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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Chapter.5 Corrupted Flame Lord(2)


탈라스의 몸에서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 불꽃은 탈라스의 몸을 타고 올라, 쭉 뻗은 두 손에 서서히 모여들었다. 그것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약 10초 정도가 지난 후엔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화염이 탈라스의 머리 위에 맺혀 있었다.
“…….”
그것을 본 류드나르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탈라스의 머리 위에 피어오른 화염이 커지면 커질수록, 류드나르의 눈은 조금씩 더 멍해져 갔다.
그렇게 서 있던 류드나르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
‘뭐지?’
정신을 차린 류드나르의 머릿속으로 어떤 문장이 끊임없이 지나갔다.
무심결에 그 문장을 따라 외운 류드나르의 손에 붉은 화염이 맺혔다. 그 순간, 류드나르는 자신이 외우고 있는 것이 마법 주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주문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류드나르는 계속해서 그 주문을 외워 나갔다.
조금 더 그것을 따라 외운 류드나르는 그 주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나이델의 방에서 발견한, 이상한 전설이 적혀 있던 책의 말미에 기록되어 있는 주문이었다.
‘분명히, 이건…….’
기억을 더듬던 류드나르는 후끈한 열기를 느꼈다.
류드나르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어마어마한 크기로 부풀어 있는 검푸른 화염이 보였다. 마치 태양이 하나 더 늘어난 것만 같은 느낌에 류드나르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주문을 완성한 류드나르는 붉은 화염을 손에 맺은 채 계속해서 탈라스를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계속해서 커지던 검푸른 화염이 팽창을 멈췄다.
“네놈 하나 상대하기엔 과분하지만.”
갑자기 입을 연 탈라스의 눈이 류드나르를 향했다.
“아무래도 확실한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렇게 말한 탈라스는 허공에 띄워 놓았던 거대한 화구(火球)를 집어 던졌다.
작은 성만한 화염이 날아드는 것을 본 류드나르는 입술을 깨물고는 손을 뻗었다. 그러자 류드나르의 손에 맺혀 있던 화염이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검푸른 화염에 비하면 초라할 만큼 작아 보였지만, 류드나르로서는 다른 방법은 생각할 수 없었다.
자신이 내던진 화구를 향해 날아드는 붉은 화염을 본 탈라스는 비웃음을 머금었다.
“마지막 발악치고는 초라하지 않…….”
비웃음을 날리던 탈라스의 표정이 굳었다.
작게만 보였던 붉은 화염이 어마어마한 크기로 부풀어 올랐다. 탈라스가 불러낸 검푸른 화염과 충돌할 즈음엔, 이미 류드나르가 불러낸 화염은 탈라스의 것보다 몇 배나 더 커져 있었다.
순식간에 작은 언덕만 한 크기가 된 붉은 화염이 검푸른 화구와 탈라스를 집어삼켰다. 그것마저도 모자랐는지, 붉은 화염은 탈라스의 뒤에 있던 성벽과 그 뒤의 괴물들마저도 집어삼킨 채 지평선 너머를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뻥 뚫려 버린 성벽을 본 사람들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류드나르 역시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손에서 나왔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강력한 마법에 놀란 류드나르는 입을 쩍 벌리고는 멍한 표정을 띠었다.
그 순간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단설은 중얼거림을 끝내고는 고개를 들어 올리며 소리 질렀다.
“좋아, 이제 소환만…….”
이만 자나 되는 주문을 다 읽어 내려간 것에 만족했던 단설의 얼굴에 당황이 떠올랐다. 갑작스럽게 뻥 뚫려 버린 성벽의 모습 때문이었다.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던 단설이 말했다.
“뭐, 뭐야! 저거 왜 저래!”
“내가…….”
“응?”
“내가 그랬어.”
“…….”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띤 단설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기사 하나가 지금의 상황을 확인해 주었다. 기사의 말을 들은 단설은 입을 쩍 벌리며 류드나르를 바라보았지만, 류드나르 역시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하려던 질문을 다시 삼켰다.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류드나르는 뻥 뚫린 성벽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타락한 불의 왕…….”
“뭐?”
“루카스. 맞아, 루카스였어.”
“야, 야!”
갑자기 단설은 류드나르의 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고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럼 지금 쓴 게 흑마법이야?”
“응? 어, 아마 그럴걸?”
“맙소사.”
작게 비명을 내지른 단설은 분위기를 살피고는 다시 말했다.
“그 주문 어디서 얻은 거야? 너 주문은 라이팅밖에 모른다고 했잖아.”
“나이델 공 방에서 발견한 책에서. 그동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아까 그 마족이 마법을 쓰니까 갑자기 생각났어.”
“후우―.”
한숨을 내쉰 단설은 갑자기 투덜거렸다.
“망할 놈의 책. 나한테는 겨우 혼란 주문밖에 안 줘 놓곤.”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아무튼 웬만하면 그 주문은 쓰지 마.”
“왜?”
“그야…….”
막 입을 열었던 단설의 몸이 갑작스레 몇 야드 밖으로 튕겨 나갔다. 놀란 류드나르는 고개를 들었고, 만신창이가 된 채 허공에 떠 있는 탈라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 살아 있어?”
“빌어먹을.”
