌푸린 탈라스가 입을 열었다.
“이 왕국에서 그 정도의 마법으로 내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인간은 둘뿐인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아닌 네가 이런 마법을 쓸 수 있는 건지, 상당히 궁금하구나.”
그렇게 말한 탈라스는 똑바로 눈을 들어 류드나르를 바라보았다. 류드나르는 다시 움찔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고, 그런 류드나르를 본 탈라스는 표정을 굳히고는 말했다.
“역시, 싹은 잘라 두는 게 좋겠지.”
그렇게 말한 탈라스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순식간에 성벽을 넘어선 탈라스는 약 50피트 정도 높이에 멈춰 서서는 두 팔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