덜덜 떨리는 팔을 들어 류드나르를 가리킨 탈라스의 손가락 끝에서 강한 힘이 실린 구체가 내쏘아졌다. 그러나 그것은 류드나르를 스쳐 옆쪽의 건물을 박살 내었다. 팔이 떨려 조준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자신이 아닌 단설이 튕겨 나간 것도 그것 때문일 거라 생각한 류드나르는 조금 전 거대한 화염을 일으켰던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류드나르는 끝까지 주문을 외울 수 없었다. 탈라스가 쏘아 보내는 구체가 계속해서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다람쥐 같은 놈!”
계속해서 몸을 날려 구체를 피하는 류드나르를 본 탈라스는 울화를 토해 냈다. 그런 상황이 몇 분간 이어졌고, 이를 간 탈라스는 아직 남아 있는 성벽에 올라서서는 팔을 고정시킨 채 거대한 화염을 불러냈다. 붉은 화염에 휩쓸리기 전에 불러냈던 것보다는 훨씬 작은 크기였지만, 그것을 맞는다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임은 너무도 뻔했다.
주문을 외울 시간도 갖지 못한 류드나르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화염을 피할 수 있을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건물 뒤에 숨어 보았자 건물과 함께 쓸려 갈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죽어 버려라!”
“소환!”
탈라스가 화염을 집어 던진 순간, 류드나르의 뒤쪽에서 단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류드나르의 앞쪽에 은색 빛 무리가 뿜어졌다. 소환을 위한 마법진이 그려진 것이다.
탈라스가 집어 던진 화염은 류드나르의 바로 앞까지 날아왔다. 그와 거의 동시에 마법진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갑자기 강해지며, 그 빛 무리 속에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안녕하세요오, 전 아캄 남구청…… 으아악!”
“에엑, 련화 형?”
빛 무리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련화를 본 단설은 당황했다. 그것은 류드나르와 련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갑작스럽게 소환되자마자 거대한 화염을 마주한 련화는 당황을 지나 경악했고, 급히 오른손을 휘저어 화염을 막아 냈다.
“뭐, 뭐…….”
자신이 날린 화염이 은발 청년의 손에 막혀 있는 것을 본 탈라스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것을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련화는 왼손을 들어 이마의 땀을 닦아 내며 투덜거렸다.
“나이델 고오옹…… 아무리 급해도 이러는 법이 어디 있…… 어라?”
주변을 둘러보며 나이델을 찾던 련화는 나이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에 의아한 표정을 띠었다. 그러나 련화는 곧 긴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단설을 발견하고는 어떻게 된 건지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그걸 왜 네가 가지고 있어?”
“그, 그게…….”
“아아, 몰라, 몰라. 아무튼 지금 여기 왜 이래?”
그렇게 말한 련화는 자신의 오른손에 막혀 있는 화염을 힐끗 쳐다보곤 짧은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이글거리던 화염이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그 모습을 본 탈라스는 눈을 크게 떠올리곤 련화를 바라보았지만, 련화는 그를 보지도 않은 채 단설을 향해 말했다.
“그 스크롤, 이리 줘 봐.”
“응? 어…… 여기.”
단설은 련화에게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그것을 받은 련화는 잠시 그것을 쳐다보더니 두 손으로 두루마리를 쫙쫙 소리 나게 찢었다.
“아악! 뭐 하는 거야!”
“하아, 속 시원하다.”
련화는 후련하다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띠었다. 옆에서 단설이 절규하는 것도 깔끔하게 무시한 채 만세를 부르던 련화는 손에 스크롤 조각이 붙어 있는 걸 보곤 화들짝 놀라며 두 손을 마구 털었다.
그렇게 두 손을 탈탈 턴 련화는 다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라?”
“……넌 뭐냐.”
경계의 빛을 띤 채 자신을 바라보는 탈라스를 발견한 련화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와아, 탈라스 씨, 오랜만이에요!”
“……!”
탈라스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저 어벙해 보이는 청년이 어째서 자신을 알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날 알고 있지?”
“아아, 여기 탈라스 씨가 이렇게 만든 거군요?”
“대답해!”
탈라스는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나 련화는 탈라스를 스윽 바라보고는 다시 성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성벽은 절반 이상이 날아가 있었다. 더군다나 성벽의 토대가 되는 언덕마저도 일부가 무너져 버린 상태였다. 아무리 보아도, 다시 성벽을 쌓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잠시 그것을 보며 혀를 차던 련화가 입을 열었다.
“이거 수리비 엄청 나올 텐데. 저 성벽만 해도 다시 쌓으려면 50만 마르크 정도는 들어갈 테고.”
“건방지게!”
눈을 부릅뜬 탈라스의 손에 다시 검푸른 화염이 맺혔다. 그리고 막 그것을 집어 던지려 할 때, 콧등을 긁던 련화가 그를 향해 말했다.
“그런데 탈라스 씨가 왜 여기 있는 거죠?”
그 말을 들은 탈라스의 표정이 굳었다. 그것을 보며 오른손으로 콧등을 긁은 련화는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 그냥 가면 봐줄게요.”
“으득.”
아랫입술을 깨문 탈라스는 주먹을 꽈악 쥐고는 련화를 노려보며 말했다.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내게 그런 말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은가.”
“하아―.”
련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탈라스 씨.”
그렇게 말한 련화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고는 탈라스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맞을래요?”
“뭐?”
“맞을래요?”
어이가 없어진 탈라스는 련화를 노려보았다. 잔뜩 살기가 어린 눈이었다. 그러나 련화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탈라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긴장조차 느끼지 않는 련화의 모습에 눈꺼풀을 떤 탈라스는 입술을 깨문 후 천천히 말했다.
“이 천한 것들이 지금…….”
분노를 이기지 못한 탈라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